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고 헐렁헐렁한 바지

문학과지성 시인선 179

장석주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6년 5월 20일 | ISBN 9788932008073

사양 신46판 176x248mm · 144쪽 | 가격 9,000원

책소개

“육체는 거대한 추억의 창고”라는 시구처럼 이 시집은 죽음을 얼핏 보아버린, 생의 낌새를 눈치챈 자의 뼈를 깍는 듯한 자성의 노래이다. 죽음은 현재의 삶을 비추는 거울로, 지나온 삶을 추억케 하는 동력으로 작용한다. 그러나, 추억은 과거 시간의 이미지지만 그 힘은 현재 시간 속에서 발생하고 활동하듯이, 이 시집의 아름다움은 치수가 잘 맞지 않는 시간 속에 들어 있는 덜그럭거리는 존재의 육체를 더 선명하게 감각화시키는 데 있다.

[시인의 산문]

모든 문자로 씌어진 것들은 끝끝내 씌어지지 않은 것들 때문에 깊이를 얻는다. 언제나 돌이킬 수 없이 말해져버린 것들이 이면에 거느리는 깊은 침묵은 하잘것없는 언어의 한 뭉텅이 속에 매몰되어버린 시들을 남루하게 만들어버린다……시는 거듭되는 실패 속에 있다. 시는 모든 씌어지지 않은 것들의 틈새로의 망명, 그 범접할 수 없는 침묵이 서려 있는 空, 혹은 無에로의 영원한 귀속……을 꿈꾼다.

나는 죽음을 살아보지 못했으나 끊임없이 그 빈 것, 없는 죽음의 육체를 만든다.
幻, 그 헛것에 육체를 부여하기.

내 무의식의 표면 위에 날카롭게 그어진 금을 따라 송글송글 돋아나는 붉은 피처럼 맺히는 이미지들…… 시의 크고 헐렁헐렁한 육체, 그 언어의 관능성에 현혹되어 시작한 지난 이십 년 동안의 시쓰기는 시의 ‘창조’가 아니라 시의 ‘해체, 혹은 지우기’였다.

언어의 질료성을 넘어서는 시들.
내 손이 가 닿지 않는 곳에 떠 있는 육체 없는 시들.
내 시는 언어의 영토 저 너머에 있는,
따뜻하게 폭발하는 추억들, 바람의 經典, 기억의 간선도로……로 나아가고 싶어한다.

작가 소개

장석주 지음

충남 연무에서 출생, 1975년 『월간문학』에 「심야」라는 시를 발표하고, 1979년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시가 당선되면서 시작 활동을 시작했으며, 같은 해 동아일보에 문학평론이 입선하면서 평론 활동도 하고 있다. 시집으로 『햇빛사냥』 『완전주의자의 꿈』 『그리운 나라』 『새들은 황혼 속에 집을 짓는다』 『어떤 길에 관한 기억』 『붕붕거리는 추억의 한때』 『크고 헐렁헐렁한 바지』 등이 있고, 평론집으로 『한 완전주의자의 책읽기』 『비극적 상상력』 『세기말의 글쓰기』 『문학의 죽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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