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무서워해야 한다”
권력, 애정, 증오, 침묵, 연대, 학대의 공간…
‘집’이라는 네 벽 안에 둘러싸인 공포와 경이로움을 담은 13편의 증언
시인 김혜순, 예술사회학자 이라영 추천!
『뉴욕타임스』 2018년 올해의 소설 10권 선정
여성, 작가, 이민자라는 정체성을 바탕으로 라틴아메리카의 복잡한 현실을 열어젖히며,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폭력에 맞서는 언론인이자 소설가 마리아 페르난다 암푸에로(María Fernanda Ampuero(1976~ )의 첫 소설집 『투계Pelea de gallos』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작가는 “우리는 그동안 종교와 국가와 군대 등 다른 모든 제도에 대해서는 신성성을 벗겨내 왔으면서 왜 가족은 여전히 신성불가침한 개념인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 바 있다. 13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이 소설집에서 작가는 가족 안에 존재하는 은폐된 폭력을 보여준다. 그 은폐된 폭력은 아버지(남성)의 폭력이며 계급의 폭력이며 가부장적 사회의 폭력이다. ‘집’이라는 네 벽 안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감추고 아무 일도 없는 듯 살아가는 현실을 이 책은 일관되게 까발린다.
신성시되어 온 ‘가족’을 파헤치는 건 불편하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적 관념, 위선 속에서 상처받고 피해를 입는 것은 언제나 여성과 아이들 같은 약자이다. 일간지 『엘텔레그라포』는 이 책을 ‘가족과 연결된 공포와 폭력을 탐구하는 책’이자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마초적 욕망에 종속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처절한 탐구’라고 평했다. 이 책에 수록된 「수난」은 메리 셸리의 아이들상(2015)을, 「월남」은 코세차 에녜상(2016)을 받았고, 첫 소설집 『투계』(2018)는 출간되자마자 독자와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으며 호아킨 가예고스 라라상을 수상했다. 세계적으로 인정받으며 라틴아메리카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가 된 『투계』는 영어 · 이탈리아어 · 포르투갈어 · 그리스어 등 다수의 언어로 번역 출간되었다.
“네 딸은 괴물이야”
괴물이 되어야만 자신을 보호할 수 있는 끔찍한 현실
여성의 시선으로 뿌리 깊은 폭력과 불평등을 신랄하게 까발리는
라틴아메리카 문학의 새로운 중심, 암푸에로의 첫 소설집
맡아줄 곳이 없어 투계꾼 아버지를 따라 다니는「경매」의 어린 소녀는 내장이 터진 닭을 보고 구역질이 일지만, 잠든 자신의 교복 치마를 들추던 아저씨들이 “죽은 닭의 창자와 피와 닭똥을 보고는 구역질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된 후 자신을 그 “창자와 피와 똥으로 범벅”이 되게 함으로써 스스로를 지킨다. 이는 더러움으로만, 더 괴물이 되는 것으로만 여성이 자신을 지킬 수 있다는 끔찍한 현실을 드러낸다.
「새끼들」「수난」「상중喪中」「다른」의 아버지, 할아버지, 오빠, 남편은 가장이라는 이유로, 남성이라는 이유로 권력을 쥐고, 자신의 규율에 어긋났을 때 서슴없이 폭력을 쓴다. 그리고 그 폭력은 다음 세대에 대물림된다. 아버지가 사라진 후 오빠가 그 뒤를 잇고, 딸들은 그것에 순종하는 동시에 다른 약한 것들에게로 폭력이 이어지기도 한다. 그럼에도 「새끼들」의 주인공은 “남자들에게는 항상 네, 라고” 하는데, 그것은 그렇게 배웠기 때문이고 권력에 굴복한 것이다. “사랑의 가장 나쁜 형태”라면서도 아빠가 자신을 사랑해주기를 바랐듯, 주인공은 성인이 된 후에도 사랑을 갈구함으로써 그 권력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 “이 집 저 집에서 벽에 던져져 깨진 값싼 유리컵처럼 나도 그렇게 깨지곤” 하면서도 “남자들에게는 항상 네, 라고” 말하는 것이다.
“여자의 상처가 폭발할 때 비유는 필요 없다”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마초적 욕망에 종속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처절한 탐구. 용감한 책일 뿐 아니라 끔찍하게 가슴 아프다. 『엘텔레그라포』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욕망에 지배되고 사회에서 주어진 역할을 강요받는다. 「괴물」의 소녀가 황소라 불리며 “너는 어째 메르세데스처럼 얌전하고 상냥하고 고분고분하질 못하니”라는 타박을 받고, 「새끼들」의 화자가 “남자들에게는 항상 네,라고” 하듯이. 「상중喪中」은 이러한 여성상에서 벗어난 인물에게 가부장제가 어떤 폭력을 가할 수 있는지 가장 잘 보여준다. 무자비한 폭력은 제도적으로 자행되고 제도적으로 은폐된다. 어두컴컴한 축사에서 벌어진 그 모든 끔찍한 일은 마리아가 가부장제의 여성상에 반했기 때문에, 여성이 성적 쾌락을 탐했으므로 시작되었다. 가부장제가 행해온 뿌리 깊은 폭력과 여성 혐오 앞에서는 종교도 구원이 되지 않는다. “성인 중에서도 가장 성스러운 성인”도 말뿐인 위선자이며, “남자에 대한 존중이 그 집안에 대한 존중”이라며 이 사태를 방관한다. 그가 말하는 “믿음이란 단어는 이미 혀 속에서 똥 맛”이 날 뿐이다.
작가는 과감하게 성경 속 여성 막달라 마리아를 재해석하여 예수의 수난사를 다시 쓰기도 한다. 「수난」에서 “너”는 “고독 속에서 물과 돌과 모래를 지배하는 법”을 배운 마법의 힘을 가진 여성이다. 그런데 “아무도 너를 보려고 하지 않으니까” 모든 기적은 “너”에 의해 행해졌으나 모든 공은 “그”가 가져간다. 이는 가부장제의 역사에 대한 비유, 남성에 가려져 기록되지 않은, 능력이 있어도 아무도 보려고 하지 않아 기록되지 않은 여성의 역사에 대한 비유이다.
「다른」에서는 일상과 가정의 모든 것이 남성의 욕망으로 구성되어 있음을 “너”의 쇼핑 카트에 담긴 물건을 통해 보여준다. “너의 카트”에는 자신의 것이 아닌 욕망이 가득하다. 그러나 일상적으로 반복되어 온 “너의 선택”을 돌아보는 행위 자체로 다른 선택의 가능성이 열린다.
“이처럼 ‘반항적인 영혼’들의 목소리를 직조해내는
동시대 작가는 언제나 환영할 수밖에”
암푸에로의 소설은 으깨어지는 존재들의 지치지 않는 저항 행위를 보여주며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사라진 존재들에 대한 애도를 담았다. 13편의 이야기에 담긴 일상의 끔찍한 폭력, 빈곤, 이산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이라영(예술사회학자)
이 책은 인종과 사회적 계급에 따른 차별, 빈부 격차의 문제를 잘 보여준다. 열네 살의 가사노동자 나르시사는 몸집도 크지 않고 나이도 돌보는 아이들보다 고작 두 살 많은 것뿐인데 인생을 4백 번은 산 사람처럼 보인다.(「괴물」) 부자들은 웨이터들의 “갈색 피부가 자기들의 흰 식기에 닿는 게 싫어서” 흰 면장갑을 끼게 하며, 심지어 원래 이름은 “코로소”인데, 고용주가 멋대로 부르다 이름이 “코로”로 굳어지기도 한다. (「코로」) 학교도 못 가고 아픈 남동생을 돌보는 가난한 소녀는 단 한 번이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남동생을 돌볼지 않고 만화영화 한 편을 보고 싶어 “동생의 울음소리가 묻”히도록 더 크게 웃는다.(「그리스도」)
애정 어린 시선으로, 그러나 신랄하게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해체하는 암푸에로는 페이지마다 문화 ‧ 정치 ‧ 사회적인 요소들을 낟알 낟알로 떨구어 내면서, 현실을 생생히 그려낸다. 그러나 암푸에로의 주인공은 피해자로 남지만은 않는다. 스스로 괴물이 되어서라도 자신을 지키고, 압제자가 힘을 잃었을 때를 기다려 복수하거나, 저주 인형을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잊었던 자신의 욕망을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새로운 전환기를 열고, 그리고 많은 경우 꿋꿋이 생존함으로서…… 암푸에로의 주인공들은 살아 있다는 것이 의미하는 명백한 잔인성에 맞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투쟁한다.
이 책에서 이야기하는 문제들은 비단 라틴아메리카만의 문제는 아니다. 문제의 양상과 방식에는 차이가 있을지언정,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모두가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이것이 우리가 지구 반대편의 소설을 읽으면서 함께 분노하고 심장이 뛰는 이유일 것이며, 이러한 순간의 발견이 다른 문화를 만나는 이유일 것이다.
■ 책 속으로
어느 날 밤, 내가 수탉 한 마리를 인형처럼 두 팔로 안고 가던 중 닭의 배가 터져버렸는데, 그때 나는 그 아저씨들, 어찌나 마초인지 닭에게 상대 닭을 반으로 쪼개버리라고 소리 지르고 부추기던 그 아저씨들이 죽은 닭의 창자와 피와 닭똥을 보고는 구역질을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내 두 손과 무릎과 얼굴을 그 창자와 피와 똥으로 범벅이 되게 했고, 그랬더니 더 이상 키스나 멍청한 짓거리로 나를 엿 먹이지 않았다.
그들은 아빠에게 이렇게 말하곤 했다.
“네 딸은 괴물이야.” (「경매」 10~11쪽)
나르시사는 항상 이렇게 말했다. 죽은 것들보다 살아 있는 것들을 더 무서워해야 한다고. [……] 우리는 그런 멍청한 말이 어디 있나 하고 생각했다. 아니 어떻게 나르시사를, 예를 들어 「엑소시스트」의 소녀 리건보다, 우리 집 정원사 페페 아저씨를 살렘의 뱀파이어나 악마의 자식 데미안보다 더 무서워할 수 있을까. (「괴물」 26쪽)
그 아이와 있으면 나는 마치 집에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웃는다. 여느 아빠들같이 우리 아빠도 나를 사랑하는 것처럼. 나는 웃는다, 마치 내가 아닌 것처럼, 행복하게 잠이 드는 소녀인 것처럼. 나는 웃는다, 험한 일 같은 건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월남」 48쪽)
나도 역시 졸업했고 대학에 진학했고 또 학업을 마쳤고 나는 계속해서 남자들에게는 네,라고 말했고 이 집 저 집에서 벽에 던져져 깨진 값싼 유리컵처럼 나도 그렇게 깨지곤 했다. 다르게 말하자면, 성장했다. (「새끼들」 83쪽)
내게도 한 모금 마시라고 주었는데, 성스러운 맛이 나기는커녕 그냥 케첩 맛에 녹물 맛이 조금 나서 나는 그냥 케첩 물 아닌가, 월말이 되어 케첩이 거의 다 떨어졌을 때 얼마 남지 않은 케첩을 맨밥 위에 뿌려 먹던 그 맛 아닌가 하고 생각했다. 그런 게 기적일 수는 없었다. 기적이라면 밀크캐러멜 맛이 나거나 더블버거 맛이 나야 했다. 가난의 맛이 아니라. (「그리스도」 107쪽)
사람 사는 게 다 그렇지 뭐. 안 그래? 사람들을 겉모습만 보고는 그들의 집 문 안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는 없는 법이니까. (「알리」 162쪽)
그녀들은 자기 자신은 보지 못하는데, 만약 볼 수 있다면, 만약 실제로 육신에서 빠져나와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 가능한 일이라면, 새하얀 소파에 앉아 호화로운 물건들에 둘러싸인 채 슈퍼마켓에서 만나면 애정을 담아 인사를 건네곤 하는 여자를, 남편의 가장 친한 친구를, 남자애처럼 행동하지 않는다는 자기 자식들의 반 친구를 그렇게 뜯어 먹는 모습을 보고는 분명 혀를 자르게 될지 모른다, 아니 반드시 잘라야 할 것이고 그렇게 자르고 나서는 자른 혀를 카카오 말리듯 잘 말려 목에 걸고 다녀야 할 것이다. 썩어빠진 스스로의 모습을 기억하게 하는 목걸이 장식. 하지만 모든 건 전과 다름이 없다. 사람들은 자신을 볼 수 있는 능력이 없고 바로 그것이 모든 공포의 근원이다. (「코로」 172쪽)
■ 추천의 말
현실이 소설보다 더하다고 하지만 이 소설은 현실보다 더하다. 전쟁보다 더하고, 돼지우리보다 더하고, 범죄 현장보다 더하고, 배가 갈라진 닭보다 더하다. 여자의 상처가 폭발할 때 비유는 필요 없다. 삶의 내용들이 압도해 올 때 문학 교실도 필요 없다. 우리가 산다는 건 폭력의 구조 안에 있다는 것, 누군가의 죽음을 깔고 앉아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상처의 정체성 외에는 가진 것이 없다는 것, 서로가 서로에게 괴물이라는 것. 산다는 건 살아남은 것이라는 것. 김혜순(시인)
암푸에로의 소설은 으깨어지는 존재들의 지치지 않는 저항 행위를 보여주며 누구의 관심도 받지 못하고 사라진 존재들에 대한 애도를 담았다. 13편의 이야기에 담긴 일상의 끔찍한 폭력, 빈곤, 이산은 특정 지역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가 직시해야 할 현실이다. 피투성이 폭력의 한가운데에서도 지독하고 끈질기게 삶을 붙들고 어떻게든 살아내는 소설속 인물들은 실제로 이 세계를 견디는 수많은 ‘약한’ 사람들이다. 이처럼 “반항적인 영혼”들의 목소리를 직조해내는 동시대 작가는 언제나 환영할 수 밖에. 이라영(예술사회학자)
■ 이 책에 쏟아진 찬사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어떤 방식으로든 마초적 욕망에 종속된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처절한 탐구. 용감한 책일 뿐 아니라 끔찍하게 가슴 아프다. 『엘텔레그라포』
자본주의와 가부장제의 폭력 앞에서 눈감지 않는 독자에게 윤리적인 대답을 이끌어낸다. 『엘파이스』
적확하고 시적인 언어, 상징적인 힘과 긴장감이 넘친다. 『뉴욕타임스』
매서운 신경과 귀로 단순한 아름다움과 구체적인 언어를 구현하는 작가다. 단어 하나도 어색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커커스 리뷰』
그로테스크하고, 대담하다. 『퍼블리셔스 위클리』
잔인하고 독특한 새로운 목소리를 전하는 이 책은 가정 안에서 이루어지는 창조와 파괴의 힘을 탐구한다. 『인디펜던트 북리뷰』
남성의 시선을 걷어내어 추하고 그로테스크하며 잔인한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클리버매거진』
착취적인 권력에 맞서 정의로운 곤봉을 휘두르는 듯하다. […] 솔직히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필요한 작가이다. 번역예술센터
암푸에로의 문학적 목소리는 강인하면서도 아름답다. 그녀의 이야기는 소중하면서도 위험한 대상이다. 유리 에레라(정치학자, 작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미국 전체가 상대해야 할 막강한 힘을 지닌 작가다. 에르네스토 퀴노네스(작가)
■ 차례
경매
괴물
그리셀다
월남
새끼들
블라인드
그리스도
수난
상중喪中
알리
코로
염소Cl
다른
옮긴이의 말 · 네 벽 안의 괴물 — 은폐된 폭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