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불평등의 케이지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까”
제로섬게임에 올인하고 있는 이 아귀다툼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엑시트 옵션을 탐색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 개혁 프로젝트, 오픈 엑시트
<불평등 3부작> 완결판! 『불평등의 세대』『쌀 재난 국가』 이철승의 신작
한국 사회에 불평등과 세대론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했다는 평을 받으며 언론과 학계, 정계, 일반 대중에게까지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킨 사회학자 이철승(서강대 사회학과)의 신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불평등의 세대』 『쌀 재난 국가』에 이은 <불평등 3부작>의 완결작 『오픈 엑시트―불평등의 미래, 케이지에서 빠져나오기』가 그것.
저자 이철승은 전작 『불평등의 세대』에서 386세대가 구축한 세대 네트워크를 분석함으로써 동시대 세대 간, 세대 내 불평등의 구조를 파헤쳤으며, 이어 『쌀 재난 국가』에서는 그러한 불평등 구조의 기원을 동아시아의 쌀 경작 문화권에서 발달한 ‘벼농사 체제’라는 앵글을 통해 추적하였다. <불평등 3부작>의 완결작에 해당하는 이 책은 새롭게 떠오르는 불평등의 축으로 인공지능, 저출생/고령화, 이민을 꼽으며, 이 세 가지 구조적 변동과 그 힘들이 동아시아의 ‘소셜 케이지social cage’라는 기존의 제도 및 구조와 충돌하는 와중에 생성되는 새로운 불평등의 구조를 분석하고, 개인적 혹은 집합적 대안으로서 ‘엑시트 옵션exit option’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기존 케이지의 룰과 관습으로는 이 세 가지 구조적 변동에 대응할 수 없을 것이다. 당면한 미래에 이 세 가지 변동이 가져올 충격과 재구조화 속에서 개인과 기업은 어떤 적응 전략을 짜고, 국가는 어떤 정책적 대응을 해야 할까? 시민사회는 어떻게 사회와 공동체를 방어할 수 있을까? 한국의 정치는 이러한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할 능력을 갖출 수 있을까? 우리는 이 불평등의 미래에서 새로운 기회를 발견할 수 있을까? 저자 이철승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지난 수년간 한국 사회에서 거의 논의되지 않고 있던 구조 개혁의 문제를 ‘기업’을 분석 단위로 삼아 ‘개인의 엑시트 옵션’이라는 수준에서 논의한다. 기업이라는 소셜 케이지를 분석 대상으로 삼은 것은 “노동하는 인간이 인간 사회의 본질이라는 오랜 믿음 때문”이며, 구조 개혁의 문제를 개인 수준으로 낮춘 것은 “엑시트 옵션의 궁극적 행사 주체가 개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개인 수준의 엑시트 옵션은 구조적 문제이기도 하다. 저자는 “한국 사회가 이렇게 머리끄덩이를 움켜쥐고 오도 가도 못 하게 서로의 발목을 잡으며 밀어내기 싸움에 목매는 이유는 바로 구조적으로, 엑시트할 수 있는 선택의 여지가 적기 때문”이라고 진단한다. 따라서 저자는 제로섬게임에 올인하고 있는 한국 사회가 이 처절한 아귀다툼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개인들이 쉽게 엑시트할 수 있는 사회, 특히 중하층의 엑시트 옵션을 확대할 수 있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책 『오픈 엑시트』는 이미 그 싹을 틔운 불평등의 미래에 직면해 노동시장의 구조 개혁, 한국 사회의 구조 개혁을 예비하는, 지금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프로젝트라 할 수 있다. 또 하나의 예기치 않은 선거를 앞두고 더 나은 세상을 꿈꾸는 독자들에게 특별한 시사점을 제공하는 책이 될 것이다.
“수십 년을 뼈 빠지게 일한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왜 이토록 엑시트 옵션이 없는 것일까?”
이 책 『오픈 엑시트』는 제목이 뜻하는바 ‘이탈 혹은 탈출’과 ‘안착 혹은 속박’에 관한 사회방법론을 이용한 서사다. 소셜 케이지는 사회마다 전승되어온 문화적 구조의 유산으로, 작게는 가족에서부터 마을, 일터, 국가까지 아우르며 개인이 현재의 공동체에서 이탈exit하지 않고 그 자리에 머물도록 만드는 생태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인센티브 메커니즘과 제도의 총체다. 특히 이 책에서 저자 이철승은 동아시아 벼농사 체제에서 진화해 오늘날 한국 자본주의의 소셜 케이지로 발달한 (학벌-내부 노동시장-연공제로 착종되어 뒤엉킨) 기업의 제도들을 분석의 대상으로 삼아, 그 제도들이 인공지능, 저출생/고령화, 이민이라는 거대한 변동의 물결에 맞닥뜨렸을 때 어떤 문제들이 발생하는지에 논의를 집중한다.
예를 들어 동아시아 소셜 케이지의 특징은 협업과 위계, 경쟁을 바탕으로 강력한 내부 규율과 상호 감시 기제가 작동하며, 진입도 어렵지만 빠져나오기exit도 힘든 사회적 연결망이자 협동 노동조직이다. 이 소셜 케이지에 한 번 들어서면 조직 안에서는 장기간 고용이 보장되지만, 더 높은 자리와 보상이 주어지는 권력과 부를 향해 구성원 전체가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치열하게 경쟁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이 집단주의적이고 위계적인 협업 시스템은 세대 간, 세대 내 네트워크를 통해 기술 및 도구의 표준화와 평준화를 ‘빠르게’ 확산시킴으로써, 역시 ‘빠르게’ 서구 산업자본주의를 따라잡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며 한강의 기적을 일구어냈다. 그렇다면 우리가 적응하고 키워왔던 소셜 케이지는 오늘날에도 잘 작동하고 있는가? 저자 이철승은 그렇지 않다고 일갈한다. 이 책은 이렇게 위기에 봉착한 동아시아의 소셜 케이지를 어떻게 재구조화할지에 대한 소고인 셈이다.
새로운 케이지의 룰 만들기
―오픈 엑시트 프로젝트
이 책 『오픈 엑시트』는 수천 년에 걸쳐 진화해온 동아시아의 소셜 케이지가 새롭게 닥쳐오는 거대한 구조적 변동들과 충돌하는 와중에 생성되는 새로운 불평등의 구조를 밝혀내고, 이를 ‘이탈 혹은 탈출’과 ‘안착 혹은 속박’의 메커니즘을 통해 흥미진진하게 펼쳐 보인다.
먼저,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는 그동안 동아시아 생산 시스템이 점유해왔던 제조업 분야의 많은 부분을 대체할 것이다. 그렇다면 동아시아의 소셜 케이지는 어디로 갈 것인가? 인공지능이 외부에서 밀려든 충격으로 인해 우리의 소셜 케이지를 업데이트하는 문제라면, 저출생은 소셜 케이지 내부의 룰에 대한 여성들의 저항의 목소리로부터 시작되었다. 가족 구성을 거부하거나, 가족을 꾸리더라도 출산과 육아를 거부하거나 연기함으로써 가부장제가 강제하는 현모양처 이데올로기와 단절하고 커리어와 여가를 지키려는 시도에 다름 아니다. 이 경우, 출산을 택하지 않은 것은 개인 수준에서는 봉건적 가족제도로부터의 엑시트지만, 사회 전체적으로는 저출생 현상으로 나타난다. 사회가 구성원의 새로운 가치와 운동에 그 룰을 맞추지 못해 스스로를 재생산 실패(사멸)로 몰고 가는 이 상황, 게다가 그러한 실패가 사회의 하층에서 더욱더 가속화되는 이 상황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마지막으로 이민은 다른 사회의 케이지를 엑시트하여 우리의 케이지로 진입하고자 하는 인간의 이주 욕구에서 비롯된 것이다. 하지만 200만을 넘어 300만 명에 육박하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은 한국인들의 협업 케이지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채, 한국인들이 기피하는 산업으로 유입되어 그들만의 지역적·산업적 게토를 만들고 있다. 이 눈에 보이지 않는 배제와 분리의 장벽들이 심화되면 미래의 한국 사회는 어떤 모습이 될까?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가 노동시장을 재편하고, 인구구조의 변화가 국가와 사회의 근간인 재생산 위기를 초래하며, 이주자들이 이미 우리의 일부로 자리 잡은 상황에서 이 책 『오픈 엑시트』는 개인과 기업, 국가와 시민사회가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모색하면서, 저자 특유의 독창적인 시각과 다양한 데이터 분석을 바탕으로 그에 대한 실천적 통찰을 제공한다. 저자 이철승은 단순히 문제를 지적하고 현상을 비판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양한 사례를 들어 ‘엑시트 옵션의 확대’라는 해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지극히 개인적 차원의 전략이지만, 발전한 자본주의사회에서는 가장 강력하고 치명적인 해법일 수도 있다. 「에필로그」에서 저자는 일자리를 찾고, 스킬(숙련)을 쌓고, 그 스킬을 자유롭게 옮기거나 전환해서 새로운 먹거리를 창출하고, 동시에 그에 합당한 보상을 받는 문제를 논의하는 것이야말로 많은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사회학자의 책무라고 여겨 이 책을 썼다고 소회를 풀어놓는다. 다 같이 한 조직에, 현 조직에 매달려 서로의 다리에 족쇄를 채우고 제로섬게임에 올인하는 이 닫힌 세계에서 벗어나 개인의 자유로운 엑시트 옵션을 탐색하는 이 책은, 우리가 함께 설계해야 할 미래의 방향을 제안하는 한국 사회의 구조 개혁에 관한 흥미로운 사유서다.
■ 책 속으로
한 번도 탈출을 꿈꿔본 적이 없다고? 그렇다면 이 책은 당신을 위한 책이 아니다. 당신은 이 체제의 승리자이거나 체제의 운영자일 가능성이 높다. (나의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탈출을 꿈꿔보았지만 그럴 용기가 없어 이렇게 살고 있다고? 탈출을 시도해보았지만 성공하지 못했다고? 언젠가는 탈출을 감행할 것이라고? 그렇다면 당신은 이제 나와 탈출과 순응/적응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준비가 된 것이다. 나는 당신에게 어떻게 탈출에 성공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하지는 않을 것이다(나도 모른다). 대신, 왜 우리가 탈출을 꿈꾸는지, 왜 꿈꾸면서 이 체제에 그대로 머무는지, 이 모순과 불일치의 원인과 결과는 무엇인지를 이야기할 것이다. (「프롤로그」 15쪽)
이 책은 ‘탈출’을 이야기하지만, 동시에 그 탈출을 좌절시키는 기제, 즉 ‘충성’과 ‘순응’을 야기하는 기제가 무엇인지를 이야기한다. 탈출의 옵션이 중요한 만큼, 탈출을 좌절시키는 옵션 또한 중요하다. 이 옵션의 작동 방식을 이해해야만, 탈출이 왜 가능하고 불가능한지를 이야기할 수 있다.
내가 이 책에서 정의하는 소셜 케이지social cage 혹은 소셜 케이징caging은 ‘탈출을 좌절시키는 기제’다. 한 인간이 특정한 사회적 관계나 집단, 조직을 탈출하고자 할 때, 이를 좌절시키거나 단념시키는 ‘심리적-제도적-환경적 장벽’이 소셜 케이지다. 다시 말해서 소셜 케이지는 내가 현재의 사회적 관계와 구조를 이탈exit하지 않고 이 자리에 머물도록 만드는 생태적·사회적·경제적·정치적 그리고 문화적 인센티브 메커니즘과 제도의 총체다. (「이 책의 구성」 23~24쪽)
연공제는 동아시아에서 기업 특수 문화에 기반하여 기업 특수 기술을 축적하려는 기업들이 ‘나이와 근속’을 바탕으로 ‘위계’를 지탱하는 임금제도다. 끊임없이 비교하고, 감시하고, 조율하고, 경쟁하는 조직에는 어느 정도의 위계가 필요하다. 일을 나누어 맡고 서로 조율해서 위험 요소를 제거하는 한편, 한 방향으로 조직의 목표를 집중시키는 역할을 누군가 해야 한다. 동아시아, 특히 (한국과 일본으로 대표되는) 동북아시아에서는 조직에 오래 머무른 자가 기술과 암묵지를 가장 많이 체화하고 있기 때문에 연공이 오래된 순으로 위계의 사다리가 만들어진다. 같은 연차는 동일한 연봉을 받는 것이 조직의 단합에 도움이 된다. 조직 내 연봉과 연차의 위계를 일치시킴으로써, 수평적 단합과 수직적 복종의 아교가 형성된다. (「1장 케이지에서 나가기」 69쪽)
정주 욕구를 극대화하는 기제와 구조는 우리가 이제껏 살아온 세상의 프레임이다. 그것들은 평생고용제와 내부 노동시장 기제로 요약할 수 있다. ‘평생 고용’은 해고를 어렵게 만드는 고용보호법과 노동조합에 의해 지탱된다. ‘내부 노동시장 기제’는 잘게 쪼개져 있는 진급 사다리와 때 되면 오르는 연공급과 각종 복지제도로 구성되어 있다. 이 둘이 작동되려면 평가 시스템 없이도 평가가 이루어지는 입사 시험 성적이나 학벌이 필요하다. 결국 한국의 상층 노동시장은 좀 거칠게 이야기하면 노동조합, 연공제, 학벌로 버텨온 시스템이다.
이 중 10대 후반, 20대 초반에 학벌이 결정된 다음 연공제가 세팅되어 있는 직장에 입사하면, 이 정주권 쟁취 게임은 얼추 끝난다. 아마 그 직장(대기업이나 공기업)에는 때 되면 임금 투쟁해주고, 정년 연장 로비하고, 평가제 도입을 반대하는 노동조합이 있을 것이다. 나는 전작에서 이 제도들의 뼈대 역할을 하는 연공제가 벼농사 체제의 유산이라고 주장했다. 벼농사 체제에서 만들어졌다는 의미가 아니라, 벼농사 체제의 연공/위계 문화와 강력한 친화성(선택적 친화성)이 있는 임금체계라는 뜻이다. (「1장 케이지에서 나가기」 116~117쪽)
2024년 한국의 청년들은 윗세대보다 10퍼센트 이상 높은 비정규직 비율에 시달리고 있고, 고급 인력들은 가장 높은 비율과 규모로 미국으로의 이직을 시도하고 있다. 2024년 8월, 339만 명이 20대
조직 자원과 자산을 보유한 중장년층과 그렇지 못한 청년층 간의 지식 보유량 역전 현상은 한국형 위계 구조의 위기를 초래할 것이다(이미 진행 중이다). 인공지능 기반 협업 시스템으로 변모하는 새로운 시대에 조직 상층과 하층의 인공지능 기반 지식 경제에 대한 이해도가 역전되면서, 조직 내부의 리스크는 더욱 가중될 것이다. 그것은 나이에 기반한 사회 전체의 연공서열 구조가 기업 내부에 투사된 채로 장기간 지속되어온, 한국형 위계 구조의 필연적 결과다. 기술과 지식이 빠르게 업데이트되는 시대에, 기술을 업데이트하는 데 실패한 혹은 뒤처진 리더십이 네트워크 위계의 상층을 장악하는 경우, 시장의 현황과 구조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조직의 역량과 방향에 대한 냉철한 평가와 분석이 결여된 채, 시류에 영합하는 의사 결정을 할 수밖에 없다. 최악의 경우 시류조차 읽지 못해, 뛰어난 하급자들의 미래를 책임져줄 성과마저 외면하게 된다. (「2장 케이지 업데이트」 181쪽)
마지막으로, (인공지능 포함) 기계 기반 협업 조직은 기계와 관련된, 기계로부터 습득된, 기계를 돌리기 위한 노하우와 기술을 긴밀하고 신속하게 공유하되, 기계의 오작동과 실수를 감시하며 그 기계를 감시하는 인간들끼리도 상호 소통/감시하고 조율하는 조직이 될 것이다. 벼농사 체제의 기계 기반 협업 조직은 인간끼리의 상호 협력과 감시 시스템으로 인해, 다른 어떤 지역과 문화의 협업 조직보다 기계와 더 잘 협력할 것이다. 벼농사 체제의 소셜 케이지는 기계마저도 눈치 보게 만들 것이다. 일머리 없는 기계를 일할 줄 아는 기계로 교육시킬 것이다. 이 협업 조직에서는 기계를 쓸 줄 모르는 인간과 인간의 협력 조직에 적응할 줄 모르는 기계 모두 도태될 것이다. (「2장 케이지 업데이트」 191쪽)
개인으로서의 여성에게 출산율 저하라는 공동체의 위기는―미안하지만―남의 일, 조금 좋게 이야기해도 이웃집 일이다. 출산율이 저하하건 말건, 자본주의라는 정글에서 스스로 먹고살 방도를 마련해야 한다. 결혼이니 출산이니 하는 것은 사치재다. 필수재 마련이 먼저다. 그 필수재는 내가 (잠재적) 남편과 시댁으로부터 나의 존엄을 지켜야 할 때 필요한 경제적 기반을 제공해줄 것이다. 남편 없이 혼자 살더라도, 가족 가부장제(아버지)에 의지하지 않으려면 여전히 직장은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남편 없는 출산을 택하더라도 여전히 직장은 필요하다. 시장경제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나의 존엄을 지킬 수는 없다. 오늘날 청년 여성에게 직장은 필수재이고 가족은 사치재다. (「3장 케이지 재생산」 205쪽)
반면, 청년 여성들은 동일한 사회경제적 조건과 현상에 대해 청년 남성들과는 전혀 다른 반응을 보인다. 이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결혼(잇따르는 출산)이라는 제도가 동반하는, 여성에게 부과되는 짐을 벗어던져야 한다고 인식한다. 절반이 넘는 여성이 비혼을 선언하고, 그 절반의 3분의 2가 넘는 여성이(69.1퍼센트) 결혼은 직업적 성취에 방해가 된다고 응답하는 것을 보면, 열 명 중 네 명에 가까운 여성들은 결혼/출산보다 커리어를 우선시한다고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청년 남성들은 결혼을 위해 경쟁하지만, 청년 여성들은 경쟁하기 위해 결혼하지 않는다(따라서 이들은 ‘경쟁의 장’에서는 만나지만, ‘결혼의 장’에서는 만날 수 없다). (「3장 케이지 재생산」 215쪽)
비정규직일수록, 세 들어 살수록, 지방에 살수록 연애나 결혼 상대를 만나지 못하는 이 현실은 그저 냉정하고 잔인한 자본주의 체제의 숙명인가? 결혼과 출산의 이 ‘우생학’ 현상이 가져올 ‘출산 불평등 사회’는 우리를 어디로 데려가고 있는가?
저출생도 문제지만, 출산의 계급화는 그에 못지않은 사회문제다. 상층과 정규직은 더 적은 수의 자식에게 교육 자본과 자산을 몰아주기 위해 출산을 자제한다면, 중하층과 비정규직은 아이들을 키울 경제적 능력이 부족해서 출산을 자제한다. 이러한 경향은 경제적 불평등이 경제활동의 궁극적 목적인 개인과 가구의 생물학적 재생산을 충족시키지 못할 정도로 심화되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라고 할 수 있다. 더구나 결혼과 출산이 상층과 정규직의 전유물이 되어가는 사회는 장기적으로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 도태를 강제하는 힘은 내부가 아니라, 외부에서 올 것이다. (「3장 케이지 재생산」 221~22쪽)
MAGA(Make America Great Again)을 외치며 중하층 백인을 결집하는 트럼프의 정치도 이러한 문화주의 우파를 자양분으로 성장했다. 따라서 이민 이슈는 좌파정당뿐만 아니라, 우파정당 내부에도 균열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균열은 미국과 유럽에서 국제주의와 세계화를 추진해온 전통 우파가 사그라들고, 신극우파가 출현하여 우파정당을 장악하게 된 구조적 배경이기도 하다. 서구에서 2000년대 이후 극우정당에 의한 의회와 행정부의 장악은 한두 나라에 국한된 현상이 아니며, 그 궁극적 원인은 세계화와 이민이다. (「4장 케이지 재생산」 221~22쪽)
■ 차례
프롤로그
이 책의 구성―소셜 케이지와 탈출 옵션
왜 소셜 케이지를 이야기하는가 | 새롭게 떠오르는 균열과 불평등 구조 | 세 가지 불평등의 축과 소셜 케이지의 충돌 | 인공지능/자동화와 소셜 케이지의 충돌 | 저출생과 소셜 케이지의 충돌 | 이민과 소셜 케이지의 충돌
1장 케이지에서 나가기―엑시트 옵션의 확장
평행우주 | 생애 주기와 엑시트 옵션 | 작은 사이즈와 외톨이의 비극 | 케이지 키우기 | 소셜 케이지와 관계적 이동성 | 동아시아 노동시장에서의 엑시트 옵션 | 학벌-내부 노동시장- 연공제의 착종 | 평판 조회 네트워크 | 이동성의 증대 | 개인의 생존과 집단의 생존 | 엑시트 옵션이 일상화된 사회의 협업 조직 | 엑시트 옵션 vs. 내부 노동시장 | 앙시앵레짐의 해체 | 노동시장의 통합 | 엑시트 옵션의 비용과 혜택 | 회사 고르기 | 기업의 케이징 전략 | 엑시트 옵션이 적은 사회와 많은 사회 | 엑시트 옵션이 많은 사회에서의 케이징 전략 | 엑시트 옵션과 불평등 | 벼농사 체제의 소셜 케이지와 선택의 자유
2장 케이지 업데이트―인공지능과의 협업
세상은 그런 것이다 | 앞서가는 세상 | 자동화 위험 지수와 분포 | 인공지능은 무엇을 바꿀 것인가 | 인공지능은 벼농사 체제 소셜 케이지에 어떤 충격을 가할까 1 | 인공지능은 벼농사 체제 소셜 케이지에 어떤 충격을 가할까 2 | 인공지능 기반 협업 시스템의 출현 | 벼농사 체제와 인공지능 기반 협업 시스템의 충돌 | 인공지능에 대한 규제와 통제 | 인공지능 시대의 불평등과 혁신 | 인공지능 시대의 협업과 교육
3장 케이지 재생산―벼농사 체제와 저출생
저출생 배후의 두 가지 다른 경향 | 동아시아 사회의 저출생 | 왜 여성들은 출산을 포기하고 일을 택하는가 | 동아시아 국가들의 급격한 인구 축소 | 자본주의의 발전과 지체된 여성권 | 결혼을 위한 경쟁과 경쟁하기 위한 비혼 | 결혼과 출산의 계층화 | 저출생의 원인 | 벼농사 체제와 육아휴직의 충돌 | 벼농사 지대의 장시간 노동 체제 | 동료 간 부정적 동조 압력 | 보편 안식/육아 휴직제 | 안식/육아 휴직의 사회보험화 | 소셜 케이지에 대한 저항과 재구축
4장 케이지 열기―이민과 불평등
이주의 이유 | 왜 우리는 (아직은) 이주자의 나라가 아닌가 | 이주자의 엑시트 옵션 | 한국은 어떻게 이주자의 나라가 되어가는가 | 숙련공 이주 노동자는 시민인가 아닌가 | 이주 노동력은 이미 여기에 | 이주민은 어떻게 도시의 인구구성과 정치 지형을 변화시키는가 | 노동조합과 이주 노동자들 | 정당과 이주자들 | 소수자 공격의 정치적 이득 | 진보와 보수의 소수자 정치 | 누가, 왜 이주자를 혐오하는가 | 경쟁인가 협업인가 | 이민/다문화 사회 시대의 동아시아 소셜 케이지
결론―새로운 케이지의 룰 만들기
소셜 케이지의 위기 | 인공지능의 도전 | 재생산 위기 | 사회적 장벽 | 고령화로 인한 조직의 위기 | 사회적 자유주의 2―‘오픈 엑시트’ 프로젝트 | 극단의 정치로부터의 엑시트 옵션
에필로그
참고문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