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길

문학과지성 시인선 138

김광규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4년 6월 10일 | ISBN 9788932006871

사양 신46판 176x248mm · 109쪽 | 가격 5,000원

책소개

일정한 거리에서 사진을 찍듯이 대상을 관찰하고 묘사하는 특이한 시적 문체를 보여온 시인은 이번 시집에서 사라지고 늙어가는 것들과 죽음을 촬영한다. 그의 시가 묘사하는 것은 시인이 보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이지만, 그의 시가 우리에게 주는 것은 보고 만질 수 없는 깨달음 같은 것이다. 삶의 향기나 색깔 같은 것. 그의 시를 통해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삶의 경계를 넘어갔다 돌아온다. 그가 촬영하고 있는 죽음도 바로 그와 같은 것이다.

[시인의 산문]

갱지로 만든 연습장에 연필로 수학 문제를 풀고, 그 위에 다시 잉크 펜으로 영어 단어 암기 연습을 했던 학생 시절의 가난한 습벽 때문인지 요즘도 나는 흰 종이를 그냥 버리지 못한다. 초고 원고지의 뒷면이나 컴퓨터 파지로부터 지나간 달력의 뒷장에 이르기까지 그대로 쓰레기통에 넣지 못하고, 모아두었다가 잡기용으로 쓰고 버린다. 산문은 원고지에다 곧장 쓰지만, 시는 여러 번 고쳐 쓰게 마련인데, 이때 이용되는 것이 대개 이러한 파지들이다. 시의 착상을 메모하거나 최초의 몇 행을 기록해놓은 이 종이 조각들은 작품으로 완결되면 모두 찢어버린다. 그러나 제대로 익지 못하고, 단편적 자료로 남아 있는 메모나 초고는 파지의 뒷장에 씌어진 그대로 몇 년씩 책상 서랍에 처박혀 있거나, 이리저리 굴러 다니는 수도 있다. 종이와 필기 도구를 언제 어디서나 가지고 다니는 것도 나의 버릇이다. 머리에 넣어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대신 종이에 써서 보존하려는 습관이 생긴 것 같다. 욕실을 빼놓고는 우리집 어느방에나 한구석에 종이와 볼펜이 있고, 자동차 안에도 앞뒤 좌석에 필기 도구가 있고, 옷 주머니 속에도 항상 들어 있다. 결코 좋은 버릇은 못 된다. 하지만 나의 생각과 감정과 체험은 기록을 통하여 비로소 현실이 되는 것을 어찌하랴.
-『시와 시학』, 1992년 겨울, p.101

작가 소개

김광규 지음

1941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 및 동대학원 독문과를 졸업하고, 독일 뮌헨에서 수학했다. 1975년 계간 『문학과지성』을 통해 등단한 이후 1979년 첫 시집 『우리를 적시는 마지막 꿈』을 발표하여 제1회 녹원문학상을 수상했고, 1983년 두번째 시집 『아니다 그렇지 않다』로 제4회 편운문학상을, 2003년 여덟번째 시집 『처음 만나던 때』로 제11회 대산문학상을, 2007년 아홉번째 시집 『시간의 부드러운 손』으로 제19회 이산문학상을 수상했다. 그 밖에 시집 『크낙산의 마음』『좀팽이처럼』『물길』『가진 것 하나도 없지만』, 시선집 『희미한 옛사랑의 그림자』『누군가를 위하여』, 산문집 『육성과 가성』『천천히 올라가는 계단』, 학술 연구서 『권터 아이히 연구』 등을 펴냈다. 그리고 브레히트의 『살아남은 자의 슬픔』, 하인리히하이네 시선, 페터 빅셀 산문집 등을 번역 소개하는 한편, 영역 시집 Faint Shadows of Love(런던, 1991), The Depth of A Clam(버팔로, 2005), 독역 시집 Die Tiefe der Muschel(빌레펠트, 1999), Botschaften vom grünen Planeten(괴팅엔, 2010), 중역시집 『模糊的旧愛之影』 등을 간행했다. 독일 예술원의 프리드리히 군돌프 문화상(2006)과 한독협회의 이미륵상(2008)을 수상했으며 현재 한양대 명예교수(독문학)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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