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를 꿈꾸지만
오늘은 최선을 다할 뿐!
밑바닥에서부터 천억 프로젝트 디렉터가 되기까지
20년 차 게임 기획자의 리얼 회사 생존기
업계에서 살아남기란 나이를 먹을수록 힘듦이 배가되는 일이다. 20대와 30대 시절이 정신적으로 힘들었다면, 40대부터는 그에 더해 육체적으로도 힘들어진다. 그렇다 보니 최선을 다해 살아남기 위해, 회사에서 보내는 시간뿐 아니라 내 개인 시간까지 훨씬 더 많이 할애하게 된다. ‘직장인 메이커’ 게임에 난이도를 매겨보자면 20대는 이지, 30대는 노멀, 40대는 하드인 셈이다. 50대는 아직 겪어보지 않아 모르겠다. 아마도 나이트메어급 아닐까. 86쪽
20년간 게임 업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해온 한 직장인의 이야기를 통해, ‘최선’의 의미를 새삼 되짚어보게 하는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게임 시나리오 기획자 겸 디렉터 최영근의 『최선의 직장인―오늘도 분투하는 직장인 생존기』가 그것이다.
빤한 모범 답안처럼 여겨지기 쉽지만, 최선은 일확천금이나 천재성 같은 행운에 기댈 수 없는 이들이 고를 수 있는 몇 안 남은 선택지에 가깝다. 내로라할 실적 없이 연차는 쌓여만 가고 연봉은 노력한 것에 비해 한참 낮은 데다, 앉아만 있어도 힘들 만큼 떨어진 체력이지만 우리는 매일 온갖 기상천외한 일을 수습하러 회사로 향한다. 『최선의 직장인』은 이처럼 여느 평범한 직장인들 중 하나인 작가가 말단 팀원에서 디렉터가 되기까지 20년 동안 펼쳐온 흥미진진한 분투기를 담고 있다. 경쟁사로 야반도주한 회사 대표, 말만 번지르르하게 할 뿐 일은 안 하는 선배, 팀원들의 의견을 들으려던 나를 무른 리더로 낙인찍은 동료들과 부대끼면서 작가는 밤샘 작업 끝에 프로젝트를 성공시키기도, 그러다 번아웃과 우울증, 불안장애와 공황장애로 병들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40대가 된 지금도 언제까지 일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며 악착같이 버티고 있다는 작가의 구체적인 일화들을 읽다 보면, 일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야말로 직장인에게는 성공이 아닐지 자연스레 묻게 된다.
『최선의 직장인』에서 작가는 직장에서 마주하는 고통과 환희의 순간들,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면 의미 없이 흘러가고 말았을 그 순간들을 때로는 진지하고 현실적으로, 때로는 시원시원하고도 유머러스하게 풀어낸다. 게임 기획자라는 특수한 직업인의 경험담에 바탕을 두면서도 어느 회사에서나 있을 법한 보편적인 ‘일의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이 책은, 마음을 터놓고 회사 생활의 고충을 나눌 동료가 되어주며 경험에서 우러나온 위로와 조언을 들려준다. 최고는 아닐지 몰라도 최고를 꿈꾸며 오늘도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사람들을 긍정하고 이들에게 진심 어린 응원을 건네는 책이다.
다만 꾸준히, 묵묵히
할 수 있는 일을 하기
작가는 전작 『게임 기획자의 일』(2022)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며 살 수 있을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언뜻 낭만적으로 보일 법한 게임 기획의 냉정한 현실을 들려준 바 있다. 이번에는 “몇 살까지 일할 수 있을까요”라는 동료의 질문에서 시작하는 이 책에서도 작가는 특유의 현실적인 시선을 발휘해 자신의 커리어를 하나하나 되돌아본다. 야근과 철야, 주말 근무를 무릅쓰고 공들여 개발하던 프로젝트가 도중에 엎어지거나 나를 채용하기로 한 대표가 잠적하는 등, 선뜻 이해되지 않는 일들이 벌어져도 “어쨌든 탈락은 탈락이다” “회사가 시키는 대로 하는 것이 회사원의 일”이라면서 작가는 의연하고 담담한 태도를 보인다. 거기엔 당장 뜻대로 되는 일이 없더라도 묵묵히 일하다 보면 모든 것이 결국 제 위치를 찾아가더라는 작가의 경험이 바탕을 이루고 있을 것이다.
1부 「수습은 우리의 운명」과 2부 「‘자기 관리’에 눈살을 찌푸렸다면」, 3부 「오아시스를 찾아서」와 4부 「위치 선정」까지 40여 편의 짧은 글로 구성된 이 책에서 작가는 회사 생활의 여러 면면을 흥미롭게 짚어 보인다. 특히 게임 기획자답게 작가는 ‘직장인으로 살아남기’ 미션을 게임 〈프린세스 메이커〉에 빗대어 보기도 한다. 어느 날 느닷없이 뚝 떨어진 딸아이를 공주로 성장시키기 위해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모으고 신체 단련과 공부로 능력치를 키우며 그 과정에서 쌓인 스트레스도 풀어야 하는 게임처럼, 업무 능력도 쌓고 시대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 트렌드를 부지런히 공부하며 자기 마음까지 돌봐야 하는 ‘직장인 메이커’는 직장인에게 숙명처럼 따라붙을 터다.
무엇보다 작가는 직장인의 능력 가운데서도 커뮤니케이션을 강조하는 한편, ‘인맥’에 대해서도 실력을 갖춘 뒤에야 사막의 오아시스처럼 찾아와 우리의 회사 생활에 버팀목이 되어주는 것이라는 현실적인 조언을 건넨다. 다시 말해, 실력 없는 인맥은 신기루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 『최선의 직장인』은 커뮤니케이션이 서툴렀던 자신의 과거 실패담을 진솔하게 털어놓기도 하면서, ‘괜찮은’ 선후배이자 ‘좋은 실력’을 갖춘 직장인이 될 수 있는 실제적이고도 구체적인 업무 스킬과 아이디어를 풍부하게 제공해준다. 본문 곳곳에 첨가한 ‘커피 브레이크’는 마치 업무 중간에 동료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머리를 식히고, 때로 귀한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는 회사의 한 풍경을 나타낸다.
■ 책 속으로
나 → 그 문제는 이러이러하게 수습하려고 합니다.
PD → 좋은 계획이네요. 예상되는 리스크가 있다면 뭘까요?
나 → ……제 골치가 지금보다도 좀더 아파진다는 것?
PD → 그건 어차피 당신 팔자라서 괜찮은 듯?
나 → …… 20쪽
이것만 기억하자. 속을 게 없으면 속지 않게 되고, 속지 않으면 분할 일이 없으며, 분할 일이 없으면 그저 최선을 다하며 내 실력을 쌓을 수 있다. 내 낚싯대에만 신경을 쓰고, 상류에서 낚시를 하는 원수들에 대한 생각을 지우자. 그러면 나는 꾸준히 살아남아 고기를 계속 낚으며 어느새 강물에 떠내려오는 적의 시체를 보게 될 것이다. 46쪽
지금이야 씁쓸하게 웃으면서 그 시절엔 그게 당연했다고 말하지만, 냉정하게 말해서 당연하지 않은 게 당연하다. 앞에서 예시로 든 〈프린세스 메이커〉 게임에 다시 대입해보자. 치솟는 피로와 스트레스 수치는 아랑곳하지 않고 휴식과 바캉스 없이 교육과 아르바이트로만 스케줄을 채우다 보면 딸이 어떻게 될까? 공주는커녕 아버지와 말도 섞지 않는 비뚤어진 성인으로 자라난다. 자, 이젠 이걸 ‘직장인 메이커’ 버전으로 바꿔보자. 20대는 물론이고 30대 중반까지 야근과 철야, 주말 근무를 일삼는다면, 그 직장인은 과연 어떻게 될까? 멀리 갈 것 없다. 바로 내 꼴이 된다. 78쪽
가끔 신용 불량자들, 즉 실력에 대한 신뢰나 증명 없이 업계에 남아 있는 사람들을 보며 ‘인맥’이란 단어를 부정적으로 여기는 주니어나 지망생이 있다. 그 연유는 충분히 이해한다. 다만 이것만은 명심했으면 한다. 신용 불량자는 절대 오래가지 못한다. 지금 당장은 오아시스 바닥에 남은 물을 핥으며 살아남아 있겠지만, 내가 열심히 커리어와 실력을 쌓는 동안 어느새 사라져버린다. 적어도 20년 동안 아등바등 버틴 내가 목격한 바에 따르면, 이 법칙에 예외는 없었다. 95쪽
직장인들이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말하는 격언 중, ‘회사 생활은 버티기 싸움(혹은 견디기 싸움)이다’라는 말이 있다. 나 역시 회사 생활을 20년 한 사람으로서 그 말에 크게 공감한다. 다만 그 말에 사족을 보태자면, ‘회사 생활은 버티기 싸움이다. 하지만 그냥 버티기만 하는 건 아무 의미가 없다. 버티려면 최선을 다해 버텨라. 최선을 다할 수 없다면 그럴 수 있는 곳으로 옮겨라. 최선을 다해 버티느냐 그냥 버티느냐에 따라 이후는 많이 달라진다’라고 하고 싶다. 160쪽
■ 차례
프롤로그: ‘몇 살까지’
1부 수습은 우리의 운명
들어가며: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손톱깎이의 교훈│저 사람이 대체 여기 왜 필요해요│벼락감투도 감당 가능│프락치│야반도주의 전문가│나가며: 둥둥 떠내려오는 적의 시체
2부 ‘자기 관리’에 눈살을 찌푸렸다면
들어가며: 프린세스 메이커│커리어 관리, 쫓느냐 쫓기느냐│핸드폰 게임이나 만드는 주제에│얼리 어답터│꼰대 디렉터인 내가 1위 웹소설 작가?│부업│몸값의 순리│당연해 보여도 당연하면 안 되는 것│앉아만 있어도 힘든 나이, 40대가 일한다는 것│나가며: 생명 연장은 꿈일 뿐
3부 오아시스를 찾아서
들어가며: 업계라는 사막의 신기루│입사하면 인맥 많이 만들어야지(1)│신용 점수가 높으면 어떻게든 구제되듯이│(서로) 재평가가 시급│꽃을 찾는 벌처럼│입사하면 인맥 많이 만들어야지(2)│놀이터의 사회성│업무 스킬 vs. 커뮤니케이션│리그 강등│너, 내 동료가 돼라│나가며: 사람 사세요, 싱싱한 사람 있습니다
4부 위치 선정
들어가며: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않는다│해병대로 간 상근 예비역│상근 예비역의 반전│해석과 대응│목장지기의 철칙│교통경찰│좋은 실력자 ≠ 좋은 리더│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그냥 버티는 것과 최선을 다해 버티는 것│나가며: 결벽증과 마이크로 매니징
에필로그: 행복 개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