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과사회 하이픈 (2025년 여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5년 6월 5일 | ISBN 1227285X

사양 신국판 152x225mm · 164쪽 | 가격 18,000원

책소개

■ 문학과사회 하이픈: 이후-상상(본문 발췌)

우리는 다른 미래로 나갈 수 있을까?
천박한 정치 상황으로 인해 정지된 새로운 미래를 향한 탐구와 상상

「만원 버스의 윤리학」 _박권일
이념을 떠나 공동체 해체를 막기 위해서라도, 우리에게는 이질적 시민들이 섞여드는 만원 버스 같은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 개인화된 필터 버블 속에 갇혀 타자를 제대로 인지하지도 못하는 오늘날이기에 더더욱, 익명의 타인을 직접 마주할 기회를 만들어내야 한다. 우리는 만원 버스 속에서 주류–정상에서 벗어난 이상한 사람과 아픈 사람, 떼쓰고 시끄럽게 떠드는 아이들을 더 많이 만나게 될 것이다. 그곳은 필시 고요하고 쾌적한 천국은 아니겠지만, 불평등과 각자도생의 지옥에 비하면 훨씬 나을 것이다. 적대와 혐오의 분리 장벽이 만원 버스의 윤리로, 나아가 현존의 정치로 변환되어야 할 이유도 여기에 있다. (p. 22)

「우리 골목 슈퍼 사장님과 할머니 그리고 나―대중 정치의 윤리학을 위한 제언」 _기유정
전선은 언제나 존재할 것이다. 그 전선 위에서 둘로 나뉜 싸움 역시 언제나 계속될 것이다. 문제는 특정한 성격의 전선, 이를테면 좌파 대 우파, 진보 대 보수 같은 거칠고도 낡은 전선에 매여 있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마주침에 대한 상상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점이다. 이 상상력을 발휘하는 데 있어 우리 안의 공포, 혐오라는 공포가 얼마나 순기능적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탄핵과 선거, 특정 정치 세력에 대한 지지와 그를 위한 결집! 그 익숙한 되돌이표의 순환이 이 공포와 불안의 억제에 얼마나 지속적인 효과를 발휘할 수 있을까? 제도 정치, 그 형태가 무엇(내각제든 대통령제든)이 되었건 그 안에서 이미 양도해버린 권력에 미련한 집착을 못 버리는 대중이 있는 한, 대중의 정치는 계속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제도 정치를 넘어선 대중의 정치, 아니 정확히 대중 정치의 윤리학에 대한 구체적이고도 한국적인 고민이 필요한 때다. (p. 38)

「온라인 속도의 정치 속에서 ‘우리’를 새롭게 상상하기 위하여」 _김수아
소수자에 대한 폭력적 발화가 갖는 파장과 의미를 이해하기 위해 차별금지법은 꼭 필요하다. 차별금지법은 차별받지 않아야 하는 대상들에 대해 숙고하여 제시하고, 모든 유형의 차별에 대해 시민들이 상상해볼 수 있게 하는 제도적 장치이다. 차별금지법은 궁극적으로 평등의 실현을 목표로 하기에 다양성, 포용성, 동등한 대표성과 같은 가치들을 통해 평등을 이루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게 된다. 포용성을 제도화한다는 것은 그저 다양한 정체성을 나열하여 숫자의 정치를 실현하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 안의 차이를 인정하고 차이를 가진 타인의 삶들이 살 만한, 그리고 세어질 만한 삶이라는 것을 인식하여 타자에 대한 인식론적 폭력을 멈추는 것을 의미하며, 이는 표현의 영역은 물론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다. 이것이 법이 제정된다고 해서 자동으로 가능해진다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다. 차별금지법은 타자에 대한 인식론적·제도적·실제적 폭력을 멈추어야 한다고 말하기 위해 필요하다. 온라인 공간에서 흔히 만나는 속도의 정치 구도에서 파편화된 조각들로 타인의 삶을 재단하지 않기 위해, 종국적으로는 서로 다른 우리가 서로 다른 방법으로 함께 살아가기 위해, 차별금지법을 그 원칙부터 구체적 차별 금지의 방법론까지 천천히 들여다보는 과정을 이제 시작해야 한다. (pp. 51~52)

「광장 너머의 마주침을 상상하고 발견하고 등장시키기」 _조문영
광장 밖 일상의 정치는 지금도 한국 사회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차벽을 뛰어넘은 마주침은 어색하고 껄끄럽지만, 그럼에도 사람들이 제 자리 한 뼘을 상대에게 내어주는 행위는 무수하다. ‘다시 만날 세계’의 상상을 지피려면, 이런 움직임을 먼저 고유한 존재로 공론장에 출현시켜야 하지 않을까. 섣부른 진단보다 경험에 대한 입체적 이해를 통해 ‘우리’와 ‘저들’의 구분이 흐려지는 순간을 사건으로, 지식으로, 논쟁으로 등장시키기. 굼뜬 인류학자인 내가 혼돈의 시대에 그나마 해볼 만한 일일 테다. (p. 75)

「맹방해변의 민주주의」 _조민서
이 글은 이제까지 광장에 등장한 구체성들의 목록에 하나를 더하고자 한다. 광장과 등치되는 광화문이 소재한 서울이 아닌 다른 곳의 이야기이다. 광화문으로부터의 거리가 세종호텔보다는 훨씬 멀어서, 광장에 모였던 이들과 함께 걸어가기에는 너무 먼 곳, 하지만 이미 우리 모두와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다. 그 연결은 사회적이면서 물질적이다.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 전력을 필요로 하고, 전력의 생산은 특정한 공간을 물질적 대가로 요구한다. 첫째,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기반 시설이 어딘가에는 들어서야 한다. 그 시설이 들어서는 장소는, 항상 다른 존재들이 살아가던 터전이기도 하다. 둘째, 어딘가에 다른 형태로 존재하던 에너지를 우리가 쓸 수 있는 에너지로 변환하는 과정에서 모종의 오염이 발생하고 세계는 조금 더 무질서해진다. 마지막으로, 개발과 생산의 과정을 거쳐 소비자에게 도달하는 ‘송전’의 과정이 있다. (p. 78)

「우리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탈진실과 계엄 상황에서 독특한 지식인의 증상적 읽기를 위한 시론」 _배세진
코로나19 팬데믹과 마찬가지로 12·3 친위 쿠데타는 역사의 우연적 일탈도, 그렇다고 역사의 필연도 아닌 역사의 증상이다. 쿠데타 세력이 2024년 12월 3일 이전부터 이를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의미에서가 아니라, 이미 우리 공동체의 환부가 곪고 곪아 언젠가는 헌정의 붕괴와 민주주의의 몰락이라는 정치적 형상으로 이런 사태가 일어날 개연성이 충분했다는 의미에서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과 곧이어 실현될 민주당 대선 후보의 당선과는 그 어떠한 관계도 없이 87체제는, 제6공화국은, 대한민국 헌정은, 한국의 민주주의는 시효를 다했다. 우리는 생태적 뉴노멀과 평행하는, 말 그대로 정치적 뉴노멀의 시대로 진입한 것인데, 이 위기를 넘어서기 위한 첫번째 단계는 바로 이를 온전히 인정하고 계엄–이후라는 환상을 철저히 배격하는 것이다. (p. 96)

「어느 소비에트 연구자의 회고―‘사라진 미래’와 ‘앞당겨진 미래들’ 사이에서」 _김수환
나는 이제야 비로소 온전히 ‘정치적으로’과거를 재방문할 준비가 되었다고 느끼고 있다. 파편과 유령의 양태로 잔존하는 과거, ‘만일 그랬다면what if’의 조건(문)적인 잠재성으로 명멸하는 과거(의 이미지)는 더는 나의 관심사가 아니다. 고백하건대, 그들 중 많은 것, 뛰어난 창조성과 예리한 감수성으로 자기 시대를 훌쩍 앞질러 미래를 선취했던, 그렇기에 너무도 쉽게 미래에 포획되어버린 (엘리트)지식인과 예술가 들의 과거는 내게 지긋지긋한 환멸만을 안겨주었다. 그러자 과거를 향한 나의 입장과 태도 역시 10년 전에 비해 훨씬 더 편협하고 비타협적인 것이 되었다. 이제 내가 찾는 것은 내가 ‘정치적으로’동의할 수 있는 과거, 기꺼이 그 옆에 함께 서고 싶어지는 과거뿐이다. 극도의 정치적 편향에 따라 과거를 취사선택할 준비가 된 내게 이제 중요한 물음은 단 하나뿐이다.너는 과거의 무엇과 싸울 것이며, 어떤 과거를 지지할 것인가? (p. 144)

「종말론 장치」 _김홍중
우리는 지금 근대성의 한계, 근대적 인간의 한계, 근대 문명 자체의 ‘에스카토스’와 마주하고 있다. 발밑이 무너져 내리는 붕괴감을 느끼는 자들, 더는 안전한 곳이 없다는 직감에 휩싸인 자들에게 세계는 코라다. 진보와 번영의 약속도 전망도 깨져 미래를 상실한 자들에게 시간은 카이로스다. 우리 시대를 코라–카이로스로 감지하는 자들은 종말론 장치를 통과하고 있다. 그것이 기후 재난에 의한 것이건, 생태적 지식과 경험에 의한 것이건, 비인간에 대한 윤리적 책임감에 의한 것이건, 아니면 알 수 없는 어떤 계기로 자신을 찾아온 타자의 목소리에 의한 것이건, 종말론적 주체는 자기–비움이라는 스캔들을 겪는다. 지금 우리 세계의 한계와 극한을 직시하며, 자신들의 사라짐을 통해, 오직 사라짐 속에서만 가능한 일말의 희망을 한다. (pp. 15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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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 하이픈 | 이후 – 상상

박권일 만원 버스의 윤리학
기유정 우리 골목 슈퍼 사장님과 할머니 그리고 나
—대중 정치의 윤리학을 위한 제언
김수아 온라인 속도의 정치 속에서 ‘우리’를 새롭게 상상하기 위하여
조문영 광장 너머의 마주침을 상상하고 발견하고 등장시키기
조민서 맹방해변의 민주주의
배세진 우리는 누구인가, 무엇을 할 것인가
—탈진실과 계엄 상황에서 독특한 지식인의 증상적 읽기를 위한 시론
김수환 어느 소비에트 연구자의 회고
—‘사라진 미래’와 ‘앞당겨진 미래들’사이에서
김홍중 종말론 장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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