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나치에 의해 출판 및 배포가 금지되어 오랫동안 잊혀진 작가로 남아 있던 슈니츨러. 그의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이 책은 서로 다른 에로스에 빠진 부부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 내면에 감추어진 욕망을 파헤친다.
[기획의 말]
빈의 중심부를 둘러싸고 있는 대표적인 거리는 ‘링슈트라세’이다. 이 거리를 따라 걷다 보면 빈 필하모니의 연주회장, 오페라 극장, 예술사 박물관, 부르크테아터, 빈 대학교 등이 차례차례 나타난다. 이런 건물들을 배경으로 서로서로 잘 어울리는 인물들을 자리에 모아본다면 누구일까? 음악가로서는 구스타프 말러를, 화가로서는 구스타프 클림트를, 그리고 정신분석학의 개척자로서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꼽을 수 있다. 그리고 이들과 어울리는 작가를 들라면 단연 아르투어 슈니츨러Arthur Schnitzler(1862∼1931)이다. 이들은 거의 같은 시기에 태어나 1900년을 전후로 빈의 예술과 학문을 각각 대표하였다.
슈니츨러 문학의 주제는 황금빛 에로스와 어두운 죽음의 이중주이다. 그의 작품들은 이 두 가지 ‘얼굴 없는 힘,’ 우리들 가운데에서 그 누구라도 피할 수 없는 힘이 어우러지며 빚어지는 천태만상의 진풍경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는 소위 ‘누구나’를 위한 작가는 아니었다. 슈니츨러 문학은 나치(1933)가 들어서면서 미풍양속을 해친다는 이유로 출판 및 배포가 금지되었고, 그 결과 오랫동안 잊혀진 작가로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일찍이 슈니츨러 문학의 가치를 알아본 사람은 정신분석학의 거두 프로이트였다. 그의 눈에 비친 슈니츨러는 자신이 학문적인 관찰을 통해서 어렵사리 도달한 것을 언어 예술로 승화시킨 ‘심층 심리의 탐구자’였던 것이다. 슈니츨러 문학에 눈을 뜬 관객과 독자는 프로이트의 찬사가 의례적인 인사치레가 아니었음을 잘 알고 있다. 프로이트의 심리 분석이 인간의 무의식 세계를 도식적이고 인위적으로 재단하여 일반화시키고 있다는 비판을 벗어나지 못한다면 슈니츨러 문학은 에로스와 죽음, 무의식과 의식, 현실과 꿈이 서로 부딪쳐 파동을 치는 역동적인 세계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프로이트가 경탄하였듯이 슈니츨러의 정신분석에 인간의 심층 심리를 생체 해부하는 것과 같은 현장감이 있다면, 그 현장은 다름아닌 슈니츨러 작품의 독자와 관객의 내면임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오늘날 독일어권에서도 슈니츨러 문학이 수많은 여성 독자들을 사로 잡고 있는 이유가 멀리 있지 않은 것이다.
여기에 소개되는 『꿈의 노벨레Traumnovelle』(1925)는 슈니츨러 문학의 정수를 보여주는 걸작 중의 하나이고, 그 주인공은 부부(夫婦)이다. 남편은 현실적인 세계에서 아내는 꿈속에서 결혼 생활에 치명적일 수 있는 에로스의 세계에 빠져든다. 부부의 감추어진 욕망, 아니 프로이트의 『꿈의 해석Traumdeutung』(1900)을 다시 읽어볼 수 있는 순간이기도 하다. 프로이트의 자연과학적인 결정론에서 벌거벗은 육체를 재확인하고, 민망하여 얼굴을 가리고 싶을 때에 슈니츨러의 문학은 시작된다. 오늘날 우리가 보다 나은 인간 공동체, 특히 인간 사회의 가장 기본적 결합 단위인 남녀 공동체를 위해서 프로이트의 심리학을 다시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면 슈니츨러의 문학은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1997년 10월, 기획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