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운상가 키드의 사랑』에서 시인은 명멸하는 한 순간을 포착하고자 한다. 삶의 모든 순간들은 끊임없이 나타났다 사라지는 것의 반복이다. 삶의 진실은 그 순간 속에만 있다. 시를 비롯한 재주·대중 가요·영화·사진 들은 그 순간을 포착하는 하나의 형식이다. 그러나 시인의 시가 다른 대중 문화 장르와 구분되는 점은 추억을 다루는 방식에 있다. 시인은 추억을 기념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영원히 현재화하기 위해서 시를 쓴다.
[시인의 산문]
유행가. ‘한때’라는 유한성 속에서, 그 유한성의 절실함만큼 빛을 발하는 것. ‘한때’가 시간의 저편으로 사라진 후에도, 그 ‘한때’를 둘러쌌던 유한성의 절실함만은 유행가 속에 그대로 보존된다. 아니, 유행가를 빛나게 하던 ‘한때’는 사라져도, 유행가는 ‘한때’가 남기고 간 유한성의 절실함 그 자체를 에너지로 삼아 더듬더듬 삶을 연명해나간다.
시간은 망설임 없이 앞으로만 달려가는데, 난 자꾸 멈칫멈칫 뒤돌아본다. 몸과 마음은 생의 난바다 쪽으로 조금씩조금씩 떠밀려가고, 내가 걸어온 길의 형체는 점점 희미해져간다. 그 지워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 영원히 내 삶의 처음들로 되돌아갈 수 없다는 절망감. 그 되돌아갈 수 없음의 절망이, 나를 추억하게 한다. 지워진 길들은 추억의 육체를 빌려 자신의 존재를 복원한다. 추억만이, 유일하게 되돌아감을 허용한다. 추억 속에는 아직 굳은살이 박히지 않은 설레임들과 첫 햇살의 환희 같은 것들이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나는 마음의 손을 뻗어 그것들을 완강하게 붙잡음으로써, 잠시 생의 난바다로 떠밀려 가는 속도를 늦춘다. 하여, 그 늦춰진 속도만큼 내가 머물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의 넓이는 확장된다. 말하자면 추억한다는 것은, 덧없이 사라질 이 순간의 생명력을 연장시키는 일이다. 난 확장된 이 순간의 넓이 속에서, 살아 있음의 현재를 더 오래 음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