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한 거리에서 사진을 찍듯이 대상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특이한 시적 문체를 보여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사라지고 늙어가는 것들과 죽음을 촬영한다. 그의 시가 묘사하는 것은 시인이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의 시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보고 만질 수 없는 깨달음 같은 것이다. 삶의 향기나 색깔 같은 것. 그의 시를 통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삶의 경계를 넘어갔다 돌아온다. 그가 촬영하고 있는 죽음도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시인의 산문]
갱지로 만든 연습장에 연필로 수학 문제를 풀고, 그 위에 다시 잉크 펜으로 영어 단어 암기 연습을 했던 학생 시절의 가난한 습벽 때문인지 요즘도 나는 흰 종이를 그냥 버리지 못한다. 초고 원고지의 뒷면이나 컴퓨터 파지로부터 지나간 달력의 뒷장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지 못하고, 모아두었다가 잡기용으로 쓰고 버린다. 산문은 원고지에다 곧장 쓰지만, 시는 여러 번 고쳐 쓰게 마련인데, 이때 이용되는 것이 대개 이러한 파지들이다. 시의 착상을 메모하거나 최초의 몇 행을 기록해놓은 이 종이 조각들은 작품으로 완결되면 모두 찢어버린다. 그러나 제대로 익지 못하고, 단편적 자료로 남아 있는 메모나 초고는 파지의 뒷장에 씌어진 그대로 몇 년씩 책상 서랍에 처박혀 있거나, 이리저리 굴러 다니는 수도 있다. 종이와 필기 도구를 언제 어디서나 가지고 다니는 것도 나의 버릇이다. 머리에 넣어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대신 종이에 써서 보존하려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욕실을 빼놓고는 우리집 어느방에나 한구석에 종이와 볼펜이 있고, 자동차 안에도 앞뒤 좌석에 필기 도구가 있고, 옷 주머니 속에도 항상 들어 있다. 결코 좋은 버릇은 못 된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 감정과 체험은 기록을 통하여 비로소 현실이 되는 것을 어찌하랴.
-『시와 시학』, 1992년 겨울, p.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