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의 학(學)’으로 집대성한
한국 근대 문예비평의 역사
50여 년 만에 새로이 만나는
불후의 한국 근대문학 연구서
김윤식 6주기 기념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 개정 출간
한국 근현대문학이 제기하는 시대적 물음에 평생을 바쳐 ‘정면 돌파’로 응답한 국문학자이자 문학평론가 김윤식(1936~2018)의 6주기를 맞아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가 문학과지성사에서 개정 출간되었다. 김윤식은 1962년 『현대문학』을 통해 비평 활동을 시작하며 한국 근현대문학이 남긴 발자취를 진단하는 데 힘썼던 문학평론가이자 다양한 연구와 강의, 저술 활동을 전개해나가며 문학사와 문학이론, 개별 작가론과 작품론 등을 폭넓게 아울렀던 국문학자이다. 특히 그의 저서가 총 100종이 훌쩍 넘고 공저‧편저‧역저 등을 합하면 200여 종에 달한다는 사실은 김윤식의 뜨거웠던 학자적 열정과 분투를 보여준다.
1973년 한얼문고판과 1976년 일지사판에 이어 또 한 번 새 단장을 마친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는 성근한 문학인이었던 그의 대표 저술이자 여전히 후학의 기둥이 되어주는 한국 근대문학 연구의 바이블로 손꼽힌다. 김윤식은 “사실 자체를 가능한 한도에서 정리하고 분류하여 기술하는 것에 그치고, 비판이나 해석은 될 수 있는 한 보류”(p. 8)하는 등 이 책의 집필에 있어 “면밀한 자료의 확인과 분석을 통한 ‘사실의 학(學)’”을 강조하며 “사실로서의 한국 문예비평사의 구조 복원”(p. 13)에 몰두했다. 비평에 국한된 분야사가 아니라 우리나라 근대문학 전반을 관통하는 ‘문학사’ 서술이라고 이야기해도 무방할 만큼 방대한 자료를 망라하는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는 1920~40년대의 문학적 흐름을 살피는 데 요긴한 결정적 작업이며, 이를 기점으로 본격적인 한국 근현대문학사 연구가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그 학술적 중요성이 크다. 원텍스트를 현대어로 다듬되 정확성을 기하고 자료의 출처와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여 오류를 바로잡음으로써 더욱 완전하게 거듭난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는 현시대와 맞물리며 문학이란 “그 자신의 한계를 깨고 비판함으로써 새로운 시도를 감행함에 의해 존속해온 제도”(김윤식, 『내가 살아온 한국 현대문학사』, 문학과지성사, 2009, p. 30)임을 다시금 확인시켜줄 것이다.
치열하게 역동해온 한국 문예비평의 어제와 오늘
이를 돌아보는 시선 안에서 움트는 우리 문학의 내일
한국 근대문학이란 근대의 보편성(국민국가와 자본제 생산양식)과 특수성(반제 투쟁과 반자본제 투쟁) 그리고 그 모순에 관계하는 문자의 형상화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던 김윤식은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를 통해 여러 불리한 조건 속에서도 그 실체를 규명하고 얼개를 정리하는 데 주력하였다. 1920년대부터 해방 전까지의 한국 문예비평 전개 과정을 직접적으로 서술하며 총체적인 구조를 파악해나가는 이 책은, “체계 확립상 과거형이지만 그것이 다시 출발되어야 할 미래형이라는” 입장 아래 “빌려온 이론의 전개가 어떻게 역사 앞에 패배해갔는가를 실증해 보임으로써” 그간 한국문학이 걸어온 길을 더듬어보고 오늘날 문학 현장의 풍경을 환기한다. “앞으로 전개될 한국문학의 이론이 뒷날에 가서 돌이켜볼 때 역사 앞에 또 하나의 패배가 되어서는 안 된다는”(p. 12) 그의 단호한 문제의식이 돋보이는 지점이다.
‘제Ⅰ부 프로문학운동을 중심으로 한 문예비평’은 1920년대 초 프롤레타리아문학운동을 중핵으로 하여 유독 긴밀했던 당대의 문학 전반과 사회운동 간 관계를 포착한다. 프로문학은 물론 그 대타의식에서 출발한 민족주의문학론, 또 해외문학파와 전향론 등까지 두루 살펴보며 각각의 성립과 전개 양상, 관련 논쟁 및 한계를 고찰하고, 과학주의와 ‘대중’ 개념을 도입하여 비평의 현대화 과정에 일조한 프로문학비평이 남긴 의의를 꼼꼼하게 밝혀 내려간다.
‘제Ⅱ부 전형기의 비평’은 프로문학이 퇴조하던 무렵부터 일제 말기까지의 ‘전형기’ 동안 비평계에 펼쳐졌던 여러 가지 국면을 다룬다. 서구적 사조에 거점을 둔 휴머니즘론, 지성론 및 비평예술론, 문화 옹호 현상이라는 당시의 세계적 풍조와 식민지하의 특수한 의식이 결부된 고전론과 동양문화론, 반성적 흐름에서 기인하여 신세대와 30대 사이 문학정신의 순수/비순수 시비를 중심으로 점화되었던 세대론, 『국민문학』지 중심의 신체제론 등, 사회주의 이데올로기 문학의 공백을 해소하고 정론성과 지도성을 회복할 새로운 주류를 모색하고자 했던 1930~40년대 평단의 노력을 너르게 톺아본다.
‘제Ⅲ부 비평의 내용론과 형태론’은 최재서가 제시한 ‘비평의 아르바이트화’ 개념을 가져와 1940년 전후 비평의 내용론으로 서술의 포문을 연다. 이 방면의 실질적인 업적이 다소 빈약하다는 점을 지적하면서도 그것이 외국 문학의 피상적 이식 과정을 극복하려는 과정의 일환이었다는 사실에 주목하며 당시의 시론, 소설론, 문예론, 문학사, 작법류 등을 개관한다. 한편 형태론의 측면에서는 한국 문예비평이 짧은 기간 안에 수다한 형식을 실험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는 점, 또 그 형태가 발표지의 변천과 밀접하게 관계될 수밖에 없었다는 점을 짚으며 1930년대에 성행한 비평의 리뷰화 및 촌철비평 등의 성격을 들여다본다.
■ 책 속으로
한국의 프로문학은 엄격히 말하면 마르크스주의 문학이라 할 수는 없다. 마르크스주의에 기초를 둔 이데올로기의 문학임은 틀림없으나 1920년대의 객관적인 입장에서 볼 때, 자체 내의 여러 오류를 아직도 청산하지 못했던 것이며, 창작방법론으로서의 사회주의적 리얼리즘은 그런 혼란의 하나이다. 프로문학은 오히려 일본이나 한국에서의 전개 과정에서 파악되어야 하는 것이다. 소련에서 제시된 이론은 일본에서는 외재적 비평이란 것으로 받아들이기도 하였고, 또한 그들은 내용과 형식 문제, 대중 개념, 창작방법론 등을 스스로 해결해나가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여기에 일본 이론가들의 고뇌와 혼란이 있었고 이것을 받아들여 식민지 문단에 적용했을 때, 팔봉과 회월의 내용・형식 논쟁 같은 것이 나타났던 것이다. 이러한 이론의 한국에서의 고뇌와 그로 인한 민족주의문학과의 대결 의식과 훈련을 통한 비평의 영역을 쌓아 올렸고, 이 토대 위에 다음 세대인 1930년대의 전형기의 모색 비평이 가능했던 것이다. (제Ⅰ부 프로문학운동을 중심으로 한 문예비평, pp. 267~68)
전형기(轉形期)라는 어사가 암시하는 비평 형태는 무엇보다도 주조(主潮) 탐색이 그 초점의 문제가 될 것이다. 그 때문에 세계 문단의 동향에 민감해야 한다는 전제가 필요하며, 따라서 이 전제를 떠날 수 없을 것임이 예상된다. 여기서 세계 문단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우선 이에 대한 답변 이전에 이 시기가 세계사적으로 격동기라는 점, 따라서 개방적 세계관에의 자세가 지식인에게 강요되고 있었다는 사실을 지적해둘 필요가 있다. 세계 문단이라는 개념은 물론 서구 문학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한국문학 측에서 볼 때, 이 서구 문학권의 영향에 민감했던 일본 문단이 차라리 그 일차적인 교섭으로 보인다. 이 문제는 퍽 까다로운 대목이라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는 한국이 일본의 식민지에 놓여 있었지만 문화 및 문학에 있어서는 물론 독자성이 있었는데, 그것이 얼마만 한 가치와 저항성을 보여주었는가에 문제의 중요성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 문단이란 것에 또 하나 지적해둘 것은 파시즘과 ‘인민전선(人民戰線)’의 대립이 위기의식에 직결되어 있었기 때문에 정치적 사회적 배경, 문화적 사상적 배경 등이 예술적 배경보다 직접적인 것이었고, 따라서 예술가라는 입장보다도, 문화 옹호에 임한 지식인의 입장이 앞서고 있었다는 점이다. (제Ⅱ부 전형기의 비평, pp. 289~90)
비평의 ‘아르바이트화’란 (1) 작품에 즉한 월평이나 총평을 제외하고, (2) 또 시사적 평론을 제외하며, (3) 정론성(政論性) 및 주조(主潮) 탐색에 관한 비평을 제외하여, 어떤 문학 내부에 대한 단일한 주제 밑에 노작화(勞作化)된 일련의 연구라 규정할 수 있다. [……]
한국 근대 문예비평에 있어서는 이 방면의 업적이 매우 빈약한데, [……] 한국문학 자체의 시간・공간의 지나친 제약성으로 인해, 즉 이 기간 속에다 19세기 사조는 물론 현대사조까지 겹쳤기 때문에 비평이 논책 일변도에 흘렸고, 그것도 주로 도쿄 문단을 통한 피상적 소개에 주력했기 때문에, 그리고 이 기간 속에 문제 될 만한 작품이 많지 못하기 때문에 한 작품 혹은 한 주제에 대해 분석적인 철저한 연구가 빈약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이 방면의 비평이 논쟁이나 논책 비평에 비해 훨씬 뒤지는 것은 사실이로되, 어느 정도의 업적이 없는 바는 아니다. 또 비평사에서는 문학의 내적 접근intrinsic approach이 어떤 의미에서는 본질적인 것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 방면을 검토해둘 필요가 있게 된다. (제Ⅲ부 비평의 내용론과 형태론, pp. 613~14)
한 비평 유형의 완성은 그 비평 내용의 필요성에서 결정됨이 일반적이겠지만, 또 그 비평이 담길 용기인 형식 쪽에서 내용을 한정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 1930년대에 성행한 비평의 리뷰화 및 촌철비평은 후자, 즉 저널리즘의 요청에 의해 결정된 것으로 보인다.
[……]
한국 비평에서는 리뷰화로서의 문예시평과 촌철살인적인 단평의 역할이 비평의 중심 과제라 할 수 있다. 이 양 분야는 한국 문예비평의 잡문화를 지닌 채 그 속에서도 응고하려는 도식에 항거한 한 가닥 광망(光芒)이었던 것이다. 이 광망은 비평계 자신에로 향해 발사된 허다한 단평에서 특히 엿볼 수 있다. 촌철비평의 의의를 여기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리뷰화로서의 월평류는 지나치게 보고적(報告的)이며 비평의 비속화를 초래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특출한 비평가가 없었기 때문이라 할 수도 있으나 시대성에서 오는 원인도 있는 것이다. (제Ⅲ부 비평의 내용론과 형태론, p. 744)
■ 차례
『한국근대문예비평사연구』를 다시 펴내며
머리말
재판을 내며
머리말
제Ⅰ부 | 프로문학운동을 중심으로 한 문예비평
서론
제1장 프로문학의 성립
제1절 팔봉・회월의 활약
제2절 조직
제2장 논쟁—자체 내의 문제점
제1절 마르크스주의문학론
제2절 내용과 형식 논쟁
제3절 목적의식론
제4절 아나키스트와의 논쟁
제5절 대중화론
제6절 농민문학론
제7절 창작방법론(Ⅰ)
제8절 창작방법론(Ⅱ)
제3장 민족주의문학론
제1절 민족주의문학파의 성립
제2절 절충파
제3절 춘원의 이론
제4절 프로문학과 민족주의문학의 대립
제5절 민족주의문학의 위치
제4장 해외문학파
제1절 해외문학파의 성립
제2절 프로문학과 해외문학파의 논쟁
제3절 비해외문학파
제4절 해외문학파와 연극 운동
제5절 해외문학파의 위치
제5장 전향론
제1절 전향의 의미
제2절 회월의 전향론
제3절 백철의 전향론
제4절 전향의 시대적 한계
결론
부록
제Ⅱ부 | 전형기의 비평
서론
제1장 휴머니즘론
제1절 백철의 인간탐구론
제2절 휴머니즘 논쟁
제3절 휴머니즘 논의의 문제점
제2장 지성론
제1절 주지주의 문학론
제2절 지성의 효용성
제3절 풍자문학론
제4절 비평방법론
제5절 가톨릭 문학론
제3장 포즈・고발・모럴론
제1절 포즈론—이원조
제2절 고발문학론—김남천
제3절 모럴론에 대한 비판
제4장 예술주의 비평
제1절 새로운 비평방법의 모색
제2절 백철의 감상적 비평
제3절 김환태의 인상주의적 비평
제4절 김문집의 향락주의적 비평
제5장 고전론과 동양문화론
제1절 고전론
제2절 서인식의 역사철학
제3절 동양문화사론(I)
제6장 세대론
제1절 신인론—논의의 발단
제2절 순수 논의
제3절 순수의 정체—김동리의 문학론
제4절 세대론의 정신적 지표
제5절 세대론의 작품화—백철의 「전망」
제6절 세대론의 결산
제7장 신체제론
제1절 동양문화사론(Ⅱ)
제2절 사실 수리론
제3절 비평의 원점과 ‘제3의 논리’
제4절 『국민문학』과 사이비 지성
제5절 한국 문학과 일본 문학
결론
제Ⅲ부 | 비평의 내용론과 형태론
제1장 휴머니즘론
서론
제1절 시론
제2절 소설론
제3절 문예학적 연구
제4절 작법류
결론
제2장 형태론
서론
제1절 촌철비평
제2절 서평
제3절 대담, 좌담회, 설문, 특집
제4절 시평, 월평, 총평
제5절 작가론, 작품론, 비평가론
결론
평론 연보
인명 색인
용어 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