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광물학적 상상력’이라 불려진 독창적인 시적 상상력의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특이한 개성을 지닌 시인으로 자리잡은 저자의 시선집.
[기획의 말]
80년대초 이하석의 첫시집인 『투명한 속』의 출간은 한국의 문학적 현실에서 매우 특이하면서도 이례적인 한 시인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았다. 당시 시를 쓰거나 시에 뜻을 두었던 사람들에게 이하석의 시들은, “그래, 이렇게 시를 쓰는 일도 가능하구나”라는 하나의 작은, 그러나 그 반향이 만만치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하석은 시적 소재의 영역으로부터 소외되어왔던 버려진 못이나 깡통·비닐·유리 조각·나사·총기 따위의 무기물들을 소재로 이른바 ‘광물학적 상상력’이라 불려진 독창적인 시적 상상력의 영역을 개척함으로써 한국 시단에서 특이한 개성을 지닌 시인으로 자리잡았던 것이다. 그러한 시도는 시적 소재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을 새롭게 수정하도록 요구하는 일이었을 뿐더러, 문명 사회로부터 버려져 아무에게도 주목받지 못하는 무기물들에 대한 극사실주의적인 묘사를 통해 물질 문명 세계가 지닌 비인간적이고 황폐한 삶의 현실을 섬뜩하리만큼 극명하게 드러내는 작업이기도 했다.
이후로 이하석은 무기물들의 세계로부터 물질적 풍요로움의 뒷골목을 떠도는 이름없는 개인들의 범속하고도 타락한 삶의 모습들로 그 시선을 옮겨가면서 문명과 자연의 대립 구도를 시적 상상력의 발판으로 집요하게 밀고 나가는 독자적인 시세계를 구축해나간다. 자연과 문명의 관계에 대한 극도의 비관적 인식을 바탕에 깔고 있는 이러한 이하석의 시작업은 한국 시에서 문명 비판이라는 주제를 보다 전략화된 미학적 표현의 영역으로 끌어들인 하나의 중요한 성취로서의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지속적인 변모를 거쳐나가는 과정을 통해 이하석의 시들은 문명과 자연의 극명한 대비를 바탕으로 현실에 대한 날카롭고도 냉정한 비판적 인식의 긴장을 유지해나가는 태도로부터, 점차 자연에 대한 고전적인 통합의 정서로 회귀하려는 정신의 움직임을 보여주어왔다. 그것은 이하석의 시세계가 현실에 대한 대립적 인식을 기초로 한 초기의 실험적 열정으로부터 벗어나 그 대립적 현실 인식이 지닌 시적 긴장의 구도를 포기해온 것으로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변모에도 불구하고 이하석의 시에서는 여전히 현실을 바라보는 시인의 비관적 인식이 둔중한 언어적 울림으로 퍼져나온다. 이하석의 시적 변모 과정 속에서 우리는 시인의 예리한 관찰의 시선이 점차 우울한 성찰의 시선으로 바뀌어가는 것을 접할 수 있을 것이다.
이하석은 ‘시의 시대’로 불려지던 80년대, 빛나는 시인들이 군웅할거하며 시의 융성을 이끌던 시대에 활동을 시작하고 활동을 꽃피웠던 대표적인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민중문학의 이념이 지배하던 시대에 그 이념의 전횡에 휩쓸리지 않은 채, 이하석이 일구어낸 모더니즘적 기법의 탁월한 미학적 성취는 90년대에 들어 더욱 심화되어가고 있는 자본주의적 삶의 조건들에 대한 중요한 문학적 반성의 계기를 제공해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 1997년 6월, 기획위원
[기획의 말]
[투명한 속]
부서진 활주로 / 뒤쪽 풍경 1 / 또다시 가야산에서 / 연탄재들 / 풀씨 하나 떠돌다가 / 투명한 속 / 순례 1 / 못 2 / 병 2 / 깡통 4 / 철모와 수통 / 은종이
[김씨의 옆얼굴]
컵 2 / 재떨이 2 / 3분 간 / 김씨의 옆얼굴 / 나른한 현장 / 강변 유원지 1 / 여름 휴가 / 우주선 / 교통 사고 / 죽은 아기를 새내에 띄우며 / 애인들은 쪽, 쪽, 소리를 낸다 / 1980년 11월 25일 / 아메리카 / 세 사내 / 개기월식 / 엘리베이터로 내려가다 / 동물 도감
[우리 낯선 사람들]
밖 / 안 1 / 상처 1 / 그는 언제나 광고지를 펴든다 / 그의 구두는 검다 / 유리 속의 폭풍 / 나는 망가진 / 초록의 길 / 아무도 탐내지 않는다 / 야외 소풍 1 / 야외 소풍 2 / 야외 소풍 3 / 야외 소풍 4 / 야외 소풍 5 / 또 다른 길 / 마른 풀밭 / 비진도 / 밖으로
[측백나무 울타리]
이월 산 / 주검 / 비밀 / 빈집 / 측백나무 울타리 / 현흥들 1 / 탑 / 고추잠자리 / 밀양강 2 / 명금폭포 / 대가천 2 / 태화강 / 신천 세미나 1 / 가야산 / 화암벌 1 / 별
[금요일엔 먼데를 본다]
금요일엔 먼데를 본다 / 산길 / 쥐 / 지리산 2 / 성묘 / 집 / 용담정 가는 길 / 사랑 / 소나무 1 / 소나무 2 / 소나무 3 / 노란 나무 / 야적 5 / 야적 6 / 기린초 / 월동 준비 / 연어 / 울음
[나의 시를 말한다] 수계당 산고(修溪堂 散稿)
[연보]
[원문 출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