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숲의 신비 속에서
우리는 개개의 생명이면서 하나였다”
기억하고, 이윽고 쓴다
국가 권력에서 벗어나 독자적인 우주였던 숲속 마을의 신화
행동하는 양심 오에 겐자부로 문학의 ‘원점原點’
개인적 체험을 담은 소설에서부터 미래소설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품을 보여준 세계 문학계의 거장이자 최고의 자리에 있으면서도 늘 저항하는 반란자였던,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오에 겐자부로의 장편소설 『M/T와 숲의 신비한 이야기(M/Tと森のフシギの物語)』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93번으로 출간되었다. 이 책은 일찍부터 서구에서 번역되어 오에를 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고, 노벨문학상 수상에 중요한 역할을 한 작품이다.
산골짜기 마을 시코쿠는 에도시대에 추방당한 도망자들이 숨어들어 만든 마을이다. ‘나’는 할머니로부터 여족장 M과 꾀 많은 트릭스터 T가 세우고 보호한 마을의 신화, 혹은 역사를 전해 듣는다. 마치 국가 권력과 대적했던 자랑스러운 추억을 후세에 전할 사람으로 선택된 듯. ‘나’는 이 강요받은 사명이 짐스럽고 두려웠으나, 결국 숲의 경이로움과 하나의 우주로 이어졌던 인간을 깨닫고 “숲의 신비”를 ‘쓰는 사람’이 된다.
오에의 어릴 적 원체험이 바탕이 되어 그의 우주관과 생사관, 작가적 상상력이 드러나는 이 작품은 반란 · 자급자족 ‧ 지역 신화에 대한 찬란한 성찰을 보여주며, 신화시대부터 작가의 아들, 즉 미래 세대까지 이어지는 마법 같은 연결고리를 제공한다.
오에 겐자부로의 문학적 원점原點이자그를 세계에 알린 대표작
“나는 내가 태어나 자란 시코쿠 숲속 마을의 신화와 전설이 내포하고 있는
독자적인 우주관, 사생관을 소설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199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오에 겐자부로. 그는 80세에 가까운 나이까지 활발한 작품 활동을 한 세계 문학계의 거장이었다. 그의 거대한 문학세계의 원점이 되는 소설이자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작품 중 하나가 『M/T와 숲의 신비한 이야기』(1986)이다.
오에는 일본 시코쿠 에히메현의 작은 산골 마을에서 태어나 도시에 있는 고등학교로 진학하기 전까지 이 마을에서 자랐다. 어릴 적 체험을 바탕으로 숲의 신화와 전설을 그린 『M/T와 숲의 신비한 이야기』는 오에의 풍부한 상상력을 보여줄 뿐만 아니라, 그의 우주관, 인간관, 철학적 ‧ 사회적 통찰이 잘 드러나는 작품으로, “시적인 힘으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삶과 신화를 응축해 오늘날 곤경에 처한 인간의 당혹스러운 모습을 형상화한 작가”라는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보면 이 작품이 수상에 큰 역할을 했음이 드러난다. 이 작품은 1989년 프랑스 갈리마르 출판사에서 처음으로 번역 출간되었으며, 이후 오에 작품 중 많이 번역되는 작품 중 하나로 서구에서의 평가 기반을 마련한 작품이다.
“아주 먼 옛날이야기.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르지만, 없었던 일도
있었던 것으로 하고 들어야 한다. 알겠니?”
마을=국가=우주로서의 골짜기 마을과 신비의 숲
『M/T와 숲의 신비한 이야기』는 화자인 ‘나’가 할머니에게 듣는 옛날이야기의 형태로 깊은 산골짜기 마을의 창건 신화와 전설을 펼쳐놓는다. 할머니에게 골짜기 마을의 신화와 전설을 듣기 전에는 마치 하나의 의식처럼 위와 같이 정해진 문구를 외쳐야 한다.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둑」에서 ‘열려라 참깨’를 외쳐야만 열리는 동굴 문처럼.
이 마을은 옛날에 성곽 밖으로 쫓겨난 도망자들이 몰래 산으로 올라가 만든 독립적인 사회로, 마을의 존재를 숨기며 자급자족하던 시기, 국가에 발각되어 저항하던 시기를 거치며 이어진다. 마을을 창건하고 위기 때마다 마을을 구한 인물을 ‘나’는 M과 T로 명명했다. ‘여족장, 여가장’이라는 뜻의 메이트리아크matriarch인 M과, ‘책략가, 재주 좋은 녀석’인 트릭스터trickster T. 천황과 황후가 아닌 M/T가 보호하는 골짜기 마을은 그 자체로 일본국에 비견되는 하나의 국가이자 우주를 이루는 것이다.
울울창창한 숲으로 둘러싸인 마을에는 신비한 힘, 즉 “경이로움”이 존재한다. 모든 것을 파괴하고 다시 새로운 생명을 끌어내는 홍수, ‘파괴자’라는 별명을 가진 리더, 해적 섬의 소녀들, 오랜 생명을 이어가며 거인화되고 달빛 아래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노인들, 그리고 “숲의 신비”의 징표로 보이는 기형을 안고 태어난 아이. 이 마법 같은 소설에는 반란, 자급자족 사회, 지역 신화에 대한 찬란한 성찰이 향수와 함께 동반된다.
“우리는 원래 숲의 신비 속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그 속에서 우리는 각각 개개의 생명이면서 하나였다.
하지만 어느 날 우리는 숲의 신비 속에서 나오고 말았다.”
우리는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M/T는 각 하나의 인물이 아니다. 마을의 창건과 성장, 침체와 복원, 평안한 시기와 격변, 반란과 쇠퇴 등의 역사 속에서 새로운 M/T가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들은 커다란 순환 속에서 연결된 존재다. 이 마을에는 삶과 죽음에 대한 전통적인 관점이 있는데, 이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은 죽으면 혼이 되어 숲의 나무뿌리에 머무르다가 갓난아기로 태어나 다시 살고 죽는 것을 반복한다는 것이다. 작가는 우리가 “나를 넘어서는 위대한 삶과 연결”되어 있으며, 오래전부터 전해져오는 영원한 흐름의 일부라는 것, 그리고 의식이 현재를 넘어 미래까지 확장됨을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시코쿠의 깊은 숲속 공동체에 대한 이야기이자 작가인 오에 겐자부로와 그의 가족의 이야기이다. 개인의 이야기가 가족의 이야기와 연결되고, 가족의 이야기가 공동체의 이야기와 연결되며, 그 안에는 오에 겐자부로와 그의 가족의, 인간의 치유와 구원이 있다. 이 기상천외한 이야기는 결국 20세기 말에 작가가 살고 있는 세계에 대응하게 되고, 작가의 아들 히카리, 즉 미래와 연결된다. 인간의 회복과 구원을 찾아서, 장엄한 문학적 상상력과 새로운 서사가 탄생한 감동적인 걸작이다.
■ 책 속으로
어느 한 인간의 생애를 생각할 때 그 시작은 출생 시점이 아니라 그보다 더 아득한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고, 또 그가 죽은 날로 끝맺는 것이 아니라 그 뒤로 더 연장하는 방법으로 겨냥도를 그리는 일이 필요합니다. 한 사람이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은 단순히 그 한 사람의 삶과 죽음에만 머무르지 않을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포함된 사람들의 고리라는 커다란 그늘 속에 태어나고, 죽은 후에도 무언가가 계속되기 때문입니다. (9쪽)
그립다고 느끼는 것. 게다가 과거에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이 되살아난 것도 아닌데, 그럼에도 그립다. 그것은 이 숲속 골짜기에서 아득히 먼 옛날에 몇 번이고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 아닐까? 그렇게 나는 느꼈습니다. 그렇게 생각한 것이 아니라 그렇게 느꼈다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어린 나도 이렇게 강렬하게 느꼈다는 것은 이미 자신의 머리로는 어찌할 수 없는, 그런 강력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느낀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24쪽)
할머니가 옛날이야기를 시작하며 이렇게 말합니다. “옛날 일이라면 없었던 일도 있었던 것으로 하고 들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힘을 주어 “응!” 하고 맹세를 함으로써, 나도 모르게 뭔가 무서운 사태에 휘말려 들어가는 것은 아닐까? 그처럼 어린 내가 두려워한, 마음의 동요를 일으키는 순서, 그것을 지금 다시 더듬어보지요. (36쪽)
“봉기의 성공과 실패는 사람의 지혜로 헤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니. 사람의 지혜로 알 수 없는 것이라면, 게다가 우리와 관계되는 일이라면, ……처음이 하늘이면 다음에는 땅, 앞서가 위라면 이어서 아래, 왼쪽이면 오른쪽, 음지면 양지, 밝음이면 어두움이라고 깨달아야 한다. ……계속해서 뒤집어야 옳다. 사람의 지혜를 초월하는 일, 손으로 더듬어 찾아가는 방법 외에 길은 없다!” (224쪽)
“자네가 어렸을 때부터 할머니가 마을의 신화와 역사를 들려주신 건, 사실 밝은 데서 드러내놓고 할 수 있는 이야기가 아니라 눈에 띄지 않는 곳에서 몰래 귓속말로 전할 수밖에 없는, 국가와 정면으로 대적했던 자랑스러운 추억을 후세에 전할 사람으로서 자네에게 그 능력을 훈련시키기 위해서가 아니었을까?” (261~62쪽)
당연한 일이지만, 그런 나에게는 막연하게 큰 불안이 가슴속 깊이 도사리고 있다고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내가 아는 한 숲속 분지의 전설을 듣고 기억해야 하는, 그것을 위해 선택된 아이는 마을에 나 혼자뿐이었다. 그렇다면 나는 단지 전설을 기억하고 마침내 그것을 쓰는 것보다 그 안에 있는 더욱 중요한 일을 부여받은 건 아니었을까? 그러면서도 그 일에 대해서는 왠지 잘 모른 채 지내온 것은 아닐까? (317쪽)
그래도 이 세상 속에서 사는 동안에, 누구든지 그리운 마음을 뿌리째 뽑아버리면 어떻게 될까? 더군다나 숲으로 올라가도 ‘숲의 신비’가 숨을 수 있는 깊은 나무숲은 베어져 숲의 어디부터 어디까지든 훤히 다 보이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면 ‘숲의 신비’ 쪽에서 우리에게 정나미가 떨어져 어딘가 멀리 가버리는 게 아닐까? 그야말로 K가 어렸을 때 말한 것처럼, 저 멀리 은하계보다 더 밖의 별에까지 ‘숲의 신비’가 날아가버린다면 어떻게 될까? 우리의 혼은 이제 언제까지나 버려진 그대로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어 나는 몹시 쓸쓸했지요! ‘숲의 신비’로 돌아갈 수 없게 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혼이 잠시 머무는 수목들까지도 숲의 여기저기에서 베어지고 쓰러져버리고 있답니다! (365~366쪽)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시적인 힘으로 상상의 세계를 창조해내는, 삶과 신화를 응축해 오늘날 곤경에 처한 인간의 당혹스러운 모습을 형상화한 작가다. _노벨위원회
오에 작품의 노스탤지어는 미래로 나아가는 힘이다. _필리프 포레스트(프랑스 작가, 비평가)
오에는 노벨상 수상으로 얻은 두터운 신망의 힘을 명성이나 추종을 끌어모으기 위함이 아니라, 인간존재의 복잡함과 굴레의 늪을 헤치고 들어가기 위해 동원하고 있다. _에드워드 사이드
■ 차례
서장 M/T와 생애 지도의 기호
제1장 ‘파괴자’
제2장 오시코메, ‘복고운동’
제3장 ‘자유시대’의 종언
제4장 50일 전쟁
제5장 ‘숲의 신비’의 음악
작가 후기 ‧ 내러티브의 문제 (1)(2)
옮긴이 해설 · 신비의 숲과 독자적인 우주로서의 숲속 골짜기 마을
작가 연보
기획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