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내내 중국뿐 아니라 동아시아 전체에 강력한 영향을 끼쳐온 루쉰에 대한 연구서. 중국 일본과 구별되는 우리 나름의 정당한 루쉰 읽기를 위한 전초 작업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책머리에]
-동아시아 문학의 거울로서의 루쉰
중국 바깥에 가장 널리 알려진 현대 중국 작가는, 중국 내에서도 20세기 내내 중국 문학의 강력한 중심으로 작용해온 루쉰(魯迅)이다. 소련의 작가 고리끼가 「아Q정전(阿Q正傳)」의 러시아어 역본을 읽고 눈물을 흘렸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거니와 루쉰 소설은 일찍부터 여러 외국어로 번역되어 많은 외국 독자들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러나 중국 바깥에서 루쉰에 대해 가장 큰 관심을 보인 곳은 일본이었다. 일본에서는 1927년 10월 『대조화(大調和)』 잡지에 단편소설 「고향」의 일역이 역자의 서명 없이 발표되면서부터 일본인에 의한 루쉰 소설 번역이 시작되었는데, 루쉰의 일역은 30년대 들어 급격히 활발해졌고, 그 활발한 번역은 금세 각종 단행본·선집·문집, 그리고 마침내는 전집의 출판으로 이어졌다. 루쉰에 대한 연구 또한 놀라울 만큼 활발히 진행되었다. 이 관심은 일본 내부의 진보적 사상 운동 속에서 형성된 것이었다. 특히 전후의 일본에서 진보적 지식인들이 새로운 자기 정립을 위해 고투를 벌이는 데에 루쉰 해석은 대단히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일본의 루쉰 연구는 지금도 기본적으로 같은 맥락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루쉰은 일찍부터 관심을 끌었다. 최근 김시준 교수의 실증 작업에 의해 밝혀진 바로는 「광인 일기(狂人日記)」가 한국인인 유수인(柳樹人)에 의해 번역된 때가 이미 1925년이었고 그 번역이 1927년 8월 『개벽』 잡지에 발표되었으니 오히려 일본보다 빨랐다. 그 빠름에 비하면 그 이후의 번역 작업은 그다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고 하기 어려우나, 대신 우리나라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직접 중국어 원본이나 일역본을 통해 루쉰을 읽었고, 루쉰에게서 문학적 영향을 받은 경우도 적지 않았다. 가령 한설야는 1956년에 쓴 「로신과 조선 문학」이라는 글에서 1930년대 후반에 쓴 자신의 단편소설 「모색」 「파도」 등이 루쉰의 「광인 일기」 「쿵이지(孔乙己)」에서 적지 않은 암시를 받은 것이라고 스스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냉전 체제의 성립과 함께 양상은 달라진다. 북한에서는 루쉰에 대한 관심이 한층 커져서 외국 문학을 이야기할 때면 고리끼와 루쉰을 나란히 들 정도가 되었는 데 반해, 남한에서는 루쉰에 대한 관심이 거의 단절되어버린 것이다. 그 관심은 1960년대 중반부터 다시 나타나기 시작하였고 1980년대에 들면서 급격히 커져서 루쉰의 소설 전부가 번역되고 일부 산문들도 번역되었으며 루쉰 연구도 대단히 활발해졌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루쉰에 대한 관심이 단순히 외국 작가에 대한 관심에 그치지 않고 한국 문학과의 깊은 내적 연계 속에서 형성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과 일본에서 루쉰이 이처럼 큰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는 데에서 우리는 짙은 암시를 받게 된다. 그것은 루쉰이 단지 중국적인 인물이라기보다는 동아시아적 인물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중국의 근대 속에서 탄생한 루쉰의 문학적 생애는 한국의 근대와 일본의 근대를 비춰주는 하나의 거울인 듯하다. 중국의 특수성만을 지닌 거울이 아니라 동아시아적 보편성에 가 닿는 그러한 거울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루쉰을 올바르게 읽는 일은 대단히 중요한 일이 된다. 중국의 루쉰 읽기와 일본의 루쉰 읽기가 서로 다른바, 그것들과는 구별되는 우리 나름의 루쉰 읽기가 정당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을 엮는 것은 우리 나름의 정당한 루쉰 읽기를 위한 전초 작업이라는 의미에서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들은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에서 나온 대표적인 루쉰론들이다. 취츄바이(瞿秋白)의 글은 중국에서 1970년대까지 40년 이상이나 독존해온 지배적 루쉰관의 효시이고, 다께우찌 요시미(竹內好)와 마루야마 노보루(丸山昇)의 두 개의 글은 원래 독립된 글이 아니고 그들의 저서 중에서 발췌한 것인데 전후 일본의 진보적 사상이 루쉰과 관련을 맺은 방식, 그리고 루쉰을 바라본 시각을 잘 보여준다. 왕후이(汪暉)와 쳰리췬(錢理群)의 두 개의 글은 80년대 중반 이후 중국의 새로운 사상적 동향 속에서 새로운 루쉰관이 어떻게 형성되고 있는가를 잘 보여준다. 왕푸런(王富仁)의 글은 그러한 루쉰관에 입각하여 「광인 일기」를 자세히 읽어내고 있는데, 루쉰관의 변화가 실제 작품 읽기에 어떻게 반영되고 있는지를 엿볼 수 있다. 마지막으로 마턴 앤더슨의 글은 루쉰의 마지막 소설집 『새로 엮은 옛이야기(故事新編)』를 해학적 영감이라는 개념으로 해석하고 있는 재미있는 글로서 미국 학계의 루쉰론의 특성과 그 장점 및 단점을 잘 보여준다.
제1부에 편자의 글을 총론으로 실은 것은 외국의 루쉰론들을 객관화하기 위한 우리 나름의 시각을 결코 충분치는 않지만 최소한이나마 제시해야겠다는 의도에서이다. 사실상 우리 학계의 루쉰 연구의 성과 또한 이미 만만치 않은 정도에 이르렀다. 그 성과를 거두어 엮은 책으로는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 편의 『루쉰의 문학과 사상』(백산서당, 1996)이 있다. 두 책을 함께 읽고 그 읽기를 기반으로 우리 나름의 정당한 루쉰 읽기의 지평을 향해 나아가는 것은 독자 여러분의 몫이다.
귀중한 글의 수록을 허락해주신 필자들께, 그리고 번거로운 번역 작업을 기꺼이 맡아주신 역자들께 깊이 감사드린다.
– 1997년 7월, 전형준
책머리에
제1부 총론
소설가로서의 루쉰과 그의 소설 세계: 전형준
제2부 작가론·작품론
『루쉰 잡감 선집』 서언: 취츄바이(김시준)
루쉰의 삶과 죽음: 다께우찌 요시미(백영길)
혁명 문학 논쟁에 있어서의 루쉰: 마루야마 노보루(박재우)
절망에 대한 반항: 왕후이(이욱연)
사상가로서의 루쉰: 쳰리췬·왕쳰쿤(전형준)
[광인 일기] 자세히 읽기: 왕푸런(유세종)
루쉰의 익살맞은 영감: 마턴 앤더슨(정진배)
루쉰 연보
수록 논문 출처
참고 문헌
필자·역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