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호를 펴내며
모두의 언어로 만들어지는 세계에서
『슈퍼 히어로의 똥 닦는 법』(안영은 글·최미란 그림, 책읽는곰, 2018)이라는 그림책에는 파괴적인 괴물들과 싸우는 어린 슈퍼 히어로가 나온다. 히어로의 핵심 기술은 하늘을 나는 망토와 몸을 투명하게 하는 ‘슈퍼 파워 변신술’이다. 괴물들이 공격해 오자 히어로는 변신술을 사용하여 공격을 피하려 한다. 하지만 괴물들은 히어로의 위치를 정확히 찾아 쫓아온다. 히어로의 몸은 투명해졌지만 팬티에 묻은 똥 자국만은 투명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똥 자국은 냄새마저 풍겨서, 히어로는 괴물들과 싸우지도 못하고 시민들에게도 손가락질을 받는다. 슈퍼 히어로가 똥 닦는 법을 모른다는 사실은 빅뉴스가 되어 온 도시에 퍼지고, 놀림거리가 된 히어로는 도망쳐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숨어 다닌다.
이 그림책의 결말은 밝고 행복하다. 위기에 봉착한 히어로는 ‘똥 잘 닦는 권법’을 체득한 도사를 찾아 휴지를 몇 칸 써야 하는지, 자세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닦는 방향은 어때야 하는지를 배우고, 마침내 똥이 묻지 않은 ‘울트라 팬티’를 입고 다시 괴물들과 맞서 싸운다. 더 이상 손가락질받지 않게 된 그는 지구를 지킬 뿐 아니라 똥 닦는 법을 모르는 아이들을 도우며 아이들의 안녕을 지킨다. 이 그림책은 유아 부문 베스트셀러 가운데 하나이고, 가족·아동용 뮤지컬로 만들어져 수도권 지역에서 공연되고 있다.
배변 교육에서 깨끗하게 뒤처리하는 훈련은 아주 중요하다. 아이들은 보이지 않는 곳을 닦는 일에 익숙하지 않고, 어른들이 대신 해주는 만큼 능숙하게 해내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린다. 그 지난한 과정을 재미있고 유쾌한 것으로 인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어린 슈퍼 히어로의 성장 서사는 효과적인 교육 방법의 예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 그림책이 가르쳐주는 것은 똥 닦는 법에 그치지 않는 것 같다. 똥 닦는 법을 교육하는 과정은 그 서사와 이미지 양면에서 수치심도 교육하기 때문이다. 온 도시의 전광판과 종이 매체에 얼굴 사진과 함께 ‘충격’적이고 예외적인 대상으로 전시되는 사태 속에서, 어린 히어로는 자신이 무언가를 할 수 없거나 할 줄 모른다는 사실이 조롱거리가 되고 치명적인 약점이 된다는 것을 배운다. 투명해지지 못하는 ‘누런 얼룩’과 벅벅 긁게 되는 간지러움, 괴물들이 따라붙는 악취와 같이 수치는 이미 몸의 상태이자 존재 자체이며, 성장이란 그런 상태로부터 멀어져 사람들 사이에 효과적으로 녹아드는 존재가 되는 것을 의미한다. 기술적인 방법에 대한 배움은 그렇게 자신을 더럽거나 부족한 것으로 인식하는 시선에 대한 배움을 전제한다. 어린 히어로가 잃어버렸다 되찾는 ‘슈퍼 파워 변신술’은 그런 의미에서 영웅적 기술이기보다 ‘똥 묻지 않아야’ 하는 영웅의 조건이다.
아이들에게 필요한 삶의 방법을 가르쳐주는 그림책의 문법은 사람의 삶을 켜켜이 이루고 있는 배움의 흔적을 돌아보게 만든다. 정보와 지식, 지혜를 얻어가는 과정은 내가 나를 승인하거나 부인하는 방식, 타인과 세계를 해석하고 판정하는 틀을 구성해가는 과정과 겹쳐 있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영화 「괴물」(2023)은 학교라는 배움의 공간을 중심으로 아이와 교사, 학부모가 서로를 판단하고 스스로를 정체화하는 시선을 무수히 교차시키는 가운데, 언어가 옮겨 다니는 방식을 중요하게 들여다본다. 누군가를 놀림거리로, 혹은 문제적인 인물로 틀 짓는 언어들은 소문처럼 가볍게 떠다니며 입에서 입으로, 글에서 글로, 신체에서 신체로 연결되어, 어른과 아이, 아이와 아이, 어른과 어른 사이 관계 전체를 작동시킨다. 그 언어의 힘은 아이와 어른 모두가 소문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는 방법을 지극히 닮은 방식으로 습득하게 한다. 누군가 자신을 공격해 오면 온몸에 힘을 빼고 축 늘어져버리는 아이와 종이에 적힌 말만 반복하는 교장 선생님은, 서로를 위태롭게 하는 동시에 하나의 폐쇄된 법칙 안을 맴돈다. 그들은 결국 자기 자신을 포함한 누군가를 ‘괴물’로 세우는 ‘인간’의 문법에 대하여 서로 다르지 않은 배움을 공유한다.
동일한 시간을 학부모, 선생님, 아이의 입장에서 차례로 보여주는 영화의 구성에서 중요한 것은, 그들 중 누가 괴물인지를 판별하거나 결국 모두가 괴물이라는 걸 인정하는 선을 넘어서는 일이다. 무언가를 ‘괴물’로 판정해내는 시선이 어떻게 사회 내에서 문법으로 작동하게 되고, 그 문법이 얼마나 무심하고 가뿐하게 체화되고 확산되는지를 읽어낼 때, ‘괴물’은 ‘누구’가 아니라 배움이 이루어지는 켜켜의 시공간 전체이다. 선율이 되지 않는 금관악기 소리나 아이들이 내는 기적(汽笛) 소리, 태풍을 가로질러 울려 퍼지는 이름 부르는 소리 같은 것은 그러한 체계 내에서 어떤 현재를, 미래를 볼 수 있게 하는가. 태풍이 지나간 자리에서 아이들이 자신을 어떻게 바라보고 대하며 언어의 세계를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를 묻는 일은 ‘수업’이 아닌 자리에서 더 쉬이 유통되는 언어들의 복판에서 내내 중요해 보인다. 각자의 작은 자리에서 ‘나 있어’라는 표지판을 돌려놓는 모든 존재에 대해서 그렇다.
지금 이곳의 매체 언어들은 다양한 감각은 물론 서로 다른 차원을 가로지르고 교차하며 자신을 드러내고 타인을 마주하게 한다. 새로운 조합과 창발을 향해 한껏 열려 있는 듯 보이는 이 언어의 복판에서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특정 이미지를, 아이디어를, 위치감각을 심어주는 전방위적이고 무차별적인 전염의 방법을 수행하고 있기도 하다. 이때 전염은 동질해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영향을 줄지 가늠할 수 없는 무언가를 전달해버린다는 의미에서 실제 적인 위협과 개별 면역 기능의 강화, 집단면역의 가능성과 격리 및 통제의 통치성, 그리고 발전과 생존의 서사를 동시에 작동시키고, 위기감과 안전감의 짝패를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런 방식으로 세계는 지속되고 시간은 연결되며, 그 안에서 무언가는 변화하고 무언가는 변화하지 않는다.
이때 변하는 일도 변하지 않는 일도 ‘자연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충돌과 대화와 선택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할 때, 변화를 이해하거나 기도하는 일은 우리가 무엇을 배우고 배운 것과 어떻게 길항하며 어떤 결정을 향해 나아가는지를 헤아려보는 일과 멀리 있지 않을 것이다. 배움의 방향은 때로 시간에 저항하거나 새로운 시간성을 발명해내며, 그것은 폭발적이고 관성적인 전염력에 대하여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시선과 언어를 전제로 한다.
이번 『문학과사회 하이픈』은 ‘세대’와 ‘배움’이라는 두 키워드를 연결하여 그러한 질문의 언어를 한자리에 모으고자 했다. 지금 이곳에서 구성되는 경험의 맥락이 우리로 하여금 무엇을 배우게 하는지를 시간적 특수성의 측면에서 살피고 , 동시에 배움이라는 것이 어떤 방식으로 딱딱한 시간과 관계되는가를 나란히 고민했다. 두 고민은 서로 상충되는 것이기보다, 세계의 유연성과 가변성을 믿고 그 믿음을 구체화하고자 하는 마음으로부터 비롯되는 서로 다른 시선이었다. 영화, 미술, 문학, 번역 등 여러 장을 가로질러 활동하는 필자들은 언어의 강력한 흡인력과 ‘배움’의 상관성에 의견을 같이하면서, 그러한 흡인력이 갖는 현재적 의미와 전망을 다양한 초점에서 판단하여 보여주었다.
이희우의 글은 최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가로지르는 언어들이 서로 분리되지 않은 채 ‘매력’이라는 공통의 자본을 중심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하는 데에서 출발한다. 이전에 제시한 바 있는 ‘매력의 경제학’을 ‘배움’의 측면에서 세공하면서, 이 글은 매력 경제에서 배움이란 주체적 판단과 선택을 통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재현되는 기호나 장르 문법에 매혹되어버리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고 말한다. 매혹이란 거리를 전제하지 않으므로, 오늘의 배움을 돌아보기 위해 필요한 것은 주체성에 대한 신뢰를 기반으로 하는 ‘비판’이 아니라, 매혹을 통한 배움을 이해하는 ‘이론’을 만들고 배움의 메커니즘 자체를 새롭게 언어화하면서 매력 경제로 환원되지 않는 배움의 방법을 전망해가는 일이다. 새로운 미학을 통해 지금을 정확히 이해하는 데에서 다시 시작하고자 하는 이 글에서, ‘배움’이라는 단어는 첨예한 시의성을 갖는다.
강동호의 글은 ‘문학의 경제학’을 제안하면서 배움이 주체적으로 이루어지는 하나의 방법이자 장소로서 문학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에 주목한다. ‘문학성’이라는 개념이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온 궤적의 연장선에서, 여전히 문학을 독립적인 분야나 스타일, 방법으로 논의할 수 있게 하는 최소한의 ‘문학’이 있음을 강조하면서, 그의 글은 이 추상적 ‘가치’를 구체적으로 해명해보고자 경제학의 방법을 도입한다. 작가와 독자, 특히 독자의 측면에서 문학의 사용가치를 논할 때, ‘문학적 경험’은 주체의 상실과 자기 변형의 계기 혹은 현장으로서 그 자체로 특수한 ‘배움’의 방법이 된다. 그러한 ‘배움’의 가치는 지금 이곳에서 문학이 놓여 있는 위치의 특성을 반영하는 동시에, 문학이라는 이름의 보편을 겨냥하는 것으로 그려진다. 문학은 일종의 예외적 경제체제로서 세계를 끝내 폐쇄되지 않게 하며, 세계 전체의 배움의 계기로 존재한다.
황종연의 글은 김애란과 백수린의 소설을 나란히 읽으면서, ‘일상생활’을 사유하고 재현하는 시대적이거나 세대적인 방식에 대해 이야기한다. 생활 저변을 관통하여 합리성이라는 규칙을 세우고 그것이 일상을 통제하도록 하는 방식이나, 상품 소비를 통해 일상에 대한 감각과 더불어 이상적 일상에 대한 상을 보존하는 방식에서 그의 글은 ‘현대성’이라는 특수가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살핀다. 이 글에서 핵심이 되는 것은 그러한 ‘현대적’ 일상의 리듬이 정지하게 되는 순간이 김애란과 백수린의 소설 모두에서 그려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 정지의 순간은 일상을 고착화하는 논법에서 벗어나 자기 갱신을 욕망하게 되는 일종의 결절점이다. 배움은 그런 변화의 순간 가능해지며, 문학의 ‘빛’은 그러한 “실존적 변이”와 긴밀히 닿아 있다.
강덕구와 한대호는 영화라는 매체가 가져온 교육적 효과가 있었음을 기억하면서, “동시대 영화에서 배울 수 없”게 된 것이 무엇인가를 살핀다. 강덕구는 영화사가 구성되고 그 역사성 안에서 ‘영화’가 교육되어온 방식이 한 세대가 공유하는 취향의 문제와 긴밀히 관계되어 있었음에 주목한다. 그 연장선상에서 그는 영화의 가치와 역사성을 읽어내는 비평적이고 미학적인 프레임의 갱신을 주장하는 작금의 ‘세대’로서, 더 다양한 초점에서 영화를 통한 ‘배움’의 가능성이 검토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편 한대호는 영화가 경험되는 방식에 초점을 맞추어, 극장 체험이 줄고 시청각미디어가 다양화되는 현재 극장에서 상영되는 것으로서의 영화는 그 역사성과 연결성을 상실했다고 정리한다. 변화해가는 매체 환경 속에서 영화를 경험하게 하는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할 것을 내다보면서, 그의 글은 영화와 경험적 배움을 긴밀히 묶어 고민할 것을 제안한다. 이들의 글에서 ‘배움’은 이미 분절된 시간의 문제인 동시에, 매체 자체를 변화시켜갈 근거와 계기이기도 하다. ‘배울 수 없다’는 감각은 무엇을 배울 것인가 혹은 배우게 할 것인가 하는 ‘새로움’의 전망과 적극적으로 연결된다.
이소의 글은 세대론이 작동하는 방식을 세심히 따져가면서 세대 개념이 배움의 문제를 논하는 데 있어 독립변수로서 적합할 수 있는가를 질문한다. 최근 소설들에서 젠더, 계급 등 개념들이 세대 개념과 관계 맺어온 양태를 지형도로 그리는 가운데, 그의 글은 세대 간 경험적 단절보다 계승되거나 연속되는 환경의 문제가 중요하게 논의되어야 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동시에 생태 문제에 관해서는 분명 감각과 경험이 달라지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세대 개념이 단지 변화를 기술적으로 읽어내기 위한 장치로서가 아니라 동시대와 미래에 대한 책임감을 논하는 언어로서 자리매김될 수도 있음을 강조한다. 이때 ‘세대’와 ‘배움’은 새로운 전망을 내다보는 조합이기보다 지금 책임져야 할 시간을 되돌아보는 조합으로 여겨진다.
장한길의 글은 홀로코스트와 ‘위안부’ 생존자들의 증언이 아카이빙되어온 방식을 짚으면서, 아카이브 매체가 소리에서 영상으로, 인덱스화된 인터페이스 체계로 변화하는 과정이 증언을 체험하는 방식 역시 변화시켜왔음을 중요하게 지적한다. 증언을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매체의 문법을 결정하기도 하지만, 매체의 문법이 증언의 접근 방식 및 의미화 방식에 적극 관여하기도 한다는 것이다. 증언 아카이브의 목적은 대개 세대를 가로질러 증언의 ‘현재성’을 확보하는 것이고, 최근의 아카이브는 청취자가 증언 접속 과정에 직접 개입하는 ‘인터랙티브 증언’의 방법을 시도하고 있다. 하지만 ‘현재성’이라는 목표가 이후 세대의 ‘참여’라는 형식만이 아니라 이전 세대의 경험을 ‘기억’하는 일과 긴밀히 닿아 있다는 점에서, 장한길의 글은 증언의 ‘상호 구성성’을 구현해갈 방법을 재차 고민해야 한다고 말한다. 매체 환경의 변화에 따라 사실과 경험을 배우는 방식은 달라질 수 있지만, 그 변화의 과정에서 놓치지 않아야 할 지점이 분명히 존재한다는 것을 그는 선명하게 지적하여 보여준다.
장영은의 글은 시몬 드 보부아르의 독자로서 작가 박완서가 배운 것과 박완서의 소설을 경유하여 1980년대의 독자가 배운 것 사이를 들여다보면서, 배우는 것과 스미는 것 사이의 시차를 세심히 생각해보기를 권한다. 결혼 후 가정생활에서 여성이 놓이는 위치에 대하여 고민과 경험을 풀어낸 박완서의 소설이 그러한 문제의식에 무심한 독자와 적극적인 독자 모두에게 동일한 피드백을 받을 때, 작품에 대한 몰입과 작품을 경유하여 배우는 일은 쉬이 겹쳐지지 않는다. 그 거리 속에서 ‘배움’의 폭은 외려 아주 좁아지기도 하고, ‘교정’되거나 ‘해명’되어야 할 작가의 책임으로 남겨지기도 한다. 문학을 매개로 도드라지는 그러한 간격을 들여다보는 장영은의 글은, 배움에 대한 이야기가 보다 세목화된 시선을 가져야 하며, 시간과 배움 사이의 관계 역시 다층적으로 고민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드러낸다.
전청림의 글은 ‘비판’으로부터 ‘배움’을 구분해내는 얼개를 경계하면서, ‘배움’이라는 단어가 현상이나 메커니즘으로서만이 아니라 깊숙한 경험과 태도의 맥락에서 이야기되어야 함을 세심히 살핀다. 이 단어가 회복 불가능한 상처와 상실, 폭력의 흔적을 덜어내고 변화와 치유의 빛을 띠게 될 때, 배움은 일종의 이데올로기가 되어 오래된 메커니즘을 반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배움을 “오염을 감당하는 우직한 정성스러움”의 측면에서 사유할 것을 제안하는 이 글은, 선으로서의 시간을 그리기 이전에 점으로서의 시간을 더 들여다보는 항시적 ‘긴장’을 보다 중요하게 강조한다.
아홉 필자의 여덟 편의 글은 ‘세대’와 ‘배움’을 잇는 프레임 속에서 그 관계성 자체를 고민하게 할 뿐 아니라, 두 키워드 각각의 문맥을 어떻게 만들어가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정교하게 질문을 던진다. 언어를 재배치하는 작업과 기존의 배치를 다시 읽어내는 작업이 겹쳐지는 자리에서, 서로 다른 매체, 서로 다른 방법을 선택하여 만들어진 질문들은 아주 성기게, 그러나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이곳에 더 많은 질문과 응답 들이 모여 서로의 배움을 향해 보다 치열해질 수 있기를 바라면서, 함께해주신 필자분들께 진심 어린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우리가 문학의 장에서 배움에 대해 함께 고민할 수 있는 이유는, 우리 모두의 언어로 만들어지고 있는 세계에서 서로를 향해 깊이 마음을 나누어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마음이 지면을 가득히 채울 수 있도록 많은 분이 함께해주셨다. 이번 호에는 김혜순, 김선우, 박상수, 강성은, 유계영, 김누누, 신원경, 양송이 시인의 시와 윤고은, 문지혁, 강대호 작가의 소설이 엮였다. 이 봄부터 편혜영 작가의 소설 연재가 시작되었다는 반가운 소식도 더불어 전한다. 강계숙, 오연경, 최다영, 홍성희, 김다솔, 박서양, 이수형, 이은지, 황녹록 평론가는 지난겨울 발행된 단행본을 엮어 세심히 읽어주었다. 작품들이 서로 마주치는 장면들을 즐겁게 나누어주시기를 바란다.
1978년 황동규의 『나는 바퀴를 보면 굴리고 싶어진다』를 제1권으로 간행을 시작한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올해 통권 600호 발간을 앞두고 있다. 2017년 500호를 낸 이래 7년의 시간을 함께 일군 한 권 한 권의 시집을 헤아려보면서, 600권의 책 기둥 전체를 더불어 돌아보게 된다. 문학과지성 시인선은 시를 향한 고민과 애정으로 차곡차곡 꾸려져왔다. 지난 46년의 시간을 채우고 있는 것은 함께한 시인들의 이름과 다채로운 시의 빛깔들, 그리고 시집을 만든 무수한 분의 얼굴이다. 모두를 함께 기억하고 축하하는 마음으로, 문학과지성 시인선 통권 600호 기념 기획란을 꾸렸다. 황인숙, 김기택, 이원, 김소연, 심보선, 이장욱, 김언, 최하연, 이제니, 백은선 시인이 문학과지성 시인선에 관한 추억과 마음을 기꺼이 나누어 주었다. 시인들의 글은 하나의 디자인을 공유하는 문학과지성 시인선이 서로의 시간 속에서 이미 오래 곁을 나누어왔음을 보여준다. 그 곁을 지키는 마음으로, 글을 보내주신 열 분의 시인께, 600권을 함께한 모든 시인께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마지막으로 기쁜 소식 하나를 더 나누고 싶다. 이번 봄호를 시작으로 소유정, 이소, 이희우 평론가가 『문학과사회』 편집동인으로 함께하게 되었다. 『문학과사회』는 더 많은 고민과 즐거움을 나누면서 언제나 움직이고, 다가서서, 오래 질문할 것이다. 새로 합류한 세 분과 더불어 꾸려질 『문학과사회』에 다정하고 따끔하며 든든한 관심을 부탁드린다.
편집동인 홍성희
■ 차례
| 본권 |
봄호를 펴내며
시
김혜순 피고늄의 숨 외 1편
김선우 벚나무 고목으로부터 외 1편
박상수 새로운 생활 외 1편
강성은 내 곁에 있어줘 외 1편
유계영 드리머Dreamer 외 1편
김누누 Raise your glass 외 1편
신원경 탐조 외 1편
양송이 여미지 I 외 1편
소설
윤고은 꿈과 섬
문지혁 허리케인 나이트
강대호 현재에서 지속되는 과거(들)
편혜영 꿈을 꾼 후에[장편 연재 1회]
리뷰
강계숙 서시의 깊이를 숙독해야 하는 이유
—한여진, 『두부를 구우면 겨울이 온다』
—황유원, 『하얀 사슴 연못』
오연경 여기는 어떤 공동의 세계입니까
—임유영, 『오믈렛』
—박세미, 『오늘 사회 발코니』
최다영 비평 게임 살계하기
—변혜지, 『멸망한 세계에서 살아남는 법』
—고선경, 『샤워젤과 소다수』
홍성희 드르륻, 드르륻,
—양안다, 『몽상과 거울』
—이린아, 『내 사랑을 시작한다』
김다솔 뒤에서부터 시작하는 이야기
—안보윤, 『밤은 내가 가질게』
—김혜진, 『축복을 비는 마음』
박서양 수치심의 작은 역사
—이주혜, 『계절은 짧고 기억은 영영』
—장진영, 『치치새가 사는 숲』
이수형 끝내 멈추지 않을, 추궁
—이승우, 『목소리들』
이은지 겹침과 접힘
—한정현, 『쿄코와 쿄지』
—우다영, 『그러나 누군가는 더 검은 밤을 원한다』
황녹록 있(지 않)음 감각하기
—양선형, 『V섬의 검은 짐승』
—이상우, 『핌·오렌지빛이랄지』
기획: 문학과지성 시인선 통권 600호 기념
황인숙 ‘문학과지성 시인선’과 나
김기택 시의 서슬 푸른 칼날을 느끼며
이원 전위에서 사랑까지, 한국 시의 희귀하고 고유한 역사
김소연 티 없는 앉음새
심보선 문학사, 트렌드, 죽음
이장욱 축하합니다
김언 내 기억에 남아 있는 문학과지성 시인선
최하연 하나씩의 무덤
이제니 나무 무덤 찾기
백은선 미래의 문을 하나씩 열기
색인
정기 구독 안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