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친데

대산세계문학총서 187

프리드리히 슐레겔 지음 | 박상화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12월 29일 | ISBN 9788932042503

사양 변형판 130x200 · 234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선입견을 벗어던지고
그릇된 수치심의 모든 찌꺼기를 버리십시오”

미학적 혁명, 낭만적 사랑의 탄생,
낭만주의 문학의 토대를 닦은 슐레겔의 유일한 소설

독일 낭만주의의 대표적 이론가이자 역사가, 철학자인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 (1772~1829)이 남긴 유일한 소설 『루친데Lucinde』가 문학과지성사 대산세계문학총서 187번으로 출간되었다.
율리우스와 루친데의 사랑을 편지, 대화, 격언, 에세이 등 여러 형식으로 그려낸 『루친데』는 슐레겔이 자신의 낭만주의 이념을 체현한 장편소설이다. 낭만주의 문학은 모든 문학적 갈래를 통합하고, 다양한 구성 요소를 섞어 세계를 시화詩化하는 것인데, 기존의 문학 형식은 이러한 낭만 정신을 수용할 수 없기에 슐레겔은 장르의 한계를 초월한 새로운 문학 형식을 구현해냈다. 또한 당시의 관습에서 벗어나 본능에 충실한 사랑, 관능적인 쾌락을 진정한 사랑의 요소라고 주장하며 사랑과 결혼에 대한 새로운 도덕관을 보여주었다.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나 내용적으로나 파격적이기에 당대에는 많은 비난을 받았으나, 20세기 이후, 아방가르드 · 메타픽션 · 포스트모더니즘 등 현대 문학의 특징을 선취하고 있었다는 점이 밝혀지며 점차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이 책은 슐레겔의 장편소설 『루친데』와 슐레겔이 사후에 남긴 방대한 양의 미발표 원고 중 이미 발표된 『루친데』에 덧붙이려고 쓴 듯 보이는 단편 다섯 편을 엮었다.


“미학적 혁명을 위한 시기가 성숙되었다”
소설 이론을 구현한 소설 『루친데』

낭만주의 문학은 점진적인 보편문학이다. 이러한 규정은 모든 문학적 갈래들을 일치시키고, [……]섞고 용해시켜 문학을 생기 있고 친근하게 만들어, 인생과 사회를 시화詩化하고 재치를 시화하며, 예술 형식들을 다양한 구성 요소로 가득 채워 충만케 하고, 유머의 힘으로 생기를 불어넣으려는 의도와 당위를 지니고 있다. (「아테네움 단장Athenäm Fragmente」 116번에서 )

슐레겔은 프랑스 혁명으로 시작된 변혁의 시기에 문학 역시 ‘미학적 혁명’이 필요함을 인식하고 초기 낭만주의 문학운동을 이끌었다. 그러나 기존의 문학 형식으로는 이러한 낭만 정신을 수용할 수 없기에 새로운 문학 형식으로 장편소설roman을 택했다. ‘소설’은 이제 장르 개념으로서의 소설이 아니라 다양한 구성 요소를 섞고 용해시키는 것으로, ‘장르 국한’이 없는 것이다
낭만주의 문학은 철학, 수사학, 시, 산문, 비평 등 모든 장르를 융합할 뿐만 아니라 삶과 사회를 시화詩化하는, 그렇기에 결코 완료되지 않고 지속적으로 생성 과정 중인 “점진적인 보편문학Progressive Universalpoesie”이다. 문학 이론가로서 활발히 활동하던 슐레겔이 남긴 유일한 소설 『루친데』는 이러한 초기 낭만주의 이념을 체화한 낭만주의 문학의 표본, 실례가 되었다.


“혼돈의 미야말로 최고의 아름다움이며 최고의 질서다 ”
형식적 파격-아라베스크와 알레고리

나의 삶을 담은 이 작은 소설이 그대에게는 너무 분방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을 어린아이라고 생각하여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운 마음으로 소설의 순진한 방종을 참아주시고 소설의 애무에 당신을 맡겨보십시오. (30쪽)

슐레겔에 따르면 모든 장르가 섞인, 기존의 형식에서 탈피한 “아라베스크는 고백과 더불어 우리 시대의 유일한 낭만적인 자연 산물”이며,『루친데』는 아라베스크를 통해 ‘혼돈의 미’를 보여준다. 일곱번째 장 「남성 수업 시대」는 미숙하고 파편적인 삶에 고민하는 한 젊은이가 사랑을 통해서 성숙하고 예술적으로 발전해나가는 과정을 그린 성장소설의 형식을 띠나, 전체 13개의 장은 시간적으로나 인과적으로 연결 고리가 미약하고 다양한 형식들이 혼재되어 전통적인 소설과 달리 비서사적 구조를 갖는다. 이러한 구조는 혼돈을 야기하는데, 이것은 의도된 것으로 슐레겔은 ‘혼돈의 미’야말로 최고의 아름다움이며 최고의 질서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아라베스크가 ‘혼돈의 미’를 갖도록 만드는 미학적 장치가 바로 알레고리이다. 슐레겔은 자신의 문학 이론을 펼치기 위해 여러 개념을 의인화하며, 자유롭고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루친데’는 그 자체로 낭만적 문학의 알레고리이다. 이 작품에서 슐레겔은 수많은 알레고리와 철학적인 성찰로 자신의 미학을 맘껏 실험한다.


“오, 그렇게 부러울 정도로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다니! ”
낭만적 사랑의 탄생-혁신적인 사랑에 대한 성찰

사랑은 그 자체로 영원히 새롭고 영원히 젊으면 좋겠지만, 사랑의 언어는 예전의 고전적인 풍속대로 자유롭고 대담하기를 바랍니다. 로마의 비가나 가장 위대한 국가의 가장 고귀한 자들보다 덜 정숙하고, 위대한 플라톤과 성스러운 사포보다 덜 이성적이기를 바랍니다. (51쪽)

『루친데』는 발표 당시 실험적인 형식보다는 사회적 관습에서 벗어난 파격적인 내용으로 더 많은 반발을 샀다. 율리우스와 루친데의 사랑이 회고적으로 묘사되는 이 작품에서 율리우스는 모든 것을 아우르는 낭만적인 사랑, 루친데와의 교제를 통해 얻은 세상과 사람들에 대한 통찰을 공유하는데, 그것은 기존의 관념을 뒤엎는 것이었다. 합리적 사고의 전통과 계몽주의적 진보를 중시하던 사회에서 슐레겔은 노력과 진보, 근면과 유용성을 배척하며 식물적인 삶, 무위, 게으름을 찬양(「게으름에 대한 전원시」)하는가 하면, 정신과 육체를 분리하는 오랜 이원론적 전통을 깨고 본능에 충실한 사랑, 관능적인 쾌락을 진정한 사랑의 요소라고 주장한다.
사랑은 도덕과 관습의 규제를 벗어나 자연스러워야 하며, 연인들 사이에서 우선적으로 추방되어야 할 것은 “얌전한 척하는 것”이다. 슐레겔은 전통적인 도덕심 때문에 진정한 “사랑의 불꽃”인 관능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는 “그릇된 수치심”을 비웃는다. 이성이 아니라 감성의 지배를 받으며, 수치심을 벗어던진 사랑은 자연 상태의 사랑이며 가장 자유로운 사랑이다.
『루친데』는 발표 당시 슐레겔과 이혼녀 도로테아의 관계와 연관되어 읽히며, 외설적인 작품이라고 비난받았으나, 유럽의 사랑과 결혼에 대한 담론에서 낭만적 사랑의 시초, 전형적 사례로 언급되는 작품이다. 낭만주의에 따르면 ‘예술’과 ‘올바른 방법의 헌신적 사랑’은 인간의 시적 측면을 발전시키는 데 도움이 되는데, 소설 『루친데』도 이에 기여하고자 했다.


현대를 선취한, “문학 혁명”의 선구자

『루친데』는 18세기 말에 낭만주의의 이상적인 모델을 구현하려 쓴 작품이지만, 아방가르드 · 메타픽션 · 포스트모더니즘 등 여러 가지 현대 문학의 특징을 선취하고 있다. 작품이 작품 자체와 서술방식, 형식에 대해 관찰하고 성찰하는 모습은 20세기에 나타난 메타픽션의 전형적인 모습이며, 장르의 경계를 없애고 다양한 형식들을 혼합하는 모습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서술 형식이다.
또한 슐레겔의 성과 사랑, 결혼, 성별에 대한 시각은 당시에는 부도덕하게 여겨질 만큼 파격적이었다. 루친데는 독립적이고 섹슈얼리티에 자유로운 태도를 지닌 해방적인 존재다. 뿐만 아니라 슐레겔은 이 작품에서 성 역할의 역전까지 주장하기도 했다.
오늘날의 젠더 관점에서 보면, 근본적으로 ‘여성-자연-수동성’ ‘남성-정신-적극성’의 전통적인 이분법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등 한계가 분명하지만, 남녀가 완전한 합일로 나아가기 위한 기본 조건으로 동등함을 요구하고, 계몽주의적 사회에서 굳어진 남성성과 여성성을 전도시키는 등 시대의 틀을 벗어나 “문학(혹은 문학을 통한) 혁명”을 시도한 기념비적인 작품이다.


■ 책 속으로

오, 그렇게 부러울 정도로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다니! 사랑하는 여인이여, 내가 때때로 그대에게서 저주스러운 의복을 찢어내어 아름다운 무질서 상태로 흩뿌렸듯이, 그대 또한 그러한 선입견을 벗어던지고 그릇된 수치심의 모든 찌꺼기를 버리십시오. 그리고 나의 삶을 담은 이 작은 소설이 그대에게는 너무 분방하게 보일지도 모르지만, 이것을 어린아이라고 생각하여 어머니와 같은 자애로운 마음으로 소설의 순진한 방종을 참아주시고 소설의 애무에 당신을 맡겨보십시오. (30쪽)

여인에게 얌전한 척하는 것보다 더 부자연스러운 것은 분명히 명백하게 없다고 나는 생각합니다. 그것은 어떤 내적인 분노 없이는 결코 생각할 수 없는 일종의 악습입니다. [……] 그것은 단지 겉모습일 뿐입니다. 사랑의 불꽃은 결코 끌 수 없습니다. 그리고 가장 깊은 잿더미 속에서도 불씨는 타고 있습니다. (46~47쪽)

진정한 쾌락과 사랑의 고귀한 복음을 전하라고 수호신이 나를 부추기던 불멸의 시간에도 나는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오, 게으름이여, 게으름이여! 그대는 순수와 감동으로 이루어진 생명의 공기로구나! 복된 자는 그대를 호흡하며, 그대를 소유하고 보호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그대 신성한 보석이여! 낙원에서 우리에게 내려와 남아 있는, 신을 닮은 유일한 파편이여.” (52쪽)

그대가 나만큼 달아올라 있는지 나는 느끼면 안 되나요? 오, 그대 심장의 고동 소리를 듣게 해주고 눈처럼 흰 가슴에 내 입술을 식히게 해주시오! [……] 나를 좀더 세게 안아줘요. 입맞춤에 대한 입맞춤을 해줘요. 아니, 더 이상의 입맞춤은 필요 없어요. 한 번의 영원한 입맞춤을 해줘요. 내 영혼을 모두 가져가고 당신의 영혼을 나에게 줘요! (64쪽)

“우리 둘 다 충분히 열정적입니다. 나는 열정 없이는 살고 싶지 않습니다. 자, 좀 봐요, 그래서 나는 질투와 화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정, 아름다운 교제, 감성, 격정 등 모든 것이 사랑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모든 것은 사랑 안에 있어야 하며, 하나의 요소가 다른 요소를 강화시키고 진정시키고 생명을 주고 고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74쪽)

그녀를 소유하는 것이 최고의 행복을 얻는 것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는 모든 것을 걸기로 결심했으며, 그녀 없이는 살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사회적 규범 등 모든 종류의 속박에 대한 최소한의 생각조차 혐오했다. (79쪽)

그리고 사랑하고 사랑받는 중에 갖게 되는 이런 사소한 갈등은 상대방에 대한 만족할 줄 모르는 열망 때문이 아니라면 어떻게 생기겠습니까? 이러한 열망이 없다면 사랑도 없습니다. 우리는 죽음에 이를 때까지 사랑하며 살 겁니다. 우리를 비로소 진실하고 완전한 인간으로 만드는 것이 사랑이고 삶 중의 삶이 사랑이라면, 삶과 인류가 그러하듯이 사랑 또한 분명히 갈등을 회피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랑의 평화도 오직 힘의 싸움을 겪은 다음에 나타납니다. (130쪽)

오늘 나는 사랑에 빠진 두 사람에 관하여 쓴 프랑스 책에서 다음과 같은 표현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서로에게 우주였다.”
단순히 과장해서 그냥 막 적은 것처럼 보이는 그 말이 우리 사이에서 글자 그대로 실현되었다는 생각에, 그것은 내 눈길을 확 사로잡았으며 감동을 주고 미소를 짓게 만들었습니다!
그것은 본래 프랑스인들의 정열을 감안하면 글자 그대로 진실입니다. 그들은 다른 모든 것에 대해서는 감각을 잃어버리기 때문에 상대방에게서 자신의 우주를 발견합니다. (135쪽)

내가 당신을 느낄 수 있다면 고통을 환영합니다! 연민이 고통스러우면 그것 때문에 내가 죽어도 좋습니다. (176쪽)

목차

■ 차례

루친데
서문
미숙한 자의 고백
율리우스가 루친데에게 보내는 편지
가장 아름다운 상황에 대한 디티람보스적 상상
어린 빌헬미네의 특성
뻔뻔함의 알레고리
게으름에 대한 전원시
신뢰와 농담
남성 수업 시대
변모
두 통의 편지
성찰
율리우스가 안토니오에게 보내는 편지
동경과 평온
상상의 희롱

단편 유고
농담 이야기—루친데가 율리우스에게 보내는 편지
우정의 본질에 대해서
마리아에게 보내는 편지
기도Guido의 죽음
율리아네

옮긴이 해설・소설 이론을 실천한 소설
작가 연보
기획의 말 

작가 소개

프리드리히 슐레겔 지음

바이마르 고전주의와 함께 독일의 가장 찬란한 문화적 시기를 대표하는 낭만주의의 초석을 놓은 문인이자 역사가, 철학자. 독일 하노버에서 개신교 목사이자 시인의 아들로 태어나 괴팅겐 대학교와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법학을 공부했으나, 친형 아우구스트 빌헬름 슐레겔의 영향으로 학자, 문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노발리스, 티크, 셸링, 카롤리네, 도로테아, 슐라이어마허 등과 낭만주의 문학운동을 이끌었으며, 1798년 형과 함께 독일 초기 낭만주의 운동의 기관지 『아테네움』 창간을 주도했다. 1799년에는 슐레겔이 남긴 유일한 소설이자, 낭만주의 문학 이론을 구현한 장편소설 『루친데』를 출간했다. 이 작품은 형식적으로 실험적일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 기존의 관습, 특히 사랑과 결혼에 대해 파격적인 시각을 보여주어 비난과 함께 논란의 중심에 섰다. 1803년 파리에서 잡지 『오이로파』를 창간했으며, 이후 문학과 철학을 강의했다.

1808년 가톨릭으로 개종한 뒤에는 오스트리아의 보수파 정치가 메테르니히의 측근이 되어 정치, 외교 분야에서 주로 활동했다. 1829년 드레스덴에서 강연 원고 집필 도중 쓰러져 영면에 들었다.

박상화 옮김

서강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귄터 그라스와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인창고등학교 교사, 서강대학교 강사, 경기대학교 겸임교수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독일 현대 소설의 경향』(공저) 등이, 옮긴 책으로 『유다의 재판』 『꼬마 수달 박사』 『초끈의 울림』 『카오스와 카오스의 질서』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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