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

주디스 버틀러, 프레데리크 보름스 지음 | 조현준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4년 12월 26일 | ISBN 9788932043418

사양 소프트커버 · 변형판 128x187 · 148쪽 | 가격 12,000원

분야 채석장, 인문

책소개

“주체를 상호주체성으로 언급해야 하는 이유는
당신의 삶이 살 만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수많은 삶들이 살 만하지 않고서는
나의 삶도 살 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저명한 퀴어 이론가이자 정치윤리학자인 주디스 버틀러와 프랑스의 비판적 생기론자이자 돌봄의 윤리를 주로 연구해온 철학자 프레데리크 보름스가 삶을 살 만하게 또는 살 만하지 않게 만드는 조건에 대해 탐구한 대담집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이 출간되었다. 이 책에는 총 두 편의 대담이 실려 있는데, 첫번째 대담은 수백만 명의 난민 수용 문제로 유럽 사회가 심각한 사회적 갈등을 겪고 있던 2018년 4월에 이루어졌고, 두번째 대담은 코로나 팬데믹이 전 세계로 확산되며 그 위험이 고조되었던 2022년 4월에 이루어졌다. 두 철학자는 이와 같은 중대한 비상사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지 해결책을 모색하면서 단순한 생존이 아닌 ‘살 만한 삶’이란 무엇이며, 이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가에 대해 논의한다. 이들은 새로운 정치적 규범을 강력하게 요청하는데, 그것은 바로 모두에게 ‘살 만한’ 삶의 조건을 확보하라는 것이다. 두 철학자는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을 구분하는 기준에 대한 이론적, 현상학적 논의에서 출발하지만 강제 이주, 기후 변화, 팬데믹, 전쟁 폭력 등 현대 사회의 구체적인 문제들을 중심에 두고, 오늘날 당면한 삶의 위기에 대응하고 회복하기 위한 방법에 대해 밀도 높은 대화를 이어간다. 두 학자에게 있어 인간에게 살 만한 삶을 보장하는 것은 단순히 정치적, 사회적 목표가 아니라 인간의 상호의존성에서 비롯된 윤리적 의무이자 책임이다.


보름스와 버틀러의 만남, ‘비판적 생기론’과 ‘위태로운 삶의 철학’의 교차

젠더 수행성 개념을 주창한 초창기부터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전쟁 등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내고 있는 최근에 이르기까지, 주디스 버틀러의 사유의 핵심에는 ‘살 만한 삶’이라는 지향이 존재한다. 그는 어떤 삶이 보호받을 가치가 있고, 추모되고 애도할 만한지를 결정하는 차별적 프레임을 타파하고 비폭력적인 공-존의 방법을 찾고 실천해야 한다고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프레데리크 보름스는 베르그송과 캉길렘의 생기론을 계승하고 프로이트와 위니콧의 정신분석학과 돌봄의 윤리에 근거를 둔 철학자로서 그의 비판적 생기론은 생명 자체의 내재적 규범과 조건을 비판적으로 탐구하는 접근 방식이다. 보름스는 주체의 생명이 유지되고 발전하려면 의식주 같은 기본적 요건 외에도 돌봄, 관계, 사회적 조건이 필수적이라고 주장한다. 그렇다면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을 어떻게 구분할 수 있을까?

“살 만하지 않은 삶은 우리 몸의 삶이나 생명의 조건이라고 부르는 것이 일종의 중단을 겪는 것입니다. 솔직히 말해 그것은 죽음과도 같은 자아의 파괴를 수반할 것입니다. 그리고 비유할 수 있다면 그것은 죽음보다 더한worse 것인데, 왜냐하면 삶이 계속되는데도 삶을 삶으로 만들어주거나 누군가가 그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것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 사실상 그것이 바로 제가 “비판적 생기론”이라고 부르는 것의 핵심입니다.”

이렇듯 보름스가 죽음과 대비하여 살 만한 삶의 객관적 조건을 중시하고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 사이의 명확한 경계를 유지하려 한다면, 버틀러는 주체가 자신의 경험을 어떻게 의식하고 어떤 의미를 끌어내는지를 중요하게 생각하며 상호주체적 관점에서 사회적 인정과 보호를 받을 수 있는지 여부가 두 삶을 구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될 수 있다고 본다. 버틀러의 관심사는 무엇보다 위태로운 삶의 조건을 개선하고 사회적 불평등과 권력의 역학을 변화시키기 위한 저항을 촉구하는 데 있다. 우리는 타인과 영향을 주고받을 수밖에 없는 상호주체적 존재라는 자각 위에서 버틀러는 모두에게 살 만한 삶을 실현하기 위한 과정으로서 돌봄의 실천과 전 지구적 연대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한다.

“주체를 상호주체성으로 언급해야 하는 이유는 당신의 삶이 살 만하지 않고서는, 그리고 수많은 삶들이 살 만하지 않고서는 나의 삶도 살 만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공통되게 서로에게 의존하고 있고 공통된 삶을 위해서 사회구조에 의존하기 때문이지요. 나라는 주체는 유아기만이 아니라 평생을 돌봄에 의존하며, 여기서의 “돌봄”은 모성적 특성이라기보다는 살 만한 삶을 위한 사회적이고 제도적인 대비를 의미합니다. […] 따라서 우리가 살 만한 삶의 조건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의 조건에 대해 따져 묻고자 한다면, 삶을 비옥하게 하는 제도적 지원과 인프라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공존, 함께 살아가기의 정치학

몸에 대한 사회정치학에서 시작한 버틀러와 비판적 생기론이라는 생명철학에서 시작한 보름스는 서로 출발점은 다르지만 살아 있는 삶의 사회철학에 입각한 민주주의를 지지한다는 점에서 상통한다. 두 사람은 인간의 상호의존성을 인정하는 것이 살아 있는 인간들의 급진적 평등을 요구하는 것으로 이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들은 진정한 민주주의가 모든 사람에게 ‘살 만한’ 삶의 조건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인간의 기본적인 생명과 존엄성을 지키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본다. 비판적 엄밀함, 상호 존중, 따뜻한 유머가 들어 있는 이 책을 통해 모두에게 지원과 돌봄이 주어지고 생명 간 연대의 조건이 확장되는 ‘살 만한 세계’를 함께 상상해볼 수 있을 것이다.


■ 책 속으로

보름스: 그렇다면 우리가 지금 논의할 것은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을 구분하는 기준이며 그러한 기준을 정의할 수 있다는 것의 중요성입니다. 누구나 특정한 경험이나 삶에서의 “살 만하지 않음”에 대해서 주장을 가지고 있는 만큼 우리가 이런 주장에 대해 판단을 내릴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살 만하지 않다”는 말을 종종 듣게 되는데요, 과연 그런 말을 해도 정당한 사람은 누구일까요?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 32~33쪽)

버틀러: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이 개념적으로 반대된다고 주장하고 싶다면, 현상학의 장에서 일어나는 이 둘의 동시성을 설명해야 합니다. 이 점을 장황하게 논의한 이유는 예컨대 바다에 버려진 이민자들, 또는 무기한 구금되어 있는 사람들, 또는 군사 분쟁으로 폭격당한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을 서술하는 데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을 점점 더 대중적으로 사용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언제나 예전으로 되돌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이따금 창의적 저항을 하는 공동의 순간들이 있기는 하지만요(그런 순간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 55쪽)

버틀러: 우리가 의존하는 구조가 실패하면 우리 또한 실패하고 쓰러집니다. 그리고 우리가 입은 폐해는 정신적 삶까지 포함해서 우리의 삶에 개별적 사건으로 등록되겠지만, 이런 상실과 실패는 사실 어느 정도 공동체가 나눠 갖는 것이고, 어느 정도는 사회적, 경제적, 정치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살 만한 삶의 조건과 살 만하지 않은 삶의 조건에 대해 따져 묻고자 한다면, 삶을 비옥하게 하는 제도적 지원과 인프라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 60쪽)

보름스: 우리 문화는 살 만하지 않은 삶에 붙잡힌 삶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잊고 싶어 합니다. 이런 대립으로 인한 희생자(죽은 자) 아니면 이 대립을 벗어나서 살아 있는 자 둘 중에 하나만 있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것은 존재하고 있고 우리 모두의 관심사이며, 그래서 우리는 논의의 방향을 잡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그렇습니다.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 64~65쪽)

보름스: 우리는 특정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보다 더 취약하다는 것을, 그들의 세계가 이미 파괴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이 단지 미래에 대한 전망만은 아닙니다. 기후 문제와 팬데믹 두 경우 모두, 우리는 이것을 다 겪었고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거나, 그게 아니라 일부 사람들에게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가 거부하는 것은 공통된 취약성이라는 생각입니다. 공통된 취약성이란 팬데믹이고 기후 문제이며 심지어 우크라이나 전쟁이기도 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가 지구상 어디에서도 취약성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한다는 것을 상기시키는 작용을 합니다. (「후기」, 94쪽)

버틀러: 우리 중 누구라도 그러한 근본적 불평등이 확정 또는 편향되어 재생산되는 이 세계의 모습에 동의한다면, 그것은 자신의 삶의 방식을 보존하려 하고, 그렇게 보존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는 이들이 있는 한편 이들이 외면하는 타인이 있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러나 이들은 그런 타인에게 의존하며, 이들 혹은 우리는 그런 타인과 늘 관련을 맺는데, 이 타인들은 말하자면 파괴가 바로 눈앞에서 일어났기 때문에 눈길을 돌릴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이 논리에 따르면 자기 보존은 파괴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 겁니다. (「후기」, 99~100쪽)

목차

서문
머리말 _아르토 샤르팡티에, 로르 바리야스

살 만한 삶과 살 만하지 않은 삶
후기

지은이 소개
옮긴이 해제: 우리 모두에게 살 만한 삶을

작가 소개

주디스 버틀러 지음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의 비교문학과 석좌교수이다. 오늘날 가장 영향력 있는 정치 이론가이자 철학자 중 한 사람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현실 참여적 목소리를 내고 있다. 후기구조주의 페미니즘 학자로서 젠더 수행성 이론을 개진했고, 퀴어 이론의 선구자로 평가받는다. 최근 정치철학, 윤리학, 사회학적 성찰을 바탕으로 평등한 인간으로서의 삶의 가능성과 공동체의 윤리적 관계성을 모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 『젠더 트러블』 『젠더 허물기』 『위태로운 삶』 『권력의 정신적 삶』 『연대하는 신체들과 거리의 정치』 『비폭력의 힘』 『지금은 대체 어떤 세계인가』 『전쟁의 프레임들』 등이 있다.

프레데리크 보름스 지음

파리 고등사범학교 현대 철학 담당 교수이며 2022년부터 이 학교의 교장을 맡고 있다. 현대 프랑스 철학 국제연구센터를 이끌고 있으며 2013년부터 2021년까지 국가 자문 윤리위원회 회원을 지냈다. 베르그송과 현대 프랑스 철학의 전문가로서 특히 베르그송과 캉길렘의 생기론을 계승한 보름스의 철학은 ‘비판적 생기론’을 중심으로 필수적 생존 요건과 돌봄의 윤리를 강조한다. 지은 책으로 『현대 프랑스 철학』 『베르그송 용어집』 『돌봄의 철학』 『돌봄과 정치』 등이 있다.

조현준 옮김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인문중핵교과 교수. 지은 책으로 『젠더는 패러디다』 『영화로 읽는 페미니즘 역사』 『쉽게 읽는 젠더 이야기』 『개인의 탄생』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 『안티고네의 주장』 『젠더 트러블』 『젠더 허물기』 『젠더 정체성은 변화하는가?』 등이 있다. 최근 연구 주제나 관심사는 이성의 폭력성을 벗어날 가능성으로서의 감정 연구, 젠더에 대한 백래시로서 반 젠더 이데올로기, 자본주의 시대 개인과 공동체의 공존 방식 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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