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시아 연구의 두 가지 과제인 현실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동아시아 지역의 다각적 상호 의존의 추이 관계에 대한 관찰과 오늘날 동아시아인의 정서와 인식에 영향을 미치는 동아시아인의 역사적 경험에의 탐구를 두루 아우르는 한 중 일 지성들의 논문들이 실려 있다.
[서남재단 동양학술총서 간행사]
아시아, 특히 동아시아에 대한 관심이 최근 전세계적으로 고조되고 있다. 일찍이 인류 문명의 위대한 새벽을 열었던 동아시아는 근대 이후 서구 자본주의의 동점(東漸) 물결 속에서 민족의 보위와 민중의 생존을 확보하기 위한 간난한 행보를 거듭해왔고, 냉전 체제의 본격적 작동과 함께 세계의 그 어느 지역보다도 혹심한 갈등과 분쟁으로 얼룩져왔다. 그 결과 냉전이 전지구적으로 해체되고 있는 오늘날에도 동아시아는 그 족쇄로부터 근본적으로 자유롭지 못하다. 요컨대 동아시아는 세계사적 모순의 가장 난해한 결절점(結節點)의 하나인 것이다.
한반도는 그 모순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 러시아와 미국이라는 주변 4강의 이해가 한반도라는 일점으로 복잡다기하게 얽혀 아직도 휴전선 위에 떠 있는 아슬아슬한 ‘평화’를 감내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은 진정한 평화의 이름으로 이를 타파할 고도의 슬기를 요구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우리의 외국학 수준은 그다지 높다고 얘기하기 어렵다. 특히 한반도 문제를 올바르게 해결하기 위해 선차적으로 고려되어야 할 우리의 이웃, 즉 동아시아 각 나라, 각 민족에 대한 정확한 인식은 냉전에 스스로 적응한 그 동안의 서구 편향 속에서 거의 불모지에 가까운 형국이 되었던 것이다. 중국과의 그 유구한 관계 속에서 모화파(慕華派)는 넘쳐나도 중국을 아는 이는 적었고, 일본과의 특수한 관계 속에서 친일파가 양산되어도 일본을 아는 이 또한 적다. 친로파 또는 친소파, 지금도 들끓는 친미파 역시 마찬가지다. 그런데 그 역(逆)의 진리도 성립한다. 항중파·항일파·반소파·반미파 역시 반대하는 대상에 대한 옳은 인식 위에 서 있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았던 것이다.
이에 우리는 동양학술총서라는 새로운 기획을 출범하려 한다. 우선은 한·중·일을 중심으로 하지만 역량의 증대에 따라서 동남아시아·남아시아·중앙아시아·중동으로까지 영토를 확장해나갈 것을 기약한다. 우리의 학문적 축적이 뜻있는 이들의 광범한 동참으로 착실히 두터워지고 깊어지는 과정에서 전체주의에 깊이 물든 20세기의 우울한 황혼을 진정으로 넘어설 새로운 문명을 머금은 사상의 씨앗이 자라나 한반도 문제의 진정한 평화적 해결을 바탕으로 아시아의 평화, 나아가 인류사의 새로운 도정이 열릴 바로 그 단서가 발견되기를 바란다.
– 1995. 11. 22. 동양학술총서 편집위원회
[책을 펴내며]
동아시아를 단위로 사고하는 것이 꽤 주목을 끌고 있고 그에 관한 논의도 적지 않지만 ‘왜 지금 동아시아인가’ 하는 물음에 명쾌하게 답한 글은 잘 눈에 띄지 않는다. 동아시아적 전망이랄까 하는 것의 중요성을 비교적 먼저 절감해온 편자들은 분명한 답을 찾기 위한 방편으로 한·중·일 3국의 동아시아 인식의 역사를 추적해보기로 했다. 때마침 서남재단의 연구비를 얻을 수 있었기에 이 작업은 쉽게 결실을 맺었다. 이 책은 편자들이 전에 같은 재단의 지원 아래 엮어낸 동양학술총서 1권 『동아시아, 문제와 시각』의 자매편이라고도 할 수 있다. 동아시아 연구에 지속적인 관심을 갖는 서남재단에 이 자리를 빌려 감사드린다.
이 책을 엮는 데 도움을 받은 분들의 일부라도 여기서 밝힐 수 있어 다행이다. 먼저 함동주 교수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이화여대 사학과에 재직중인 그녀는 일본 아시아주의 전공자로서 제1부의 대상 선정과 자료 확보에 크게 기여했다. 그리고 미국 듀크 대학에서 중국국민당 원로 왕 징웨이(汪精衛)의 아시아주의를 주제로 박사학위 논문을 준비중인 황동연형은 왕 징웨이의 아시아론에 주목했고 쑹 따칭(宋大慶)의 글을 소개해주었다.
중국과 일본의 글들을 우리말로 옮기는 데 애쓴 분들은 모두 아시아 근대사 분야 전공자이다. 각각의 이름은 개별 글의 말미에 밝혀두었다. 그러나 편자들도 번역문에 손질을 가한 만큼 번역의 질에 대한 책임은 공동의 몫이라 하겠다.
한국 쪽 글의 경우 요즈음 잘 안 쓰는 어휘도 적지 않고 한자어가 많아 독자가 불편해할지 모르나 자료이므로 거의 손대지 않고 그대로 수록했다.
이렇게 여러분들이 힘을 보태어주었지만 이 책에 대한 최종 책임이야 마땅히 편자들이 지어야 한다는 것은 잘 알고 있다.
이 책이 간행된 이후 많은 호응을 받아 판을 거듭하는 가운데 번역문도 더 다듬고, 자료도 보완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기를 바란다. 특히 한국 쪽 자료 가운데 편자들이 미처 챙기지 못한 것을 독자들의 도움으로 증보할 수 있다면 반가울 것이다.
– 1997년 늦은 가을, 편자.
서문-진정한 동아시아의 거처: 20세기 한·중·일의 인식/ 백영서
제1부 일본의 근대와 아시아 인식
동양의 이상 / 오카쿠라 텐신
동아 협동체의 이념과 그 성립의 객관적 기초 / 오자키 호츠미
신일본의 사상 원리 / 미키 키요시
방법으로서의 아시아 / 다케우치 요시미
자본주의 세계 체제의 역사와 동-동남아시아의 역사 / 사토시 이케다
제2부 중국의 근대와 아시아 인식
아시아 현정세와 연대론 / 류 스페이
신아시아주의 / 리 따자오
대아시아주의 / 쑨 원
중일 전쟁과 아시아주의 / 왕 징웨이
떠오르는 대중화 경제 문화권 구상 / 쑹 따칭
제3부 한국의 근대와 아시아 인식
동양 평화론 / 안중근
동양주의에 대한 비평 / 신채호
『대지』의 세계성 / 임화
동양 문화의 이념과 형태 / 서인식
‘동양’에 관한 단장 / 김기림
신민족주의의 과학성과 통일 독립의 과제 / 안민세
같은 것과 다른 것 / 전형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