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시인은 ‘극서정시’라는 틀을 완성하면서 또 한차례의 조용한 변신을 맞이한다. 전신이 동원된 변신, 삶 자체가 형이상학이 되는 세계로의 진입이다. 그것은 살아 있음의 격렬한 확인을 통해, 시간과의 새로운 만남을 통해 이루어진다.
[시인의 산문]
욕심을 계속 줄였다. 늘 마시던 밤술을 오랜만에 안 마시고 깜빡 시계 차는 것을 잊어버리고 직장에 갔다. 타인의 시간이 내 시간보다 덜 예민했다.
베란다의 벤자민나무를 보고 있노라면, 밑둥에 귀뚜라미도 와서 살고 또 봄이면 민들레씨도 몇 날아와 자리잡고 꽃을 피우는 것을 보고 있노라면, 보리수 아래서가 아니라 벤자민나무 아래서도 깨달음이 이룩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파트 속이 잠시 적막해진다.
허구fiction만이 우리에게 희망을 준다. 희망 자체도 허구가 아닐까?
미완(未完)의 시를 쓰고 싶다. 미완의 태양계를 살다 가고 싶다. 젊은 날 내 혼을 빼앗던 저 성(聖)베드로 성당의 초완성(超完成) ‘피에타’보다는 같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으로 죽은 예수를 안고 처연히 앉아 있는 마리아 등뒤에 익명의 순례자가 서 있는 미완의 ‘피에타’들을 만들다 가고 싶다. 배와 가슴으로.
이제 시간의 얼굴이 보일 것이다.
작가 소개
독자 리뷰(1)
내가 황동규님의 첫 시집을 읽은 것은 재작년
대학 1년 때였다. 고등학교때 수능 문제집에서 보았던
그의 연작시 ‘풍장’의 강렬한 기억을 떠올리며 시가 무언지도
모를 그 시절, 제목처럼 강렬하고 원대한 그 무엇을 기대하며
시집의 첫장을 넘기던 기억이 추억처럼 새롭다.
내가 가지고 있는 몇 안되는 황동규의 시집 중에서
‘미시령 큰바람’은 가장 재밌게 가장 감정이입되어 읽은
시집이다.
자세한 내용이 기억나지는 않지만 강원도 지방을 여행하며
도가적인 동양정신으로 세상을 달관하려는 그 의지아닌 의지가
대학 1년 온통 혼란스러움으로 고개를 흔들던 나를
위안과 안식으로, 그러나 결코 도피적이지 않은 그런 정신세계로
이끌었다.
어떻게 보면 황동규의 매우 매력적인 시집 ‘미시령 큰바람’은
그 이후 내가 시라는 예술에 관심을 기울이게 했던 시금석이었다.
그 점에서 나는 황동규에게 감사하고,
또 그에게 그만한 명작을 탄생하게 한 ‘미시령’이라는 이름을
갖고 있는 강원도의 어느 산자락에게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