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살아 있다

―성민엽의 중국 시 이야기

성민엽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4년 8월 8일 | ISBN 9788932043067

사양 변형판 140x210 · 270쪽 | 가격 18,000원

책소개

읽고 쓰는 모두와 공명하며
생동하는 이야기로 거듭나는 중국 현대시

중국 현대시의 환한 길잡이
성민엽이 풀어내는 서른다섯 가지 시 이야기

서울대학교 중문과 명예교수이자 문학평론가 성민엽의 『시는 살아 있다―성민엽의 중국 시 이야기』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네이버 프리미엄 콘텐츠에 채널 〈성민엽의 문학 이야기〉를 개설하여 2021년 12월부터 꾸준히 다양한 중국의 현대시 작품을 소개하고 있는 저자는 해당 채널에 업로드한 글 중 서른다섯 편을 가려내고 다듬어 이번 책을 구성하였다.
성민엽은 198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평단에 등장한 이래 한국 문단의 비판적 성찰자 역할을 수행해온 문학평론가이고, 텍스트에 대한 깊은 이해와 존중을 토대로 한국 독자와 중국 문학 사이를 교량처럼 이어온 번역가이며, 중국 전반에 대한 너르고 방대한 지식과 특유의 통찰력을 바탕으로 학문적 지평을 넓혀온 중국 문학 연구자이다. 또한 이토록 다채로운 행보의 기저에는 문학이라는 영토에 단단히 발을 붙이고 선 적극적인 독자로서의 열정이 짙게 깔려 있다. 문학평론가, 번역가, 연구자 그리고 독자. 이 네 가지 층위의 시선으로 저자는 중국 현대시의 사면을 오롯하게 바라본다.
『시는 살아 있다―성민엽의 중국 시 이야기』는 ‘백화시(白話詩, 문어인 한문이 아니라 구어인 중국어로 쓴 시)’와 ‘신시(新詩, 구시 또는 구체시에 대응하는 개념으로 등장한 현대시)’를 발표하며 중국 현대시의 포문을 연 후스(胡適)부터 최근 중국 시단에서 주목받고 있는 독특한 개성의 위슈화(余秀華)에 이르기까지, 중국 현대 시인 스물네 명의 대표작들을 폭넓게 아우른다. 이때 저자는 특정 키워드를 중심으로 섣부른 해석을 내리는 대신 어법적 차원부터 밀도 높게 파악해나가며 작품을 음미한다. 운율은 물론 구두점, 띄어쓰기, 단어가 배치되는 위치까지 가능한 한 원문 그대로 재현해 우리말로 옮김으로써 번역과 해석이 단순하고 상투적인 수준에 그치지 않도록 텍스트의 미적 효과를 극대화하고, 다른 언어권의 작품에 대한 감상을 곁들이거나 함께 감상해봄 직한 시청각 자료를 QR 코드로 삽입하는 등 풍성한 독서 경험을 선사한다. 주관을 절제하고 텍스트에 집중하는 차근한 해석과 오류 가능성을 끊임없이 되돌아보는 부단한 성찰로 꾸려진 성민엽의 이야기 속에서 독자는 중국 현대시와의 공명을 시작한다.


충실하고 섬세한 감각과
마음을 연결하는 맞울림을 통과하며
시는 아름답게 살아 숨 쉰다

서문(「살아 있는 시, 살아나는 시」)에서 전공이 현대 중국 문학이기 때문에 중국의 현대시를 주로 다루게 되었을 뿐 시 자체를 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밝힌 저자답게, 성민엽은 『시는 살아 있다―성민엽의 중국 시 이야기』에서 각 작품을 찬찬하고 진득하게 읽어 내려가려는 태도를 견지한다. 통사 구조, 행과 연의 배치, 어휘와 음절의 뉘앙스, 반복과 변주의 리듬, 시적 장면의 구성 등을 꼼꼼하게 짚어나가며 시의 형태를 치밀하게 파악한 뒤 이를 바탕으로 시적 화자와 눈높이와 보폭을 맞추고 현실과 상상, 전통과 파격, 명료와 모호로 이루어진 시 세계를 둘러본다. 현학적인 해석과 거리를 두고 텍스트를 극진하게 살피려는 저자의 노력 덕에 독자는 낯선 외국의 문학이라는 장벽을 가뿐히 넘어 그 묘미에 한껏 빠지게 된다.
외재적 맥락에 지나치게 치우친 해석이 온전한 읽기가 될 수 없다면, 그러한 맥락을 아예 떼어놓는 해석 또한 온전한 읽기가 아닐 터. 저자는 내재적인 해석에 초점을 맞추되 필요에 따라 중국의 사회적‧문화적‧정치적‧역사적 배경이나 시인의 일화 등을 끌어와 적절히 시의 외연을 감싸기도 한다. 작품이 취하고 있는 형식과 그에 깃든 의미가 중국 문학의 거대한 흐름 속에서 어떤 위치에 놓일 수 있는지 점검해보고, 시인이 남긴 삶의 궤적을 톺아보며 작품마다 숨어 있는 비화를 들여다본다.
문학적 도전과 진실된 창작을 멈추지 않았던 20~21세기 중국 시인들의 시편들은, 또 그 시편들의 가치를 환하게 밝혀주는 성민엽의 시 이야기는 독자의 가슴에 공명을 일으켜 서로를 가까이 끌어당기고 마음과 마음을 이어준다. “평범한 사람의 마음에도 시가 없을 수 없으니, 시인이 시를 짓는 것과 다르지 않다. 시는 시인의 전유물이 아니다. 시를 읽고 마음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그 자신에게도 시인의 시가 있는 것이”(서문 「살아 있는 시, 살아나는 시」, p. 5)라는 루쉰(魯迅)의 말처럼, 독자는 두 겹의 맞울림을 거쳐 중국 현대시의 아름다운 숨결을 담뿍 느끼고, 그와 함께 호흡하며 자신만의 시를 품게 될 것이다.


■ 책 속으로

“인간 세상의 4월의 날”은 무슨 뜻일까요? “四月天”은 그냥 ‘4월’이라고 번역되기도 하고 ‘4월의 하늘’이라고 번역되기도 합니다만 ‘4월의 날’이 좋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4월의 날(혹은 날들)은 봄이고 만물의 소생이 이루어지는 시간입니다. 바로 그 소생의 시간이 인간 세상에서 구현된 것, 그것이 두 살 난 아이인 것이고, 그래서 “너는 인간 세상의 4월의 날이다”라는 기쁨에 찬 진술이 나오는 것입니다. [……]
다시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시가 처음부터 끝까지 동일한 의미의 반복으로 이루어졌음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너는 인간 세상의 4월의 날이다”라는 진술의 의미가 다양한 이미지를 통해 계속 되풀이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반복은 단순한 반복이 아닙니다. 끊임없는 변주를 통해 반복되기 때문에 반복이면서 동시에 반복이 아니기도 합니다. 비유가 변하고 구문이 변하고 리듬이 변합니다(1연 3행의 마지막 글자 “變”이 주목됩니다). 마치 음악의 변주곡 같습니다. 린후이인의 이러한 시에 감각의 변주곡이라는 이름을 붙여봅니다. 이 변주곡의 가장 큰 특징은 평범의 거부라고 생각합니다. 문화적이고 관습적인 것으로 그치기 쉬운 평범한 이미지들이 이 감각의 변주곡에서 참신한 것으로 변모합니다. (「감각의 변주곡」, pp. 90~91)

베이다오는 1998년 한 인터뷰에서 “나는 내 시의 정확한 의미를 모른다”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이 발언 중 ‘의미meaning’라는 말에 주목합니다. ‘겨울의 마음’ ‘광천수’ ‘환약’ ‘미친 듯이 짖는 기억’ ‘암시장에 출몰하는 무지개’, 이런 것들이 정확하게 무슨 ‘의미’인지를 모른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비행기 안에서 광천수와 환약을 먹고, 잠을 청하지만 온갖 기억이 떠오르고, 잠이 들면 무지개의 악몽을 꾸는 것은 시인의 ‘의도intention’에 속하는 것이어서 시인이 모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 ‘의미’에 대한 해석 이전에 ‘의도’에 대한 파악을 먼저 해야 합니다. 그런 뒤에야 비로소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자의적인 해석이 선행되어서 ‘의도’를 오해하는 결과가 되는 것은 좋지 않은 읽기입니다. (「지상이 떠오르는 순간」, p. 149)

1979년에 발표된 27세 여성 시인의 연애시 한 편이 중국의 여성을 바꾸었고 중국의 시를 바꾸었다고 한다면 과장일까요? 꼭 과장만은 아닙니다. 그 영향력은 굉장히 컸습니다. 그 시인의 이름은 수팅이고 시의 제목은 “상수리나무에게致橡樹”입니다. 이 시는 사랑법, 즉 사랑의 방법에 대해 당시로서는 매우 낯선 새로운 사유를 보여주었습니다. [……]
화자가 바라는 사랑법은 상대로부터 독립된 개별적 주체가 되어 두 주체 간의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상대가 나무로 설정되었으므로 화자도 나무가 되어야 합니다. 상대는 상수리나무, 화자는 목면나무입니다. 거리를 두고 따로따로 서 있는 두 나무가 땅 밑에서 뿌리끼리 만나고 공중에서 잎끼리 만나 둘만의 은밀한 교류를 하는 모습을 화자는 상상합니다. 바람이 불 때면 바람에 스친 잎새들이 소리를 내어 서로 인사를 합니다. 두 나무가 나누는 말은 아무도 알아듣지 못하는 그들만의 언어입니다. 이 교류가 사랑입니다. (「목면나무의 사랑법」, pp. 162~164)

목차

■ 차례

서문 | 살아 있는 시, 살아나는 시

현대시의 하늘로 날아오르다―후스(1)
사랑의 망설임에서 사랑의 기쁨으로―후스(2)
달을 삼키는 하늘의 개―궈모뤄
22세 청년이 쓴 중국 최초의 상징시―리진파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현대시―쉬즈모(1)
기억해도 좋고 잊으면 더욱 좋다―쉬즈모(2)
가슴속으로 녹아들고 입술 위에서 죽는다―쉬즈모(3)
추악의 미학인가, 추악의 멸망인가―원이둬
나를 스쳐 지나는 그녀는 누구인가―다이왕수
감각의 변주곡―린후이인
아폴리네르와 아이칭의 갈피리―아이칭(1)
눈 내리는 아침에 유년의 여름을 추억하는 마음―아이칭(2)
풍부와 풍부의 고통을 주시는 하느님―무단(1)
광야에 잔혹한 봄이 올 때―무단(2)
미래를 믿는 자의 새벽 바다―스즈
자유의 사수가 보내는 암호―베이다오(1)
현재를 믿지 않는 자의 밤하늘―베이다오(2)
지상이 떠오르는 순간―베이다오(3)
짧은 시가 길게 느껴질 때―구청
목면나무의 사랑법―수팅
암스테르담의 중국 시인과 물의 상상력―둬둬(1)
봄에 내 마음이 두려운 이유―둬둬(2)
아버지로서의 어머니와 딸―자이융밍(1)
출산의 장면인가, 출생의 장면인가―자이융밍(2)
나무, 혹은 물을 빨아들여 불로 태우는 등잔―천둥둥
거울 앞에는 아무도 없지만 거울 속에는 그녀가 있다―장짜오
행복의 노래인가, 작별의 인사인가―하이즈(1)
죽음과의 마지막 싸움―하이즈(2)
열쇠는 찾았지만 방은 비었다―어우양쟝허
한밤중의 고백―란란
빗속에서 우는 공중전화부스―탕리
공업적 사물에 대한 감각―정샤오츙
세상에서 가장 슬픈 시―쉬리즈(1)
21세기 중국의 광인일기―쉬리즈(2)
절반의 중국을 건너는 섹스―위슈화

작가 소개

성민엽 지음

1956년 경남 거창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중문과를 졸업하고 같은 과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2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평론 부문에 당선되어 비평 활동을 시작한 뒤, 무크 『우리 시대의 문학』과 계간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으로 활동했다. 저서로 『지성과 실천』 『고통의 언어 삶의 언어』 『문학의 빈곤』 『변하는 것과 변하지 않는 것』 등의 문학비평집과 『현대 중국문학의 이해』 『현대 중국의 리얼리즘 이론』 『무협소설의 문화적 의미』 『동아시아적 시각으로 보는 중국문학』 『한국무협소설의 작가와 작품』 『언어 너머의 문학』 등의 학술서가 있다. 그 밖에 『아Q정전』 『변신 인형』 등의 역서와 『민중문학론』 『오늘의 문제시인 시선』 『루쉰』 등의 편저가 있다. 한국중국현대문학학회장, 서울대학교 동아문화연구소장, 서울대학교 중국어문학연구소장 등을 역임했으며 소천비평문학상과 현대문학상, 팔봉비평문학상, 서울대학교 학술연구상을 수상했다. 현재 서울대학교 중문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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