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철학과 문학, 예술과 과학, 예술과 철학, 예술과 미학 등 각기 다른 분야의 상호 공통성과 변별성, 그리고 상호 침투 현상을 엄밀한 이론적 논증을 통해 추적하는 저자의 철학적 편력기라고 할 가벼운 글들과 함께 어우러져 재미있고 진지하게 읽히는 독특한 철학서이다.
불문학 전임으로서 대학 강단에 서기 시작한 지 벌써 37년이 됐고 그 중 미국과 한국에서 철학 교수의 이름으로 일한 지 26년이 흘렀지만 나는 한번도 교수라는 직업을 정말 내 직업 즉 생활 수단으로 생각해본 적이 한번도 없다. 어떠한 것에도 얽매임 없이 자유자재롭게 생각하며 살고 싶었던 나에게는 교수라는 직업마저도 직업인 이상 어딘가 억압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철학에 끝없는 흥미를 갖고 철학 교수라는 직업을 아직도 최선의 선택으로 삼아 살아왔긴 했지만 나는 나의 철학적 작업을 직업으로서 보기를 거부해왔다. 나는 철학은 물론 어떤 지적 분야의 직업적 전문가가 되기를 의식적으로 피해왔다. 이러한 나의 기질 때문에 철학 특히 대학에서의 강단 철학 즉 직업적 철학 교수로 문제가 있을 수 있음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모든 인간의 활동은 물론 지적 활동 그리고 철학이라는 하나의 지적 활동 분야에서만도 날로 세분되어 전문화되고 있는 오늘의 문화적 그리고 특히 학문적 현실을 나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내가 문학이고 철학이고간에 공부를 했다면 그것은 대학에서의 문학 혹은 철학 교수가 되려고 한 것은 전혀 아니었다. 따라서 대학에서 내게 직업적 불편이 생기더라도 나는 그것을 마땅히 감수해야 한다. 나는 정말 될 수 있는 대로 자유롭게 생각하고 가능하면 최대한 자율적으로 철학적 작업 즉 나의 독자적 철학을 세워보고자 은근히 노력해왔다. 그래서 그 동안 필자가 여러 저서나 논문들을 통해 보인 지적 관심의 분야가 다양했고 물론 철학 안에서까지도 나의 관심이 수선할 만큼 남달리 다양한 경향을 띠고 있다는 사실은 오히려 자연스러운 결과이다.
나는 약 2년 3개월 전 30년 이상의 외국 생활을 청산하고 돌아와 모처럼 다시 모국어로 강의를 하고 집필하는 자유를 만끽하고 있다. 여기 모은 24편의 글들 중 5편을 빼놓고 모두 고국에 오래간만에 돌아와 느끼는 편안함과 훈훈함 속에서 지난 2년 동안 집필하고 발표했던 글들이다. 그 중 대부분은 특정한 문제에 대한 청탁을 받고 집필했고 그 중에는 내 자신이 선택한 주제들도 있다.
2년 전 조국에 돌아와서 원래 계획했던 것은 ‘합리성’과 ‘철학적 인간학’에 관한 각각 독립된 책을 쓰는 것이었다. 그러나 사정이 바뀌어 다양한 문제에 대한 단편적 논문들만을 생산했을 뿐이다. 몇 년 전부터 계획했던 위의 두 가지 철학적 주제에 대한 보다 세밀하면서도 종합적이고 체계적인 작업은 당분간 미루어진 결과가 됐지만 그 문제들에 대한 나의 견해는 위의 여러 글들 속에서 단편적이고 산만한 상태로나마 간접적으로 비쳐질 것으로 믿는다.
– 1993년 11월, 포항공대 연구실에서, 박이문(朴異汶)
책머리에
제Ⅰ부: 철학 전후
철학 전후 / 마지막 시작 / 나의 길 / 다시 대학생이 된다면…… /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 스무 살의 독서 『구토』
제Ⅱ부: 철학과 문학
철학과 문학 / 철학적 허구와 문학적 진실 / 시와 사유
제Ⅲ부: 진리와 합리성
진리의 양면성 / 진리와 시간 / 합의로서의 합리성 /
합리성의 비합리성 / 도덕적 개념으로서의 합리성 /
철학의 사회적 규범성과 사회의 철학적 규범성 /
자기 기만 / 정통성과 도덕성
제Ⅳ부: 예술과 미
예술과 철학과 미학 / 예술과 과학 / 생태학과 예술적 상상력 /
철학, 예술 및 건축 / 예술과 포스트모더니즘 / 예술과 미 /
예술 작품 평가의 역사성 / 문학과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