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우다영 소설집

우다영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12월 12일 | ISBN 9788932042039

사양 변형판 124x188 · 344쪽 | 가격 16,000원

책소개

“나는 나를 들여다보는 것만으로도 세상의 모든 것을 볼 수 있었다”

SF어워드 우수상 수상작 「긴 예지」 수록
미지의 미래로 향하는 작가, 우다영 신작 소설집

깊은 밤 깨어나는 요람의 기억
경계 너머에서 밝아오는 아름답고 참혹한 진실

지적이고 환상적이다. 사유를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우주처럼 펼친다. 우다영은 예지처럼 명백한 세계의 종말을 직시한다. 우리가 인과로 이어진 큰 생명의 공동체임을 깨닫기를 소망하며. _김보영(소설가)

세상의 비밀을 알 것만 같은 인물은 온갖 질문을 받지만 손쉬운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일명 묵비권 소설이랄까. 세상을 더듬는 자는 타자를 들이는 데 필요한 것이 바로 그 답답함이라는 사실을 따뜻하게 이해시킨다. _문보영(시인)

몽환과 영원의 세계로 독자를 데려가는 우다영의 세번째 소설집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가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첫 수록작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로 시작해 표제작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로 끝을 맺는 다섯 편의 작품은 그 관념을 서서히 확장하며 우다영이 직조한 세계의 타래를 조금씩 펼쳐놓는다. 2023 SF어워드 우수상 수상작 「긴 예지」, ‘이 계절의 소설’(2020년 가을) 선정작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등 미지의 세계를 예고한 바 있는 수작을 함께 엮었다.
“당신과 내가 이토록 타자이며, 이토록 하나라는 사실”(‘작가의 말’)을 직시하며 씌어진 이번 소설집은 ‘나’와 ‘너’ 사이에서 탄생하는 환상적인 이야기를 선보인다. 두번째 소설집 『앨리스 앨리스 하고 부르면』(문학과지성사, 2020)을 유심히 읽은 독자라면 이번 소설집의 제목이 낯익을지도 모른다. “영화에 빠진 너의 얼굴은 아무 표정 없는 얼굴 무방비한 얼굴 관찰자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얼굴 그 얼굴에 천천히 미소가 떠올랐으면.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전작의 ‘작가의 말’에 남겼던 의미심장한 암시 끝에 도달한 얼굴이 여기에 있다. 제발트의 소설 속 그림에 담긴 글에서 따온 이 제목은 마치 더 어두운 밤처럼 끝없는 이야기의 미로로 우리를 초대한다.
우다영 세계를 따라 걷고 싶은 독자라면 ‘찢어진 책 이론’에 따라 이 소설집을 읽어보길 권한다. 수록작 「긴 예지」에 등장하는 이 개념에 의하면, “한 권의 책을 제대로 읽어내는 방법은 그 안의 활자를 차근차근 읽어나가는 것이 아니라, 책을 둘로 찢어 양쪽이 어떤 패턴으로 겹쳐지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소설 속 무작위한 사건과 불확실한 우연이 모종의 질서를 형성한다는 사실을 인지할 때, 당신이 읽고 있는 이야기는 다시 시작된다.


“인연을 반복하기 위해 생이 존재하는 것 같아”
끝없이 반복되는 무수한 생의 무수한 나

이번 소설집에는 나와 타자의 경계를 가시화하는 인물이 자주 등장한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의 ‘알파’와 ‘오메가’는 한 몸으로 태어나 트윈으로 분리된 후 18세 생일에 성인식을 치르며 다시 하나가 된다. 소설의 화자인 ‘나’(알파)는 오메가를 만나 서로의 존재를 부정하고 미워하다가 끝내 어떤 이해에 이른다. “그 애에 대해 생각하는 건 곧 네 자신에 대해 생각하는 것과 같잖니”라는 할머니의 말처럼 자신들이 결국 서로에게 속해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은 이처럼 경계 없는 ‘나’들이 모인 거대한 세계를 다루는 작품이다. 남태평양의 사모아제도에서 ‘아즈깔’이라 이름 붙은 식물이 발견된다. 이 풀의 독성에 감염되거나 전염된 이들은 과거와 미래의 생을 기억하게 된다. 무수한 생의 무수한 인과를 경험한 각성자들은 자기 윤리와 타자 윤리가 뒤섞일 때 인류의 선의지가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보여준다.
작가의 첫 SF소설 「긴 예지」는 종말의 미래를 명백히 알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막고자 하는 예지자들을 등장시킨다. 예지 인공지능 프로젝트의 책임자 ‘도경’은 불벼락과 물벼락을 피해 더 많은 볼을 터뜨려야 하는 증강현실 게임 〈볼볼볼〉을 통해 뛰어난 예지자들을 선별한다. 베이비시터로 일하는 주인공 ‘효주’는 자신이 돌보던 쌍둥이 자매의 ‘솔이’와 함께 미래를 바꿀 만큼 강력한 예지를 만들기 위해 설계된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다. 그리고 예지 인공지능 ‘레마’의 시뮬레이션에 접속해 무수한 시공간을 관통하는 시선, 즉 신의 존재를 실감한다.


“세상을 구원하는 거창한 일과 저는 어울리지 않아요”
한 아이를 구하고 싶다는 놀라운 마음

“한 아이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 그런 강하고 놀라운 마음이 사람을 찾아올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요? 이 무질서한 세상에 그런 질서정연한 선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요.”
「긴 예지」

소설 속 인물들은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나 지구의 종말처럼 크고 작은 위기를 맞이한다. 그때마다 이들을 구하는 것은 타인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다. 「긴 예지」의 ‘효주’가 무기력하게 종말을 맞이하는 대신 위험을 무릅쓰고 예지 인공지능 ‘레마’에 접속한 것은 ‘솔이’와 ‘도경’을 구하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다.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에서 ‘나’와 ‘원호’의 영혼은 ‘둘은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패턴으로 엮여 있다. 수없이 반복되는 생에서 두 사람이 서로를 사랑한 단 한 번의 순간은 그들을 곤경에 빠뜨리려는 아이를 구하겠다고 마음먹을 때 일어난다.
「기도는 기적의 일부」는 이러한 마음이 얼마나 강한 힘을 지니고 있는지 말하는 작품이다. 메시아 ‘유리’는 어릴 적 수해 지역에서 구조된다. 집중호우로 인해 지하 주차장에 갇힌 이들은 아기인 유리를 위해 휴대폰 플래시 불빛을 비추며 서로를 독려한다. 유리의 신비한 능력은 바다에 유출된 기름을 단숨에 해치운 사건을 통해 세상에 알려진다. 사람들의 마음을 모으는 데서 출발했지만 점점 더 큰 기적을 필요로 하는 유리의 행보는 타인을 위하는 선량한 마음이 끝내 희망으로 남을 수 있는지 질문한다.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의 ‘혁명가’ 또한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존재다. 소설 속 ‘요람 인류’는 감마선 폭발로 인한 지구의 종말을 앞두고 새로운 위성으로 이주하기 전까지 자생 가능한 캡슐 안에서 살아가는 세대이다. 이들은 시스템 매기 안에서 영화 매체를 활용해 허구의 집단의식을 유지한다. 시스템 매기 안에 살다가 바깥 세계로 나간 ‘승용’은 어릴 적 동경하던 영화감독 ‘혜경’에게 편지를 보내 시스템 매기가 감추고 있는 진실을 알린다. 승용과 같은 혁명가들은 ‘세계를 의심하고 세계를 부순 자’로 불리지만, 그들이 나아간 세계가 과연 진짜인지 소설은 알려주지 않는다.


“나는 내가 이미 알고 있는 사랑에 놀라움을 느꼈다”
겹겹이 쌓인 시선이 가닿을 단 하나의 미래

아아, 결국 바이러스였을까. 혜경은 장난스레 생각하며 자신을 둘러싼 개인 스페이스를 흐린 눈으로 훑었다. 네 개의 벽과 바닥과 천장. 평생 머물던 방이지만 어쩐지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벽 너머의 세계가 존재함을 이미 상상해버렸기 때문이었다. 혜경은 차라리 눈을 감기로 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억 속에 없는 까만 개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이 책은 혜경이 승용의 편지에 언급된 ‘까만 개’를 생각하는 장면에서 끝난다. 혜경은 까만 개에 대한 어떠한 사실도 기억하지 못하지만 승용이 만들어낸 이미지에 매혹된다. 승용에 의해 자신이 갖고 있지 않던 기억을 갖게 된 혜경은 더 이상 편지를 읽기 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기억은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에서 ‘알파’와 ‘오메가’의 성체에 온전하게 이전되는 유일한 요소다. 트윈의 경험, 생각, 지식은 성인식을 거치며 하나의 자아로 합쳐진다. 시작에서 끝으로, 끝에서 시작으로 연결되는 이 순환 세계는 나를 구성하는 요소가 오롯이 나에게서 비롯한 것이 아니라면 고유한 나 자신 또한 존재할 수 없음을 상기하며 개인에서 세계로 나아간다.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에서 ‘알파’와 ‘오메가’의 성인식은 잠든 사이에 이뤄진다. 알파와 오메가와 하나가 된 ‘나’는 여느 날처럼 할머니와 차를 마시며 친숙한 사랑을 느낀다.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에서 ‘나’가 각성하는 순간은 어느 날 아침 눈을 떴을 때 갑자기 찾아온다. ‘나’는 눈을 뜨고 원호를 마주한 후, “천천히 창가로 다가가 드리워진 커튼을 열고 오늘의 세상을 원호에게 보여준다”. 소설의 첫 장면에서 원호가 반대로 커튼을 걷어 아침이 밝아온 세상을 보여주었다는 점을 떠올리면, 이는 ‘나’가 이미 익숙하게 알고 있는 사랑의 방식이다. 밤사이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일어난 사건들은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모두가 보고 싶은 것을 보나니”(「기도는 기적의 일부」). 우다영이 펼쳐 보인 신비하고 아름다운 우주에서 어떤 조각을 발견할지는 오롯이 독자의 몫이다.


■ 책 속으로

“다음 날 비어 있는 미술실로 들어가 팔레트나이프를 두고 나왔어. 모든 것이 감쪽같이 제자리로 돌아갔지. 집으로 돌아왔을 때 선생님이 선물한 새 팔레트나이프가 저 책상 위에 놓여 있었어. 내가 훔친 것과 크기도 모양도 똑같은 것이었지. 그 칼을 가만히 보고 있는데 순간 소름이 끼쳤어. 나한테 일어난 일을 그제야 이해한 거야. 나는 어쩌면 평생 훔친 칼을 품고 살아가야 할지도 몰랐던 거야. 그런데 이제 내 앞에는 선물받은 칼만이 남아 있었지. 나는 선생님이 나를 용서하는 동시에 구해주었다는 걸 알았어.”
“그거 정말 놀라운 이야기다.”
“그 기억을 떠올리면 마음이 활짝 열리는 기분이야. 나를 따라오는 한 줄기 빛이 있는 느낌.”
“정말 그래.”
“그러니까……”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어쩐지 하나가 된 영혼의 끝에 시간도 공간도 사라지고 우리 모두가 다 사라진대도 괜찮을 것 같아. 무섭지 않을 것 같아.”
“왜?”
“누군가를 만나고 싶어서 첫번째 영혼이 분리될 테니까. 아주 작은 차이로 틀어진 나와 너가 생기면 다시 세상이 시작될 테니까. 다시 시간이 흐르고 세계가 존재하고 나는 너를 궁금해하고. 그렇게 아무런 의미 없이 반복하기 위한 반복을 시작할 테니까. 아마도 태초에 영혼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그건 맞지만…… 그뿐이에요. 제가 원하는 건 딱 거기까지라고요. 이곳에 와서 더 분명하게 알았어요. 세상을 구원하는 거창한 일과 저는 어울리지 않아요.”
도경은 이상하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이고 효주를 쳐다봤다. 효주는 그 시선을 피하지 않고 받아냈다. 도경이 말했다.
“한 아이를 구하고 싶다는 마음. 그런 강하고 놀라운 마음이 사람을 찾아올 확률은 몇 퍼센트일까요? 이 무질서한 세상에 그런 질서정연한 선함이 드러나는 순간이요.” 「긴 예지」

사람들은 어둠 때문에 아기가 울지 않도록 작은 빛을 모아 한곳을 비춰주었다. 빛 속의 아기가 이따금 만세하듯 두 팔을 번쩍 들어 올리면 비명 같은 환호가 터졌다. 아기는 그 반응이 재미있다는 듯이 지치지도 않고 계속해서 팔을 뻗었다.
더 높이.
더 오래.
아기는 꽉 막힌 하늘을 향해 무언가를 호소하듯, 혹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듯 두 팔을 들어 올렸다. 작은 두 손바닥과 열 손가락이 희미한 빛을 모조리 흡수하며 하얗고 기이하게 빛났다. 어느 순간 어둠 속에서 누군가 신을 찾기 시작했고 누군가는 울음을 터뜨렸다. 「기도는 기적의 일부」

결국 세상에 남는 것은 무엇입니까. 매기일까요? 미래에서 다시 반복될 과거의 유령들일까요? 저는 고뇌 끝에 이런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우리는 긴 꿈을 꾸고 다시 현실에서 깨어날 인류의 영감과 무의식으로 남겠구나. 그들이 찬란한 문명을 만들고 도시를 건설하고 경이로운 예술작품을 남길 때 막연하게 느낄 끌림과 기시감으로 다시 태어나겠구나. 그 씨앗이 바로 우리의 역할이구나. 혜경. 당신을 사랑하기 위해 시작된 탐구가 이토록 아름답고 참혹한 진실에 이른 것입니다.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 추천의 말

독보적이다. 지적이고 환상적이다. 사유를 한계까지 밀어붙이고 우주처럼 펼친다. 우다영은 예지처럼 명백한 세계의 종말을 직시한다. 마치 서술 이면의 화자를 별안간 자각하듯이, 세계가 무수한 내 생들의 집합체임을 각성하며, 이 바스러지는 세계를 어린 날 분리된 제 분신처럼 공감한다. 그러므로 세계의 사멸은 제 사멸이나 다름없다. 그러기에 우다영은 개인의 구원을 꿈꾸듯 세계의 구원을 바라며, 개인의 회복을 빌듯이 세계의 회복을 기원한다. 우리가 인과로 이어진 큰 생명의 공동체임을 깨닫기를 소망하며. _김보영(소설가)

아이오와 횡단보도에는 신기한 전봇대가 있다. 화살표가 그려진 동그란 버튼을 누르면 wait! wait! 하고 소리를 꽥 지르는데 그게 재미있어서 자꾸 누르게 된다. 나는 이 전봇대를 기다려 전봇대라고 부르는데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를 읽다 보면 이 전봇대가 떠오른다. 세상의 비밀을 알 것만 같은 인물은 온갖 질문을 받지만 손쉬운 대답을 내놓지 않는다. 일명 묵비권 소설이랄까. 그러나 이는 모르는 상태를 유지하기 위한 의지로서의 묵비권이기도 하다. 그는 타자를 경유하는 방식으로 세상을 더듬는 자인데 ‘타자를 방 안으로 들이는 데 더 조심스럽고 차근차근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그 답답함이라는 것을 따뜻하게 이해시킨다. 세상을 비튼 SF의 상상력과 우화 같기도 한 이 이야기들은 조금 다른 방식으로 세상을 부수고 세상을 조사하고 밖으로 나간다. 이제 건너도 될까? 기다려. 전봇대가 말한다. 그러나 언젠가 신호등 불빛은 켜지지. _문보영(시인)

목차

■ 차례

우리 사이에 칼이 있었네
태초의 선함에 따르면
긴 예지
기도는 기적의 일부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작가의 말

작가 소개

우다영 지음

199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2014년 『세계의 문학』 신인상으로 등단했다.
소설집으로 『밤의 징조와 연인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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