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밤 까주는 사람

문학과지성 시인선 136

박라연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3년 11월 15일 | ISBN 9788932006659

사양 신46판 176x248mm · 103쪽 | 가격 5,000원

책소개

외로움의 절정이 흰색이고, 그 흰 빛깔이 삶의 때를 씻기는 정화의 순간이라면, 시집 『생밤 까주는 사람』은 흰 종이 위에 일렁이는 눈부신 햇빛 같은 것이다. 그것은 정갈하면서도 창백한 병실을 생각나게 한다. 그 이미지는, 세상의 아픔을 깨닫는, 그리고, 회복된 생이 혹은 아프지 않을 수 있는 삶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우리에게 가만가만 귀엣말로 속삭인다.

[시인의 산문]

망태기에 들국화 한 다발을 꽂아두니 향기로운 門 속에는 향기로운 한 여자가 살게 될 것 같다. 이렇게 아늑한 공간이 있었는데 왜 그토록 헤매야 했는지? 그 길이 시인의 길이었는지 돌아보면 뒤엉킨 배암처럼 징그럽다. 고개를 들어 창밖을 보니 나무들이 멍하게 서 있다. 비 멈춘 후 그 나무들의 모습은 마치 무엇인가에 혼을 다 빼앗겨버린 듯하다.

원하는 것이 너무 먼 곳에 있을 때 찾아나선 길. 그 길목에서 마주친 한 아름다운 풍경, 합방도 못한 채 혼자 되어 살다가신 방씨, 할머니의 세 평 무덤 그 뜨락에는 안개꽃보다 더 눈물겨운 들국화와 갈대가 한 나라를 이룬 듯 모여 흔들리고 있었다. 한 남자에 대한 한 여자의 오랜 그리움이 죽음 그 이후에도 들국화로, 갈대로 피어나 저토록 맑고 고운 자태를 보여줄 수 있다니? 날아오를 듯 가벼워져서 일어서는데 내 옆구리에 푸드득 날아오르던 꿩 한 마리, 벼락 맞은 듯 품게 된 그리움의 알을 방씨 할머니의 뜨락에 걱정 없이 놓아두고 떠나라는 듯 제 알을 갈대숲에 놓아두고 날아가던 꿩 한 마리.

작가 소개

박라연 지음

1951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한국방송통신대 국문과와 수원대 국문과 석사, 원광대 국문과 박사과정을 졸업했다. 1990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가 당선되어 시단에 나왔으며, 시집으로 『서울에 사는 평강공주』 『생밤 까주는 사람』 『너에게 세들어 사는 동안』 『공중 속의 내 정원』 『우주 돌아가셨다』와 산문집으로 『춤추는 남자, 시 쓰는 여자』 등이 있다. 제3회 윤동주상(2008) 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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