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매일 계속되는 꿈이야.
그러면 어떤 것도 더는 꿈이 아니게 돼”
좋은 일의 반대말은 나쁜 일뿐일까
무방비하게 쏟아진 상실의 나날이 가져다준 단단한 희망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양손으로 호주머니를 뒤집어 이거 봐, 아무것도 없지, 굴면서도 한편으로 남몰래 쥐고 있는 손바닥 안의 무엇 그러니까 뭐냐 하면 내가 어떻게든 지키려고 하는 것. 그것을 내가 지키고 있고 그것 또한 나를 지키고 있음을 알기. 그것을 믿기. 나는 이것들을 배우고 싶었지만 배우지는 못했고 어쩌다가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나는 소설을 읽고 쓸 수 있다.
―2022 『경향신문』 신춘문예 수상 소감에서
예측할 수 없는 상실로 가득한 세계에서 무한한 희망의 가능성을 섬세하게 그려내는 김채원의 첫번째 소설집 『서울 오아시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202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할 당시 “역동적인 감각과 독보적인 매력”(이기호‧전성태‧최은미 소설가, 강동호‧서영인 문학평론가)을 가졌다는 평과 함께 문단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았던 그의 본격적인 행보를 알리는 이번 책에는 등단작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를 비롯해 ‘이 계절의 소설’(2022년 겨울, 2024년 봄) 선정작인 「빛 가운데 걷기」 「럭키 클로버」 등 그간 발표한 단편소설 일곱 편과 미발표작 한 편을 실었다.
상실 후에 홀로 버텨야 하는 이의 마음은 어떤 모양일까. 이번 소설집을 관통하는 이 질문의 답은 “나 혼자 도움 없이 살고 있는 것 아니고 여럿이 함께 살고” “그 한편에서 외따로 도움받지 못한 나의 소설을 계속 쓰겠다”(‘작가의 말’, p. 265)는 작가의 전언을 오롯이 반영하며 펼쳐진다. 상실에 대한 슬픔을 껴안고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화자들의 곁에는 떠나간 이를 기억하는 남은 자들 그리고 다시 돌아올 이를 함께 기다려주는 든든한 동행자들이 있다. 그들의 목적지는 소설이 끝날 때까지 명확하게 예측할 수 없다. 어쩌면 목적지를 굳이 정해두지 않고 이곳저곳을 배회하다 “숲은 밝고 나무는 어둠”(「서울 오아시스」, p. 99)이라는 사실을 자각한 채 견디고 있는 중일지도 모른다. 여덟 편의 소설 속 화자와 그를 둘러싼 인물들이 발 닿는 곳마다 펼쳐 보이는 장면들은 우연의 연속처럼 보이지만 빈틈없는 세계로 완성되고, 허상처럼 보였던 서울 한복판의 오아시스로 우리를 기꺼이 데려다 놓는다.
“어떤 사람은 건강하지 않아도 오래 살 수 있다”
빈자리 주위를 거닐며 서로를 지키는 따뜻한 유대
살아 있다는 게 이렇게 가볍고, 고요하고, 죽은 듯이 맹렬할 수 있구나. 그 맹렬함이 여덟 갈래로 쪼개져 여덟 명의 클로버 병정이 되었다. 자영에게 필요한 자영의 친구들, 병정들에게 필요한 병정들의 자영이, 나에게 필요한 나의 소설이었다.
─‘작가의 말’에서(p. 263)
표제작 「서울 오아시스」에는 아프지 않는 법을 몰라 병원에 입원해 있는 엄마, 홀연히 사라졌다가 죽음을 맞이한 삼촌 곁을 배회하는 화자가 있다. 슬플 법도 한데 울거나 무너질 기색도 없는 ‘나’는 “봄에는 딸기. 여름에는 복숭아. 장미의 행렬은 남색 대문”(p. 87)을 상상하고, “좋은 날이야” “하지만 계속될 수는 없는 좋음이야”(p. 99)라며 담담한 어조를 이어간다. 어쩌면 과거 삼촌에게 들은 이야기를 토대로 엄마와 비밀 암호를 만들어둔 것, 그것을 곱씹으며 걷고 또 걷는 행위가 무력감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 이 선명한 기억과 작은 몸짓은 잃어버리거나 잃어버릴 모든 것, 나아가 이 소설집에 실린 모든 작품을 튼튼하게 연결해주며 김채원식 ‘좋은 날’들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서울 오아시스』를 펼치면 처음 등장하는 작품「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는 “친구를 떠올리지 않는 방식으로 애도하는 일에 대해”(『경향신문』 인터뷰) 씌어졌다. 스스로 세상을 등진 유림의 부고를 들은 세 사람이 발길 닿는 대로 걸어다니며 만들어지는 에피소드에서 직접적으로 유림을 언급하거나 슬픔을 토로하고 어쭙잖게 애도하려는 인물은 없다. 오히려 누군가의 죽음과는 어울리지 않는 식사와 시시콜콜한 대화를 주고받는데, 그 속에서 “산산조각 난 파편을 그러모아가며 아직 알려지지 않은 무언가를 만들어가고 있는 누군가의 뒷모습이”(김미정 해설, p. 253) 감지되고, 그들은 함께 유림의 빈자리 주변을 맴돈다.
친구들이 잃어버린 유림이 「쓸 수 있는 대답」의 주인공이다. “얼마 전에 자살하기를 그만”(p. 106)둔 그는 교통사고를 당한 후에도 필요한 만큼의 합의금만 제시한 뒤 더 이상의 연락을 거부하는가 하면 약국에서 계산도 하지 않은 약을 그대로 들고 나오기도 한다. 생(生)의 모든 전의를 상실한 유림은 “날씨가 이렇게 뜨겁고, 이렇게나 해가 오래 떠 있는데 어째서 어떤 사람들의 마음은 온통 어둠이기만 한 것인지”(p. 116) 알 수 없는 채로 자신이 떠날 수밖에 없던 이유들을 담담하게 보여주며, 그의 부재 주위를 배회하는 친구들의 뒷모습을 바라보고 이해하도록 이끈다.
「럭키 클로버」의 여덟 병정은 자영의 자두 농장을 지키는 파수꾼이다. 그들은 농장을 해치는 무언가가 없는지 순찰하고, 자영의 고민을 들어주거나 곁에서 잠들고, 자영이 일을 시키면 “우리가 하고 싶지 않을 때 하지 않게 냅”(p. 165)두라면서도 자영을 떠나지 않는다. 엄마가 일구고 돌보던 것을 홀로 떠맡고 돌아오지 않는 엄마의 빈자리를 바라만 보는 일을 언제까지 지속해야 할지 알 수 없어 무력해진 자영에게 “번성하는 여러 개의 생명력을”(p. 166) 가진 클로버 병정들은 꼭 필요한 존재이다. 「서울 오아시스」에 등장하는, “자신에게 주어진 행운을 찾아 모험을 떠”나는 극과 동명인 이 소설은 “그에게 주어진 행운이라는 게 무엇인지” 영영 알 수 없을지도 모르지만 “알아볼 수 있을 거라”(pp. 98~99)고 믿는다. 그 믿음으로 자영은 클로버 병정들과 어두운 밤길을 걸어나간다.
“모든 원인들, 사실들.
기쁜 소식이 있어”
소진되어버린 오늘에서 발견한 내일의 오아시스
우리 일상의 생각지 못한 휴식 같은 풍경, 접힌 주름이 펴지면서 감춰졌던 비밀이 언뜻 모습을 드러낸 순간, 혹은 불현듯 나타나 우리를 당황스럽게 하지만 이내 노곤하게 만드는 순간. 지금 이 소설의 화자는 그런 것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구원은 바깥에 있지 않다. 상실–부재의 장소는 오히려 오아시스일 수 있고, 형벌 같은 삶에도 한 조각의 윤슬은 감추어져 있다.
─김미정, 해설「공백과 무한」에서(p. 250)
상실과 부재라는 진원지에서 에너지가 완전히 방전된 상태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그럼에도 남은 생을 포기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면 임계점에서 내일의 문을 찾아 열고 나아가는 것이 가능할까. 김채원은 죽고 싶지만 죽을 수 없는 채로 살아가야 하는 모든 이를 응원하듯 그 실험을 용감하게 수행한다.
「빛 가운데 걷기」의 주인공은 이름 대신 노인으로 등장한다. 그는 세상을 떠난 딸을 그리워할 새도 없이 딸이 남기고 간 초등학생 손주를 돌봐야 한다. 과거 교사였던 그는 아이에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지만 학교에선 아이를 문제 대상으로 바라본다. 이내 아이가 등교하지 않으려는 날이 많아짐에도 노인은 “큰 문제가 되지 않을 것”(p. 63)이라며 아이를 믿는다. 그저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실천하며 이따금씩 주기율표를 외우고, 볕이 좋은 날 “문이 열려 있는 건물을 찾아”(p. 59) 걸어간다.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은 “소설이 마치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했으면 하는 마음으로”(‘작가의 말’, p. 264) 씌어진 소설이다. 마침표를 생략한 채 연결되는 문장들은 마치 머릿속에서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식의 흐름을 형상화한 듯하다. 주인공 ‘구아미’는 이 작품에서 오렌지를 먹으며 등장하고 상점에서 오렌지를 고르며 끝맺는다. 그는 “너 같은 놈이 죽어야지 얘가 왜 죽어”(p. 237)라거나 “할머니는 너무 늙었어요 할머니는 금방 죽을 거예요”(p. 213)라고 생각하는 등 조금만 건드려도 폭발할 것 같이 화가 잔뜩 난 모양새다. 하지만 “작은 오렌지 씨앗에 싹이 나고 그 싹이 무럭무럭 자라는 모습이 눈에 보여 그것을 지켜보는 일은 좋다 좋고 또 기쁘다”(p. 215)라고 생각하며 자신의 혼잣말을 들을 수 있는 유일한 존재인 죽은 친구 ‘오아름’을 회상하는가 하면, 수영장 청소 아르바이트를 하며 염소 냄새가 지독하다고 느낄 땐 “염소는 원자번호 17번, 비소보다 가벼운 17번 원소, 불소보다는 무겁다”(p. 228)며 주기율표를 외운다.
「외출」에는 “바람이 부는 방향으로 한여름의 햇빛 냄새가 옮겨 가듯 글자는 가로 방향으로 적어야 마땅히 그 의미를 가질 수 있다”(p. 180)는 문장이 초입에 등장한다. 이처럼 태어났으니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면 버티며 계속 걸어가는 것 또한 삶의 의미일지도 모른다. ‘나’는 한 번 보고 만진 것은 좀처럼 잊지 않는 재주를 가진 사람이지만 말을 아주 길게 하는 것은 배우지 못해서 실천하지 못한다. 불면증을 앓으며 과거에 보고 들은 것을 회상하는 나날 속 노인과 엄마의 장례식을 치르던 기억을 통해 「빛 가운데 걷기」와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나’는 상실과 결핍으로 얼룩진 하루를 견디기 위해 “기쁜 소식이 있어”(p. 190)라는 말과 함께 기쁜 일들을 적어 내려간다. 가끔은 기쁘지 않은 소식을 적지만 결국 그 또한 슬픔을 버티는 쪽으로 환원되며 반짝이는 문장으로 남는다.
기쁜 소식이 있어.
목이 말랐는데 식탁에 물이 있었어.
비가 내릴 거라고 했는데 정말로 비가 내려.
소포가 왔어.
베개에서 아직도 구운 과일 냄새가 나.
아침부터 저녁까지 개를 따라다녔어.
큰 장화를 신고 비옷을 입은 꿈을 꿨어.
옆자리 애를 패버렸어. 몸에는 피가 많아.
잘 잤어.
같은 꿈을 오래 꿨어.
아빠를 실망시켰어.
웃었어.
물에 빠져서 심장 소리를 크게 들었어 (p. 191)
“억지로 꾸미지 아니하여 이상함이 없이 순리에 맞고 당연하게” (p. 189)견디는 날들. “즐거운 것을 생각하”려고 하다가 그것이 무엇인지 배우지 않아 모르겠으면 “생각하고 싶은 것들을 생각하”(p. 199)는 나날. 그 우연한 일상이 촘촘히 쌓일 때 어둠은 점점 밀려나고 빛으로 나아갈 힘을 얻을 수 있다. 그렇게 “소설 속 장면뿐 아니라 소설집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몽타주를 이루”(김미정 해설, p. 240)는 김채원의 유니버스는 잃어버린 모든 것을 기억하고 단단하게 연결되어 우리 곁에 무한한 이야기로 이어질 것이다.
■ 책 속으로
누구도 그에게 인사하지 않았고, 그 또한 누구에게도 인사하지 않았다. 그러나 누구든 자신의 시야 안으로 들어온 그를 볼 수 있었고, 그 또한 자신의 시야에 들어온 것이라면 무엇이든 볼 수도, 가늠해볼 수도 있었지만 그러한 사실들을 서로 무시하여 결국엔 우습게 만들었다. 일종의 질서와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어. 노인은 생각했다. 질서는 삶을 혼란 없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게 하는 순서나 차례이니 그러므로 삶에 해害가 되는 기억을 가진 사람을 가까이하지 않기. 아니, 질서는 그런 것이 아닐지도 모르겠어.
―「빛 가운데 걷기」(p. 43)
파랑일 때의 엄마는 나에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것들과 기본이 되는 것들을 알려주기 위해 몇 번이고 노력했다. 올바른 젓가락질, 시계 보기, 우비 입기, 모르는 사람의 날씨 이야기를 들어주기, 밤 까기, 친구를 기다리기, 손을 뻗기, 물 없이도 알약을 삼키기. 그러고는 동그랗고 짠맛이 나는 토마토젤리를 혼자만 많이 먹었다. 나는 나중에라도 내가 엄마를 알아보지 못하게 될까 봐 엄마와 나만 아는 암호를 만들어두었다. 외삼촌이 말하기를, 군대에서 암호는 길이가 길지 않은 것이라고 했다. 보초를 서는 군인이 암호를 외치면 그 군인은 위험에 빠진 거라고. “아군끼리는 알아, 그 암호를.” 나는 그것을 엄마에게 말해주었고 엄마는 작은 비밀이 생긴 것처럼 즐거워하며 내 귀에 대고 속삭였다. “무슨 말인지 알겠어.”
―「서울 오아시스」(p. 82)
한번은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 하고 정부영은 생각했다. “아닌데.” 한번은 이런 꿈을 꾼 적이 있었다, 하고 정부영은 생각하지 않았다. “한번은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고도 싶었지. 매일 꾸는 꿈에 대해서.” 정부영은 한번 생각이라는 것을 해보고도 싶었다. 매일 꾸는 꿈에 대해서. “아닌데.” 정부영은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고 있는 것처럼 굴었다. “그런가?” 정부영은 몸을 앞으로 숙인 채 걷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떠올려보았다. “나는 매일 계속되는 꿈이야. 그러면 어떤 것도 더는 꿈이 아니게 돼.”
―「영원 없이」(p. 138)
병정들은 물줄기를 쫓아다니며 그 주위로 점점이 흩어지는 시원한 물방울을 맞았다. 그 모습이 어쩐지 얄밉고 마음에 안 들어 자영은 병정들에게 직접 물을 쏘았다. 병정들은 곧바로 넘어지거나 발이 엉켜 물웅덩이로 떠밀렸다. “아파, 아파!” 자영은 쏜 자리에 한 번 더 물을 쏘았다. “그만해. 너는 우리보다 크잖아, 비겁하게. 괴롭히지 마.” 괴로운 듯이 찡그리고 있었지만 병정들의 물기 어린 얼굴에는 분명한 생기가 돌았고, 자영은 그것을 보았다. 병정들이 자영에게 보여주었다. 번성하는 여러 개의 생명력을.
―「럭키 클로버」(p. 166)
아름아 나는 알아 내가 아는 것은 너도 알지 알고 있지 구아미는 평소에 자주 그런 말을 되풀이했지 자신이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을 기르는 것에 대해서 언젠가는 어엿하게 열리게 될 다섯 개의 오렌지 열매에 대해서 다섯 개의 오렌지 열매가 될 다섯 개의 기억에 대해서 다섯 개의 오렌지 열매가 된 다섯 개의 기억을 기계에 넣고 납작하게 말려 먹는 것에 대해서 바짝 말린 다섯 개의 오렌지 열매를 다 먹고 그것에서 다시 조그만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을 얻는 것에 대해서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p. 215)
■ 작가의 말
첫 소설집을 묶게 되었다. 소설집을 묶는다는 말이 어째서인지 좋아 그 말을 처음으로 쓰게 될 날을 남몰래 기다리기도 했다. 첫 소설집을 묶게 되었다고, 정말로 쓸 수 있어 기쁘다. 소설을 쓰는 삶이 나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이 아직은 생소하고 가끔은 어렵고 이따금 기쁘다. 나에게 우연히 삶이 주어졌듯이, 소설 또한 그와 같은 방식으로 주어졌음을 새삼 실감하고 있다.
이 책에 실린 여덟 편의 단편소설은 소설이 무엇인지 생각하기 이전에 내가 무엇인지 생각하며 쓴 것들이다. 그러니까 내가 나에 대해서만 생각하며 쓴 것들이다. 나는 글쓰기가 타인을 생각하며 할 수 있는 일인지 아직은 잘 모르겠다. 오직 자기 자신에 대해서만 쓴 누군가의 글에서 자기 자신을 발견하는 자기 자신만이 있을 뿐인 것 같다. 그런 면에서 글쓰기의 이기적이고 자폐적인 무언가가 나를 살게 했다. 살아갈 방법을 전혀 찾지 않고도 살 수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나는 살아갈 방법이 필요한 사람이고, 그 방법이 소설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도 싶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말이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그렇게 되고 싶다.
[……]
한 권의 책을 만드는 동안 많은 사람의 도움을 받았다. 어떤 이름은 나만 알고 있겠지만 어떤 이름은 책의 곳곳에 평론가로서, 편집자로서, 디자이너로서 가만히 새겨져 있을 테고 그것이 좋다. 그들이 살아가며 일구는 토양의 일부분을 내가 함께 걸어볼 수 있었다는 것, 내가 일구는 토양의 일부분을 그들이 함께 걸어주었다는 것이 나에게 의미가 있다. 상상해본 적 없는 일이니까 말이다. 과거 언젠가의 내가 그랬듯이, 누군가는 나의 이름이 아닌 다른 이의 이름을 찾아 읽기 위해 이 책을 펼쳐보기도 할 것이다. 편편이 흩어져 있던 원고들을 묶어 이렇듯 어엿한 한 권의 책으로 만져볼 수 있게 해주신 김미정, 이주이, 유자경 세 분께 우정과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가깝고도 먼 곳에서 나 또한 언제고 당신들을 응원하고 있겠다.
나 혼자 도움 없이 살고 있는 것 아니고 여럿이 함께 살고 있음. 그것을 잊지 않고, 그 한편에서 외따로 도움받지 못한 나의 소설을 계속 쓰겠다.
이 책이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아가기를 바란다.
2025년 1월
김채원
■ 차례
현관은 수국 뒤에 있다
빛 가운데 걷기
서울 오아시스
쓸 수 있는 대답
영원 없이
럭키 클로버
외출
다섯 개의 오렌지 씨앗
해설 | 공백과 무한 · 김미정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