황금빛 모서리

문학과지성 시인선 130

김중식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3년 5월 15일 | ISBN 9788932006321

사양 신46판 176x248mm · 131쪽 | 가격 12,000원

책소개

시인은 이 시집에서 세상 끝에 간들간들 매달려 있는 삶의 곡예를, 그곳까지 밀고 갈 수밖에 없는 삶의 상처를 보여준다. 시인이 유일하게 의지하고 있는 것은 던져버리고 싶은 생활이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의 힘은 그를 지탱하고 있는 그 생활 세계의 끈을 끊임없이 끊어버리는 데서 솟구쳐오른다. 그의 시는 그러나, 날아오름의 자유로움을 갈구하되 반대로 자학적일 만큼 세상에 자신을 비끌어맨다. 그래서 그는 세상의 끝을 배회할 수밖에 없고, 그렇기 때문에 그는, 그의 시는 황혼의 황금빛을 받아 아름답게 반짝인다.

[시인의 산문]

자기 삶을 放牧시킨 그를 나는 존경한다. 자기 삶의 주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방목된 삶은 야생마처럼 갈기를 세우고 주인의 울타리를 넘어서려 한다. 그 고투의 흔적이 역력한 그의 연보를 읽을 때 나는 열등감을 느낀다. 내 삶이 가자는 대로 갔다면 나는 이 자리에 없어야 한다.

그의 글에는 일부러 외우려 하지 않아도 저절로 외워지는 구절이 반드시 있다. 그의 삶이 흘린 피로써 쓴 것이기 때문일 터이다. 그의 글은 나를 질투케 한다. 詩가 아니어도 그렇다.

나의 시는 그러한 열등감과 질투의 소산이다. ‘목숨 거는 삶’ 이외에 가장 고난받는 삶의 형식으로서 시를 선택했지만, 이제는 거꾸로, 시가 내 삶의 귀를 끌고 간다. 아니, 끌어다오!

작가 소개

김중식 지음

1967년 인천에서 태어나 서울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했다. 1990년 『문학사상』에 「아직도 신파적인 일들이」 등을 발표하며 시단에 나왔다. 시집으로 『황금빛 모서리』, 산문집으로 『이란-페르시아 바람의 길을 걷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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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 리뷰(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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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 2 =

  1. seensee
    1999.10.10 오전 12:00

    삶에 대한 열정과 절망을 동시에 가져본 사람이 김중식 시인의 시집을 읽게 된다면 그 사람은 결코 손에서 시집을 쉽게 내려놓지 못할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삶의 방식을 선택할 수 있지만 그것은 언제나 자신이 놓여진 세상 안에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시인은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뼈에 사무치는 절망, 시인은 그러나 그 속에서도 당당하게 존재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 시집의 가장 첫 번째 페이지에 있는 시, 「이탈한 자가 문득」에서 그는 ‘단 한 번 궤도를 이탈함으로써 두 번 다시 궤도에 진입하지 못할지라도 캄캄한 하늘에 획을 긋는 별’을 보았다고 말한다. 자신이 놓인 세상으로부터 이탈할 수 있는 용기가 있는 한, 세상이 그 용기를 용기라 부르지 않더라도, ‘획을 그을 수 있는, 포기한 자’는 ‘이탈한 자가 문득 자유롭다는 것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이탈이 있기까지의 괴로움은 「食堂에 딸린 房 한 칸」과 「엄마는 출장중」이라는 시에서 가장 잘 나타난다. 먼저 「食堂에 딸린 房 한 칸」을 보자. A에 딸린 B라고 할 때 대개 우리는 B를 A보다 작은 개념으로 이해한다. 그리고 보통 ‘방 한 칸에 딸린 부엌’이라 말하지 ‘부엌에 딸린 방 한 칸’이라 말하지 않는다. 그런데 시인은 부엌과 대치될만한 식당을 방보다 더 영향력 있는 공간으로 상정하고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이라고 제목을 쓴다. 이런 제목이 마음 한켠을 저리게 한다.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먹는 것이 먼저라는 사실이 시 제목에서 드러나는 것이다. ‘사방이 막다른 골목’인 세상에서 화자는 ‘동시 상영관 두 군데를 죽치고 돌아’와 ‘열여섯 시간의 노동을 하는 어머니’를 만나고 사창가의 여자들보다도 더 지쳐보이는 가족들을 만난다. ‘대학씩이나 나온 녀석이 놀구 먹구 있다’는 놀림에 상처받고 ‘집으로 들어서는 길목은 쓰레기 하치장이어서’ 연애하는 여동생들이 짜증낼 것을 생각한다. 화자에게 ‘세상의 끝에 있는 집’은 ‘무수히 떠났으되 결국은 돌아오게’ 되는 집인것이다. 「엄마는 출장중」을 보자. 한량 생활의 화자는 집에 돌아와 어머니가 남기신 쪽지를 본다. 아들에 대한 걱정이 가득하다. 화자는 밥벌이에 대한 생각을 잠깐 하다가 출장가신 어머니 덕분에 석달은 자유라고 외쳐본다. ‘그런데 냉장고에 양념된 돼지 불고기’는 화자를 또 다시 슬프게 한다. 이러한 시인의 자의식은 갈대를 통해 그 몸을 드러낸다. 바람이 불면 흔들리는 속이 빈 갈대를 통해, 끊임없이 흔들리는 자신의 박약한 의지를 탓하고 반면에 ‘安住를 포기’함으로써 외곽에서 전율로서 존재한다고 고백한다. ‘갈대’ 연작시들은 그렇게 쓰여졌다.
    시인의 도처에 깔린 서늘한 공기를 마시며 존재하는 이 시집, 『황금빛 모서리』에 우리는 한번쯤 몸 한 구석을 긁혀도 좋을 것이다. 21세기의 문 앞에서 ‘밀레니엄’이 나붙은 거리를 지나며 우리는 얼마나 스스로의 삶을 放牧시킬 수 있는지 반성해봐야 하지 않을까. 순응주의자들에게 침을 뱉는 김중식 시인은 말한다. ‘萬里를 가야 사막을 횡단하는 나그네 하나 생긴다’고. 우리는 얼마나 왔을까. 사막을 횡단하는 나그네쯤이 되어야 이탈할 수 있고 또 이탈 후의 생을 걱정할 수나 있지 않겠나. 너무 빠르게 세상의 중심이 여기저기로 옮겨지고 있고, 그 중심의 중력에서 벗어나려는 우리는 한없이 어지럽다. 모든 것을 잊어버리거나 미쳐버리지 않는 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시인 김중식이 『황금빛 모서리』를 통해 보여주는 것은, 날카로운 모서리에 긁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황금빛 상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날아오르면서 동시에 이 땅에 철저히 자신을 비틀어 매놓고 마는 그의 모습이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황금빛 모서리』이후의 시집이 나오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말 잃은 시인은 오직 시집 안에서만 말하고 있다. 김중식 시인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기다리다 지치기 전에, 너무 늦지 않게 그가 돌아와주었으면 좋겠다.

    1. 태엽장치돌고래
      2018.08.02 오후 5:32

      돌아오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