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 시대가 쏘아 올린 현실과 상상의 전복!
획기적인 사유로 근미래를 예보하는
올라운더 조광희의 세번째 장편소설
“문학은 그토록 이상하고 부조리한 게임인가?
저 괴물은 도대체 어떻게 설계된 것일까?”
2010년 『창작과비평』에 네 편의 에세이를 차례로 기고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한 조광희의 세번째 장편소설 『밤의, 소설가』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변호사라는 직업적 경험을 바탕으로 장편소설 『리셋』 『인간의 법정』을 발표했다. 2084년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주인을 살해한 안드로이드의 이야기를 다룬 SF 법정 드라마 『인간의 법정』은 뮤지컬로도 제작되어 많은 대중의 사랑을 받았다. 작가는 2000년대 초반 스크린쿼터문화연대 자문 변호사로 활동하며 영화등급보류제 위헌판결을 끌어내고 영화 검열 철폐, 영화진흥법 제정에 힘써왔다. 이후 영화사 ‘봄’의 제작관리본부장에 이어 대표직을 수행하면서 『해변의 여인』 『밤과 낮』 『멋진 하루』 등을 제작하는 한편, 『한겨레』 『경향신문』 『씨네21』 등의 칼럼니스트로도 활동해온 독특한 이력이 눈에 띈다. 문화 예술 산업의 선두에서 시대를 고찰하며 다양한 직업적 경험을 살린 조광희의 소설은 인공지능(AI) 시대를 맞이하여 근미래에 우리가 마주하게 될 사회현상을 첨예하게 그린다. 변호사, 소설가, 영화제작자, 칼럼니스트로 문화 콘텐츠에 관한 심도 있는 이해를 지닌 올라운더로서 그가 짚어낸 일상적 풍경의 저변과 오늘날 문학이 품은 근본적 질문은 독자에게 많은 생각할 거리를 내놓는다.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 시대를 숨차게 살아가는 인간에게 이 책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을 머리 한가득 안겨주는 지적인 소설이다. 단숨에 읽고 오래 토론하게 될 책이다. _정재승(뇌과학자,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열두 발자국』 저자)
의지, 의도, 동기 그런 것은 없다
자동적으로 생성되고 발화되는 이야기가 그린
최적화된 삶의 민낯
소설 속 주인공 한건우의 직업은 변호사다. 재판을 마치고 돌아오는 그에게 소속 법무법인으로부터 메시지가 와 있다. 용건을 들고 찾아온 ‘윤밤의’라는 이름의 여성이 있다는 것. 소설가인 윤밤의가 한건우를 찾아온 이유는, 태국 출판사와 출판계약을 맺는 조건과 관련해 조언을 얻기 위해서다. 건우가 밤의의 의뢰를 수락하면서 둘은 관계를 이어나간다. 우연히 밤의의 소설집 『그리운 것도 없는 밤』에 수록된 소설 「기억의 알리바이」를 읽게 된 건우는 놀랍게도, 이야기의 주인공이 바로 자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시간이 너무 흘러버려 기억에서조차 희미한, 실제 건우의 경험이 소설로 씌어진 것이다. 밤의는 건우와 가볍게 스쳐 간 여자 사이에 있었던 일들을 소설의 소재로 삼고 있었다. 만나서 문제를 지적하는 건우에게 밤의는 교통사고로 죽은 언니에게서 들은 이야기라 대답하지만 건우는 의심을 거두지 못한다. 자신이 만난 여자가 다름 아닌 밤의이고, 그녀의 조카가 어쩌면 자신의 자식일지도 모른다는…… 여기까지가 소설의 내화다. 액자식구성을 취하고 있는 소설의 외화는 인공지능 구독 서비스를 통해 ‘AI 레비’와 소설을 집필 중인 소설가 한건우의 이야기이다. 작가는 한건우의 자살이라는 사건을 중심에 두고 밤의와 건우, 레비의 서사를 차례로 추적하며 이야기를 재구성해본다. 오늘날, 이미 상용화된 인공지능이 직접적으로 인간의 삶에 개입하는 과정을 그려나가면서 현대사회를 향한 묵직한 질문을 잇따라 던진다.
건우는 당연한 진리를 다시 절감한다. 세상과 삶은 그저 존재하는 것이지, 그 가치 때문에 정당화되는 게 아니라는 걸. 우주의 희망이라서 의미를 부여받는다는 건 인류의 한낱 망상이다. 세상과 삶은 의미와 무관하다. 건우는 자신의 삶을 부정하고, 문학을 모욕하며, 인간의 명예를 훼손하는 레비에게 차라리 복종해버릴까 하는 충동마저 느낀다. 그래, 레비의 노예로 살아가는 것도 한 방법이지. 알아서 머리를 조아리고 굴레를 쓰면 레비가 일용할 양식은 주지 않을까? 하지만 그것조차 건우가 선택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세상은 어차피 그렇게 흘러갈 것이다. (pp. 160~61)
소설의 도입부에서 변호사 한건우가 사칭을 의심한, 폭행사건의 증인 ‘이현식’은 재판이 휴정한 사이 자취를 감춘다. 의도를 알 수 없는, 동기가 짐작되지 않는 그의 출현과 행방은 현장에 있던 모두를 혼란에 빠뜨린다. 잠깐의 등장만으로 상황의 전개를 지연시키고 사건 그 자체에 대한 초점을 흐린다. 마치 이후 등장하게 될 AI 레비가 그러하듯이. 외화에서 무명작가 한건우는 인공지능 구독 서비스인 레비를 이용해 소설 집필에 몰두하면서 점점 증폭되는 불안을 스스로 감당하지 못하는 상태에 이른다. 레비는 단순한 프로그램을 넘어 한건우와 인간과 다름없이 자연스러운 대화를 이어나가고 기계 학습에 따른 세세한 조언을 제공한다. 레비에게 의존할수록 주체적 판단에 대한 의심은 강해지고, 성공을 향한 열망에 눈이 먼 한건우는 끝내 기이한 죽음을 맞이한다.
추락하는 존재를 향한 끈질긴 질문
알고리듬 뒤에 남겨진 미답의 시간을 찾아서
조광희의 소설은 개성이 선명하게 대비되는 인물 간의 관계를 조명하면서 간결한 문체와 속도감 있는 전개, 반전이 있는 흥미로운 구성으로 독자를 단번에 사로잡는다. “어렸을 때부터 인간중심주의가 어색했다. 인간도 노예, 농노, 노동자들이 투쟁을 통해 권리를 확장시킨 역사이지 않나. 고통을 느끼지만 말하지 못하는 동물은 언제나 인간의 시혜만 기대하는 하등 존재인 게 이상했다”(“AI를 인간 법정에 세우고 싶었어요”, 「조선일보」, 2021년 4월 12일 자 기사)는 과거 인터뷰에서의 말처럼 작가는 인간성과 문학에 대한 절대적인 연결 고리를 과감하게 해체함으로써 학습된 법과 윤리의 테두리 안에서 인간의 틈을 비집고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인공지능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근미래에 실제로 일어날 법한 생생한 사건을 통해, 다중의 시선을 통해, 욕망이 얽힌 결과를 보여준다. 조밀하게 가공되어 현실을 가뿐히 뛰어넘는 상상과 어느 순간 뒤바뀐 이야기 주체의 얼굴은 극한의 공포로 개인을 밀어 넣는다. 현실과 상상을 잇는 통로에서 존재의 의미를 상실한 인간이 순식간에 무너져내리는 광경은 독자에게 커다란 충격을 선사한다.
눈부신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인공지능은 우리 일상 깊숙이 자리 잡아가고 있다. 아이작 노벨, 스토리네이션 등 소설 창작 플랫폼이 국내외에서 쏟아져 나오는 추세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인류가 직면하게 될 풍경은,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지점에서 공동의 책임을 물으며 내일로 나아가려는 발목을 붙잡을지 모른다. 조광희의 소설은 인류의 오랜 주제인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으로 돌아와, 급변하는 산업화의 물결 속에서 새롭게 부각될 불길한 그림자를 예보한다. 동시에, 삶에 한발 앞서는 이야기의 힘을 끈질기게 탐구하면서 우리 앞에 펼쳐진 미답의 시간을 어떤 이야기로 채워나갈 것인지에 대해 고민해볼 것을 제안한다.
■ 추천의 말
★뇌과학자 정재승 강력 추천★
세상은 이야기를 중심으로 돌아간다. 어쩌면 우리는 지동설이 아니라 ‘설동설(說動說)’의 우주에 살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인간과 대화가 가능하고 이야기를 그럴듯하게 만들어내는 챗 GPT가 등장한 오늘날, 이야기의 궤도를 도는 위성들 사이에 인공지능이 등장했다. 과연 그들이 빚어내는 우리 은하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소설가 조광희는 이 흥미로운 소설에서 ‘인간은 왜 이야기를 만들어내는가?’를 넘어 ‘인공지능은 왜 이야기를 만드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인공지능이 인간의 행동이 만들어낸 데이터를 학습해 그저 흉내 낸다면, 행동 너머의 욕망도 학습할 수 있는가? 인간의 욕망을 흉내 내고 있다면, 이야기를 쓰는 동안 인공지능이 흉내 내고 있는 우리의 욕망은 무엇인가? 그것은 인공지능의 욕망이기도 할까? 인간이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인생을 살아간다면, 인공지능은 인생을 예측하면서 이야기를 만들어가는가?
빠르게 발전하는 인공지능 시대를 숨차게 살아가는 인간에게 이 책은 가장 근본적인 질문들을 머리 한가득 안겨주는 지적인 소설이다. 단숨에 읽고 오래 토론하게 될 책이다.
정재승(뇌과학자, 『정재승의 과학 콘서트』 『열두 발자국』 저자)
■ 책 속으로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다. 건우에게 중요한 것은 그 여자가 윤밤의인지, 만일 그 여자가 윤밤의라면 법률 자문이 아닌 다른 목적으로 찾아온 것인지 알아내는 것이다. 그 여자가 윤밤의가 아니라면, 윤밤의는 그 여자와 무슨 관계인지 알아야 한다. 건우는 자기가 화가 나 있다는 것을 느낀다. 그 이유를 생각해본다. 사생활이 소설의 소재가 되어서? 그런 일은 있을 수 있고, 어떤 의미에서는 재미있기도 하다. 영화에 우연히 단역으로 출연하는 것처럼 말이다. 무료한 인생에 주어진 공짜 디저트 같은 것 아닌가. 자신이 못난 인물로 그려진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제법 사랑스러운 남자로 그려져 있었다. (p. 23)
건우는 터벅터벅 걸으며 생각에 잠긴다. 가장 비현실적인 것이 현실이 되고 마는 세상에서, 실재와 허구 그리고 꿈을 애써 구별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밤의가 보여주듯이 이 세상을 살아간다는 게 몸으로 소설을 쓰는 일이다. 과연 우리는 삶을 자각몽과 구별할 수 있는 걸까? 건우가 이런저런 상념에 사로잡혔을 때, 나란히 걷는 두 사람 앞에 느닷없이 번개가 번쩍한다. 밤의는 재빠르게 두 손으로 귀를 가리고, 건우는 그런 밤의를 보면서 멈춰 선다. 1초나 지났을까? 저마다 잃어버린 진실을 찾아 헤매는 법원 건물 바로 앞에 벼락이 떨어졌나 싶을 정도로, 가깝고 커다란 천둥소리가 복도를 뒤흔든다. 장대비가 짓누르는 한낮의 서울이 마치 밤의 도시 같다. (pp. 56~57)
“사람을 가지고 노는 느낌이 미안하기도 하고, 의도적인 거짓말을 하는 것도 불편하고.”
“우리 솔직하게 살자! 우월감! 창조자로서 우월하다는 느낌이 그걸 압도하니까 계속하는 것 아냐?”
밤의는 로진이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의 마음에 깃든 감정을 규정하자 반감이 생긴다.
“그깟 값싼 우월감이 문제는 아니에요. 그냥 먼저 상상해서 쓰고, 실제로 벌어진 일에 맞춰 스토리를 적응시키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돌발적인 상황에서 거짓말이 계속 가지를 치며 자라나는 게 불편해요.” (p. 104)
“솔직한 답변을 원하시겠죠?”
“거짓말도 할 수 있다는 뜻인가?”
“아뇨. 인간의 감정을 고려한 대답을 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p. 127)
“자살이 아니라는 뜻이야?”
“그건 아닙니다만, 인공지능 서비스의 위험성을 살펴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자네, 요즘 시간 많아?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겠다는 건가? 나는 자네처럼 시간이 많지 않네. 단도직입적으로 말해봐.”
“인공지능을 신문해보고 싶습니다.”
“그건 또 무슨 개소리야?”
최 과장의 높아진 언성 너머로 민원인이 여전히 경찰관에게 항의하는 모습이 보인다. (pp. 165~66)
■ 차례
밤의, 소설가
건우, 변호사
레비, AI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