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과사회 하이픈: 장르화-코드화(본문 발췌)
「마주침의 장소에 대한 회고―필굿 소설이 그리는 안전한 세계의 위험성」 _소유정
갈등을 경험하지 않은 낙관은 거짓에 가깝다. 낙관은 미래의 시간을 기반으로 발생한다. 예측할 수 없는 시간 속에서 건져 올려보는 희망은 다양한 갈래의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하지만 어떠한 변수도 허용되지 않는—무엇보다 그 미래가 궁금하지 않은—소설의 낙관은 오히려 너무나 안전한 결말이기에 독자의 해석으로 개척되는 활로를 지운다. 문학에서 그리는 낙관은 “알면서도 나아가는 것” (『마은의가게』, p. 265)이어야 한다. 마주침의 장소와 그곳에서 만나는 인물, 그들의 이야기 역시 그래야 할 것이다. (p. 18)
「매가장 음험한 가장―코드의 언어 경제로 보는 시와 소설 그리고 비평의 매트릭스」 _전승민
‘새로움’의 기표 앞에서 비평은 우선 기뻐할 수밖에 없지만 그러한 즐거움의 도취가 작품의 외양, 형식으로부터 기인하는 캠프적인 미학에 비평이 함몰되도록 내버려두어선 안 된다. 코드의 언어 경제학적 접근은 그러한 형식 이면의 욕망을 폭로하며, 비평은 작품의 형식이 품고 있는 욕망과 사회·문화적 맥락을 입체적으로 읽어내야 한다. (p. 48)
「장르적인 것으로부터 사회적인 것을 구해내기-장르물의 체제 종속성과 자율성에 대하여」 _이은지
누구나 친숙하게 소비할 수 있게 하는대중문화의 계급 초월적 보편성은 한계일 수도 있고 가능성일 수도 있다. 한편으로 대중문화의 낮은 진입 장벽은 양적인 유입에 기반한 질적인 상향, 즉양질 전환을 통해 그것의 소비가 고급문화를 향유하는 것에 못지않다는 집단적 환상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에서 기만적인 측면을 분명 갖고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누구나 소비할 수 있기 위해, 즉 환금성을 극대화하기 위해 대중문화의 상품이 자신의 서사 체계를 끊임없이 세부적으로 재조정하는 과정에서 계급과 무관한 혹은 계급을 모두 아우르는 감상 포인트를 발견해낸다는 점에서 이데올로기를 초월하는 진리의 측면 또한 갖는다. (p. 65)
「‘장르문학’이라는 독법」 _이융희
전통적인 서사학narratologie 또는 이러한 개념을 조금 더 완화한 표현으로 기술한 서사 이론은 ‘시간성’을 바탕으로 한다. ‘무엇’이 ‘어떻게’ 변화하는지 이끌어내는 동사를 주목하고, 변화의 과정을 시간이라는 기호로 추출한다. 그러나 이미 해체된 상태의 텍스트 시간은 동결되었으며 그 안에서 서사적 주체는 어떤 변화도 보이지 않는다. 최근 유행하는 ‘회귀’ ‘빙의’ ‘환생’ 등의 형식들은 사건이 발생하는 순간 미래가 과거로 박제되고, 그 속에서 선형적 시간을 벗어난 주인공이 신적 능력을 가진 뒤 예비된—그러면서도 지연된—성공을 향해 n으로 나눠진 사건을 그저 경험할 뿐인 것은 시사적이다. 변화하는 것은 텍스트 내부의 인물이 아니라 바깥의 수용자뿐이다. (pp. 79~80)
「사랑은 망한다―장르의 잔여, 붙잡을 수 없는 욕망」 _안희제
장르는 욕망의 일부를 붙잡아서 만들어낸 대상이고, 욕망이 모여서 일정한 형태를 이루는 매혹의 장소이고, 욕망이 더 충족되지 못하는 한계에서 아직 알지 못하는 더 많은 걸 욕망하게 만드는 좌절의 장소이다. 장르를 통해 우리는 인식하고 설명하는 것 이상의 무언가를 느끼기 시작한다. 장르의 안팎에서 욕망은 들끓고 흘러넘친다. 장르는 욕망을 구획하고, 욕망에 형태를 부여하는 동시에, 그 틀에 들어맞지 않는 욕망에 대한 감각까지도 남긴다. 그렇게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장르는, 결국 충족되지 않는 욕망의 잔여로, 좌절로 우리를 이끈다. 사랑하지 않는 장르에 좌절할 이유는 없고, 사랑하는 장르에 좌절하지 않을 일도 없다. 그리고 우리는 어설프게도 그 좌절까지 사랑이라고 뭉뚱그려 부르곤 한다. (pp. 94~95)
「우리의 포스트-록을 이해하길 멈출 때」 _나원영
대중음악의 애호에 있어, 창작 및 청취 양방향에서 우리를 끊임없이 곤혹스럽게 하는 장르의 문제는 대부분 그 안팎을 둘러싼 명명과 정의, 그리고 분류상의 차이에서 발생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애호가들이 현대의 번성한 예술형식 중에서도 대중음악의 영역에 매우 많고 극렬한 듯한데, 녹음되고 재생될 수 있지만 애초에 무상하게 나타났다 사라지는 소리를 가르고 나누기 어려워 그런 것일까. 우연히 나오거나 때론 반쯤농담으로 한 말이 평생 따라붙고, 그렇게 굳어진 이름이 정확히 어떠한 속성들을 가리키는지에 대한 의견은 언
제나 분분하며, 구체적인 대상에게 달아둔 이름표는 알맞게 여겨지는 순간 영영 어긋난다. 또한 특정 대중음악 양식 및 경향을 지칭하는 온갖 이름이 담긴 단어장의 목록은 길어지고 각각
에 부여되는 특성은 미세해지며 영향상의 상호관계는 복잡해지지만, 어째서인지 이를 모든 구체적인 사례에 적용하기엔 턱없이 부족하다. (pp. 99~100)
■ 차례
| 하이픈 | 세대 – 배움
소유정 마주침의 장소에 대한 회고—필굿 소설이 그리는 안전한 세계의 위험성
전승민 가장 음험한 가장—코드의 언어 경제로 보는 시와 소설 그리고 비평의 매트릭스
이은지 장르적인 것으로부터 사회적인 것을 구해내기—장르물의 체제 종속성과 자율성에 대하여
이융희 ‘장르문학’이라는 독법
안희제 사랑은 망한다—장르의 잔여, 붙잡을 수 없는 욕망
나원영 우리의 포스트- 록을 이해하길 멈출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