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저편

―만년의 양식을 찾아서

김병익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4년 8월 29일 | ISBN 9788932043104

사양 양장 · 46판 128x188mm · 176쪽 | 가격 15,000원

분야 산문

책소개

우리 시대의 지성, 김병익
오늘을 사유하는 ‘탐독’과 어제를 기억하는 ‘기록’으로
새로움을 향한 소망과 기대를 말하다

정치학도에서 문화부 기자로, 문학비평가에서 출판 편집인으로 반세기를 뛰어넘는 시간 동안 책과 함께 살며, 시대에 대한 관용과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시대를 고민하고 성찰해온 김병익 선생이 2013년부터 《한겨레》에 연재해온 칼럼들 가운데 근래의 것을(2021~2024) 모아 『존재의 저편』(2024)을 펴냈다. 앞서 출간한 『시선의 저편』(2016) 『생각의 저편』(2021)에 이어 10년 넘게 이어온 기명 칼럼을 마무리하는 완결편인 셈이다. 이번 책 역시 만년의 여가로서의 책 읽기를 통한 오늘의 삶과 시대의 현실을 돌아보는 통찰을 담아내는 한편, 60년 가까이 취재와 저술, 발행 활동을 통해 4.19세대의 삶 그리고 한국 문단과 지성사를 자연스럽게 품은 글쓰기의 행보, 이를 다시 기억으로 술회하는 최근의 인터뷰 글들까지 한데 묶었다. ‘보기’(시선)와 ‘생각하기’(사유)를 거쳐 마침내 ‘있음’(존재)의 물음에 이르는 그 의식의 흐름은 “살아온 시대의 증인”(126쪽)으로서의 저자가 때마다의 현실에 최선을 다한 읽기-쓰기로 엮은 생의 기록이다. 동시에 미수(米壽)를 앞두고 “생애의 마지막 글모음”이란 저자의 담담하고도 서늘한 고백과 함께 묵직한 울림을 전한다.

“이 변화, 저 변모, 미처 떠올릴 수 없는 변혁들 앞에 서면 차라리 절망이 닥쳐온다. 그 절망 속에서, 그럼에도 정직하게 말해, 나는 이 시대 변화가 반갑다. 미래를 저어하면서도 거기에 기대를 거는 것, 암담을 예감하면서 낙관의 구실을 찾고 비관에서 소망을 일구고 두려움에서 요행을 얻어온 것이 인류사의 과정 아니던가. 정신없이 바쁜 세상에 낀 작은 틈에서 인간들은 얼핏 여유를 즐겨왔다. 나는, 지난 10년 동안, 거대한 문명사적 움직임에서 이 글쓰기로 내 조용한 틈을 찾는 것이다.” _「책머리에」에서


‘저편’을 헤아리는 언어를 벼리고
겹겹의 ‘사유’에 닿는 기억을 담금질하며
글로 엮어온 생-존재의 의미를 새기다

“말이 또 다른 하나의 생명체임을, 태어나 사라지고 바뀌는 그 생성과 변화가 곧 우리 삶의 구체적인 역사와 더불은 것임을 깨닫는다. […] 그 말들의 삶을 사전과 기록으로 충실하게 정리해두는 것 또한 우리 삶-살이의 사료가 될 것도 분명하다. 말들에 스민 말의 역사는 우리 삶의 가장 구체적인 체험 기록이 되리라.”(75쪽)

저자는 “늙고 낡은 정신에 다가오는 책들”을 그저 제멋대로 읽고 자유로운 잡문 쓰기로 이어갔다 겸허하게 말하지만, 책을 펼치면 “이편의 한계를 벗어나 ‘저편’의 의식을 열어보려”는 꾸준한 노력의 소산임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한평생 기자적 관점에서 “세상을 글로 개찰하며 사람과 삶, 세계와 세상의 움직임들에 말거리를 이어”(155쪽)온 그에게 “글쓰기는 사유”라는 삶의 태도는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특히 이청준의 ‘언어사회학 서설’ 연작 읽기와 가히 언어폭력의 난장이라 불러야 할 요즘 정치 현실의 교차를 필두로, 과거 검열과 금서의 시대를 지나 언론, 출판의 자유를 획득한 지금의 현저한 대비는 물론이요, 서술의 자유로움에 기댄 기사 문체의 힘과 매력들이 빛을 발하는 논픽션 저술에 대한 상찬과 어쩌면 인류문명의 획기적 변혁의 계기로 작용할 새로운 언어생성모델 챗GPT의 등장을 앞에 둔 당혹스러운 기대감까지, 평생 언어를 다듬고 글쓰기를 업으로 삼아온 이답게 인간의 존재론적 의미를 말과 언어-문자의 변화 양상에서 찾고 묻는다.
한편, 정명환, 서광선, 이어령, 김동길, 김지하, 방혜자, 조세희 선생 등 전쟁과 변란, 갈등과 혼란으로 암울했던 지난 시절, 팽만한 시대의 어둠을 걷고 우리들 지적 정서를 다듬는 일을 고민했던 ‘80대 정신들’의 잇달은 작고 소식은 그들을 존경해왔던 저자에게 적잖은 아득함과 허망함을 안긴다. 그러는 동안에도 저자는 책을 읽는 일상을 지속하면서 먼저 간 이들에 대한 회상의 무거움을 “그분들이 비운 자리에 새로운 세기의 새로운 정신들이 들어설 것”(93쪽)이란 희망으로 돌려 새긴다. 팔십 후반 속절없는 노쇠의 자리에서 “굳이 회오나 겸손을 새삼 끌어들일 필요 없이” 세월과 변화를 구경하며 “조용히 순명하는 것, 그 뜻과 형상을 이해 못 하는 대로 바라보고 눈으로나마 챙기는 것”에 충실하고 싶다는 저자의 진솔한 소망이 정일(靜逸)한 고독감과 함께 긴 여운을 남긴다.


[본문 속으로]

“존재의 아픈 본뜻이 살아나며 삶의 슬픈 진상이 위로받을 것이고 의식의 고픈 희망이 비칠 것이며 소망의 바랄 수 없는 진의가 다가오는 것이 아닐까. 나는 참으로 오랜 시간이 지난 이제야 진지해졌고 물러난 날들을 허물하지 않으며 후회할 수 있었다.” (49쪽)

“역사와 개인들의 삶의 실재가 보여주는 세상의 형상들, 그 말과 뜻들, 거기서 비롯된 따뜻한 인정과 밝은 미래가 여기서 바라보인다. 춥고 긴 겨울밤이기에 환한 새봄이 다가옴을 예감하는 시인 셸리처럼, 나이 하나 더 얹는 새날의 해갈음이 험상궂은 세상을 ‘살아볼 만한 삶’으로 받아들이도록 다독거려주리라. 이 내밀한 은유로의 스며듦이 바깥세상의 너절한 한 해를 보내는 내 가난한 기다림의 축복이라고, 나는 부드럽게 믿는다.”(87쪽)

“저자의 개념, 창작의 성격, 소득 배분 방법으로부터 글자의 형태, 책의 모양과 역할, 지식의 전달과 교육체계, 문화의 양식 등 ‘존재의 집’으로서 문자 세계는 의외의 방향으로 그 형태와 의미가 증폭되고 있다. 컴퓨터로 겨우 잡문이나 쓰는 내 한가로움 속에 문자 전달 방식의 변화를 지난 10년의 가장 큰 사태로 잡은 것은 그 때문이다.”(98~99쪽)

“점점 줄어드는 책읽기와 더욱 게을러지는 글쓰기, 그리고 이제 그 힘이 다 닳았음을 자각하게 되는 80대 후반에 이르러 나 자신의 생애를 새삼 돌아보게 된다. 그 반성은 부끄러움과 아쉬움만이 아니고 다행히 내 나이를 다독거리며 내가 살아온 시대의 증인으로 자부해도 좋겠다는 생각마저 드는 것이다.” (126쪽)

목차

[차례]
책머리에 7

Ⅰ. 탐독, 오늘을 사유하다
‘떠도는 말들’ 15
외디푸스 이야기 21
일본, 그 ‘반성 없음’의 구조 27
검열 빠져나가기 33
후석(後石)의 유묵 두 점 39
고향을 잃다 45
‘대한민국 대통령’ 되기 51
벌거벗은 임금님 57
기자들의 저술 63
말의 맛 69
예술가의 학위 75
세밑, 그 조용한 기다림 81
가고, 가면 또 오리니…… 87
이 바쁜 흐름 속의 작은 틈 93
늙은 어린이가 될 수 있다면 99
말하는 인공지능 앞에서 105
세속의 삶과 그 항의 111
노년의 책읽기 117
글과의 생애 엮기 123

Ⅱ. 기록, 어제를 기억하다
문재인 시대, 새 대통령에게 바란다 131
치수를 그리며―문학평론가 김치수 9주기에 부쳐 135
나의 현대사 보물: 『문학과지성』 창간호―이영관 기자의 인터뷰 139
나의 첫 책, 『한국 문단사』―유신 시대, 서러운 글쓰기 146
“난 하찮은 글쟁이……”―김성후 기자의 인터뷰 152

『존재의 저편』과 함께 읽은 책 174

작가 소개

김병익 지음

193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성장했고,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동아일보 문화부에서 기자 생활(1965~1975)을 했고, 한국기자협회장(1975)을 역임했으며, 계간 『문학과지성』 동인으로 참여했다. 문학과지성사를 창사(1975)하여 대표로 재직해오다 2000년에 퇴임한 후, 인하대 국문과 초빙교수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초대위원장(2005~2007)을 지냈다. 현재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으로 있다.

저서로는 『상황과 상상력』 『전망을 위한 성찰』 『열림과 일굼』 『숨은 진실과 문학』 『새로운 글쓰기와 문학의 진정성』 『21세기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래도 문학이 있어야 할 이유』 『기억의 타작』등의 비평집과, 『한국문단사』 『지식인됨의 괴로움』 『페루에는 페루 사람들이 산다』 『게으른 산책자의 변명』 등의 산문집, 그리고 『현대 프랑스 지성사』 『마르크시즘과 모더니즘』 등의 역서가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문화상, 팔봉비평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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