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드라덱이 들려주는 이야기

프란츠 카프카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1998년 12월 25일 | ISBN 9788932009827

사양 · 235쪽 | 가격 5,000원

수상/추천: 한독번역문학상

책소개

세계의 불확실성에 대항해 견고하고 투명한 상상력의 내면 세계를 창출한 카프카의 산문집. 카프카의 ‘블랙 유머적 감각’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기획의 말]

프라하의 슈트라슈니처 묘지에 있는 카프카의 무덤을 찾는 사람은 그를 사로잡는 그 주변의 섬세하고도 고요한 울림의 파장을 결코 잊지 못할 것이다. 그것은 산 자와 죽은 자간에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진솔하고도 내밀한 대화들이 만들어내는 울림이다.

일반적으로 오래된 유대인 묘지의 무덤들은 서로 앞서거니뒤서거니 뒤엉켜 오랜 시간 자연의 풍상 속에서 견뎌낸 시간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아야 했던 그들 역사의 한 단면인 것이다. 그리고 묘지 문화와 관련돼 디아스포라적 삶이 남긴 유대인들의 또 다른 오랜 풍습이 있다. 무덤을 찾는 사람이 그곳에 작은 돌을 하나씩 놓고 가는 풍습이 바로 그것이다. 지나는 길에 잠시 시간을 내 묘지에 들른 후 또다시 바삐 길을 떠나야 했던 까닭에 꽃을 준비할 수 없었던 그들은 무덤 주변에서 찾아낸 돌을 꽃 대신 바쳤다고 한다.

카프카가 묻혀 있는 묘지는 오랜 역사를 지닌 옛 묘지가 아니기 때문에 비교적 차분히 정리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그러나 그의 무덤 앞에는 그 어떤 무덤에서보다도 크고 작은 많은 돌멩이들이 겹쳐 있다. 모두 그를 만나러 왔던 사람들이 바치고 간 것들이다. 그러나 그 돌멩이들은 혼자가 아니다. 그 밑으로 작게 접혀진 종이쪽지들이 고개를 삐죽이 내밀고 있는 것이다. 순례자들은 작은 돌 하나를 다른 돌들 위에 얹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자신들의 마음을 전달할 수 없다고 느꼈던 것일까. 방문했던 시기를 알려주는 듯 어떤 것은 이미 누렇게 바랜 채 먼지를 잔뜩 뒤집어쓰고 있고 또 어떤 것은 아직 형광빛이 묻어날 듯 새 종이 그대로이다.

처음에 그 종이쪽지들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없었던 사람은 무심코 그 중 한 개를 펼쳐보는 무례함을 범하고 말 것이다. 그리곤 곧 분명해진 상황에 놀라움을 금치 못할 것이다. 그것은 카프카를 만나러 왔던 누군가가 그에게 보내는 편지였으니까. 다시 하나를 더 펼쳐본다고 하자, 마찬가지로 카프카와 나눈 대화였음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하나는 독일어로 씌어져 있고 또 다른 하나는 영어로 씌어져 있다. 독일어로 씌어진 편지에서 카프카는 친밀한 사이에 주고받는 ‘너’라는 칭호로 불리고 있다. 하나는 수도사가 되려고 하는 지점에서 자신의 흔들리는 마음을 고백하는 내용이고, 또 다른 하나는 거짓된 일상의 소용돌이에서 자신을 지켜나가기 위해 카프카의 순결함이 필요하다고 도움을 청하는 내용이다. 둘 다 ‘너를 사랑한다’는 말로 끝나고 있다. 이제 다른 종이쪽지들을 펼쳐볼 필요가 없으리라. 여러 상이한 언어들로 씌어진 그것들은 한결같이 카프카와 그의 독자들이 나누고 있는 가장 사적이고 친밀한 대화의 증거들일 터였다. 카프카는, 혹은 카프카의 문학은-이런 상황에서는 사실 인물과 텍스트를 냉정하게 구분하는 것이 쉽지도 않을 뿐더러 별로 의미도 없다고 여겨진다-이렇게 아직도 죽지 않고 있다. 삶 대신 문학을 선택한 한 수줍은 유대인이 지금도 여전히 ‘이웃들’에게 건네는 위로의 말. 그는 삶이 너무나 짧아 절대 ‘이웃 마을’에 당도할 수 없을 것이라고 절망했지만 그러나 그의 언어는 그렇게도 많은 ‘이웃 마을’에 당도해 그렇게도 많은 ‘이웃들’에게 말을 건네고 있는 것이다. 여기 실려 있는 텍스트들의 번역도 그와 나눈 사적 대화의 하나라고 말한다면 너무 반시대적인 고백일 것인가.

– 1998년 1월, 기획위원

목차

[기획의 말]


주석 하나 / 어느 시골 의사 / 단식 광대


인디언이 되고픈 소망 / 여행자가 되기 / 이웃 마을 / 국도 위의 아이들


독신자의 불행 / 갑작스런 산책 / 상인 / 골목을 향한 창 / 이웃 사람 / 정신놓고 바깥 내다보기 / 집으로 가는 길


새로운 변호사 / 포세이돈 / 프로메테우스 / 사이렌의 침묵 / 영웅들의 석방 / 산초 판사에 관한 진실 / 돈 키호테의 불행


작은 우화 / 가장의 근심 / 어떤 한 잡종 / 독수리 / 녹색 용 / 황새류의 새 / 뱀 부리는 사람 / 유대교 교회에 사는 동물


안뜰로 통하는 문에 가한 일격 / 늙은 거지 / 황제 군대의 대령 / 군대 징집 / 성벽을 쌓는다는 소식 / 항해사 / 오래된 종이 한 장


꿈 / 나무들 / 둘로 나누어져 / 사슬 / 진정한 길 / 까마귀들 / 파발꾼 / 서커스의 싸구려 관람석에서


다락방에서 / 시의 문장 / 자칼과 아랍인 / 가수 요제피네, 혹은 쥐의 종족


인식의 첫 징표 / 왕의 말 / (율)법 앞에서 / 황제가 보낸 사신 / 밤에

[역자 해설] 카프카의 ‘블랙 유머’적 글쓰기
[작가 연보]

작가 소개

김영옥

서울에서 출생. 숙대와 서울대에서 독문학을 수학했고, 독일 아헨 대학에서 「타인의 텍스트를 통해 본 자화상: 벤야민의 카프카 읽기」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3년부터 독문학을 강의해오고 있으며, 역서 『오드라덱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최수철론」을 비롯 한국 현대 문학에 대한 다수의 평론과 벤야민, 카프카, 비트겐슈타인 등 독일 현대 문(예)학에 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했다.

프란츠 카프카

■저자 역자 소개
프란츠 카프카 Franz Kafka는 1883년 7월 3일, 체코의 프라하에서 유대인 상인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1901년 프라하의 왕립 독일 카를 페르디난트 대학에서 독문학과 법학을 공부하였으며, 1906년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08년 프라하의 보헤미아 왕국 노동자재해보험공사에 법률가로 입사하여 1922년 은퇴할 때까지 14년간 이곳에서 근무했다. 1904년 단편 「어느 싸움의 기록」을 시작으로 「시골에서의 결혼 준비」 「선고」 「변신」 「유형지에서」 등의 단편소설과 『실종자』 『심판』 『성』 『소송』 등의 장편소설, 그리고 산문집 『관찰』 『시골 의사』 『단식 광대』과 서간문과 일기에 이르는 다수의 작품을 남겼다. 지병인 폐결핵의 악화로 1924년 6월 3일, 오스트리아 빈 근교 키얼링의 한 요양원에서 사망하여, 프라하 슈트라슈니츠 유대인 공동묘지에 안장되었다. 카프카 작품의 대다수는 그의 막역한 벗이자 편집자였던 막스 브로트에 의해 카프카 사후에 정리, 출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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