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시집에서 시인은 금욕적인 삶을 통해 순결하고 맑은 마음의 상태에 도달하고자 하는 구도적인 역정을 노래하고 있다. 그 완성된 이상향을 상징하는 유리는 “정신의 보석” “순수의 절정”을 나타내는 것으로, 투명하여 그림자를 거느리지도 않고 불투명한 무거운 덩어리로 시야를 가리지도 않는 가볍고 육체성이 없는, 욕망이 깃들이지 않은 태초의 순수한 형태나 장소를 상정한다.
[시인의 산문]
유리(琉璃)는 사물이지만 나는 사물시를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니다. 나는 ‘유리’ 연작을 쓰면서 줄곧 폴 발레리를 생각하고 발레리가 시를 버리고 기하학에 몰두했던 심경을 생각했다. 그러니까 나는, 나의 정신이 고도로 단련된다면 얼마만한 높이에까지 도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을 이 연작을 통해 시험하려 했던 것이다. 추위와 더위, 차가움과 뜨거움의 얼마까지를 내 정신이 참고 견딜 수 있을까 하는 것, 그리하여 내 유약한 몸뚱이가 가지는 인내와 극기의 정도를 이 시를 통해 가늠해보고 싶었던 것이다. 내가 빈번하게 염열(炎熱), 금욕, 인종(忍從), 수정(水晶), 명징, 이녕(泥 ), 진창, 염량(炎凉), 한서(寒暑), 천축(天竺) 따위의 말을 써온 것은 그런 데 연유한다.
그러나 시는 혹독한 시련을 이기고 난 뒤에도 그러한 정신의 영역을 다시 언어로 표현해야 한다는 구차한 과정이 따른다. 선승이라면 차라리 그러한 경지를 입다물고 참선의 수행으로 옮겨놓으면 되겠지만 시인은 그것을 말로 표현해야 한다는 구차스런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안 된다. 정련과 인종은 정신의 영역이지 언어의 영역이 아님을 깨달은 것도 이번의 시작 과정에서 얻은 깨우침이다.
▨ 시인의 말을 대신하여
제1부
유리(琉璃), 노래
유리(琉璃)에 닿는 길 1
유리(琉璃)에 닿는 길 2
유리(琉璃)에 닿는 길 3
유리(琉璃)의 나날 1
유리(琉璃)의 나날 2
유리(琉璃)의 나날 3
유리(琉璃)의 나날 4
유리(琉璃)의 나날 5
유리(琉璃)의 나날 6
유리(琉璃)의 나날 7
유리(琉璃)의 나날 8
유리(琉璃)의 나날 9
유리(琉璃)의 나날 10
유리(琉璃)의 나날 11
유리(琉璃)의 나날 12
유리(琉璃)의 나날 13
제2부
마음의 유리(琉璃)
유리에 묻는다
사색의 다발
물의 유리(琉璃) 1
물의 유리(琉璃) 2
내 안의 유리(琉璃) 1
내 안의 유리(琉璃) 2
유리(琉璃), 세월
유리(琉璃), 이름들
유리(琉璃)를 꿈꾸며
유리(琉璃), 마을
투명의 유리(琉璃)
덕유에는 길이 없다
구름의 본적
내일의 유리(琉璃) 1
내일의 유리(琉璃) 2
제3부
산의 키
몸의 유리 1
몸의 유리 2
산중문답
유리(琉璃)에 닿는 길 4
지상의 양식
유리(琉璃), 나무
유리(琉璃)의 길 1
유리(琉璃)의 길 2
유리(琉璃)의 길 3
유리(琉璃), 파계
유리(琉璃), 생애
시는 오름길 같은 고행이라고
유리(琉璃), 언어
지상의 길
세월의 흔적
어쩌다 시인이 되어
유리(琉璃)를 향하여
운문(雲門)에 기대어
유리(琉璃)에 묻노니
▨ 해설 · 견인주의와 사색, 혹은 그 명징의 깊이 · 송희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