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의 게저분한 삶에서 벗어나 자기를 키워온 아름답고 따뜻한 자연으로 돌아가고자 하는 꿈을 꾸던 시인은, 『전쟁과 평화』에서, 그 꿈의 실현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현대 세계의 파멸적인 문명 상황으로 그 시선을 높인다. 그는 우리 인간이 전쟁과 살육과 병듦과 파멸의 이 냉혹한 상황에서 평화와 사랑과 화해에 의해서만이 구원받을 수 있다는 진실을 뜨겁게 껴안는다. 이 시집은 그리하여 비극적 시선과 구제에의 염원이 뭉친 서사시적 공간을 이룬다.
[시인의 산문]
우리가 사는 땅엔 하루도 영일이 없고 거의 매일처럼 전운이 감돌고 있다. 하늘에는 초음속 전략 무기가 날고 땅에는 상수리 나무뿌리 밑으로 방공호가 뚫리는데, 오늘도 실험실의 과학도들은 전대미문의 살상용 무기를 만드느라 얼굴이 창백해져 있는데 우리는 언제까지 잠속에 빠져 있을 것인가. 우리가 먹고 마시고 배설하는 시간에도 지구의 곳곳에는 가공할 만한 살상용 무기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무서운 사실을 우리는 지금 깨닫고 있는가. 우리가 편안한 잠의 침대에 몸을 맡기고 있는 동안에도 불가사의한 핵무기들이 금속성의 꿈을 꾸며 불면의 눈을 뜨고 불타는 날개를 감추고 있음을 사람들은 기억하고 있는가.
모든 신문과 방송은 눈뜨기가 바쁘게 세계의 분쟁 지역과 군사 상황을 알린다. 미·소와 같은 초강대국들은 날이 갈수록 그들의 힘의 과시에 여념이 없고 그들의 패권 의식은 온 지상을 뒤덮고 있다. 흑해 중동 페르시아 만에는 잠시도 편안한 날이 없다. 레바논·팔레스타인·베트남·코리아, 그 선병질의 이름을 우리는 언제면 잊고 지낼 수 있겠는가.
팬텀기에 찢어진 한국의 가을 하늘을 어느 천사가 와서 곱게 아름답게 기워줄 것인가. 군화 발자국에 이지러진 한국의 휴전선에 누가 와서 민들레를 피게 해줄 것이며 상처진 강원도를 누가 다시 진달래 피고 두견새 알을 품는 뚜깔잎의 고향으로 감싸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