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생트의 정원

앙리 보스코 지음 | 정영란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4년 4월 29일 | ISBN 9788932042770

사양 변형판 120x188 · 427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이아생트……”
심연의 침잠된 고요를 뒤흔드는 생명력이
그녀의 두 눈에 솟구쳐 올라오고 있었다.
내가 보았다.
내가 거기 있었다.

“현대의 가장 위대한 몽상가” 앙리 보스코,
아름답고도 비밀스러운 보스코 상상 세계의 진경珍景을 펼쳐 보이는
‘이아생트 3부작’ 완결작 출간!


“현대의 가장 위대한 몽상가”라 일컬어지며, 아름답고도 비밀스러운 상상의 세계를 감미롭게 펼쳐 보이는 프랑스 작가 앙리 보스코의 소설 『이아생트의 정원』(정영란 옮김)이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이 책 『이아생트의 정원』은 보스코의 대표작인 ‘이아생트 3부작’의 완결작으로 『반바지 당나귀』(민음사), 『이아생트』(워크룸프레스)에 이어 그 대미를 장식한다. 그러나 여느 3부작과 달리 이 세 작품에는 줄거리가 연결된다거나 인물들이 연속적으로 등장한다거나 하는 일관성이 없다. 각기 다른 화자들을 내세웠을 뿐만 아니라 작품의 주요 인물 중 몇몇은 모습을 드러내는가 하면 곧바로 사라지기에, 말하자면 사라지기 위해 잠시 등장하는 듯한 이아생트 말고는, 다른 인물들의 출현 방식은 더 심하게 단속적이다. 그러니 이 세 편의 작품을 묶는 통일성은 외현적이라기보다 내재적 통일성으로, 그것은 작품들을 감싸고 도는 작가의 창조적 몽상의 연계에 있다. 따라서 이 책은 독립적인 줄거리와 새로운 화자의 등장으로 고유의 개별 작품으로 읽힌다.
인간이 희구하는 가장 오래된 꿈이라 할 수 있는 잃어버린 지상 낙원. 『반바지 당나귀』에서는 대지의 생명체를 길들여 천국 동산(신新정원)을 건설하려는 오만한 마법사 시프리앵 노인의 야심과 거기 걸려든 두 아이 콩스탕탱과 이아생트의 유년 시절, 이윽고 소년을 후계자로 삼으려다 실패한 시프리앵이 소년의 집에서 기거하던 고아 소녀 이아생트를 홀려 사라지면서 끝을 맺는다. 이어 실종된 이아생트의 밤길을 아련히 묻어둔 밤의 이야기(소녀의 영적 죽음 및 지옥에서의 한철)가 펼쳐지는 『이아생트』. 마침내 3부작의 완결작인 『이아생트의 정원』에 이르러 오랜 방황을 끝내고 마법사의 주술에서 벗어나 참된 사랑으로 다시 만나게 되는 그들. 이 책은 애초 콩스탕탱을 후계자로 삼으려다 좌절하고 ‘펠리시엔’이라 제 맘대로 이름 붙인 소녀를 데려가 천국 동산을 흉내 내려던 야심가 시프리앵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후 비로소 이 땅 위로, 사람들 곁에 착지해 귀환을 시작하는 소녀 이아생트의 여정을 내밀하고도 섬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다. 그 길은 곧 책의 제목이기도 한 ‘이아생트의 정원’으로 향하는 여정이기도 하다.

“이제 나는 진솔하게, 이 지상 어느 소녀도 풍기지 못하는 향기를 품고 있는 소녀, 정원과 꽃과 과일의 향기를 띠고 있는 걸로 보아 아마 자신도 모르는 새 천국을 가로질러 온 한 시골 처녀의 젊은 날에 대해 얘기해보겠다.” (16쪽)


“한데 무엇 한 끗이 부족했던 걸까요?”
“아마도 사랑이었을 겁니다.”

보스코는 무척 아름답지만, 여전히 수수께끼 같은 작가로도 잘 알려져 있다. 시적 몽상 가득한 이야기들과 점점이 뿌려놓은 소박하면서도 섬세한 이미지의 편린, 경이와 신비 속에서 소용돌이치는 비가시적 세계의 심연을 주시하고 있기 때문인데, 한편으로 고향 프로방스의 자연을 사랑해 마지않는 향토 식물학자의 풍모마저 지녀 인간미 넘치는 따스한 시선으로 포착한 시골 마을의 목가적 풍광을 탁월하게 그려내는 것으로도 유명하다.
이 책 『이아생트의 정원』의 배경 또한 세기 초 프로방스의 시골 마을이다. 다른 마을 사람들에게 물으면 “촌락이죠. 살 곳이 못 되죠”라는 대답이 돌아오는 별 볼 일 없는 마을이지만, “약간의 여유로움과 넉넉한 겸손함”을 지니고 “겨울에는 난롯가에서, 봄에는 나무 아래에서, 여름에는 잘 익은 제 고장 과일들을 앞에 놓고서, 가을에는 포도 덩굴시렁 아래에서” 느릿느릿 살아가는 “부유하진 않지만 생기 있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 작품의 화자 ‘메장’은 그곳에서 약간 떨어진 리귀제라 불리는 농가의 주인으로, 그가 태어날 때부터 집안일을 돌봐온 시도니를 비롯해 좋은 농사꾼인 아그리콜, 지혜로운 양치기 아르나비엘 등이 그에 기대어 살아간다.
그에게 저 산 위 외따로 떨어져 있는 농가 보리솔은 각별한 장소다. “샘도 미약하고 땅은 뭘 경작해도 잘 자라지 않”지만 조약돌로부터도, 나무들로부터도 행복을 느끼는 게리통 노부부가 거기 있기에. 봄의 첫 방문에 이어 이 충직한 두 노인과 함께하던 성탄 밤, 소녀는 보리솔에 버려진다. “사람이지만 껍데기만 남은 듯” “거의 무無라고 할 만큼 아주 희미한 영혼만이 거하는” 이 “익명의 피조물”은, 그러나 자신을 진중히 보살피는 어진 양아버지 격의 메장과 리귀제 사람들, 천사 같은 게리톤, 호의 가득한 노老사제의 손길과 보살핌, 사랑에 힘입어 차츰차츰 그 빈 존재가 채워져 간다. “이 육신 안에, 보이는 얼굴 안에, 아직은 불분명한 형태의 비물질적인 윤곽이 가끔 떠오르는 것이 보였다.” 그럼에도 “이 존재 안에는 영혼이 부재했다.” 하지만 언젠가 때가 되면 “활짝 개화하기 위해 강렬한 한마디만을 기다리는 가능태로서의 피조물”인 그녀. 아직은.


“나는 이아생트 하고 말하리라.
이아생트는 내게 답을 하리라”

이 작품에서 기억력과 영혼을 앗긴 빈 존재로 등장하는 이아생트는 3부작을 아우르는 중심인물이자 고유명사로 소녀의 이름이지만, ‘히아신스’(프랑스어 발음으로 이아생트)라는 꽃 이름이기도 하다. 그리스 문화에 대한 높은 교양을 지녔던 작가 보스코는 신화적 차용을 즐겨 사용했는데, 이아생트라는 이름에서도 신화가 환기된다. 아폴론의 사랑을 받던 미소년 히아킨토스가 제피로스의 질투에 희생되어 그가 던진 원반에 맞아 피를 흘리고, 땅을 적신 그 피가 히아신스가 되었다는 신화상의 이 투기 장면을 재현이라도 하듯이, 콩스탕탱을 낚지 못해 질투에 불타는 마법사 시프리앵은 소년 대신에 소녀를 희생양으로 삼아 이름과 말과 영혼을 빼앗고 제 마음대로 펠리시엔이라 부르며 조련한다. 그런 만큼 사라진 소녀를 줄곧 찾아 헤매던 참벗 콩스탕탱의 출현과 진짜 이름 부르기, 회복이 가지는 의미는 중차대하다.
시프리앵 노인의 마법에 걸려 기억력과 영혼을 빼앗긴 소녀 이아생트. 온 영혼을 걸고 찾던 이 어린 시절의 벗을 다시 만나게 되는 결정적 순간, 청년 콩스탕탱은 그녀를 ‘이아생트’라는 진정한 이름으로 부른다. 참이름 부여가 사랑의 기적을 허락하여 그녀로 하여금 기억력과 영혼을, 참존재를 회복하게 한다. 그 극적인 해후 다음 날 아침, 한동안 방치되어 황량했던 저 높은 보리솔에 다시 물이 솟고 아몬드꽃이 피어난다. 제목이 말하는 ‘이아생트의 정원’은 바로 온 누리 정원 혹은 이 대지임을 보여준다. 대지의 생명체들을 휘어잡아 자신의 정원 안에 가두려고 나선 마법사의 억지 낙원이 아니라, 뭇 인간에게 선물로 주어진 이 보편 대지 자체가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손길에 힘입어 태초 정원의 모습을 다소간이라도 되비추는 한, 그것이 바로 작가가 우리에게 궁극적으로 제시하는 정원이라는 것을. 피조물 히아신스(이아생트)가 피는 지상의 정원, 모두가 만나고 모이며 살아나고 피어나는 이곳 말이다.


■ 책 속으로

아멜리에르 마을이 거기 있다는 걸 알지만, 그건 그냥 이름이지 그 이상은 아닌 격이다. 소음이랄 만한 소리도 없다. 주일날 아침 8시 미사를 알리는 종소리가 약간 서툴게 울릴 때를 제외하곤 말이다. 그래도 그곳 사람들이 불행한 건 아니다. 세월의 운행에 순응하며 그저 기쁘게 지내는 듯 보인다. 사람들은 한 해가 베푸는 선물을 받고, 겨울에는 난롯가에서, 봄에는 나무 아래에서, 가을에는 포도 덩굴시렁 아래에서 지낸다. 그렇게 살기에 모두, 걸음도 미소 짓는 일도 느긋하다. 질문에 대답하는 일도 느릿느릿하다. 모두 평화로운 신뢰감 때문이다. (「보리솔」 32~33쪽)

난 이렇게 되뇌었다. “참 연약한 세계 아닌가. 행복이란 게 고작 물 한 줄기에 매달려 있는 세계니. 아그리콜 생각도 그런 거지.” 그런 연약함이, 덧없이 사라질 위기에 처한 행복에서 비로소 번져 나오는 매력을 보리솔에 부여해주었던 것이다. 그런 행복이란 밤낮 천행天幸에 달려 있다고 느껴지기에 우리는 그것을 더욱 사랑하게 되는 것이다. 불안정하기에 부서지기 쉬운 그 보화들은 이토록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면모를 보이고, 우리는 그걸 순수히 기적인 양 느끼게 된다. (「보리솔」 71~72쪽)

프로방스의 외딴 ‘농가’에서는 언제나 무언가를 기다리는 법. 그러려면 강단이 있어야 하는 법. 왜냐하면 그 막연한 기다림, 그 이름 모를 욕망은 대부분 충족되지 않기에 더 기다리지 않으려 시골을 등지기도 하고, 오지 않는 그 존재를 찾아 떠나기도 한다. 그러나 시도니는 시골을 떠나버리는 그런 부류가 아니었다. 깊은 본능이 그녀를 납득시켜준 바대로, 기다림의 천성을 부여받았다는 사실만으로도 이미 하늘의 호의를 알 수 있는 것이니, 아직은 실체 모를 이 상상의 얼굴을 불확실한 행로에서 찾으려 들기보다 운명이 점지한 마지막 날까지 그리 기다리기를 원할 것이다. (「시도니」 117~118쪽)

설명 불가한 두려움에 사로잡힌 아이들. 그러면서도 또 찾아오곤 하던 아이들. 다음 날이면 으레 다시 찾아오던 그 아이들. 더 두려운 듯하지만 여전히 열정을 느끼며, 아니 더 대담해져서겠지. 발꿈치를 높이 세우고 서서 울타리 너머로 호기심에 차 있는 그 세 아이의 머리통은 어떤 다정함마저 풍기고 있었던 게다.
그러나 그네들의 시도는 누가 알아주지 않았다. 펠리시엔은 접근 불가였다. 아무것도 그들의 용기를 꺾지 않았지만, 애석하게도 여자아이는 아이들의 가슴 찡한 집념에 전혀 흔들리지 않았던 것이다. 어찌 그리 무관심 일색인지, 아이들은 이해할 수 없었다. 이 미지의 여자아이가 온 일이 그들 가슴엔 그리 큰 감동이었건만. (「펠리시엔」 185쪽)

이 외진 곳에서 그나마 유일한 이 조무래기들과도 거리를 두고 있었기에 펠리시엔은 자연스러운 세상과 떨어져 있었다. 아이는 우리에게만 의지했다. 그러니 어린 시절만이 줄 수 있는 호의를 누리지 못했다. 상상력과 감정과 누그러뜨릴 수 없는 사기士氣가 엮어주고 잠시 유지하다가 이윽고 잠깐의 그 구조물을 허물곤 하는, 유년 공동체의 마법 같은 삶을 대신해줄 것은 세상에 없다. 아이는 활발함을 잃은 자신의 상태엔 걸맞지 않은, 발랄한 유희의 왁자함을 두려워하는 듯했다. 실제로 (몰입하노라면 미친 짓도 불사하게 되는) 유희를 즐기려면 자신을 잊어야 하는데, 기억력을 거의 다 상실한 마당에 어찌 또 자신을 잊을 수 있겠는가? 펠리시엔에겐 추억이 없었다. 추억들로 세워진 상상의 세계 속에서만 자신을 잊을 수 있는 법. (「펠리시엔」 187쪽)

거의 식물적인, 삶의 순수한 순간들이다. 나뭇잎 두어 잎이 살랑거리며 바람이 지나갈 때 약간 진동하는 어떤 선 가닥으로만 자신과 맺어져 있는 듯한 삶. 생각에서 존재의 무심함으로, 거의 알지 못한 채 건너온 만큼 살아 있음에 대한 자각도 딱히 없다.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그저 시간을 벗어난 행복에 대한 감각일 뿐. 정신보다 더 투명한 육체 안에 있는 웅성거림들, 목소리들, 향기들 그리고 행성의 느릿한 표징들이 경이롭게 가로지르는 그런 육체 안에. (「펠리시엔」 209~210쪽)

그녀는 작게, 겸손한 조건에서만 아파하기를 택했다. 그녀는 (나는 오래전부터 그녀의 생각을 알고 있었다) 고통의 덩치란 우정을 깎아내면서 커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녀는 이끌림이랄까, 적절성의 감정 그리고 효용의 법칙에 따라 고통에 최소한만 양보했다. 슬퍼할 시간이 있는가 하면, 사랑할 시간이 있다(라는 게 필경 그녀의 생각이리라). 그것들을 뒤섞지 않는 것이, 첫번째 것에는 적게, 두번째 것에 더 마음을 쏟는 편이 현명하다는 게 그녀 생각이었다. 그렇게 행동했다. 바로 거기서 그녀의 내적 희망, 비밀스러운 약속에 대한 믿음이 나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행복에 대한 이런 감각은 노경에 든 그녀의 영혼을 영원히 도래하는 청춘의 방향으로 귀결시켰다. (「뱀과 별」 233쪽)

투박했지만 강했던 사랑. 나도 그리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 무심한 피조물의 무엇을 사랑할 수 있었던 걸까? 〔……〕 우리는 무無의 매혹에 걸려든 듯했다. 이제 우리에게 결여된 것은 아이가 지금 여기 없다는 것, 바로 그 부재였다. 설명할 길 없지만, 우리는 부재의 부재를 애석해하고 있었다. 마음과 정신과 기억력을 앗긴 이 여자아이가 리귀제의 커다란 농가를 딱히 의도 없이, 그저 오가던 모습을 더 볼 수 없다는 것에 슬퍼진 우리는 마냥 입을 다물고 있었다. 각자 자신의 생각에 젖어 있었다. 이런 방식으로 우리 둘은 그 아이를 찾고 있었던 게다. 차츰 나는 이 침묵의 새로운 면을 관찰하게 되었다. 아주 과묵하다 하더라도 사라진 한 존재는 한 집안의 통상적 소리에 또 다른 공백을 만든다는 것을. 더는 듣지 못하게 된 어떤 발걸음, 어떤 한 숨소리가 회한의 자락과 함께 하나의 부재를 만들었던 게다. (「뱀과 별」 237쪽)

“제 생각으로는 노인이 실패한 것 같습니다……”
그는 실망하고 불만스러워 보였다. 웅얼거리듯 덧붙이기를,
“그렇지 않다면 어린 이아생트를 내버렸겠어요? 아아, 그이는 우리에게 익명의 피조물을 내던져놓은 거죠. 제 이름을 불렀는데도 무표정한 아이, 그게 어디 인간이라 할 수 있나요?……”
그는 몽상에 잠겼다. 이윽고 슬픈 듯 한숨을 내쉬었다.
“참 고운 이름인데……”
이 이름이 그를 다시 오래도록 꿈에 잠기게 했다. 우리는 그가 웅얼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그래도 대단한 노인이죠. 한데 무엇 한 끗이 부족했던 걸까요?”
“아마도 사랑이었을 겁니다.” 신부님이 답했다. (「뱀과 별」 301쪽)

목차

■ 차례

보리솔

아르나비엘을 통해서 | 보리솔에 올라가는 길은

나는 거기서 꽤 멀리 살고 있다

그해는 여름이 | 화요일 밤이었다

과연 매서운 겨울이었다 | 그러던 중 | 나는 또한 배웠다

나는 4월의 어느 멋진 날을 택했다 | 마을로 들어섰던 게 기억난다 | 우선 거기서도 아무도 볼 수 없었다 | 귀가한 것은 밤이 이슥해서였다

리귀제에 돌아온 후 | 모두 그가 돌아오길 기다렸다 | 더 나은 향유가 어디 있으랴

원칙적으로 아그리콜과 나는 | 눈이 내리고 있었다 | 오래 걸어야 했다 | 거센 바람은 종일 계속되었다 | 창 너머 아예 자리를 잡고서

일주일 후 | 내 계획은

시도니

그 시절, 농가 우리 집에는

제일 먼저 시도니가 | 내가 늘 식사하는 식당은 | 오후가 끝날 무렵 |

집안 살림살이는 | 또다시 | 잔걸음으로

사흘간 | 아무 기별도 없어서 | 그다음 날 아무도

펠리시엔

우리가 기다린 건 그저 사흘간이었다 | 우리는 신부님과 서류를 작성했다

언짢은 사건들이

그런 기이한 거동에

이 조무래기들과도 거리를 두고 | 날씨가 쌀쌀해진

시골에서는 | 그날 이후, 며칠간 | 어느 날 아침 일찍 | 그저 놀랍기만 했다 | 다행히도 신부님이 | 신부님의 편지는

농사일에 | 이처럼 들이 온통 | 4월 20일 | 이튿날 늦게야 잠이 깼다 | 그다음 날은

뱀과 별

펠리시엔은 리귀제를 떠났다

그렇게 며칠이 흘러갔다 | 집에 돌아오기 전 | 우리가 오래 기다릴 필요는 없었다

시도니와 나, 우리는 | 길은 하나뿐이다 | 리귀제에 돌아온 건

허둥대는 일 없이 | 어느 날 밤

펠리시엔은 내처 잤다 | 나는 신부님께 | 시도니도 지켜보았다 | 어느 아침 동녘이 트기 조금 전

그가 어디서 솟아 나왔는지 모르지만 | 자정 무렵 나는 헛소리를 해댔다

베르젤리앙 신부님 댁이었다

이야기하지 않으련다

사건들이 있은 지 3년 후

그다음 날 아침

시프리앵의 일기

이아생트의 귀환
나는 그 큰 공책을 덮고 | 우리는 이렇듯 일주일을 지냈다 | 이튿날 아침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작가 소개

앙리 보스코 지음

1888년 프랑스 남부 아비뇽에서 태어났다. 아비뇽에서 중등과정을 마치고 그르노블 대학에서 문학을 전공한 후 프랑스, 이탈리아, 알제리의 고등학교와 대학에서 언어와 고전문학을 가르쳤다. 제1차 세계대전 당시 지중해 권역 여러 나라에서 통역병으로 종군했다. 종전 후 이탈리아 나폴리의 프랑스 문화원에서 10년간 강의하며 첫 소설 『피에르 랑페두즈』(1924)를 발표했다. 그 후 24년간 모로코 라바트에 체류하며 ‘이아생트 3부작’을 여는 작품 『반바지 당나귀』(1937)를 썼다. 1940년 『이아생트』에 이어 1946년 『이아생트의 정원』을 출간함으로써 3부작의 대미를 장식한다. 오랜 해외 체류 끝에 1955년 귀국한 보스코는 니스와 루르마랭을 오가며, 생의 마지막 날까지 작품 활동에 전념했다. 르노도 상 및 아카데미 프랑세즈 문학상을 수상하고, 국가 최고 훈장에 서훈되었다. 1976년 니스에서 타계, 루르마랭에 묻혔다.

정영란 옮김

서울대학교 불어불문학과와 같은 과 대학원을 졸업하고 프랑스 파리 10대학교에서 베르나노스에 관한 논문으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5년부터 2021년까지 한국방송통신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전 불어불문학과) 교수로 재직했고 현재 명예교수로 있다. 베르나노스의 소설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 바슐라르의 상상력 연구서들 『공기와 꿈』과 『대지 그리고 휴식의 몽상』, 보스코의 소설 『반바지 당나귀』를 우리말로 옮겼으며, 『프랑스 현대소설연구』와 『프루스트와 현대 프랑스 소설』 등의 공저 논문집이 있다.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7 + 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