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시아 오직 지음 | 오숙은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11월 22일 | ISBN 9788932042220

사양 변형판 120x188 · 120쪽 | 가격 10,000원

책소개

반복되는 역사, 끝나지 않은 비극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 돌아보는 인간 조건의 무게

“「숄」「로사」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을 상상하게 해준다.
그것은 홀로코스트의 공포와 그로 인한 채울 수 없는 공허감이다.”


‘오헨리 상’ 최다 수상 작가 신시아 오직의 대표작 『숄』, 국내 초역!

“최근 떠오른 미국 최고의 작가.” _『뉴욕 타임스 북 리뷰』
“눈부시고도 충격적! 페이지마다 슬픔과 진실이 가득하다.” _『시카고 트리뷴』
“단편과 중편이 한데 묶여 매우 가슴 아프고 아름답게 주조된 결과물이 나왔다.” _해럴드 블룸


『안네의 일기』『이것이 인간인가』『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등의 작품들과 더불어 홀로코스트 문학의 필독서이자 중요한 이정표로 자리매김한 신시아 오직의 대표작 『숄』(오숙은 옮김)이 ‘문지 스펙트럼’ 시리즈로 출간되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 간의 전쟁이 연일 계속되며 이들 전쟁의 비극적 참상이 지금 이 시각에도 시시각각 우리에게 전해지는 오늘, 홀로코스트라는 역사 속 참혹한 사건을 강렬하게 그려내고 있는 이 책은 아직도 끝나지 않은 비극에 닥쳐 인간의 존재 의미, 인간 조건의 무게를 새삼 돌아보게 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이 책에 실린 「숄」과 「로사」는 1980년과 1983년 『뉴요커』지에 각각 발표되며 큰 반향을 일으켰다. 두 작품 모두 최고의 단편소설에 주어지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오헨리 상을 수상(1981년과 1984년)했으며, 나중에 한 권으로 묶여 소설집 『숄』로 나오면서 각각의 울림과 무게를 더욱 증폭시켰다. 작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단편 「숄」은 엽편소설에 가까울 만큼 매우 짧지만 그만큼 더욱 강렬하게 다가온다. 특이하게도 홀로코스트를 다룬 작품임에도 ‘나치’나 ‘수용소’ 같은 단어는 전혀 등장하지 않으며, 그 대신 ‘코트에 꿰매어 단 별’이라든가 ‘아리아인’ 같은 단어에서 이 작품이 강제수용소로 향하는 행렬과 수용소에서의 참혹한 삶과 죽음을 다루고 있음을 어렵지 않게 알아차릴 수 있다. 시적인 문체로 간결하게, 그러나 강렬하게 묘파되고 있는 사건은 그 자체로 오래 기억되고 또 널리 회자되어야 할 충분한 가치를 지닌다. 뒤이어 이어지는 작품 「로사」는 「숄」의 배경이 된 시대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후를 다루는 일종의 후일담으로, 「숄」이 주는 강렬한 인상 때문에 상대적으로 평범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 비대칭성이 오히려 작품 전체의 완성도를 담보하는 요인이 된다.

「숄」에서 폴란드 출신 유대인 로사 루블린은 강제수용소 경비병이 어린 딸을 살해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30여 년 후 그녀는 플로리다 마이애미의 한 호텔에서 “미친 여자이자 과거의 쓰레기로 살아가는” 사람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 두 작품에는 ‘숄’이 있다. 그것은 굶주린 어린아이의 생명을 지탱해주는 숄, 뜻하지 않게 그 아이를 파멸시키는 숄, 나아가 마법처럼 그 아이를 되살리는 숄이다.


“댁의 삶이 없다고?”
“도둑들이 빼앗아갔어요.”


작가 신시아 오직은 유대계 미국인으로 유대인들의 삶의 경험, 홀로코스트와 그 여파 등을 다룬 작품과 에세이, 비평을 발표하며 크게 주목받아왔다. 『뉴욕 타임스』 등 주요 언론이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작가 중 한 명”이라 찬사를 보냈으며, “브롱크스의 에밀리 디킨슨” “이 시대의 가장 우아한 문학 스타일리스트”로도 불린다. 특히 “미국 단편소설의 대가”로 손꼽히는데 최고의 단편소설에 주어지는 ‘오헨리 상’의 최다 수상자(총 4회)이자, 2000년에는 에세이 『언쟁과 곤경』으로 전미 도서 비평가협회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특기할 만한 점은, 홀로코스트 문학의 경우 대체로 아우슈비츠 한복판에서 살아남은 생존자이거나 유럽 작가 및 지식인의 작품이 주로 소개되고 읽혀온 데 반해 신시아 오직은 미국 뉴욕에서 태어나 당시 유럽을 휩쓸었던 전쟁의 광기를 직접 겪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생존자 중 상당수가 이후 미국에서 생을 꾸려간 사실을 감안하면, 미국 작가의 증언 문학 역시 조명하고 음미해볼 만한 가치는 충분하다 할 수 있다. 게다가 「숄」을 읽은 어느 정신과 의사가 이 작품을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라고 믿고 도움을 주고 싶어 했다는 이야기는, 오직의 이 작품이 얼마나 강렬하고 생생한지를 말해준다. 창작이 기록 못지않은 진실성과 힘을 가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실제로 이 작품은 발표 이후 큰 반향을 일으켰다.

「숄」에서 폴란드 출신 유대인 로사는 어린 딸 마그다를 품에 안은 채 열네 살 조카 스텔라와 함께 수용소로 끌려가는 중이다. 극심한 배고픔으로 인해 몸이 너무나 가벼워진 나머지, 그들은 마치 공기 중을 떠다니듯 걷고 있다. 잠깐이라도 행렬을 빠져나가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기에 로사에게는 마그다를 빼돌릴 방도가 없었다. 젊은 엄마 로사는 수용소에서 딸 마그다를 숄로 감싸 숨기고 근근이 목숨을 이어가는데, 다행히 아이는 엄마의 젖 대신 숄을 얌전히 입에 문 채 쉼 없이 빨았고 그 덕분에 울거나 소리를 내지 않을 수 있었다. 그러나 조카 스텔라가 추위를 이기지 못해 숄을 가져가는 바람에 마그다는 죽음을 맞이한다. “추웠어요.” 스텔라의 대답이었다.

「숄」이 이처럼 뼛속까지 추운 지옥에서의 이야기를 그려냈다면, 「로사」는 온몸이 튀겨질 정도로 뜨거운 지옥(“플로리다, 왜 플로리다였을까? 왜냐하면 여기 사람들은 이미 태양에 튀겨져, 그녀처럼 껍데기였기 때문이다”)을 배경으로 한다. 강제수용소에서 살아남은 로사와 스텔라는 미국으로 이주하지만, 미국 생활에 적응하고 새 삶을 살기 위해 애쓰는 스텔라와는 달리 로사는 도무지 적응하지 못한다. 여전히 마그다가 살아 있다고 믿는 로사는 딸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스텔라의 속물성을 비난한다. 하지만 로사는 미국에서의 삶이 조카의 도움 덕분에 가능하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는다. 과거와 단절하고 미국에서 새로운 삶을 찾는 스텔라와 달리, 로사의 시간은 여전히 ‘그’ 시간대에 머물러 있다. 그녀의 시간은 과거, 현재, 미래로 구분되지 않는다. 그녀에게 시간은 지금도 진행 중인 홀로코스트의 시간뿐이다. “‘그’ 이전은 꿈이에요. ‘그’ 이후는 농담이고. 오직 진행 중인 것만 있을 뿐이죠. 그리고 그걸 삶이라 부르는 건 거짓말이에요”라는 로사의 말처럼, 그녀의 삶은 송두리째 도둑맞았다.

우리가 지금, 다시 홀로코스트의 역사적 진실을 읽고 기억하고 새삼 돌이켜보는 것은 단순히 피해자와 가해자를 동정하고 비난하거나 피해자에게 현재의 정당성을 부여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이 책은 우리로 하여금 역사의 참혹한 비극이 한 개인의 삶을 어떻게 빼앗고 망가뜨리고 파괴하는지, 그 처절한 고통을 인간의 차원으로 보편화하면서 우리가 이 비극의 역사를 진정으로 반성하고 극복하는 길을 모색하게끔 한다.


■ 책 속으로

마그다의 눈은 언제나 맑았고 눈물이 없었다. 마그다는 호랑이처럼 지켜보았다. 숄을 지키고 있었다. 어느 누구도 숄을 건드릴 수 없었다. 오직 로사만이 숄을 건드릴 수 있었다. 스텔라에게는 허락되지 않았다. 숄은 마그다의 아기였고, 반려동물이었고, 여동생이었다. 마그다는 숄을 덮고 숄과 뒤엉켰고, 아주 가만히 있고 싶을 때는 숄의 모서리를 빨아댔다.
그러던 중 스텔라가 숄을 가져가서 마그다를 죽게 했다.
나중에 스텔라가 말했다. “추웠어요.” (「숄」, 15~16쪽)

침대는 시커멨다. 스텔라의 속내만큼 시커멨다. 얼마 후 로사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하고는 쇼핑 카트에 빨래를 뭉쳐 넣고 빨래방으로 향했다. 아직 오전 10시밖에 안 되었는데도 태양은 살인적이었다. 플로리다, 왜 플로리다였을까? 왜냐하면 여기 사람들은 이미 태양에 튀겨져, 그녀처럼 껍데기였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로사는 그들과는 아무런 공통점이 없었다. 오래된 유령들, 늙은 사회주의자들. 이상주의자들. 그들의 관심은 오직 ‘인류’뿐이었다……
로사 루블린에게는 플로리다반도 전체가 회한으로 짓눌려 있는 것 같았다. 그들 모두 진짜 삶을 두고 떠나온 이들이었다. 이곳에 온 그들에게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들 모두 허수아비였고, 가슴팍 안이 빈 채로 살인적인 태양 아래 이리저리 불려 다녔다. (「로사」, 26~28쪽)

“댁의 삶이 없다고?”
“도둑들이 빼앗아갔어요.” (「로사」, 45쪽)

생존자. 무언가 참신하다. 그들이 인간을 말할 필요가 없다면 말이다. 과거엔 난민이었다. 하지만 지금 그런 존재는 없다. 더 이상 난민은 없고 생존자만 있다. 번호와 다름없는 이름―평범한 무리와는 따로 셈해지는 존재. 팔에 찍힌 파란 숫자와 뭐가 다르단 말인가? 그들은 어쨌거나 당신을 가리켜 여자라고 하지 않는다. 생존자라 한다. 심지어 당신의 뼈가 흙먼지 속으로 녹아들 때도 여전히, 그들은 인간을 잊고 있을 것이다. 생존자와 생존자 그리고 생존자. 언제나, 언제까지나 생존자. 누가 그런 단어를 지어냈을까, 고통의 목구멍에 붙은 기생충 같은 단어를! (「로사」, 59쪽)

펜을 잡는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었다. 어쨌거나 작고 뾰족한 막대기에 지나지 않은 그것이 상형문자의 웅덩이를 흘린다. 기적처럼 폴란드어를 말하는 펜. 혀에 채워졌던 자물쇠가 제거되었다. 그럴 때가 아니면 혀는 이와 입천장에 사슬로 묶여 있다. 살아 있는 언어에 푹 빠진다는 것. 갑자기 이 청결함이, 이 능력이 샘솟는다, 하나의 역사를 만들고, 말하고, 설명하는 이 힘이 솟아오른다. 되찾고 유예하는 힘! (「로사」, 70쪽)

“미국에서는 고양이 목숨이 아홉 개래요. 하지만 우리, 우리 같은 사람들이 목숨은 고양이 목숨보다 적어서 세 개가 있대요. 그 이전의 삶, 진행 중인 삶, 그 이후의 삶요.” 퍼스키는 그녀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녀가 말했다. “그 이후의 삶이 지금이에요. 하지만 그 이전의 삶, 우리가 태어난 고향에서의 삶이 우리의 진짜 삶이죠.”
“그럼 진행 중인 건”
“그건 히틀러였죠.”
“불쌍한 루블린.” 퍼스키가 말했다.
“당신은 거기 없었잖아요. 영화를 보고 아는 거예요…… 다 지난 일이다. 그 이후가 중요하다. 스텔라가 신경 쓰는 건 그것뿐이에요. 하지만 나한테는 오직 하나의 시간뿐이에요. 그 이후 같은 건 없어요.” (「로사」, 91~92쪽)

목차

■ 차례


로사

옮긴이의 말
작가 연보

작가 소개

신시아 오직 지음

1928년 미국 뉴욕의 러시아계 유대인 집안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기독교인들에게 ‘예수를 죽인 자’라는 비난을 들으며 돌을 맞은 적도 있다. 뉴욕대학교에서 공부하고, 오하이오 주립대학교에서 영문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1971년 소설집 『이교도 랍비와 단편들The Pagan Rabbi and Other Stories』로 에드워드 루이스 월런트 상을 수상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1986년에는 단편소설에 주어지는 리어 상의 최초 수상자가 되었고, 2000년에는 에세이 『언쟁과 곤경Quarrel & Quandary』으로 전미 도서 비평가협회 상을 수상했다. 1997년 에세이 『명성과 어리석음Fame & Folly』이 퓰리처 상 일반 논픽션 부문 최종 후보에, 2005년에는 소설 『베어 보이The Bear Boy』가 부커 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이 책에 실린 「숄」과 「로사」를 포함해 네 편의 작품이 단편소설에 주어지는 가장 권위 있는 상인 오헨리 상을 받았으며, 특히 단편 「숄」은 현대의 고전으로 손꼽힌다. 『뉴욕 타임스』 등 주요 언론이 현존하는 미국 최고의 작가라는 찬사를 보냈으며, ‘브롱크스의 에밀리 디킨슨’ ‘이 시대의 가장 우아한 문학 스타일리스트’로도 불린다. 현재 뉴욕에서 살고 있다.

오숙은 옮김

한국 브리태니커 회사에서 일한 뒤 전문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노예 12년』 『Perv, 조금 다른 섹스의 모든 것』 『먼저 먹이라』 『세상과 나 사이』 『위작의 기술』 『문명과 전쟁』(공역) 『식물의 힘』 『정치 철학』 『공감 연습』 『게으름 예찬』 『우리가 간직한 비밀』 등이 있다.

독자 리뷰

독자 리뷰 남기기

4 + 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