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이, 없었다. 아니, 집은 있었다.
그러나 집이 있다고 할 수 없었다.”
2021 이상문학상 수상작 「마음의 부력」 수록
대산문학상·현대문학상·동인문학상·이상문학상 수상 작가
이승우 3년 만의 신작 소설집 출간
“아마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탄식 없이 슬퍼하고 변명 없이 애도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이해받으려는 간절함’이 아니라 ‘간절함을 이해하는’ 글의 저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작가의 말’에서
1981년 작품 활동을 시작한 후 지난 42년간 한국 문단에서 독보적인 영역을 구축해온 작가 이승우의 열두번째 소설집 『목소리들』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큰 사랑을 받으며 “한국에서 가장 유력한 노벨문학상 후보”(르 클레지오, 인터뷰에서)로 언급되기도 한 이승우는 프랑스 갈리마르출판사의 세계 명작 총서인 폴리오 시리즈에 『식물들의 사생활』과 『그곳이 어디든』 두 편이 실리는 등 명실상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 중 한 명으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인간의 불안과 욕망의 기저, 죄의식 및 초월적 존재와의 관계 등은 이승우 작품의 주요 화두였다. 이렇듯 “인간존재에 대한 근원적인 문제를 관념적 성찰의 형식으로 탐문해”(황순원문학상 심사평)온 작가는 이번 소설집에서 화자들의 어두운 내면의 근원이자 가족을 상징하는 ‘집’을 다양한 관점에서 섬세한 언어로 쌓아 올렸다. 여덟 편의 이야기 속 등장인물들은 모두 가족을 잃거나 관계에 균열이 생겨 갈등과 위기를 겪으며 삶의 방향을 점점 잃어간다. 집에서 벗어나기 위해 주변을 배회하며 버티다가 끝내 다시 집을 떠올리는 저마다의 “목소리들”이 마치 건축물처럼 설계된 각각의 작품에는 부조리한 현실, 안식처를 잃은 자들의 행로, 관계에 대한 사유 들이 담겨 있다. 결국 처음 시작된 곳, 집으로 돌아가는 이야기들이라는 점에서 작가의 전작들이 보여준 문제의식을 껴안으면서 그 너머의 방향성을 넌지시 보인 소설집이라고도 할 수 있다.
불안의 바깥과 그 끝의 허무
기나긴 방황이 내뱉은 절실한 목소리들
이 책의 제목처럼 여덟 편의 작품 속 화자들의 ‘목소리’는 주요한 역할을 한다. 「소화전의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에서는 부조리한 세태에 대항하는 과감한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배낭의 아가리 밖으로 길쭉한 장대가 하나 삐져나”온 것처럼 도로 위에 불쑥 나타난 깡마른 여자가 청소를 한다. 소화전의 밸브를 돌려 “길들일 수 없는 짐승처럼 요란하게 날뛰”는 물줄기를 양동이에 받아 중앙 차선에 뿌리고 청소용 솔로 문지르는 것이다. 신고를 받은 경찰관이 도착하고 그들은 그녀가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라는 듯 여자를 강제로 연행하려 한다. “경찰들이 그녀를 경찰차의 뒷좌석에 억지로 태우려고 하는 과정에서 그녀의 몸은 휴지처럼 마구 구겨졌다 펴”진다. 그때 한 남성이 나타난다.
“당신들은 저분이 무얼 하고 있는지, 왜 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한 거지요. 그렇지만 무지가 당신들의 무례를 정당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당신들이 모르는 것은 알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니까요. 무지가 당신들을 무례하게 행동하게 한 거라면 무지야말로 나쁘지요. 무례보다 나쁘지요.” _「소화전의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에서
경찰도 얼어붙게 만들 만큼 초월적 존재처럼 보이는 남성이 그녀를 대변한다. 남성은 어떤 행동도 보여주지 않고 그저 말만으로 경찰과 행인들을 압도한다. 사건의 정황이라는 구조물 위로 화자의 목소리를 덧입혀 이야기를 전개해나가는 작업은 「목소리들」에서도 이어진다. 엄마와 아들 ‘나’가 각각 독백 형식으로 속마음을 토로하는 이 작품 속 두 화자는 “잠이 안 오”는 것은 물론 “잠을 자는 게 두려”운 상태다. 막내 아들 ‘준호’의 죽음 이후 똑같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엄마는 “네가 만나줬으면,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줬으면 [……] 그 애가 그러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생각 안” 드느냐며 죽은 아들에 대한 책임을 남은 자식에게 미룬다. ‘나’는 “엄마의 방식으로 자기를 벌주고 있는 거지. 자기를 괴롭히기 위해 남들을 탓하면서, 남들에게 돌릴 수 없는 책임을 물으면서, 자기를 지목하고 있는 거”라며 목소리를 높인다.
「전화를 받(지 않)았어야 했다」 속 수화기 너머의 목소리는 주인공의 내면에 강렬한 트라우마를 남긴다. ‘나’의 곁에는 퇴근 후 안식처와 같은 ‘거기’에 함께 가 술잔을 기울이는 직장 동료 ‘형배’가 있다. 어느 날 형배가 회사에서 불미스러운 일에 연루된다. 거래처에서 갑질 및 성추행을 했다는 소문이 돌더니 곧 사내 징계위원회가 열린다는 것이다. ‘나’ 역시 그와 가까운 사이라는 이유로 함께 소환된다. 징계위원회가 열리기 전날 밤 ‘나’는 그의 전화를 받지 않는다. 괴로워하던 형배는 세상을 떠나고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어느 날, 휴대폰에서 형배의 목소리가 들린다. “형이, 어떻게 그럴 수 있어……”
목소리들이 켜켜이 쌓은 세계는 인간의 본성을 집요하게 추적해 건드린다. “이런 말 안 하려고 했”지만 할 수밖에 없어서 말하는 것이라며 “아마 틀림없이 후회”하겠지만 기어이 상처를 주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다. 상처를 받은 사람은 이제 그만 “목소리에서 벗어나고 싶”을 정도로 “힘들었”(「목소리들」)다고 말하며 다른 이에게 상처를 준다. 『목소리들』은 이 음성들이 만든 고통의 쳇바퀴에 우리를 슬며시 밀어놓고 고통을 멈출 수 있는 방법이 없는지 생각하게 한다. “문득 되살아나 현재를 덮치는 과거”(「소화전의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마음속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설계된
가족이라는 헤어날 수 없는 집
집은 가족 구성원이 사는 보금자리이자 삶을 유지하는 중요한 영역이다. 이렇게 안식처가 되어야 할 집이 제 기능을 상실했을 때 인간은 어떻게 행동할까. 이 질문에 대한 작가의 다양한 실험적 시선이 『목소리들』 안에 녹아 있다. 「공가空家」의 남성 화자는 과거 새아버지에게 학대를 당했다. 새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으면 ‘기도방’이라는 곳에 갇혔는데 “창문이 없고 벽이 온통 하얀색이던 아주 작은 방”이자 “스피커를 통해 ‘선견자’의 말이 반복해서 재생”되는 곳이었다. 그 방에서 잠을 잘 수도 먹을 수도 없던 그는 그곳을 도망치듯 떠나야 했고, 돌아갈 수밖에 없을 때까지 버틴 후에야 다시 집을 찾는다.
집은 마지막에 있었다. 마지막은 끝. 끝은 일의 결국을 이르는 말이니 사람이 어떻게 할 수 없는 영역이다. 끝을 통제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끝에 이르기 전까지는 무언가를 할 수 있다. 그러나 끝에 이르러서는 무엇을 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없어지는 것이 끝이다. 끝의 다음은 없기 때문이다. 다음이 없는 것이 끝이기 때문이다. 나는 다음이 없다는 것을 부정하고 세뇌하는 데 지쳤고, 지쳐서 아직은 집에 돌아가지 않겠다는 주문을 외는 데 실패했다. _「공가空家」에서
「마음의 부력」 속 주인공 ‘나’는 불가항력에 의해 가족과 점점 멀어지는 것을 느낀다. 형과 ‘나’의 목소리를 헷갈리는 어머니는 통화할 때마다 ‘나’를 형의 이름으로 부른다. ‘나’에게 자꾸 본인이 보잘것없어 “면목이 없다”고 말하던 “형은 이 세상에서 사라”졌는데, 아직도 형을 찾는 것이다. 어머니는 계속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형에게 쓸 돈을 빌려달라 요구하고, 아들 내외가 방문하기로 약속한 날짜를 까맣게 잊는 등 점점 기억을 잃는다. ‘나’는 또다시 가족을 잃을 위기에 직면한다.
「물 위의 잠」에서도 주인공과 형의 목소리를 구분하지 못하는 어머니가 등장한다. 자꾸만 형 ‘영식’을 찾는 어머니를 만나러 ‘영수’는 요양원에 간다. 병세가 점점 악화되는 어머니의 “그 목소리는 그의 내부에서 메아리”친다. 안정적인 직업을 가지고 가정을 꾸린 그와 달리 영식은 하고 싶은 것을 좇아 세계를 떠돌며 방황하다 타지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았다. 형의 마지막 부탁을 거절한 후 부고를 들은 영수는 “자책의 목소리를 자기를 괴롭히기 위해 크게 키”운다.
작품 속 화자들은 가족과 함께한 집이라는 공간에서 평생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얻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귀소본능처럼 “세상이 내 뜻을 비껴가거나 내 뜻이 세상과 겉돌 때면 거의 자동적으로 집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이처럼 『목소리들』은 형이상학적이고 관념적인 질문들을 던지며 미로처럼 설계된 여덟 채의 집 내부로 우리를 초대한다. 사이사이 작가가 밝혀놓은 등을 따라 걷다 보면 문득 “현실감을 찾”(「공가空家」)고 “그제야 깨닫”(「전화를 받(지 않)았어야 했다」)게 될 것이다. 불안과 고통의 나날을 끊기 위해 그 근원으로 돌아가는 주인공들의 절실한 “목소리들”에 어느새 귀 기울이고 있다는 것을. 삶에서 꼭 필요한 질문들을 그간 외면해왔었다는 사실을.
■ 본문에서
네, 사람이 사는 곳처럼 만들려고 했어요. 공가에 뭔가를 채우는 거요. 물건도 물건이지만, 사람이 살면 공가가 아니잖아요. 사람이 없으면 빈집이 되잖아요. 물건이 채워져 있어도 사람이 없으면, 그게 빈집이지 뭐예요. 그녀에 의해서 공가가 채워진다는 생각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었던 게 맞아요. 왜 그랬는지 모르겠는데, 그녀가 집에 오는 게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어요. 「공가空家」
나는 입을 열지 못했다. 나는 왜 달아났던 것일까? 이유를 찾으려 했지만 발견되지 않았으므로 말하지 못했다. 나는 왜 달아났을까? 그 이유를 그때는 알았을까? 그때는 알았던 것을 지 금은 모르게 된 것일까? 모르던 어떤 것은 어떻게 알게 되고 알던 어떤 것은 어떻게 모르게 되는 것일까? 구부러진 어떤 것은 어떻게 펴지고, 펴진 어떤 것은 어떻게 구부러지는 것일까? 「전화를 받(지 않)았어야 했다」
그녀의 눈은 사람의 얼굴을 향하지 않는다. 그녀의 눈은 사람의 얼굴 너머 허공을 향한다. 그녀의 시선은 눈앞의 물리적 대상을 투명하게 만들어 한없이 뻗어 나간다. 그녀가 보는 것은 보이지 않는 것이다. 보이는 것은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본다. 이 말은 옳지 않다. 허공에는 아무것도 없기 때문에,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도 없기 때문에 그는 아무것도 보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물론 보이지 않는 것도 보지 않는다. 「물 위의 잠」
“이봐요, 안에 있어요? 어디 있어요? 어떻게 알고 왔는지 모르지만 당신은 여기 들어오면 안 돼요. 이 집 주인이 아니잖아요. 빨리 나와요.” 그의 목소리는 소파와 천장과 냉장고와 텔레비전과 식탁에 닿았다가 그에게 되돌아왔다. 그의 목소리를 듣는 사람은 그 말고는 없는 것 같았다. [……] 그러나 여전한 침묵과 고요가 을씨년스러운 공기를 퍼뜨릴 뿐이었다. “환장하겠네, 진짜.” 황 노인은 안으로 들어가려는 듯 몇 번 몸을 앞으로 기울였다가 닫힌 방문을 노려보고는 어떤 기운에 눌려 들어가지는 못하고 돌아섰다. 찜찜한 기분이 남아 그 집을 나서는 그의 그림자가 길게 늘어났다. 「귀가」
……나는 잠을 자는 게 두려워. 잠이 들면 자꾸 꿈을 꿔. 꿈을 꾸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원한다고 되는 게 아니잖아. 꾸어지는 걸 어떻게 해? 엄마는 잠들지 못하고 깨어 있을 때 쳐들어오는 생각들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했잖아. 나한테는 꿈이 그래. 내 꿈은 내가 잠들기를 기다렸다가 쳐들어오는 점령군 같아. 그래서 잠을 안 자려고 버텨. 버티다가 어찌어찌 잠 속으로 들어가면 어김없이…… 힘들어. 엄마가 나에게 왜 이러는지 알 것 같아. 힘들겠지. 받아들일 수 없는 거잖아. 「목소리들」
옥상 난간에 발을 딛고 올라서서 기묘하고 희극적인 동작을 하고 있는 낡은 코르덴 양복 차림의 비쩍 마른 한 남자와 그 앞에 얼어붙은 듯 멈춰 서 있는, 마찬가지로 코르덴 양복 차림의 비쩍 마른 한 남자는 이를테면 베케트의 부조리극에 나올 법한 인물을 상상하기에 부족하지 않았을 것이다. 더구나 나도 그제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그와 나는, 색깔만 다를 뿐 같은 옷을 입고 있고 체구도 비슷한 편이었다. 관객들이 두 사람이 쌍둥이처럼 꼭 닮았다고 여긴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았다. 역할을 바꾼다고 해도 알아차릴 관객이 아마 없을 것이다…… 「사이렌이 울릴 때― 박제가 된 천재를 위하여」
■ 작가의 말
“슬픔은 탄식과 섞이고 어떤 애도는 종종 자기방어술과 구분되지 않는다”는 문장을, 이 책에 실린 한 소설에 대해 언급하면서 쓴 적이 있습니다. 탄식 아닌 슬픔이 없고, 자기방어 아닌 애도가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러니 ‘기억하지 않으려는 안간힘으로’ 쓴다는 말을 할 수 있었을 겁니다. 사랑을 지키기 위해 필사적인 사람은 가련하지만 부끄러운 사람은 아닙니다. 그런 생각에서 아주 멀리 가지는 못했습니다. 어떤 시인의 고백처럼, 늘 “죽은 사람에게는 돌려주지 못한 것”이 많은 법이니까요. 돌려주지 못한 것만큼이나 ‘들려주지 못한 것’도 많은 법이니까요. 그런데 그 목록들은 그의 죽음 후에 탄생한 것입니다. 어떤 의미 에서는 갑자기, 혹은 비로소. 이해받으려는 간절함이 돌려주지 못하거나 들려주지 못한 것들을, 갑자기, 혹은 비로소 태어나게 하는 걸 테지요.
그러니까 아마 쉽지 않은 일이겠으나, 탄식 없이 슬퍼하고 변명 없이 애도하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이해받으려는 간절함’이 아니라 ‘간절함을 이해하는’ 글의 저자가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2023년 가을
이승우
■ 차례
소화전의 밸브를 돌리자 물이 쏟아졌다
공가空家
마음의 부력
그 전화를 받(지 않)았어야 했다
귀가
목소리들
물 위의 잠
사이렌이 울릴 때―박제가 된 천재를 위하여
작가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