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프카의 적법 상속자는 누구인가를 두고 벌어진 세기의 재판
▶“내 마지막 부탁입니다. 내가 남기고 가는 것 중에 […] 공책과 원고와 편지, 그리고 스케치 등등은, 읽지 말고 남김없이 불태워주기 바랍니다.”
브로트가 지키지 못한 약속에서 시작돼 카프카 사후 수십 년이 지나 제기된 소송!
▶“이런 소송에 휘말렸다는 것은 이미 패소했다는 뜻이다”_카프카의 『소송』에서
프란츠 카프카 타계 100주기
카프카적인, 그야말로 카프카적인 원고 반환 소송의 전모
2024년 6월, 카프카 타계 100주기를 맞이하여 카프카의 작품들과 해설서들이 줄지어 출간 및 재출간되며 작은 소동을 일으키고 있다. 20세기를 대표하는 천재 작가, 현대인의 불안과 소외, 무력함을 포착해내며 이름 자체가 형용사가 된 불멸의 작가 카프카. 잘 알려져 있듯이 카프카는 죽기 전에 자신이 쓴 글들을 불태워달라고 부탁했지만, 일찍이 친구의 남다른 천재성을 알아보고 문학 매니저를 자처했던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의 뜻과 정반대로 미완성 원고였던 『성』 『소송』 『아메리카』를 비롯해 일기와 편지, 그리고 전기까지 편집, 출간하며 카프카 정전화 작업에 여생을 바치게 된다. 브로트가 약속을 어기고 정신적 유산을 세상에 널리 알리기로 선택한 덕분에 카프카는 사후 명성을 획득했고 우리는 그의 문학 세계를 접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그 불태워지지 않은 원고들, 카프카 사후에도 살아남아 생명을 이어가게 된 종잇장들은 어떻게 됐을까? 카프카 타계 100주기를 맞이하여 출간된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바로 그 카프카 유고의 운명을 추적한 책이다. 2007년, 이스라엘에서는 카프카와 브로트의 유고 소유권을 다투는 소송이 제기된다. 카프카가 사망한 지 80여 년, 브로트가 사망한 지 40여 년이 흐른 시점이었다. 미국-이스라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베냐민 발린트는 2016년 대법원 판결이 나기까지 관련 인물들의 인터뷰와 자료 조사를 토대로 재판 과정을 기술하고, 국제적 분쟁으로 비화한 소송의 첨예한 이슈들을 성찰한다. 동시에 카프카의 생애 국면들을 옴니버스 형식으로 교차 배치함으로써 이 커다란 이야기의 퍼즐을 보다 입체적으로 완성해나간다.
일종의 법정 드라마, 한 편의 다큐멘터리 영화를 방불케 하는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카프카와 브로트의 삶과 우정, 내면세계를 깊이 들여다보면서 카프카에 대한 새로운 이해 방식을 선사하는 한편, 두 작가의 문필 유산을 손에 쥐게 된 개인 에바 호페가 이 소송으로 인해 어떤 곡절을 겪게 되었는지 들려준다. 그 이야기에는 홀로코스트의 여파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으며, 신앙과 역사, 개인과 국가 권력 등에 관한 고찰이 포함되어 있다. 이 책은 독일, 프랑스, 스페인, 러시아, 폴란드, 브라질 등 12개국에서 번역 출간되며 호평을 받았고, 2019년 『이코노미스트』지 선정 올해의 책에 올랐으며, 2020년 사미 로어 유대 문학상을 받았다.
호페는 어떻게 카프카 유고의 문지기가 되었나?
카프카의 마지막과 그 후, 끝에서 시작된 이야기
2007년 이스라엘 당국은 텔아비브에 사는 에바 호페라는 73세 여성에게 카프카와 브로트의 원고를 반환하라는 소송을 제기한다. 생전에 카프카와 한 번도 만난 적이 없었고 혈연관계도 아니었던 호페는 어떻게 해서 카프카 원고를 점유하게 되었을까? 또 프라하에 살았던 독일어권 유대인 작가 카프카의 유고에 대해 이스라엘이 권리 주장을 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이 문화 전쟁에 독일이 참전한 계기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소송의 쟁점은 무엇이며, 어떤 결과를 맞이했나? 이 책은 한 개인과 두 국가 간에 벌어진 치열한 법정 다툼을 따라가며 각각의 주장과 이해관계를 탐독하고 판사들의 판결문과 그 의미를 독해한다. 저자인 베냐민 발린트는 표면적 사건들을 잘 정리해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속에 자리한 복잡하고 심오한 층위에 대해 독자들로 하여금 고심해보도록 유도한다.
카프카의 사후생死後生은 그 자체로 카프카적인 이야기로 점철된다. 1939년 3월, 나치가 유럽의 문을 폐쇄하기 직전, 브로트는 카프카 원고가 담긴 트렁크 가방을 품에 안고 아슬아슬하게 프라하를 탈출한다. 텔아비브에 정착한 그는 방대한 원고 편집 작업을 위해 마찬가지로 프라하 난민 출신인 에스테르 호페를 비서로 고용한다. 막스 브로트는 1968년 세상을 떠나는데, 자식이 없었던 그는 전 재산을 친밀한 사이였던 비서에게 남긴다. 브로트가 사망하자, 에스테르 호페는 카프카 원고를 일부 매각하며 삶을 영위한다. 가장 유명한 예로, 1988년 『소송』의 원본 원고를 경매에 내놓았는데, 이것이 200만 달러에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에 낙찰되었다. 지금껏 매각된 현대 문학 원고를 통틀어 가장 높은 가격이었다고 한다. 2007년 에스테르 호페가 100세가 넘은 나이에 사망하자, 두 딸(에바 호페와 그녀의 언니 루트)이 상속 절차를 밟으려 하고, 이때 이스라엘 국립도서관 측이 등장해 그 딸들에게는 상속받을 자격이 없다고 주장한다. 그렇게 하여 소송은 텔아비브 가정법원(2007~2012년)에서 시작되어 지방법원(2012~2015년)을 거쳐 2016년 이스라엘 대법원에 이르기까지, 법적, 윤리적, 정치적 딜레마로 가득한 법적 분쟁으로 치달았다. 카프카의 『소송』 현실판인 듯, 에바 호페는 이길 수도 빠져나올 수도 없는 소송에 휘말려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하지만 좌절과 소외감 속에서 에바는 끝까지 싸우기로 하고 마지막 항소를 제기하는데, 흥미롭게도 저자는 바로 그 장면을 이 책의 시작점에 놓는다. 베냐민 발린트는 날카롭고 탁월한 통찰력과 묘사 능력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문학과 국가주의에 이르는 다양한 주제를 능수능란하게 다루고 있다.
독일 vs 이스라엘 vs 에바 호페의 쟁점:
카프카는 누구인가, 그리고 누구의 것인가
9년에 걸친 소송은 개인의 소유권과 두 나라의 국익이 맞대결하는 형태였으며 전문 법 영역에서 문학적 차원과 민족주의 레토릭까지 다양한 영역의 언어를 오가며 이루어졌다. 우선 에바 호페의 입장. 에바에게 브로트는 아버지 같은 존재였고 상속받은 원고는 브로트와 에스테르, 그리고 에스테르와 에바가 연결되어 있음을 증명하는 밧줄이나 다름없었다. 평생을 독신으로 엄마와 고양이들과 함께 살았던 에바에게 원고 소유권을 잃는다는 것은 그 모든 연결을, 자신의 삶을 부정당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고, 그 원고들이 에바의 것인 이유는 단순명료하게 바로 그들로부터 ‘상속’받은 것이기 때문이었다. 국가적으로 가치 있고 역사적인 문화 유산이라는 이유로, 개인의 소유물을 국유화할 수 있는가? 더욱이 1974년 에스테르 호페의 권리를 인정한 판결이 이미 내려져 있었으므로 이를 뒤집으려는 이스라엘 측의 시도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이었다.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의 입장은, 브로트가 에스테르 호페에게 본인의 유산을 상속한 것은 증여가 아니라 신탁이었다고 강조한다. 즉 본인 유산을 어떤 조건으로 어떤 기관에 넘길지 선택할 권한은 주었지만 그 결정을 그녀의 딸들에게 물려줄 권한까지 준 것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나아가 카프카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모두 나치에 의해 살해당했는데, 카프카 문서가 독일 소관이라는 것은 터무니없다고 주장했다. 카프카가 명시적으로 시온주의를 지지하지 않았다 해도 그의 문학 유산은 유대인 학살을 자행한 독일의 자산이 될 수 없으며 유대 민족의 문화재로서 유대국에 의해 소유되어 마땅하다는 주장이었다.
독일 마르바흐 아카이브는 브로트가 1960년대에 마르바흐를 방문해 본인의 유산을 그곳에 두고 싶다는 뜻을 분명하게 밝힌 적도 있다고 하면서, 이스라엘 정부가 소송을 제기한 이유는 사유재산 압수를 위한 구실에 불과하다고 주장했다. 카프카와 브로트의 우정으로 시작된 일이 브로트의 재산이 되었고, 이어서 호페 가족의 가산이 되었고, 이제는 아예 국유재산이 될 참이라는 것이었다. 독일 측은 카프카 문학을 연구할 전문인력과 자원이 풍부하며 이미 세계적 규모의 저명 작가 컬렉션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카프카 유산을 소장품 목록에 추가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독일은 소송 내내 철저하게 중립적인, 자국의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옵저버처럼 보이기 위해 공을 들였다.
이처럼 이스라엘과 독일 측의 논쟁에서 두 국가가 과거를 대하는 방식의 차이가 선명하게 드러났다. 독자들은 중첩된 의미망들을 통과하여 카프카를 새로운 시각에서 독해해볼 수 있을 것이며, 나아가 책에 나오는 이스라엘 건국 초창기의 전망에 비추어 현시대 이스라엘의 국제정책을 비판적으로 고찰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홀로코스트의 자장 안에 놓인 장대한 소송 과정과 그에 얽힌 개인과 국가들의
이해관계를 탐독하고 문학 유산의 진정한 소유권에 관해 묻다
최종 판결이 나오고 원고 인도가 진행되던 2018년 에바는 암 진단을 받은 뒤 종양 제거 수술을 받았고, 수술에서 회복되던 중에 넘어져서 고관절이 골절되는 부상을 당했다. 삶의 의지를 잃고 식음을 전폐했던 에바 호페는 2018년 8월 4일, 향년 84세로 세상을 떠났다. 베냐민 발린트는 에바의 삶을 동정적으로 바라보는 동시에 카프카 원고의 운명을 결정지은 이스라엘 법정의 논쟁적인 재판 과정과 그와 관련된 주요 인물들의 삶 속으로 우리를 인도하며 문학과 종교, 국가주의, 홀로코스트에까지 걸쳐 있는 중대한 질문들을 제기한다. “이스라엘 판사들을 카프카 독법을 지키는 문지기들의 최신 버전으로 보는 것이 가능하다면, 그들의 판결을 또 하나의 흥미로운 독법 또는 오독법으로 읽는 것도 가능할 것”이라고 저자는 평한다.
일정한 거처에 속하기를 거부하는 데 몰두했던 작가를 소유하기 위해 각축을 벌였다는 것도 이 소송의 수많은 아이러니 중 하나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이 소송 이야기는 카프카의 많은 소설과 마찬가지로 아직 완성되지 않았고 끝내 완성될 수 없을 것이다.” 독일어로 소송을 가리키는 ‘Prozess’가 아직 진행 중인 무언가를 뜻하는 것처럼, “판사들은 최종 판결을 내렸을지 몰라도, 카프카가 남긴 유산을 둘러싼 상징적 소송은 아직 진행 중이다.”
■ 추천사
카프카의 적법한 소유권자를 찾기 위한 발린트의 노련한 추적은 이스라엘 가정법원의 미미한 분쟁에서 시작되어, 곧 격렬한 논쟁을 불러일으킨 현대의 문화적 수수께끼로 번져간다. _신시아 오직(소설가)
논픽션 작품이지만 거의 소설처럼 읽힌다. […]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청년의 깊은 우정과 한 사람의 이른 죽음으로 인해 남겨진 한 사람이 친구의 기억을 지키는 수호자가 되는 과정을 흥미진진하게 그려낸다. _루비 남다르(소설가)
법정 장면과 카프카의 전기 및 문화적 사후생의 에피소드를 우아하게 교차시킨다. […] 면밀하고 냉소적인 발린트의 문장들은 카프카를 사랑하게 만드는 동시에 법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게 만든다. _『이코노미스트』
사려 깊고 도발적이다. […] 문학의 소유권, 홀로코스트의 지난한 여파에 관해서, 그리고 유대인이었던 독일 작가 또는 독일어로 글을 쓴 유대 작가였던 카프카를 이해하는 방법에 관해 광범위하고 실존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_루스 프랭클린, 『월스트리트 저널』
『카프카의 마지막 소송』은 첫손가락에 드는 완벽한 법적·철학적 블랙코미디다. 모든 훌륭한 모험 서사가 그렇듯이 여기에는 취득할 수도 상실할 수도 있는 실제 보물이 등장한다. “진정성”과 “소유권”에 대한 우리 시대의 집착이 얼마나 부조리한지에 관해 깊이 있고도 재미있는 관점을 선사한다. _제임스 호스, 『스펙테이터』
프란츠 카프카, 막스 브로트, 그리고 추방과 망명의 곡절에 관한 매혹적이고 매력적인 책. _옌스 크루제(웰즐리 칼리지 명예교수)
흥미진진하고 심오한 이 책은 20세기 최고의 작가와 그의 작품의 운명뿐 아니라, 예술을 소유할 또는 관리할 권한이 누구에게 있는가에 관한 더 큰 질문을 새롭게 조명해본다. _니콜 크라우스(소설가)
프란츠 카프카의 문학적 유물을 둘러싼 오랜 법정 싸움을 설득력 있고 통찰력 있게 설명해나간다. 풍부한 법정 드라마의 흥미로움을 유지한 채로 우리 시대의 가장 어려운 윤리적 문제를 탐구한다. _조지 프로흐니크, 『하아레츠』
두 명의 골리앗과 한 명의 80대 다윗이 대결하는 이야기. 까다롭고 복잡하게 얽힌 이야기의 세부를 파헤쳐나간다. […]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뿐만 아니라 어떻게, 왜 일어났는지를 향한 숙련된 줄타기 곡예를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필독서. _레베카 슈만, 『슬레이트』
문학적 성자를 소유하기 위해 과거에 집착하는 두 국가의 문화적 투쟁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그 성자 자체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다. _존 월시, 『선데이 타임스』
■ 책 속으로
브로트는 카프카의 글을 읽으면서 무슨 생각을 했을까? 자기가 그 글의 저자였으면 좋았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을까? 브로트는 다작의 작가였음에도 스스로에 대한 의심, 취향과 안목이라는 재능은 있지만 진짜 독창적인 예술작품을 창조할 능력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고 있었다. 브로트는 카프카의 천재성에 의지하는 관객, 자기의 바깥에 있는 무언가에 의지한다는 의미에서의 관객이었다. 예술가가 아닌 사람들은 자기가 진짜로 소유할 수 없는 예술을 물질적으로 소유하려고 애쓰는 것 같기도 하다. 뒤에서 더 보겠지만, 브로트는 카프카가 손댄 모든 것을 강박적으로 모아들였다. 반면에 카프카는 모든 것을 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고 있었다. (2. 「“광신적 숭배”」, 42~43쪽)
카프카 본인은 인간이 해충처럼 제거되는 것을 보기 전에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헬레르는 만약 카프카가 1924년에 그렇게 세상을 떠나는 대신 50대 후반까지 살아 있었다면 유대인으로서 독일에 살해당했으리라고 주장했다. 독일은 제노사이드 범죄자들의 나라, 인간이 인간에게 저지르는 비인도적 만행이 전례 없는 무의식적 형태를 띠게 한 나라인데, 카프카 문서가 독일의 “소유물”이라니 터무니없는 말이지 않은가 하는 것이 헬레르의 결론이었다. 카프카가 독일어로 글을 썼을지라도 그의 사망 이후 독일어는 유대인 학살을 조직한 자들의 언어, 타락한 수용소 언어가 되었다는 것이었다. 쇼아가 “먹구름처럼 법정에 드리웠다”라고 에스테르 호페 유산 담당 국선 변호인 슈물리크 카수토가 말했다. (5. 「1차 판결과 2차 판결」, 116쪽)
프라하에서 숄렘은 테레지엔슈타트에서 옮겨 온 3만여 권의 목록을 꼼꼼히 살폈다. 1946년 7~8월에 오펜바흐 서고를 시찰하면서, 그는 자기가 구조한 것들을 라벨이 안 붙은 궤짝 속에 집어넣고 송장에 가짜 이름을 기입한 뒤 그 궤짝들을 밀반출하기 위해 미국 유대인 군인 한 명과 공모했다. 그렇게 오펜바흐를 떠난 노아의 방주는 일단 파리로 갔다가 결국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연합군 측이 공식적으로 외교적 차원의 소를 제기했음에도, 오펜바흐 도서는 지금까지 이스라엘 국립도서관에 머물고 있다. 그것들이 구조되어 살아남아 있다는 사실이 말살된 것들의 존재를 더욱 생생하게 만들었다. (7. 「마지막 집합」, 153쪽)
그렇다면 왜 카프카는 자기의 마지막 부탁을 하필 브로트에게 들어달라고 했을까? 자신의 미완성 작품이 저자인 본인 허락 없이 출간되기를 바라서였을 가능성도 있다. 아니면 자기가 불태워 없애고 싶어 하는 문서들에 접근할 권한을 가진 사람이 브로트밖에 없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을 가능성도 있다. […] 결국 브로트는 유고 처형자라는 주어진 역할을 따르기보다는 유고 관리자라는 역할을 스스로 떠맡는 편을 선호했다. 그는 카프카의 명시적 지시를 어기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의 지시를 지키는 것보다 중요한 이중적 의리─후대 독자들에 대한 의리와 카프카의 진정한 유지遺志에 대한 의리─에 호소했다. (8. 「카프카의 마지막 부탁, 브로트의 첫번째 배신」, 186~87쪽)
독일문학 아카이브는 카프카의 유고를 손에 넣을 희박한 가능성을 위해 법정에서 8년 동안이나 싸움을 이어나갔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자국의 억압된 과거를 극복하고자 하는 독일의 기획에 카프카가 등장하는 방식들이 그것과 관련이 있을까? “한 나라가 자국 문학을 통해 얻게 되는 긍지”가 있음을 카프카도 인정했다. 국립이라는 이름이 붙은 도서관은 마르바흐에 있는 것이든 예루살렘에 있는 것이든 다른 어느 곳에 있는 것이든, 중립적 판단이나 자의적 선택의 결과들이 보관되어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곳은 한 나라의 기억을 기리는, 그리고 그 기억이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기리는 성지다. (11. 「마지막 곡예사」, 227~28쪽)
1969년 4월 22일, 텔아비브 지방법원은 브로트의 유언을 검인하고 에스테르 호페를 유언 집행자로 선임했다. 브로트가 프라하에서 구출해 온 원고들이 이제 그녀에게 맡겨졌다. 일부는 그녀가 딸 에바와 함께 사는 스피노자 길에 위치한 그녀의 자택에 보관되었고, 일부는 열 개의 은행 금고에 보관되었다. 텔아비브 은행에 여섯 개, 스위스 취리히 ‘UBS 은행’에 네 개였다. 카프카는 언젠가 스스로를 가리켜 “이상한 열쇠와 함께 자기 안에 잠겨 있는” 사람이라고 했는데, 브로트 덕분에 에스테르 호페는 (축자적인 의미로도, 비유적인 의미로도) 그 사람이 남긴 유산의 일부를 여는 열쇠를 가진 사람이 되었다. (13. 「브로트의 마지막 사랑」, 283쪽)
독일의 저명한 카프카 전문가 클라우스 바겐바흐도 같은 이유에서 혼비백산했다. 경매에 내놓다니, 『소송』을 또 한 번 금고에 감추어두려고 하는 개인 수집가한테 팔렸으면 어쩔 뻔했냐는 것이었다. “막스 브로트는 카프카 원고를 나치의 손아귀에서 구해내려고 목숨까지 걸었는데, 에스테르 호페가 이제 그걸 그렇게 팔아먹다니. 문학적 의무를 그렇게까지 무시하다니.” 에바 호페는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게 소더비스에서 팔리고 나서, 다들 엄마에게 엄청나게 화를 냈어. 새벽 두 시에 계속 협박 전화가 와서 엄마가 얼마나 시달렸나 몰라.” (14. 「마지막 상속녀」, 290쪽)
■ 차례
1 마지막 항소
2 “광신적 숭배”: 카프카의 첫 독자
3 최초의 소송
4 약속의 땅에 추파를
5 1차 판결과 2차 판결
6 디아스포라의 막내아들: 카프카, 유대인의 사후생을 살다
7 마지막 집합: 이스라엘의 카프카
8 카프카의 마지막 부탁, 브로트의 첫번째 배신
9 카프카의 창조주
10 마지막 기차: 프라하에서 팔레스타인까지
11 마지막 곡예사: 카프카, 독일에 가다
12 로럴과 하디
13 브로트의 마지막 사랑
14 마지막 상속녀: 카프카를 팔다
15 최종 판결
에필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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