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크스 연구의 권위자인 저자가 새로운 세계 질서의 변화가 빚어낸 독일과 유럽의 다층적 표정과 현장에서 목도한 20세기말 이국의 진지한 숨결을 읽어내는 산문선.
[책머리에]
이 책에 실린 10편의 글은 1997년 3월과 8월 사이, 저자가 훔볼트 재단의 펠로우로서 독일의 보쿰에 체재하는 기간중에 씌어진 것이다. 원래는 가까운 몇몇 친구들에게 보내는 통신의 형식으로 씌어진 글이고, 이러한 종류의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에는 몇 회나 더 쓸 것인가에 대한 이렇다 할 계획이 없었다. 단지 저자 자신의 생각을 서울에 있는 친구들에게 단속적으로나마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했고, 그럴 경우에 같은 얘기를 두번 세번 되풀이하기보다 아예 통신의 형식을 취하기로 했다. 그리고 개별적인 얘기는 거기에 덧붙여 별도로 쓰는 방식을 취하도록 했다.
그런데 이 같은 통신의 형식을 빌린 글을 지속해보려는 오기가 생긴 것은 저자의 통신과 편지에 대한 친구들의 반응 때문이었다. 보쿰에서 보낸 저자의 ‘보쿰 통신’은 비교적 조용한 환경에서 마음의 여유를 가지고 쓴 글인데 친구들은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그것도 아주 불규칙적으로-모두 전화를 통해 내가 보낸 ‘통신’과 편지를 받았다는 말과 더불어 서울의 소식을 전하곤 했다. 이전에는 저자가 해외에서 편지를 쓰면 꼬박꼬박 답장을 쓰던 친구들이 아예 펜을 들 생각은 않고 ‘문명의 이기’인 전화를 통해 안부를 묻는 일은, 친구들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반가운 일면도 없지 않았지만 심기를 늘상 불편하게 만들었다. 하기야 외국서 오는 가족이나 친지들의 전화를 녹음하여 다시 듣던 세월은 분명 아니고, 또 친구들의 턱없이 바쁜 서울에서의 일정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럴수록 나 자신이 글쓰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는 각오가 되살아난 것이다. 다시 말하면 나는 오랜만에 객지에서 갖는 나의 여유가 어떠하고, 내가 여유를 가지면서 하는 일이 무엇인가를 기어코 친구들에게 알려야겠다는 오기가 발동했던 것이다. 저자가 겨우 여섯 달 동안에 10편의 통신문을 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같은 오기 때문이었다고 하겠다.
이 책에 실린 글들은 이 책을 내면서 집필한 ‘에필로그’를 제외하고는 모두 이러한 여건하에서 씌어진 것이다. 물론 본래의 글 가운데 사적 내용이나 감정에 지나치게 치우친 부분들, 그리고 편지를 쓸 때에는 기억에만 의존했기 때문에 다시 읽으면서 발견한 그릇된 정보나 사실들은 책을 내면서 당연히 손질을 하게 되었다. 그리고 저자는 ‘통신’ 가운데 실명으로 나오는 가까운 이들의 이름을 어떻게 할까를 한동안 망설였다. 그러나 이들의 이름이 이니셜로 표기된다 할지라도 저자 주변의 친구들은 그가 누구인가를 쉽사리 확인할 수 있겠기에 이들을 원래대로 실명화하기로 했다. 혹 언급된 지인들에게 누를 끼치지 않았으면 하는 것이 저자의 바람이나 그렇지 못할 경우에는 당사자들의 관용을 거듭 간청하는 바이다.
이 글들은 원래 이렇다 할 표제 없이 ‘보쿰 통신 1’ ‘보쿰 통신 2’ 식으로 씌어졌으나 책으로 내면서 읽기 쉽게 크고 작은 표제를 붙였다. 그리고 본문 가운데 꺾쇠괄호 속에 든 기사는 ‘보쿰 통신’을 책으로 내면서 부연 설명이 필요하다고 생각된 경우 사후적으로 첨가한 부분이다. 독자 여러분의 양해를 바란다.
– 1998년 4월, 안암동 연구실에서, 정문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