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의 눈』은 넉넉하고 따뜻한 시선이 깊은 감각과 맞물려 있는 뛰어난 시집이다. 흔히 넉넉하다는 것은 완숙한 경지의 특성이기도 하면서 반면에 뚜렷하고 굵은 한 면모 때문에 섬세하고 미묘한 삶의 감각을 놓치고 마는 느슨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그러나 이 시집의 시들은 인생의 작고 큰 일들의 다사다난함을 간추림 없이 담고 있고, 다채로울 수밖에 없는 삶의 상반된 감정들이 살아 있는 듯이 생생한 감각으로 묘사되고 있으면서도, 동시에 그 배면에 그 모든 걸 포용하는 깊은 넉넉함이 가라앉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 시집은 서로 잘 어울리기 어려운 신선함과 원숙함이 조화를 이루는 특이한 경험을 우리에게 선사한다.
[시인의 산문]
나는 둔한 사람보다 빠른 사람을 좋아한다. 빠른 사람보다는 정확한 사람을, 그보다는 용기 있는 사람을 좋아한다. 용기 있는 사람보다는 나는 정직한 사람을 존경한다. 정직한 사람보다는 책임지는 사람을, 책임질 줄 아는 사람보다는 옳은 길을 가는 사람을 존경한다. 그러나 옳은 사람보다는 나는 착한 사람을 더 존경한다.
몇 달 동안 내 여유의 시간을 모두 정성껏 모아
세 편의 시를 피 흘리며 겨우 끝내고
며칠 후 그 시들을 읽고 다시 읽다가
부끄러워 다 찢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
수십 년이지, 사라진 시간의 백발과 주름살
억울하고 시원해서 밖으로 뛰쳐나오니
아, 주위는 단풍이 고운 가을이었구나.
낙엽까지 날려야 더 좋게 보이는 나이이긴 하지만
머리를 감싸고 짓누르던 풍경과 낱말들이
바람 타고 자유롭게 떠나는 게 보인다.
그 떠나는 시들이 내 마음의 스산한 내막을 소문내면
내년쯤에는 참 좋은 시가 찾아와줄까.
참 좋은 시 한 편 나를 찾아와줄까.
절벽, 절해고도의 고마운 절벽. 내 말은 언제나 절벽에 부딪쳐 깨어져야 겨우 작은 빛이 되고 의미가 되었다. 비록 고통의 의미가 될지언정 내게는 그 부서진 포말만 황홀하게 기억될 뿐이다. 절벽은 자꾸 높아만 간다. 나는 다시 부딪치러 달려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