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소개
외로움의 절정이 흰색이고, 그 흰 빛깔이 삶의 때를 씻기는 정화의 순간이라면, 시집 『생밤 까주는 사람』은 흰 종이 위에 일렁이는 눈부신 햇빛 같은 것이다. 그것은 정갈하면서도 창백한 병실을 생각나게 한다. 그 이미지는, 세상의 아픔을 깨닫는, 그리고, 회복된 생이 혹은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우리에게 가만가만 귀엣말로 속삭인다.
[시인의 산문]
망태기에 들국화 한 다발을 꽂아두니 향기로운 門 속에는 향기로운 한 여자가 살게 될 것 같다. 이렇게 아늑한 공간이 있었는데 왜 그토록 헤매야 했는지? 그 길이 시인의 길이었는지 돌아보면 뒤엉킨 배암처럼 징그럽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나무들이 멍하게 서 있다. 비 멈춘 후 그 나무들의 모습은 마치 무엇인가에 혼을 다 빼앗겨버린 듯하다.
원하는 것이 너무 먼 곳에 있을 때 찾아나선 길. 그 길목에서 마주친 한 아름다운 풍경, 합방도 못한 채 혼자 되어 살다가신 방씨, 할머니의 세 평 무덤 그 뜨락에는 안개꽃보다 더 눈물겨운 들국화와 갈대가 한 나라를 이룬 듯 모여 흔들리고 있었다. 한 남자에 대한 한 여자의 오랜 그리움이 죽음 그 이후에도 들국화로, 갈대로 피어나 저토록 맑고 고운 자태를 보여줄 수 있다니? 날아오를 듯 가벼워져서 일어서는데 내 옆구리에 푸드득 날아오르던 꿩 한 마리, 벼락 맞은 듯 품게 된 그리움의 알을 방씨 할머니의 뜨락에 걱정 없이 놓아두고 떠나라는 듯 제 알을 갈대숲에 놓아두고 날아가던 꿩 한 마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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