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원 깊이 읽기
분야 우리 문학 깊이 읽기
이 책은 제1부 ‘회고와 전망: 전업 작가 40년’과 제2부 ‘비평: 긴장과 대결의 미학,’ 그리고 제3부는 홍성원에 대한 자료와 연보로 구성되었다. 작가의 솔직한 육성 고백과 비평가들의 작품론, 가까운 사람들의 인상기를 통해 그의 40년 외길 문학 인생을 잘 보여준다.
[책을 내면서]
홍성원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가 아니다. 그의 모범적인 소설은, 모범적인 것들의 운명이 흔히 그렇듯이, 소수의 독자들로부터는 깊은 사랑을 받았지만 일반적인 사람들로부터는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했다.그러나 그가 널리 알려진 작가가 아니라는 사실이 곧 그의 소설의 가치를 결정짓는 것은 아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겐 오히려 그가 세속적인 인기나 그 인기가 드높여줄 교환가치와는 무관하게 의연히 자신의 소설 세계를 지켜온 증거처럼 느껴진다.
지금의 소설 시장에서 사람들은 의미 있는 세계를 구축하고 있는 좋은 작가와 일회적 관심만을 겨냥하는 나쁜 작가를 구별하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활자화에 따라다니던 ‘공적 책임’이 거의 사라져버린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에서는 최초 생산자인 작가들도 작품을 매개하고 전달하는 출판 산업이나 대중 매체도 스스로의 손을 거친 언어의 진정한 가치에 대한 자기 반성보다는 수요의 양적 확대에 더 관심이 많다. 내면의 윤리적 책임 의식이 활자화된 언어에 대한 공적 책임과 안팎을 이루면서 전달할 것은 전달하고 거를 것은 거르던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지 않다.그 대신 우리는 문화 산업이 독서 시장을 마구잡이로 뒤흔들어놓고 있는 세상, 의미 있는 작가와 의미 없는 작가를 가려내는 일이 참으로 어려운 세상에 살고 있다. 이런 세상에서는 우리 모두가 양이 질을 결정하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기 쉽다.
우리가 ‘홍성원 깊이 읽기’를 통해 그를 다시 생각해보려는 것은 이 같은 저간의 사정과도 관계가 있다. 세상이 의미 있는 작가와 그렇지 않은 작가의 구별을 어렵게 만들면 만들수록, 우리는 어떤 작가가 진짜로 중요한 작가이며, 어떤 작품이 읽을수록 더 깊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작품인지를 검토하고 정리해내는 작업의 필요성을 더욱 절실하게 느꼈고, 그러한 작업의 첫번째로 ‘홍성원 깊이 읽기’를 내놓게 된 것이다.
홍성원은 대중들에게 널리 알려진 작가는 아니지만 그의 소설은 우리 모두의 주목을 받아야 할 충분한 이유와 가치를 가지고 있다. 그의 소설 밑바닥을 변함없이 흐르고 있는 정신, 자신과 세상을 향해 끊임없이 ‘그러나’라는 질문을 던지고 있는 정신이 바로 그것이다.그는 자신의 소설 속에서 이 세상의 야만스런 폭력들을 향해,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고정관념들을 향해, 개인들을 압박하고 유혹하는 일상성을 향해 ‘그러나’라는 질문을 던졌다. 그러면서도 일상적 인간들이 저지를 수 있는 실수들에 대해서는 누구보다도 따뜻한 이해와 변호의 자세를 견지했다. 또한 소설가로서의 그의 삶은 소설가는 소설에 모든 것을 걸어야 한다는 태도의 한 전형을 보여준다. 전업 작가 생활 40년 동안 온갖 생존의 위협에 부대끼면서도 오로지 소설이라는 영역을 자기 삶의 의미가 담긴 장소로 고수해온 그의 모습은 그 자체로 우리의 주목을 요구하는 장엄함을 지니고 있다.
우리는 여기에 수록된 그의 솔직한 육성과 과거의 족적, 권위 있는 평론가들의 작품론, 가까웠던 사람들의 인상기 등이 그의 소설을 진지하게 다시 읽고 싶은 욕망을 부추기는 작고 따듯한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이 책을 만든다.
– 1997년 12월, 홍정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