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한 세대 동안 지식 사회 속에서 살아온 저자의 내면적 성찰이자 지적 사유의 행로이다. 저자는 우리의 지적 풍토를 돌이켜보며, 젊은 시절의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고뇌, 변혁과 변화를 위한 이념들의 싸움을 관찰하며 느끼던 활력과 기대, 그리고 해체와 변모로 또다시 달라진 지식 사회의 정황을 바라보는 심안을 진지하게 서술하고 있다.
[책머리에]
‘문지 스펙트럼’의 편집진으로부터 받은 부탁에 따라, 우리의 지식인, 지식 사회, 지성에 관련된 기왕의 내 글들 중, 70년대의 것 2편, 80년대의 것 3편, 그리고 90년대의 것 2편 등, 모두 7편을 추려 묶는다. 그리고 그 차례를 가까운 시기로부터 오래 전으로 거슬러가도록 했는데, 그것은 좀더 여유를 가질 수 있게 된 오늘의 정황을 먼저 인식하고 난 후 거꾸로, 그렇게 되기까지의 고통스러웠던 전날의 고민의 과정을 되살려내기 위해서이다.
이렇게, 지난 25년 간의 우리 지적 풍토를 돌이켜보는 나의 회고 속에는, 아픔과 뜨거움, 그럼에도 다행스러움과 자부스러움이 뒤얽혀 있다. 그리고 거기에는, 젊고 순진했던 시절의 억압적인 상황에 대한 고뇌, 변혁과 변화를 위한 이념들의 싸움을 관찰하며 느끼던 활력과 기대, 그리고 해체와 변모의 또다시 달라진 지식 사회의 정황을 바라보는 긍정과 두려움이 섞여 있다. 그러므로 이 책은 한 세대 동안의 우리 지식 사회에 끼여들어 함께 살아와야 했던 한 지식인의 내면적 성찰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그것을 성찰이라고밖에 할 수 없는 것은, 이 글들이 모두 학문적인 객관성을 지닌 논문이라기보다는 자기 시대에 대한 주관적인 반성과 이해의 에세이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 시대의 지적 태도와 경향을 정직하게 인식하고 그것들을 공정하게 자리매김하려고 노력했지만, 그 노력들은 체계 없이 내 나름의 관점과 방법으로 한국 지식 사회의 움직임을 들여다보고 그 의미를 되새김하는 것이었다. 지금 읽어 부끄럽고 생각도 달라진 글들까지 감히 한자리에 모은 것도, 또 고치거나 지우지 않은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세기가 바뀌려는 지금으로부터의 지식 사회의 변화는 보다 근원적이고 구조적일 것이라는 예감을 나는 이즈음 더욱 강하게 갖는다. 그 지식 사회에 대한 인식과 분석은 다음 세대의 다른 지적 사유의 작업이 될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작고 어설프지만, 한 시대에 대한 그 세대의 반성적 사색의 기록이 될 수 있기를 희망하면서 ‘지식인됨의 괴로움’이란 제목을 감히, 붙인다.
– 1996년 11월, 김병익
[책머리에]
사회 변화와 지성의 역동성
지식인에 대한 몇 가지 단상
80년대: 인식 변화의 가능성을 향하여
미래 전망을 위하여
지식인됨의 고민
지성의 형성과 패배
지성과 반지성
[원문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