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익 깊이 읽기
분야 우리 문학 깊이 읽기
이 책은 제1부 ‘성찰하는 자의 고뇌’와 제2부 ‘열린 문학, 열린 지성,’ 제3부 ‘김병익을 찾아서’로 구성되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에 대한 평과 인물 소묘, 대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그를 탐구하고 있다.
[책을 내면서]
한국에서 근대적 의미의 문학 비평이 시작된 것은 채 한 세기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 짧은 역사 안에서도 우리는 몇 개의 단층을 발견할 수 있는데, 그 중 가장 최근의 단층은 1960년대에 생겨났다. 이른바 4 19 세대, 한글 세대라고 불리는 새로운 문학 비평의 탄생이 그것이다. 이 단층 이후로 형성된 지층은 오늘날까지 지속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근자에 들어 새로운 단층이 생겨날 징후가 점차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지만 아직은 징후 이상이라고 하기 어렵다.
1960년대 이후 한국의 문학 비평은 근대적 주체의 정립이라는 문제를 중심으로 전개되었다. 이 문제는 이중적이거나 분열적인 구조 속에 들어 있다. 자유와 평등, 시민과 민중, 지식인과 민중, 그리고 ‘순수’와 ‘참여,’ 문학과 사회, 해석과 변혁 등의 이항 대립이 그래서 생겨난다. 4 19 세대의 문학 비평은 그 이항 대립의 각 항목을 중심으로 하는, 그래서 두 개의 중심을 갖는 타원의 장을 형성했다. 타원의 두 개의 중심은 서로 길항하고 교섭하며 끊임없이 상호 작용하고 상호 침투한다. 그 두 개의 중심 중 자유, 시민, 지식인, ‘순수,’ 문학, 해석 쪽을 대표하는 비평가가 바로 김병익이다.
1968년 『68문학』 동인으로 참여하면서 비평 활동을 시작했고, 1970년에 창간된 계간 『문학과지성』의 편집 동인으로 활동했으며, 1975년 출판사 문학과지성사의 창립과 더불어 그 대표로 일해온 김병익은 30년 동안 아홉 권의 문학 비평집을 펴내면서 항상 대표적인 현장 비평가로서 읽고 써왔다. 김병익의 비평은 자기 세계를 드러내거나 주장하는 데 주력하는 비평이 아니라 타자의 세계와 끊임없이 대화하며 자기를 반성하고 자기와 타자를, 그리고 그 모두가 들어 있는 이 세계를 성찰하는 비평이다. 김병익의 비평이 196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의 한국 문학의 지층을 두루 껴안을 수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인데, 그 껴안음은 성찰의 고뇌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기에 값지다.
내가 김병익을 처음 만난 것은 대학 신입생 시절이었던 1975년, 황동규 시선집 『삼남에 내리는 눈』의 해설을 통해서였다. 그 만남은 김병익 비평과의 첫 만남이었을 뿐만 아니라 김수영 시선집 『거대한 뿌리』에 실린 김현의 해설과 더불어 문학 비평다운 문학 비평과의 첫 만남이기도 했던 것 같다. 그 글의 서두는 지금도 가끔 생각나며 미묘한 마음의 울림을 일으킨다. 지금 이 책을 엮고 서문을 쓰면서 나의 마음은 다시금 그 첫 만남의 때로 훌쩍 건너뛴다.
이 책은 대담과 김병익의 자전적 에세이, 작가 홍성원이 쓴 인물론, 김병익 비평에 대한 비평, 그리고 동료와 후배들의 인상기, 김병익의 숨은 글들로 이루어진다. 귀중한 글의 재수록을 허락해주신 분들과 새 원고를 써주신 분들께 감사드린다. 이 글들이 모여서 김병익 비평이라는 우리 시대 문학의 한 성과를 조명해주고, 그 조명이 김병익 비평에 대한, 나아가서는 한국 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넓고 깊은 이해에 도움이 되기를 바랄 따름이다.
– 1998년 9월, 성민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