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 속에서 시인은, 스쳐지나가는 세상살이의 장면들을, 그것의 인연과 뿌리와 전통과 뒤엉킨 상황 속에서, 그리고 그것에서 배어나오는 회오와 결단이 교차하는 심정의 남루 그대로, 숨기지 않은 채 그려넣는다. 이 그림의 주조색은 어둡고 닳아서 낡은 느낌을 주지만, 시인의 특이한 시각적 언어 기법 때문에 매우 선명한 질감을 준다. 시인의 두드러진 시각적 비유와 풍부한 어휘 때문에 한 시절의 고달픔이 한 순간 잊을 수 없는 아름다움으로 변하는 것이다.
[시인의 산문]
바람꽃이 뿌옇게 둘린 날. 병점에서 돌모루까지의 길에서, 검정물 들인 야전 잠바 속에 야윈 몸 숨긴 삼십여 년 전의 한 젊은 사내를 만난다. 얼뜬 치기와 몽매에 한껏 지친 몰골이었다. 나는 그와 실없는 말들을 나눈다.
“삼십 년이지 아마.”
“시를 업으로 살아온 게 벌써 그렇게 됐나.”
“생강은 묵을수록 맵다는데……”
그 文靑은 아직도 내 안에 그렇게 살고 있다. 내 안에 살면서 지난 삼십 년 동안 많은 일들에 혼을 빼앗겼다.
여행, 죽음, 시와 생활, 가난……
이야기시에 물린다. 대신 마음이란 광대무변의 황무지를 얻는다. 교외의 작은 풀꽃, 두엄 자리에 뜬 하루살이들도 1GB 정도의 마음을 내면에 가지고 있다.
어디 내면 없는 놈 손 들어봐.
살아 있는 것들은 모두 내면이 있다. 내면이 있으므로 그들은 제 스스로가 목적이며 절대이다, 그리고 자유이다.
사람이 사람에게 있어
풀새끼들은 풀새끼들에게 있어
아니, 세계는 세계에 있어 목적이다.
그 세계를 여행하고 싶다.
서정시를 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