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공간들의 전체 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입니다.
그것은 동시에 권력들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공간과 권력에 대한 푸코의 사유가 담긴 두 편의 선집
『권력과 공간』 『헤테로토피아』 출간!
권력과 공간에 대한 푸코의 사유가 담긴 텍스트 선집 『권력과 공간』이 또 다른 푸코 선집 『헤테로토피아』(2014년 초판 출간)의 개정판과 함께 ‘채석장 시리즈’로 동시 출간되었다. 푸코의 철학은 지리학, 건축학, 도시공학 등 다양한 공간 관련 연구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쳐왔다. 푸코가 공간에 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펼친 사상가였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다양한 연구 작업 속에서 부수적이고 산발적인 형태로 공간에 대한 독창적인 분석을 내놓았는데, 특히 ‘헤테로토피아’라는 개념을 논의하는 강의 원고들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헤테로토피아』에 담긴 이 텍스트들만으로는 공간에 대한 푸코의 시각과 접근 방식을 전체적으로 균형 있게 파악하기가 쉽지 않았다. 공간 문제를 둘러싼 푸코의 사유는 권력에 대한 사유와 맞물려 상당한 진폭을 그리며 운동했기에, 그 변화의 세세한 흔적을 잘 되짚어보지 않고 그의 언급들을 개별적으로만 분석한다면 그의 전체 철학의 맥락 안에서 다소 모순적인 입장을 드러내는 것으로 오해되거나 일종의 지적 일탈의 행보로 비춰질 수도 있다. 따라서 이번에 처음 소개되는 『권력과 공간』에는 공간을 두고 펼쳐진 푸코 사유의 전체 궤도를 그려보는 데 유용한 길잡이가 되어줄 여덟 편의 텍스트들을 담았다. 푸코 및 부르디외의 철학을 국내에 소개해온 이상길 교수가 텍스트를 선별하고 번역했다.
공간-권력에 대한 푸코의 사유의 궤적
푸코의 권력론에 대해서는 상당히 많은 연구가 수행되어왔지만, 푸코의 철학을 공간 인식의 차원에서 정리하는 작업은 드물었다. 그는 단일하고 정형화된 권력 이론을 구성하기보다 구체적인 권력 분석들, 그리고 그 과정 속에서 다양한 ‘이론화’의 시도만을 남겼는데, 이러한 태도는 공간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로 나타난다. 게다가 그의 공간 관련 논의는 권력에 대한 이론화와 역사 서술에 부수적인 형태로, 그나마도 간헐적으로만 이루어졌다. 때문에 푸코의 공간 인식과 그 변천의 경로를 탐색하는 일은 권력 이해의 진화 과정을 뒤쫓는 작업과 나란히 갈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는 푸코의 ‘공간-권력’론이라고 이름 붙일 법한, 공간과 권력에 대한 그의 고유한 시각을 암묵적으로 드러내는 글들을 소개한다.
1부 ‘권력이란 무엇인가’는 푸코가 자신의 권력 개념을 이론적으로 설명하는 텍스트 세 편을 담고 있다. 우리는 이를 통해 ‘권력의 미시물리학’이라는 푸코의 기획이 공간에 어떻게 접근하고자 했는지를 파악할 수 있다. 첫번째 글 「권력의 그물코」는 1976년 푸코가 리우데자네이루에서 했던 강연을 옮긴 것으로, 그는 주권, 규칙, 금지 등에 기초한 권력의 법적 개념화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권력을 긍정적인 메커니즘 속에서 분석하기 위한 참조점으로 『자본론』을 소환한다. 또한 근대 권력의 작용이 군대나 작업장, 학교 같은 공간을 매개로 어떻게 현현하는지 논한다. 두번째 글 「권력과 전략」은 1977년 철학자 자크 랑시에르와 가진 서면 인터뷰로, 권력 개념에 대해 이야기하며 구소련의 강제수용소 ‘굴라크’ 문제를 다룬다. 세번째 글 「권력에 관한 해명―몇 가지 비판에 대한 답변」은 1978년 푸코가 이탈리아 공산주의 철학자 마시모 카치아리의 비판에 대해 내놓은 글로, 『광기의 역사』 『감시와 처벌』 『지식의 의지』 같은 주저들에서 자신이 수행한 권력 분석이 어떤 원리에 따라 이루어졌으며, 어떤 개념적 특징을 갖는지 설명한다.
푸코가 의식적, 무의식적으로 드러낸
‘권력-공간’론의 형상
2부 ‘권력과 공간화’에는 푸코가 공간과 자신의 작업 사이의 관련성을 언급하거나 직접적으로 공간을 분석하는 텍스트 다섯 편을 담았다. 첫번째 글 「애티카 감옥에 대하여」는 1972년 미국의 애티카 감옥을 방문한 직후 가진 인터뷰이다. 이 인터뷰 몇 달 전 애티카 감옥에서는 수감자들의 봉기가 일어났고, 이들을 무력 진압하는 과정에서 재소자와 간수 수십 명이 사망하는 참극이 벌어졌다. 이 인터뷰에서 푸코는 감옥의 공간적 특성과 자본주의 사회의 노동력 생산을 위한 정치경제학적 기능을 지적하는 한편, 계급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두번째 글 「지리학에 관해 푸코에게 보내는 질문」은 1976년 마르크스주의적 지리학을 표방하는 학술지 『헤로도토스』에 실린 지리학자들과의 대담이다. 이 대담은 공간과 지리학에 대한 푸코의 인식을 집중적으로 탐문한다. 세번째 글 「『헤로도토스』에 보내는 푸코의 질문」은 앞선 대담이 있고 나서 얼마 뒤 푸코가 같은 잡지에 기고한 글로, 짧은 질문들로만 구성되어 있다. 이는 이전 대담의 내용과 맥을 같이하는 것으로, 그는 과학으로서의 지리학과 의료 지리학의 가능성 등에 관해 묻는다. 네번째 글 「권력의 눈」은 역사학자 미셸 페로, 언론인 장-피에르 바루와 가진 대담으로, 벤담의 『판옵티콘』 재간행본에 일종의 서문으로 수록되었다. 푸코는 『감시와 처벌』에서 판옵티콘을 규율권력의 범례로서 다룬 바 있는데, 여기서는 벤담의 기획이 갖는 역사적 의의를 자세하게 설명한다. 그는 18세기 이후 권력의 성격이 변화하며 공간이 첨예한 정치경제적 문제로 떠올랐다고 지적하면서, 공간의 역사는 권력의 역사와 다르지 않다고 주장한다. 마지막 글인 「18세기의 건강정치」는 『치료 기계―근대 병원의 기원』이라는 책의 개정판 서문에 실린 것이다. 이 글은 건강, 인구, 치안을 연결하는 18세기의 정치 과정 속에 병원의 공간적, 제도적, 기술적 재조직을 맥락화함으로써 건축의 역사를 확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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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실린 텍스트들은 푸코가 생전에 공식적으로 발표했으나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많은 논문, 인터뷰, 기고문 등을 사후에 한데 편집한 방대한 편저 『말과 글』 가운데서 선별한 것이다. 푸코는 책을 출판하고 나면 그에 관한 각종 대담, 토론, 인터뷰를 마다하지 않았고, 이러한 ‘말하기’는 그의 철학 활동을 특징짓는 하나의 독자적인 장르처럼 자리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옮긴이 이상길 교수가 들뢰즈의 말을 빌려 지적하듯, 푸코의 말은 “각 저서의 역사적 문제화를 현재적인 문제의 구성으로까지 확장”하는 기능을 수행하며 전체 저작의 “불가결한 부분”을 구성했다. 이러한 특징은 이론이 종종 ‘연장통’처럼 쓰이길 바랐던 푸코의 생각에도 잘 부합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푸코 논의의 현실적 맥락과 함의, 사유의 굴곡의 흔적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이 텍스트들은 우리가 ‘푸코라는 연장’을 우리의 지형 속에서 비판적으로 활용할 수 있게 해줄 것이다.
이 책에는 또한 푸코의 지적 여정을 되짚어보면서 권력과 공간에 대한 푸코의 사유의 궤적을 상세하게 정리하고 분석한 이상길 교수의 해제가 실려 있다. 권력을 개념화하려는 푸코의 문제의식이 학문 외적인 여러 실천과도 긴밀한 영향을 주고받으며 발전한 만큼, 이상길 교수는 푸코에게 영향을 미친 당대의 정치사회적 맥락에 대해서도 충실한 설명을 덧붙였다.
■ 책 속에서
정신분석학자들은 언제나 권력의 기의記意, 권력을 구성하는 핵심은 여전히 금지, 법, ‘아니오’라고 말하기, 나아가 ‘~해서는 안 된다’의 정식이라고 간주합니다. 그들에게 권력은 본질적으로 ‘~해서는 안 된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보기에 이것은─금방 다시 이야기할 테지만─권력에 대한 법적이고 형식적인 개념화로서, 완전히 불충분한 개념화입니다. 서구 사회에서 권력과 섹슈얼리티 간에 정립된 관계들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권력에 대한 또 다른 개념을 정교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권력 분석을 어떤 방향에서 더 잘 발전시킬 수 있는지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러한 분석은 단순히 권력에 대한 부정적이고 법적인 개념이 아닌, 권력의 테크놀로지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할 것입니다. (「권력의 그물코」, 10~11쪽)
감옥은 순전히 부정적인 배제 기능들로 환원되기에는 너무나 복잡한 조직입니다. 그 비용이나 중요성, 관리에 들어가는 수고나 정당화하기 위한 노력은 그것이 적극적인 기능들을 지녔음을 나타내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문제는 자본주의 사회가 형벌 제도로 하여금 어떤 역할을 수행하게 하는지, 목적은 무엇인지, 형벌과 배제의 이 모든 절차가 어떤 효과를 생산하는지 규명하는 것일 테지요. 경제 과정에서 그러한 절차가 차지하는 자리는 어디이고, 권력의 행사와 유지에서 그것의 중요성은 무엇인가? 계급투쟁에서 그것의 역할은 무엇인가? (「애티카 감옥에 관하여」, 96쪽)
우리는 종종 이런저런 정치 조직의 대표자들이 감옥 문제는 프롤레타리아트 갈등의 일부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을 듣곤 합니다. 거기엔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번째는 경찰 및 법과 지속적으로 맞닥뜨리는 노동 계급의 주변부 집단은 대부분 공장 밖에 있는 사람들로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실업이 자발적이든 그렇지 않든, 부르주아 사회에 대한 그들의 대립 형식은 시위라든지 정치적으로 조직된 투쟁 또는 파업 같은 직업적·경제적 압력으로 나타나지 않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부르주아 계급이 때로 노동자들에 맞서서 이 주변부 인구집단을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이 주변인들은 임시 노동력이 되거나, 심지어 경찰에 의해 동원되기도 합니다. 세번째 이유는 프롤레타리아트가 도덕성과 합법성, 절도와 범죄와 관련하여 부르주아 이데올로기에 완전히 물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애티카 감옥에 관하여」, 102~103쪽)
오랜 세월 동안 지배적인 것이 되어버린 공간에 대한 평가절하를 비판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평가절하는 베르그손Henri Bergson과 함께, 아니면 그 이전부터 시작되었을까요? 공간은 죽어 있고 굳어 있고 움직이지 않고 변증법적이지 않은 데 반해, 시간은 풍부하고 비옥하고 살아 있고 변증법적이라는 식의 논리 말입니다. 공간적 용어들을 쓰면 어떤 이들은 반역사적이라는 인상을 받는 듯합니다. 그들은 역사를 진화, 살아 있는 연속체, 유기적 발전, 의식의 진보 또는 실존의 기투projet 같은 낡은 형태들과 혼동합니다. 만일 누군가 공간의 용어들로 이야기한다면 그는 마치 시간의 중요성에 반대하는 사람 취급을 받습니다. 멍청이들이 말하듯, ‘역사를 부정하는’ 사람, ‘기술관료’가 되어버리는 것이죠. (「지리학에 관해 푸코에게 보내는 질문」, 125쪽)
판옵티즘이 국가기구들에 의해 징발당했다기보다는, 기구들이 국지적이고 분산된 일종의 작은 판옵티즘들에 의존하고 있었던 셈입니다. 따라서 권력의 메커니즘을 복잡하고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포착하기 위해서는 국가기구들의 분석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권력을 국가기구에만 위치 짓고서, 그것을 한 계급이 다른 계급에 대해 행사하는 유일무이하고 중차대한 특권적 도구라도 되는 것처럼 바라보는 도식적 사고─더욱이 정작 마르크스에게서는 발견할 수 없는─를 피해야 합니다. 실제로 권력의 행사는 훨씬 더 멀리까지 이루어지고, 훨씬 더 섬세한 경로를 거쳐 가며, 훨씬 더 모호하고 불투명합니다. 사실상 각각의 개별자가 일정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며, 이러한 제한 속에서 권력을 실어 나르기 때문입니다. 권력은 생산 관계를 재생산하는 하나의 기능만 수행하는 게 아닙니다. 지배의 네트워크와 착취의 회로는 서로 간섭하고 교차하고 또 의지하지만, 양자가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지리학에 관해 푸코에게 보내는 질문」, 127~28쪽)
거대한 지정학적 전략들에서 정치경제학적 식민지 이주를 거쳐 주거지, 제도적 건축, 교실 혹은 병원 조직에 이르는 작은 전술들까지, 우리는 공간들의 전체 역사를 다시 써야 할 것입니다─그것은 동시에 권력들의 역사이기도 합니다. 공간의 문제가 역사적·정치적 문제로 등장하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렸는지 보면 그저 놀라울 뿐입니다. 지금까지 공간은 자연적인 차원으로, 달리 말해 주어진 것, 원초적 결정요인, 물리적 지리, 그러니까 역사 이전의 층위로 여겨지거나, 그러지 않으면 거주 장소 또는 특정한 민족, 문화, 언어, 국가의 연장으로서만 개념화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사람들은 그것을 땅으로 또는 공기로 분석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기층이나 경계였습니다. 마르크 블로크Marc Bloch와 페르낭 브로델Fernand Braudel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농촌 공간 혹은 해양 공간의 역사가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단순히 공간이 역사를 미리 결정하고, 역사는 다시 공간을 만들며 그 안에 침전한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블로크나 브로델 식의] 그러한 역사쓰기를 뒤따라야 합니다. 공간적인 뿌리내림은 구체적인 연구가 필요한 정치경제학적 형식입니다. (「권력의 눈」, 146~47쪽)
벤담은 이 모든 것인 동시에 그 정반대이기도 하지요. 그는 가시성의 문제를 제기하지만, 지배하며 감시하는 시선을 중심으로 철저하게 조직된 가시성을 구상했습니다. 그는 엄격한 동시에 면밀한 권력의 수립에 이바지하는 보편적 가시성의 기획을 작동시켰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어떤 의미로는 혁명의 서정성이라고도 할 만한 거대한 루소적 테마에 벤담의 강박관념이었던 ‘모든 것을 바라보는omniregardant’ 권력 행사의 기술적 발상이 접속했습니다. 루소의 서정성과 벤담의 강박관념, 이 둘은 합쳐지고, 하나의 전체로서 작동합니다. (「권력의 눈」, 153쪽)
푸코는 자신을 담론의 전장에서 장애물들을 폭파시키고 전진할 수 있게 해주는 폭약 전문가에 비유한 바 있다. 한데 그에 따르면, “폭약 전문가는 우선 지질학자이다.” 적절한 공격을 위해서라도 지식의 지형과 습곡과 단층을 들여다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푸코는 요새가 어떻게 구축되어 있는지, 매복이나 공격에 유리한 지세와 기복은 어디인지 면밀하게 조사하며, 어느 곳이 파 들어가기에 좋은지, 어느 부분이 견고하게 버틸지 암중모색한다. 고고학이나 계보학 같은 방법은 바로 어떤 공격이 파괴에 효과적일지를 판단하기 위한 전략의 다른 이름이다. 이처럼 그는 지식을 끊임없이 공간, 지형에 비유하며 분석하고, 자신의 작업이 수행해야 할 역할 역시 그러한 은유들을 통해 이해했다. 결국 푸코에게 권력-지식은 역사적 분석의 대상이자 정치적 저항의 대상으로서, 또 다른 의미의 권력-공간이었던 셈이다. (「옮긴이의 말」, 289~90쪽)
■ 차례
1부 권력이란 무엇인가
권력의 그물코
권력과 전략
권력에 관한 해명─몇 가지 비판에 대한 답변
2부 권력의 공간화
애티카 감옥에 관하여
지리학에 관해 푸코에게 보내는 질문
『헤로도토스』에 보내는 푸코의 질문
권력의 눈
18세기의 건강정치
옮긴이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