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악몽과 죽음이 서로 상대를 가면처럼 입고 있는 시집이다. 시인은 죽은 자들의 말을 듣고 기록하려고 몸부림친다. 그러나 그것은 산 자에게는 해독이 불가능한 달빛이거나 재이거나 거울일 뿐, 아무에게도 읽혀지지 않는다. 악몽과 죽음, 그리고 그 사이를 시계추처럼 반복해서 오가는 현실, 시는 이들 사이를 부유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인은 오히려 악몽을 끔찍하게 치러냄으로써 죽음을 끊임없이 대면함으로써 그 죽음과 악몽의 말을 이해하는 길을 뚫으려고 애쓴다. 시인의 그러한 위험한 시도는 곧 “태우지 않고 빛을 내는” 떨기나무 불꽃, 즉 시의 본성을 암시하기도 한다.
[시인의 산문]
가끔씩 머릿속에 떠올리는 영화의 한 장면이 있다. 성배 전설을 다룬 그 영화의 대부분은 이미 망각의 지평 너머로 사라져갔지만 유독 결말 부분만은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 속에서 빛을 발하고 있다. 그 장면에서 늙고 병든 왕은 왕국의 패권을 놓고 마녀의 사주를 받고 있는 자신의 아들과 일대 격전을 치른다. 아들의 창이 그의 가슴을 꿰뚫자 왕은 창날에 더욱 깊이 찔려가며 한걸음 다시 한걸음 아들에게 다가가 그의 목에 칼을 박는다……
자기 살해의 꿈보다 더 감미로운 꿈이 있을까. 칼날이 심장을 관통할 때의 섬뜩함만이 인간에게 주어질 수 있는 유일한 축복이지 않을까. 오직 죽은 자만이 성스럽다. 그래서 나는 기다린다. 어서 죽음이 찾아와주기를. 그리고 희망한다. 다만 그 죽음이 그렇게 고통스럽지는 않기를. 길 모퉁이를 돌아서다 불현듯 낯선 얼굴과 마주치듯 죽음 후의 세계를 약간의 놀라움이 담기긴 했으되 전체적으로는 담담하게 바라볼 수 있게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