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년 넘는 세월 동안 풍부한 토속어를 통해 우리 사회의 산업화, 도시화가 몰고 온 부정적 양상들에 대해 치열한 비판을 가했던 작가 이문구의 대표적인 연작소설이 바로 『관촌수필』(문학과지성사, 1977)이다. 분단과 전쟁으로 파괴된 토착 전통 세계의 몰락과 농촌의 현장을 현대의 실향 의식으로 형상화시킨 최초의 연작소설이다. 걸진 충청도 사투리로 맛깔나게 풀어가는 서사의 심지에는 조부로부터 배운 한문의 수사학과 힘 있고 격조 있는 문어체가 탄탄하게 자리 잡고 있다.
『관촌수필』은 우리 사회가 본격적인 근대화․도시화․산업화의 길을 걷고 있던 70년대에 씌어져, 저자가 유년 시절을 영위한 농촌 공동체에 대한 그리움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도시화의 물결에 의해 훼손당하고 있던 농촌 사회의 아픈 세태에 대한 묘사를 통해 역설적으로 당시 우리 사회의 근대적 기획에 대한 비판적 성찰을 수행하여 시대적으로도 큰 의의를 갖는 소설로 손꼽혀왔다. 도시화 경향 속에 사라지는 풍속과 정서, 인간에 대한 하염없는 그리움이 주요 정서로 관류한다.
이 소설은 「일락서산」「화무십일」「행운유수」「녹수청산」「공산토월」「관산추정」「여요주서」「월곡후야」 등 8편의 연작 중․단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중에서도 「공산토월」은 친화적이고 전인적인 인물들로 독자들에게 큰 감동을 전하고 있어 단연 이 소설의 백미로 꼽힌다. 「공산토월」에서 이문구는 그가 고향에서 만난 사람들 중 “석공”이라는 별명을 지니고 있는 신현석을 통해 그가 생각하는 가장 바람직한 인간상을 제시하고 있다. 근대화되고 도시화된 인간상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인 신현석에 대해 비평가 김종철은 “매정한 도시인들 속에 섞여 살다가 석공과 같은 사람에 부딪히면 우리는 스스로 잃고 있는 게 무엇인가를 통렬하게 깨닫게 된다”고도 평한 바 있다. 이러한 인물을 통해 이문구는 현대 도시 사회의 이기적이며 개인주의적인 인간형을 비판하고 있으며 일련의 근대적 기획이 인간의 심성을 얼마나 황폐하게 만드는가를 효과적으로 보여준다.
그렇지만 『관촌수필』을 복고주의적이며 보수적인 취향이라고 매도하는 것은 합당치 않다. 이 소설은 농촌에 대한 어설픈 환상이나 미화, 그리움 없이 자본주의화가 우리에게 가져다준 탐욕스러운 인간현이 땅에 기반을 둔 농본주의적 정서를 얼마나 무참히 해체시키고 있는가를 현금의 구체적인 농촌 현실에 대한 치밀한 묘사를 통해 효과적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그리하여 이문구는 우리의 근대적 기획이, 도시화가, 산업화가 우리에게 과연 무엇을 주었는가라는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머리말
책 끝에 몇 마디 객담을 덧붙이려 드니 여러 느낌을 제쳐가며 앞질러 떠오르는 것이, 새삼스럽게도 나는 늘 남의 덕으로 살아왔다는 생각이었다. 전부터 내가 남들 앞에 떳떳이 내놓을 만한 자랑거리로 여긴 것도 ‘나는 인덕이 많은 자’라는 사실 한 가지뿐이었다. 이 한 가지만으로도 내 평생은 남달리 다행스러운 셈이라고 일매지어 말할 수 있으리라. 나는 이 이상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
이 인덕은 이 책 속의 모든 글에서도 드러나고 있지만, 성년 이후 문단 데뷔를 비롯, 생활·창작·수상·출판 따위 어느 것 한 가지도 스승과 선배와 친구의 분별이나 우정에 의하여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없다. 특히 잡문집을 포함하여 6권에 이른 출판은 그 중에서도 두드러진 것이었으니, 7권째가 되는 이 『관촌수필(冠村隨筆)』도 그 예외가 아님은 두말할 나위 없다. 나는 지난 10여 년 동안 여러 가지 오죽잖은 글을 지었거니와, 내 가늠에도 그 중의 태반은 같잖고 되다 만 것들이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관촌수필』만은 남의 이야기도 아니고 하여 좀더 낫게 써보려고 나름으로는 무던히 애쓴 편이었다.
읽는 분에게 참고가 될까 하여 대강 잡기하면, 내가 이 나이 먹도록 벗어나지 못하는 것의 하나가 이미 유년 시절부터 몸에 밴 조부의 훈육이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늘어놓기 전에 먼저 나부터 소개함이 바른 순서 같아 말머리를 삼은 것이 「일락서산(日落西山)」이다. 이 책 속에는 실화를 그대로 필기한 「화무십일(花無十日)」 같은 것도 있고, 「여요주서(與謠註序)」 「월곡후야(月谷後夜)」처럼 지금도 그 자리에 살고 있는 동창생이나 친척의 이야기도 있으며, 후제 내 자식이나 조카들에게 읽히기 위해 소설이니 문학이니를 떠나 눈물을 지어가며 쓴 고인에 대한 추도문 「공산토월(空山吐月)」 같은 글도 있다. 금년(1977) 연초 「공산토월」의 정희 엄마를 찾아갔다가 벌써 중학교 졸업반이 된 고인의 유복녀를 보고 나는 또 울었다.
대개 조부 다음으로 내게 영향을 끼친 이는 한마당에서 자란 동네 아이들이었다. 30년이나 세월한 지금은 반 이상이 죽었거나 행방불명이 되었지만 그들이야말로 여러모로 나를 키운 사람들이니, 「행운유수(行雲流水)」의 옹점이, 「녹수청산(綠水靑山)」의 대복이, 「관산추정(關山芻丁)」의 복산이가 그들이었다.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를 차례로 쓰자면 아직도 멀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그만 묻어두려고 한다. 묵은 이야기보다는 앞일이 더 복잡하겠기 때문이다. 소식 모르는 옛친구들의 행운을 빈다.
– 1977년 10월, 이문구
일락서산(日落西山)
화무십일(花無十日)
행운유수(行雲流水)
녹수청산(綠水靑山)
공산토월(空山吐月)
관산추정(關山芻丁)
여요주서(與謠註序)
월곡후야(月谷後夜)
[작가 후기]
[초판 해설] 폐쇄 사회, 인정주의, 이데올로기·김주연
[신판 해설] 1991년에 읽은 『관촌수필』·권성우
관촌수필은 작가에게 잊을수 없는 고향의 추억을 써놓은 개인적 수필이다. 그때 상황을 어떻게 그렇게 잘 기억해 묘사하는지 화석같다. 한산 이씨 가문의 마지막 유생인 할아버지, 사회계급운동을 벌였던 아버지, 야무락지고 뭐든지 잘하지만 마지막에 안타까움을 느끼게하는 옹점이, 마을 사람들에게 손가라질 받지만 나에겐 언제나 든든한 힘이 되주는 대복이가 그렇다. 이들은 전통에서 근대로의 이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혼란 속에서 저마다의 아픔을 겪는 비극적인 인물들이다. 이들의 모습이 안쓰러워 보이는 까닭은 자신의 위치에서 가만히 편한이 있기보다는 다른사람을 먼저 생각하는 따스한 인정을 가진 지금 세상에서 보기 힘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관촌수필에는 책을 안읽던 사람들도 밤을 새워 본다는 다빈치 코드같은 외국 책이 절대로 갖지 못하는 특별함이 있다 한국적 특유의 향토적이고 해학적인 익살스러움은 어느 책도 따라오지 못할것 같다
관촌수필에는 할아버지의 영향인지 토속적인 문체와 한자어가 빛를 더한다. 나도 처음엔 이런 말투가 어려웠지만 읽다보니 편해지는 느낌이었고, 이문구라는 사람이 멸종 위기의 동식물을 보호하는 환경운동가와 같이 우리말글의 지킴이 같다는 생각을 했다
작가 이문구의 외양처럼 겉으로는 투박하지만 정이 많은 시골어른 같은 글이랄까? 책을 읽을때마다 편한 느낌이 든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에게는 이런 주인공처럼 힘들때 위안이 되어주는 기억이 없다는 아쉬움과 정말 내가 이들만큼 좋은 환경에서도 열심히 살고 있는지 물어봐주는 반성문같은 책이기도 했다.
이문구님의 자전적 연작 소설로 여덟 편의 독립된 이야기가 관촌부락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전개된다. 연작의 단편 영화들이 극장 스크린에 비춰지듯 눈앞에서 흘러간다. 순간 ‘빗줄기’ 가득한 흑백영화 속의 관촌을 거닌다.
작가는 자신과 이웃, 관촌을 회상한다. 변덕스럽지만 점점 성장해가는 어린 화자의 눈매가 다정하면서 예리하게 그려진다. 순박한 이웃들이지만, 때로는 고집 세고, 무지하고, 어린(심지어 어린 화자의 눈에도) 관촌사람들…
유교적이고 고지식한 할아버지가 지켜내고자 했던(일락서산), 전쟁으로 황패한 몸과 마음이 잠시 쉬어 갈만한(화무십일), 억척스러우면서도 따뜻이 맞아주는 누나 같은(행운유수), 여기저기서 손가락질 당할망정 믿음직하고 든든한 기둥 같은(녹수청산), 다 떠나고 점점 퇴색될망정 처음의 풋풋함을 그대로 지키나가는(공산토월), 인정도 못 받고 굳은 일은 도맡아 하지만 없으면 왠지 허전할 것 같은(관산추정), 순박한 나머지 산업화 속에 어수룩하게 당하고만 살아가는(여유주서), 새로운 환경을 찾아 고향을 떠나야만 하는(월곡후야) 농촌, 농촌사람들의 이야기다.
각 단편(일락서산, 화무십일, 행운유수, 녹수청산, 공산토월, 관산추정, 여유주서, 월곡후야)을 담당하는 주연들의 훈훈한 이야기들이 찬바람 쌩쌩 부는 겨울 한파도 다 녹여버린다. 읽으면 읽을수록 가슴속에 따스함이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다. 언젠가 친구의 할머니가 끓여준 청국장, 나무화덕에 숯을 넣어 그 위에 솥을 올리고 먹던 그 구수한 맛이 입가에 맴도는 느낌이다.
내가 세상에 첫발을 내디딘 1970년대 중반에 발표되었지만 30여년의 거리감은 들지 않는다. 케케묵은 옛날애기처럼 들릴 것을 이문구님이 구수하고 다정하게 풀어놓았다. 오히려 시간이 지날수록 반들반들 손길을 타는 목가구처럼 아련한 그리움이 그 향기를 더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70, 80년대에 한창 밀어붙였던 ‘공업화’와 ‘새마을’의 열병 역시 관촌수필에 담겨있다. 농촌의 젊은이들은 돈을 찾아 도시로 떠나버리고 할아버지들만 남는다. 허울뿐인 농사는 최소한의 생계수단으로 전락하고, 유입되는 도시의 구정물로 농심 역시 흐려진다. 그 허전함을 감추려는 듯 지붕들만 빨강, 파랑으로 번쩍이게 뜯어고친다. 우리들의 고향은 농지를 가르고 곧게 뻗은 아스팔트길처럼 점점 삭막해져 간다. 그 과정이 이문구님의 잔잔한 이야기 속에 녹아있어 씁쓸한 웃음을 띠게 만든다.
책을 덮고 뒤표지의 ‘헐크’같이 산발한 머리로 나무를 다듬는 이문구님의 모습을 본다. 관촌을 여행할 때 느꼈던 구수함과 털털함, 다듬어지지 않은 순수함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조금 어설퍼 뵈지만 따스함이 있고, 부족한 듯하지만 넉넉함이 있는 질그릇 같은 모습에서 우리가 찾아야 할 그 무엇을 발견한다.
관촌수필을 통해 거칠어진 어머니의 손을 쓰다듬었다. 손끝에 와 닿는 까칠까칠한 느낌과는 달리 봄 햇살 같은 따사로움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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