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화의 속도조차 감지하지 못하게 만드는 디지털 문명의 흐름 앞에서 기대와 두려움을 함께 안고 시대와 미래에 대해 반성과 회의의 시선을 보내고 있는 지식인의 마력적인 산문 모음. 저자는 그 같은 문제 앞에서 망설임과 관조의 위력을 그의 장중하면서도 매력적인 문체에 실어 글 읽는 맛을 선사하고 있다.
[책머리에]
90년대로 들어, 새로운 세기 혹은 새 밀레니엄을 자각하게 되면서, 나는 다가오는 미래에 대해 낙관과 희망을 품고 있었다. 아마도, 어두운 시절을 뚫고 지나온 데 대한 안도와 기대가 우울했던 나를 새로이 감싸준 덕분이었을 것이다. 그러고서 몇 해, 나는 의외로, 앞으로의 시대에 대한 두려움과 불만에 서서히 젖어들기 시작했다. 그것은 내가 나이들어 새로운 문화·문명·가치 체계에 적응하기 어려움에서 빚어진 것만은 아닐 것이다.
근래의 나의 길고 짧은 글들, 나의 멋대로의 생각들, 나의 흐려지는 눈들은 21세기 혹은 2000년대라는 환상적인 시대와 그 문명에 대한 나의 두려움과 불만이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로 몰려 있었고, 이 가볍고도 무거운 책은 그 거친 사유의 모음들이다. 나는 이 세계가 내가 비관적으로 바라보는 것과는 달리 더욱 풍요하고 자유롭고 편리하게 열려가리라는 ‘멋진 신세계’에의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세계의 무서움에 대한 나의 회의와 우수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었다. 어느 시대에든 빛과 그림자가 있게 마련이며 그에 대한 찬양과 증오는 함께할 수밖에 없는 법이다. 나는 이 희망에 반하는 전망들을 통해, 탄식과 우울을 넘어, 내 자식들의 시대를 격려하고 싶다. 비록 내 자신은 “나의 삶이 생애의 끝자락만으로 21세기에 걸쳐 있다는 것을 참으로 다행스러워! 하고 있는 중”이라고 고백한 바 있지만.
– 1999년 5월, 김병익
Ⅰ. 핸드폰이 불러오는 문화
핸드폰, 노트북을 살까말까
대중 문화, 새로이 보다
언더그라운드 문화에 대하여
새로운 세기의 출판 산업
문학 작품의 히트 상품화
문학인이 가난해도 좋을 이유
영웅론, 괴기담 그리고 사오정
‘인기’로부터의 자유
박세리 경기 보기
정치는 없다
박노해씨의 출옥
문화 산업에서의 인적 요소
기업의 문화 이미지
총제적인 문화 가꾸기
미국 문화의 미국주의
북한 영화를 보는 감회
생명공학이 제기하는 난제들
‘리메이킹 마인드’
정보화 사회의 딜레마
무서운, 멋진 신세계
기술 개발의 대가
유전자 공학의 그늘
써먹을 수 없는 학문을 위하여
’20세기학’의 설정
Ⅱ. 자본-과학 복합체가 지배하는 시대
자본-과학 복합체 시대에서의 문학의 운명
세기말의 회의
탈실재의 세계를 바라보며
남·북한 문화의 통합을 위하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