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 할 곳』에서 시인은 맑고 깨끗한 세상의 숲을 보여준다. 그 숲에는 녹색의 식물과 꽃들, 순한 짐승들, 햇빛, 천진난만한 사람들이 서로의 거울이 되어 삶을 나누고 있다. 그러나 그 숲은 시인이 갈등과 고통의 세상을 외면한 채 누리는 숲이 아니라 세상의 고통을 함께하며 그 고통을 겪은 다음 힘겹게 찾아내는 장소이며 시간이다.
[시인의 산문]
돌멩이와 담벼락이 점잖은 듯이 보인다. 침묵을 감싸안은 체신들이 보기에도 좋다.
힘줄이 있다. 육방을 다스리는 힘줄이 있다. 제 모습을 숨기지 못하고 달려온 별빛들이 반갑다. 허나 이것들을 너무 팽팽하게 당기거나 혹은 느슨하게 풀어주게 되면 누구든지 골다공증에 걸린다. 분산을 거슬러 이쪽으로 다가오는 발짝 소리는 또 무엇인고. 기왓장이 거울이 되고 날벌레들이 경전을 읽는. 콩꽃으로 말하더라도 어느새 떡잎들의 주인이 된 나는 이곳에서 어슬렁거릴 뿐이다. 말끝을 흐리는 사람들이 내 스승이다.
핵심은 그것이 핵심인 까닭에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먼산 소쩍새가 그래서 울고 있다. 내 자신은 번번이 양말을 뒤집어 신는다. 아름다움은 언제나 핵심을 감추고 나타난다. 혼탁처럼. 지지부진한 것들의 극명함을 쳐다볼수록 내 시력은 점점 쇠퇴해질 것이다. 벽에 박힌 못쪼가리가 내 비위를 건드렸다. 나는 접착이 싫다. 그것이 북극성일지라도 종교일지라도. 물 속에 풍덩 빠지는 것이라면 몰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이따금 갯지렁이 한 마리를 바늘에 꿰어 바닷물에 던진다. 물고기 두엇을 속이는 일로 하루 해를 다 보내는 것이다. 월척은커녕 내가 내 자신에게 속는 일이 더 많다.
하물며, 하늘을 속이겠는가(欺天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