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의 음모

하스미 시게히코 지음 | 이리에 데츠로 해제 | 임재철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5년 4월 18일 | ISBN 9788932043647

사양 변형판 128x187 · 155쪽 | 가격 13,000원

분야 채석장, 인문

책소개

“스스로 상당한 애착을 지닌 저작이다.
이 책이 문화정치적 팸플릿처럼 읽히길 바란다.”
_하스미 시게히코

“이 책은 동시개봉에서 A-movie에 뒤지지 않거나
혹은 거의 그것을 능가하는 B-movie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_임재철(영화비평가)

“어쩌면 이 고귀한 ‘사생아’는 자기동일성의 애매함 자체가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는 시대의 도래를 예감하고 있었으며, 과감하게 ‘익명성’에 집착함으로써 이러한 시대의 지배적인 풍조에 잘 영합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일본의 불문학자이자 문학비평가 하스미 시게히코의 『제국의 음모』(1991)가 문학과지성사의 ‘채석장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하스미 시게히코는 가라타니 고진과 더불어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으로 손꼽히지만, 국내에서는 영화비평가로서의 면모가 더 부각되어왔다. 『제국의 음모』는 그의 본업인 문학비평가로서의 작업에 보다 가까운 책으로, 나폴레옹 보나파르트의 조카인 루이 나폴레옹과 그의 의붓동생 드 모르니가 보나파르트의 쿠데타를 모방해 일으킨 1851년 12월 2일의 쿠데타를 소재로 삼는다. 마르크스는 “헤겔은 어딘가에서 세계사에서 막대한 중요성을 지닌 사건과 인물 들은 두 번 반복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덧붙이는 것을 잊었다. 첫번째는 비극으로, 그다음에는 소극으로”라는 유명한 문장으로 시작되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이 사건의 정치적 과정을 분석한 바 있다. 하스미는 마르크스의 분석이 매우 예리하긴 하지만 몇 가지 중대한 측면을 간과함으로써 사건의 본질을 간파하는 데 결정적으로 실패했다고 지적하면서, 마르크스가 이름만 거론하고 넘어갔던 드 모르니라는 인물을 무대 중앙으로 끌고 나온다. 하스미는 루이 보나파르트가 나폴레옹 3세로서 즉위하는 1852년부터 폐위가 결정되는 1870년까지의 제2제정기에, ‘대大나폴레옹’의 열화된 ‘모방품’에 불과했던 루이 나폴레옹과 가짜 이름을 지닌 지극히 ‘범용한 존재’였던 의붓동생이 모의한 이 1851년의 쿠데타가 어떤 방식으로 작동했는지 서술하면서, 이를 포스트모던의 핵심적 장면으로, 그리고 드 모르니를 “포스트모던 최초의 전형적 인물”로 바라보는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는다.


나폴레옹의 가면을 쓰고 자신을 진정한 나폴레옹이라고 상상하는 자와
스스로의 이름을 날조해낸 사생아가 모의한, 이 모방적 쿠테타의 성공은
어떤 시대의 도래를 증언하는가
오늘날의 세계는 그 시대와 무엇을 공유하고 있는가

『제국의 음모』 해설에서 이리에 데츠로는, 하스미 시게히코의 비평과 그 밖의 모든 글쓰기 작업이 프랑스의 제2제정기라는 시공에 의해 규정된다고 이야기한다. 하스미 스스로도 자신이 이 주제에 상당히 집착하고 있다고 말하는데, 그 결과물이 우리말 본으로 천 쪽이 넘는 대작 『범용한 예술가의 초상』이다. 이 책에서는 막심 뒤 캉이라는 인물을 통해 모든 것이 교환 가능한 기호로 환원되어버리는 상대적 차이의 장인 ‘범용凡庸함’이라는 것이 어떻게 제2제정기의 특수한 역사적인 현실로 자리매김하게 되는지 서술한다. 그리고 스핀오프 격인 이 책 『제국의 음모』에서는 같은 문제의식하에 루이 나폴레옹과 드 모르니라는 의붓형제에 초점을 두고 제2제정기를 논의한다.
1848년 2월 혁명으로 수립된 제2공화정에서 최초로 국민투표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이었던 루이 나폴레옹은 1851년 쿠데타를 일으켜 이듬해 12월 황제의 자리에 오른다. 브뤼메르 18일(1799년 11월 9일)에 쿠데타를 일으켜 공화정을 전복하고 1804년 12월 2일 황제에 등극했던 삼촌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를 본떠, 이 별 볼 일 없던 조카도 공화정을 전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루이 나폴레옹과 아버지가 다른 사생아로 태어나, 평생 스스로를 ‘타인의 이름’으로 칭하며 살아야 했던 드 모르니가 냉철하고 현실주의적인 흑막 역할을 맡는다. 하스미는 이 사생아 의붓동생이 자기동일성의 애매함 자체가 하나의 무기가 될 수 있는 시대의 도래를 예감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하면서, 드 모르니가 (서로 다른 이름으로) 남긴 두 편의 텍스트에 시선을 던져 그것들 사이에 기묘하게 얽힌 관계를 해독해나간다.
하나는 1851년 12월 2일 쿠데타 당일에 발표된 ‘내무대신 드 모르니’라는 서명이 붙은 행정 문서인 「포고」로, ‘행위 수행적’으로 쿠데타라는 음모를 실현시키는 텍스트이다. 이것이 실질적인 효력을 갖는 이유는 현실의 내무대신이 서명을 했기 때문이 아니라, 형식에 불과한 서명이 다량 인쇄되어 유통된 ‘결과’로서 오히려 드 모르니의 이름이 권위를 갖게 된다는 뒤집힌 메커니즘이 작동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우리는 들뢰즈적인 시뮬라크르가 정치적 현실이 된 사태를 발견한다. 이렇게 하여, 시뮬라르크가 형식적인 허구에 지나지 않는 ‘기원’을 현실화하는 ‘냉소적’인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
또 다른 텍스트는 쿠데타를 감행하고 10년이 지난 1861년 5월 31일 입법원 의장이 된 드 모르니의 관저에서 상연된 오페레타 부파 <슈플뢰리 씨, 오늘 밤 집에 있습니다>의 각본으로, 여기에는 드 모르니의 또 다른 날조된 이름인 드 생 레미가 작곡가 자크 오펜바흐의 이름과 함께 기재되어 있다. 이 극은, 젊은 연인이 극중극을 통해 진짜 오페라 가수를 교묘하게 ‘모방’함으로써, 상류계급을 ‘모방’하여 명예(‘이름’)를 얻고자 하는 부르주아 아버지를 속이고 결국 결혼 허락과 함께 지참금까지 챙긴다는 줄거리를 갖고 있다. 하스미에 따르면, ‘모방’을 통한 음모의 성공이라는 이 줄거리는 의붓형제의 쿠데타의 ‘반복’을 떠오르게 한다. 또한 진짜와 가짜의 뒤얽힌 관계는 오늘날 포스트모던적이라고 불리는 예술 개념과 통하는 데가 있으며, ‘돈’과 ‘여성’이 하나의 기호로서 ‘이름’과 교환 가능해지는 것은 기호의 본질이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시대의 도래를 증언한다.


범용함의 발견:
기호적 차이만 존재하는 시대의 도래

세계사에서 중요한 사건과 인물 들은 두 번 반복된다,
첫번째는 비극으로, 그다음에는 소극으로.
그러나 마르크스는 반복되는 극의 장르를 잘못 말했다.
그 장르는 소극이 아니라 오페레타 부파다.

여기서 저자는, 나폴레옹 3세(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는 확실히 무언가를 ‘반복’하고 있지만, 마르크스는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에서 상연 장르를 잘못 판단했다는 흥미로운 주장을 펼친다. 이 음모에서 문제시되는 장르는 ‘소극’이 아니라 ‘오페레타 부파’이며, 게다가 그것은 한번 ‘비극’으로 연기된 것을 다시 연기하는 탓에 지루해진 재연이 아니라, 아직 상연되지도 않은 작품을 그것이 쓰이기 정확히 10년 전에 이미 실연해버린 셈이라는 것이다. 제2제정기는 드 모르니의 오페레타 부파에서 여성과 돈과 이름이 기호로서 유통되듯, 기호로서 유통되는 황제를 용인하는 대중이 등장하는 사회의 초기 형태를 드러내고 있다. 1851년이라는 연호는 정치적이어야 할 권력 탈취를 비심각화함으로써 실현되는 냉소적 정치성이 우세종이 되는 시대의 시작을 알린다.

이 책의 번역은 하스미 시게히코의 저술을 국내에 다수 소개해온 영화비평가 임재철이 맡았다. 그는 이 책이 1988년의 방대한 저작 『범용한 예술가의 초상』에 대한 일종의 스핀오프처럼 빠르게 쓰였지만, 동시 상영하는 A-movie에 뒤지지 않거나 혹은 거의 그것을 능가하는, B-moive와도 같은 탁월함을 갖추고 있다고 말한다. 짧고 경쾌하지만, 하스미 비평의 핵심 주제를 다루고 있으며, 다양한 방향으로 뻗어 나가는 독특한 그의 시선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 알려준다는 측면에서 유용하다.


■ 책 속으로

물론 문학사에 이름을 남긴 것도 아닌 권력자의 문장을 고도의 예술적 달성으로 여길 이유는 전혀 없으며, 그 속에 감춰진 문학적 의의를 발견하는 것도 이 언설의 의도는 아니다. 여기서 목적은 내무대신과 입법원 의장을 역임한 ‘사생아’가 남긴 두 편의 텍스트 사이의 기묘하게 얽힌 관계의 해독이며, 이는 각각의 필치에 대한 질적 음미와도, 그것이 이야기하는 내용의 분석과도, 혹은 그 상징적인 의미의 파악과도 다른 독해 방식을 요청할 것이다. 하지만 그러한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 분석 대상인 두 편의 문헌을 쓴 저자에 관한 정보를 정리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12쪽)

이제 사람들은 다소 갑작스럽긴 하지만 ‘들뢰즈적’인 주제 영역에 눈을 뜨게 되는 자신을 발견할 수밖에 없다. 두 의붓형제가 꾸민 19세기 중엽의 음모는, 20세기 프랑스 철학자 질 들뢰즈의 펜이 소묘하게 될 ‘시뮬라크르’ 개념의 윤곽에 딱 들어맞을 법한 몸짓에 의해 성취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본래라면 어떤 문장의 기원이라고 여겨져야 할 서명을 집필자가 어떠한 순간에도 쓴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형식적’인 허구에 지나지 않는 그 이름이 인쇄된 대량의 복사본copy이 주변에 유통됨으로써 확실한 현실감을 획득할 때, ‘기원’을 결여한 ‘반복’으로서의 인쇄된 이름에 대해, 사람들은 들뢰즈를 따라 ‘시뮬라크르(=모상模像)’라고 이름 붙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때 일어나는 일은 주변에 유통되는 ‘시뮬라크르’가 ‘형식적’인 허구에 지나지 않는 ‘기원’을 양적으로 현실화한다는 냉소적인 사태에 다름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많은 논자가 냉소적인 인물이라고 여겼던 ‘사생아’ 드 모르니에 딱 어울리는 서명이 아니겠는가(58~59쪽)

〈슈플뢰리 씨, 오늘 밤 집에 있습니다〉는 무엇보다도 우선 성공한 ‘음모’를 주제로 한 오페레타 부파이다. 슈플뢰리 씨는 돈을 지불하면서까지 자기 이름의 명예를 지키려 하며, 그리하여 딸을 젊은 예술가에게 넘겨주고 만다. 이 부유한 사내에게 ‘금전’과 ‘여성’은 ‘이름’과 교환 가능한 기호나 다름없고, 여기서 ‘음모’는 그 등가성을 전제로 준비되었다고 해도 좋다. 존타그든 루비니든 탐부리니든, 중요한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그 이름일 뿐, 그들을 연기하는 사람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는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 시대를 배경으로 이 ‘음모’는 착착 계획되어갔던 것이다. 〈슈플뢰리 씨, 오늘 밤 집에 있습니다〉가 ‘상연’을 주제로 한 각본이라고 한 것은 바로 이런 의미에서다. 여기에서는 더 이상 기호의 본질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지 않으며, 교환 가능한 등가성이 성립하기 위한 기능만이 문제가 된다. 연기해야 할 역할의 우위만이 기호의 유통을 지탱하게 될 때, ‘음모’는 그 시스템을 손쉽게 활용하여 성취되며, 그리하여 이제 시스템의 변용을 시도해볼 필요조차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99~100쪽)

마르크스가 말하듯 나폴레옹 3세의 쿠데타는 확실히 무언가를 ‘반복’하고 있지만, 『루이 보나파르트의 브뤼메르 18일』의 저자는 명백히 상연해야 할 장르를 잘못 보았다고 해야 할 것이다. 이 ‘음모’에서 문제시되는 장르는 ‘소극’이 아니라 ‘오페레타 부파’이며, 게다가 그것은 한번 ‘비극’으로 연기된 것을 다시 연기하는 탓에 지루해진 재연이 아니라, 아직 상연되지도 않은 작품을 그것이 쓰이기 정확히 10년 전에 이미 실연實演해버린 것이었다. 요컨대 〈슈플뢰리 씨, 오늘 밤 집에 있습니다〉가 1851년 쿠데타를 재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쿠데타 쪽이 그 줄거리를 충실히 모방하는 데 성공했다는 사태의 역전이야말로, 여기서의 ‘반복’의 실태인 것이다. 이것은 정치적인 것이어야 할 권력 탈취를 비심각화함으로써 실현되는 정치성의 냉소적이고 낙천적인 승리에 다름 아니며, 먼저 ‘비극’으로서 연기된 것이 나중에 ‘소극’으로 재연된다는 헤겔적인 역사관으로는 통제할 수 없는 사태의 도래를 마르크스는 놓치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114~115쪽)

7년에 걸쳐 집필되었고 그 분량도 대단하다고 할 수 있는 『범용한 예술가의 초상: 막심 뒤 캉론』(1988)은 하스미 시게히코의 대표작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제국의 음모』(1991)라는 얇고 소탈한 책이 그로부터 몇 년 후에, 마치 뭔가 여러모로 모자란(!) ‘동생’처럼 산출되었다는 사실 또한 상기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하스미 자신은 미리 어떤 책을 써야겠다는 구상을 하지 않았고, 그래서 잡지에 연재도 하지 않은 채, 2~3일 만에 이 책을 써버렸다고 나중에 술회한다. 『제국의 음모』는 표면적으로 본편인 『범용한 예술가의 초상』의 부산물spin-off 혹은 ‘자매편’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 속에서 다루고 있는 권력의 쌍둥이성性이라는 관점에서 다시 보았을 때, 이 책은 동시개봉에서 A-movie에 뒤지지 않거나 혹은 거의 그것을 능가하는 B-movie라고 해도 좋을 것이다. (147~148쪽_옮긴이의 말)

목차

■ 차례

1장 사생아
2장 음모
3장 결단
4장 서명
5장 의장
6장 희가극
7장 반복
저자 후기
문고판 후기
서지사항

해설 | 이리에 데츠로
고귀한 ‘사생아’와 ‘가짜 백작’
옮긴이의 말 | 임재철
본편을 능가하는, B-movie로서의 『제국의 음모』

작가 소개

하스미 시게히코 지음

불문학자이자 영화비평가. 1936년 도쿄에서 태어나 도쿄대학 불문학과를 졸업하고 파리대학에서 플로베르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도쿄대학 교수로 일했으며 1977~2001년에는 같은 대학 총장을 역임했다. 일본을 대표하는 지식인이자 압도적인 영화 체험을 자랑하는 씨네필이기도 하다.

지은 책으로 문학비평집 『나쓰메 소세키론』 『표층 비평 선언』 『오에 겐자부로론』 『이야기 비판 서설』 『범용한 예술가의 초상』 『『보바리 부인』론』 등이, 영화비평집 『영화의 신화학』 『영상의 시학』 『감독 오즈 야스지로』 『존 포드론』 등이 있다. 소설 『백작부인』으로 미시마 유키오상을 수상했다.

이리에 데츠로 해제

1988년 출생. 일본과학진흥회 연구원으로 미국 사상사 연구 및 영화 비평을 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화성 여행자: 퍼시벌 로웰과 세기 전환기 미국 사상사火星の旅人: パーシヴァル・ローエルと世紀転換期アメリカ思想史』와 『오버 더 시네마: 영화 <초월>에 대한 논의オーバー・ザ・シネマ: 映画「超」討議』(공저) 등이 있다.

임재철 옮김

영화평론가. 서울대 신문학과를 졸업하고, 『중앙일보』 기자로 일했다. 그 후 서울 시네마테크 대표, 광주영화제 수석 프로그래머로 활동했다. 현재 출판사 이모션 북스를 운영하고 있다. 엮은 책으로 『알랭 레네』 『장 마리 스트라우브 | 다니엘 위예』 등이, 옮긴 책으로 『앙드레 바쟁』 『정신의 위기: 폴 발레리 비평선』 『영화로서의 영화』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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