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은 언어로 그려낸 풍경화이다. 그의 붓은 시가보다 더 깊은 곳에 닿아 있어서 눈이 감지할 수 없는 어떤 느낌을 섬세한 이미지로 담아낸다. 그래서 ‘안동’은 지리적·현실적인 안동을 넘어 ‘신화의 자리’ ‘시원의 자리’ ‘자연의 자리’로 재창조된다. 이 시집의 시들은 뭇사람들이 미처 보지 못하는 풍경의 내밀한 깊이를 시인이 포착해내기도 하지만, 한편 그 자체가 시인의 심상의 표현이기도 하다. 시편 곳곳에 시인의 흔적이 남아 있어 꿈 같은 자연의 풍경 속에 인간의 숨통을 은밀하게 뚫어놓는다.
[시인의 산문]
안동시 서후면의 ‘이송천’이라는 조그마한 마을과 가까운 산이나 들판을 이따금 찾는다.
시가지에서 조금 벗어난 이 산골은 경북 북부 지역의 전형적인 전원 풍경을 연출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에 불을 지펴주곤 한다. 이 마을 한 자락엔 화가들이 폐교된 학교를 활용해 창작의 산실로 재구성한 ‘솔빔작가촌’이 있어 자구 깃들이게도 된다.
이송천의 야트막한 산과 아기자기한 논밭 사이로 ‘송야천’이라는 맑은 내가 끊어질 듯 이어지며 흐른다. 느티나무와 떡버들들이 냇물 쪽으로 비스듬히 허리를 구부린 채 양켠에 줄지어 서 있다. 가까운 산의 소나무들과 잡목숲이 흘려보내는 맑은 공기(향기)도 발길을 붙들곤 한다.
송야천 흐르는 물에 발을 담그고, 맑고 따스한 말들을 더듬으면서, 마음을 조금씩 드높여보기도 한다.
▨ 시인의 말
I
어떤 하루
젖은 북
그의 마을
아침 이슬을 보며
중앙고속도로에서
안개등 켜고
난초 향기
청량산 오르며
다시 청량산 오르며
이송천, 눈부신 계곡
송야천
솔밤작가촌
나의 쳇바퀴
II
저전리 은사시나무들은
옹천에 내리는 눈
겨울 갈라산
제비원 미륵
조라교
다시 조라교
사익조, 또는 천등산에서
묵계서원에 깃들이다
학가산 석탑사
길안 가다가
권정생, 또는 조탑리 외딴 오두막집
III
하회마을
늦겨울 하회
하회 선유줄불놀이
부용대에 올라
병산서원
도산서당
천연대에서
운영대에서
애련당
호계서원
봄, 지례 가며
지례
IV
풍란과 함께
입춘 무렵
침묵의 틈으로
운안동 홀로 살기, 아픈 날
안개 마을
밤에게
생각은 제멋대로
섬, 또는 별
갈증
둥근 못이 있는 풍경
백운정에 올라
대구 가는 길 위에서는
돌부처
사월 아침에
▨ 해설 · 햇빛의 마을을 찾아서 · 하응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