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법학

자연의 권리선언과 정치 참여

지구법학회 지음 | 김왕배 엮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11월 17일 | ISBN 9788932042312

사양 소프트커버 · 변형판 137x207 · 478쪽 | 가격 25,000원

책소개

인간이 아니라 자연에게도 법적 권리가 있는가
나무와 돌고래, 숲과 강은 어떻게 법적·정치적 주체가 되는가
동식물과 자연이 참여하는 새 정치체제와 거버넌스는 가능한가


“우리는 지구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자연에 권리를 부여하고 공동체의 의사 결정에 자연을 참여시키기 위한 철학과 방법론이 필요하다는 인식을 공유한다.” _강금실(재단법인 지구와사람 이사장, 변호사), 「총서를 내며」에서

지난 11월 13일, 제주특별자치도는 기자회견을 통해 제주 남방큰돌고래Tursiops aduncus에게 법인격을 부여하는 법 개정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이는 무엇보다 개체 수 120여 마리 수준으로 멸종 위기에 처한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보호하는 데 목적을 두고 있다. 제주 남방큰돌고래가 국내 생태법인 제1호가 된다면, 남방큰돌고래는 자신의 권리를 침해받았을 때 소송에 나서 법적 다툼을 벌일 수 있게 된다. 이때 이들의 권리는 어떤 법적 근거에 의해 뒷받침되어, 어떤 절차로 행사될 수 있을까?

문학과지성사와 재단법인 ‘지구와사람’이 이번에 함께 선보이는 <지구와사람> 총서의 첫 책 『지구법학─자연의 권리선언과 정치 참여』는 이처럼 우리 사회에 새로이 떠오른 질문들을 마주하면서, 인간과 비인간을 아우르는 대안적 시스템으로서 ‘지구법학’을 소개한다. 지구법학이란 인간뿐만 아니라 동식물, 생태계와 자연까지 법적 주체로 삼는 법사상 혹은 법체계의 학문이다. 즉 인간이나 기업, 선박 등에만 주어지던 법인격이 자연에도 주어진다면 그 근거는 무엇인지 철학적 논의를 펼쳐 보이는 한편, 석호나 국립공원처럼 구체적 대상을 생태법인으로 지정하는 등 실정법 차원의 실천 행위까지 포함한다. 이러한 움직임에는 지구 곳곳에서 감지되는 기후위기와 ‘여섯번째 대멸종’의 원인이 무분별한 인간 활동에 있다는 위기의식과 더불어, 과학기술이 발달할수록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망이 더욱더 촘촘해지고 있다는 신유물론적 인식이 저변에 깔려 있다.

이렇게 인류세에 접어들어 인간중심주의를 반성하고, 주체/객체의 이분법을 해체하면서 비인간의 행위주체성에 주목하는 경향은 인문학과 사회학, 정치학, 법학 등 다양한 학문 분야에 나타나고 있다. 『지구법학』은 이 책의 제목이기도 한 지구법학을 헌법학과 법철학, 정치학, 사회학, 정치생태학 등 다양한 학문적 배경에서 논한 10편의 글을 사회학자 김왕배(연세대) 교수가 엮은 모음집이다. 이 책은 아직 우리에게 낯선 지구법학의 사상적 내용을 개괄하고 지구법학적 관점을 요청하는 한국 사회의 여러 단면을 살펴본다. 여기에서 한발 더 나아가 비인간 생명이 정치에 참여하는 정치체제인 바이오크라시biocracy, 사유재산권 제도의 대안으로서 인간 공동체의 구성원 모두가 동등하게 돌보는 공동의 것인 코먼스commons 등, 사회를 생태적으로 재구성하는 사회과학적 상상력을 담아낸다.


인간 너머 존재들을 위한 법학

이 책은 총 3부로 이루어져 있다. 1부 「지구법학의 이론과 전개」는 지구법학의 기본 개념을 살핀다. 먼저 박태현(강원대 법전원 교수, 환경법학)은 지금 우리가 지구법학을 이야기해야 하는 까닭으로서 ‘인류세’라는 시대적 배경을 지적한 뒤, 지구법학의 주요 내용과 그 법적 의미를 살펴본다. 오동석(아주대 법전원 교수, 헌법학)은 한국 헌법의 여러 개별 조문을 근거 삼아 생태적 헌법 해석론을 펼치는 한편, 헌법재판소나 법원 등 “개별 사안을 해결하는 동시에 법의 원칙을 선언”하는 역할을 맡는 사법부에 생태적 관점을 요청한다. 정준영(서울대 법학과 박사 과정, 법철학)은 비인간 자연에 법적 권리를 부여하는 데 있어 기존 법철학의 권리 이론이 갖는 한계를 지적하는 한편, 주체/객체 이분법 위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비인간에 대한 사유재산권 제도를 지구법학의 관점에서 검토하면서 대안적 관점을 모색한다.

2부 「인간 너머의 정치, 바이오크라시를 향하여」는 생명주의 정치체제로서 ‘바이오크라시’를 소개한다. 김왕배는 비교적 최근에 사회 이론의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주목받고 있는 신유물론, 사변적 실재론 등의 이론을 개괄하면서, ‘비인간’이 행위주체로 자리매김한 사회와 정치는 어떠한 식으로 변모해야 하는지를 논한다. 이후 안병진(경희대 미래문명원 교수, 정치학)은 ‘민주주의는 우리가 마주한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서 논의를 시작한다. 국가 권력을 입법, 사법, 행정부로 나누어 서로 견제하게 한 대의민주주의 모델의 메커니즘이, 상호 견제 기능이 약화되는 오작동을 일으키며 현재의 생태위기에 적절히 대응하지 못하는 한계를 지적한다. 아울러 그는 삼권분립에 ‘심의적 미래부’를 추가해, 비인간 주체와의 공존을 과제로 안은 미래 세대의 정치 참여를 제안한다.

3부 「한국 사회의 사례들─실험과 도전」은 인간과 비인간이 정치적, 사회적 차원에서 얽혀 있는 한국 사회의 여러 단면들을 포착해낸다. 김준수(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 수료, 정치생태학)는 2020년 생태계 교란 생물로 지정된 붉은가재Procambarus clarkii의 사례를 제시한다. 붉은가재의 교란 생물 지정은 국민국가가 자신의 영토 안에서 토착종을 보호하고 외래종은 퇴치·제거하는 생명 안보biosecurity의 한 장면으로, 이를 통해 필자는 인간 중심적 생명 안보 지식의 생산과 정책 수행 과정에 대한 성찰을 요청한다. 최정호(서울대 빅데이터 혁신융합대학 사업단 연구교수, 헌법학)는 2021년 10월 한국 행정부가 제출한 ‘민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통해, 한국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 동물의 법적 지위 문제를 살펴본다. 그는 비슷한 시기에 제출된 여러 법률안의 내용을 확인하고 이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아울러 고찰한 뒤, 유사 입법례로서 독일과 스위스의 논의를 통해 시사점을 도출한다. 박태현은 최근 한국에서도 논의가 본격화하는 남방큰돌고래의 법인격 부여에 대해, 특정 생물 종이나 생태계, 넓게는 자연 전체를 권리주체로 인정하는 해외 입법례를 소개한다. 그 후 현행 법체계 내에서 제주 남방큰돌고래를 생태법인으로 창설하는 방안들을 검토해본다.


■ 책 속으로

기존 윤리학이 인간의 자유에 기반한다면, 새로운 윤리학의 토대는 미래 세대에게도 삶의 정초가 되는 자연이다. 새로운 윤리학은 자연과 인간을 포괄하는, 즉 인간 대 인간에서부터 현세의 인간 대 미래의 인간, 인간 대 동식물 등을 모두 포괄하는 총체적 관계망으로서 유기체에 관심을 두어야 한다. (김왕배, 「‘인간 너머’ 자연의 권리와 지구법학」, 39쪽)

인류세 개념은 인간 활동이 지구 표면을 바꾸는 결정적 힘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가리키는 과학적 개념인 동시에, 인류세적 위기를 통해 인간과 자연의 존재론적 지위에 대한 새로운 성찰을 요구하는 실천적 개념이기도 하다. 특히 후자와 관련해서는 인간과 자연이 개별자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의존적이고 상호 형성적인 과정에 놓여 있음에 주목하고, 이들의 관계성에 대한 성찰과 새로운 물질적·사회적 관계 형성이 요구되고 있음을 강조한다. (박태현, 「인류세에서 지구 공동체를 위한 지구법학」, 64~65쪽)

지구법학의 헌법 해석 방법론 논의는 헌법 텍스트 안에서 미시적인 변화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일이다. 논리적으로 전제되고 있지만 인간 중심의 사고방식 탓에 드러나지 않은 헌법 규범을 드러냄으로써, 사법부가 지구법학의 관점을 수용할 수 있는 통로를 내보는 것이다. 전통적인 헌법 해석 논쟁에서는 두 가지 견해가 대립한다. 헌법 문언을 통해 헌법 제정자의 이해와 의도를 탐구하는 견해가 한편에 있다. 다른 한편에는 ‘살아 있는 헌법’의 기반 위에서 헌법이 변화하는 사회관계에 적응하도록 해석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오동석, 「지구법학 관점에서 한국 헌법의 해석론」, 120쪽)

지구법학의 실천적 요점은 그러한 자연물이 가지는 비-법적 권리를 한발 더 나아가 법규범에 의해 인정되는 법적 권리로 전환하는 것이다. 이 지점에는 도덕적 권리와 법적 권리 사이의 간격이 존재한다. 하나의 도덕적 권리는 어떤 근거에 의하여 실정법적으로 제도화된 권리로 승인될 수 있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우리는 앞서 언급한 의사 이론과 이익 이론에 다시 호소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자연의 권리는 두 이론으로는 설명되기 어렵다. 이것이 바로 자연의 권리 개념이 부딪치게 되는 권리 이론상의 난점이다. (정준영, 「지구법학과 사유재산권」, 161쪽)

바이오크라시는 인간 너머 자연에 더 많은 관심과 더 많은 양보, 그리고 더 많은 권리, 민주주의 체제에서 더 많은 자리를 마련한다. 비인간 자연은 단순히 수혜나 특혜, 돌봄의 대상이 아닌 체제 수행의 적극적인 능동적 행위자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바이오크라시는 비인간 물질에 대한 신유물론적인 철학적 사유를 통해 인간-자연의 존재론적 횡단성과 수평성을 강조하면서 여전히 인간으로부터 출발하는 생태민주주의를 넘어서고자 한다. 바이오크라시 역시 생태민주주의자들의 기획과 마찬가지로 자연을 대변하는 대리인의 정치 참여를 강조하지만, 이를 넘어 비인간 자연에 아예 법인격을 부여하는 식으로 패러다임의 급진화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 중심에 지구법학이 있다. (김왕배, 「‘비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와 정치의 재구성」, 243~244쪽)

이 담론들은 우리 상상력의 지평을 넓힌다. 하지만 이 점진주의적 확장 이전에 아예 우주론과 지구론의 차원에서 인간의 위치를 재고한다면, 일부 권리의 확장이 아니라 더 대담하고 다른 차원의 생명주의 정치체제에 대한 발상이 가능하다. 동물들의 권리를 더 확장하자는 이야기 이전에 “지구를 배제한 채 인간의 해방을 이야기할 수 없다”는 강력한 담론이 등장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는 새로운 정치체제에 대한 상상력으로 필연적으로 이어진다. (안병진, 「민주주의의 실패를 넘어 바이오크라시로」, 273~274쪽)

앞선 연구들이 공통적으로 지적하는 것은 외래종 문제에 대한 생명 안보의 정책적 작동이 특정 전문가들의 과학 지식에 근거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 과학 지식이 잘못된 근거와 판단 기준으로 구성될 수도 있으며, 외래종에 대한 과학 지식 생산 활동이 정치적, 사회적 담론 속에서 이해되는 방식과도 경합한다.이 사이에는 외래 생명의 도입과 확산 과정에 대한 서로 다른 해석과 이해의 방식이 존재한다. 인간과 자연의 관계성을 새롭게 재구성할 필요성을 강조하는 정치생태학자들과, 생태적 기능 및 분화 그리고 토착종의 생태계 균형 유지를 강조하는 환경보전과학 사이에서 외래종을 둘러싼 서로 다른 존재론의 정치가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김준수, 「한국의 외래종 관리와 존재론적 질문들」, 306~307쪽)

동물과 인간 사이의 정의로운 관계에 대한 고민이 충실히 이행된다면 주관적인 법적 권리까지는 아니더라도 동물의 입장이 잘 반영된 객관적인 법규범이 인정될 여지는 있다. 이는 물건성 부정을 말하는 개정안을 통해서도 충분히 기대할 수 있는 내용이다. 동물 권리와 관련해서는 인간 유사적 속성이 언급되는 경향이 보이지만, 핵심은 동물이 어떤 속성을 지녔는지가 아니라 한 동물과 한 인간의 권리관계에 들어갈 수 있는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최정호,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민법 개정 논의의 평가와 과제」, 392쪽)

인간 사회에서 자연의 권리를 인간 중심의 법체계에 수용하려면, 자연 자체와 다양한 형태의 비인간 생명 존재를 바라보는 우리의 인식을 전면적으로 전환해야 한다. 이러한 인식 전환은 근본적으로 문화의 문제인데, 여기서 “법의 전환적 역할”을 기대해볼 수 있다. 법이 자연 자체 또는 특정 자연물을 권리주체로 인정하고 선언한다는 것은, 이제 자연 또는 자연물을 단순한 자원이나 재산이 아닌 내재적 가치와 고유한 이익을 지닌 실체로 여기고 대우하겠다는 의도를 표현하는 것이다. 이로써 자연 또는 자연물에 대한 우리의 개별적·집합적 인식이 달라질 수 있게 된다. (박태현,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법인격을 가질 수 없는가」, 394~395쪽)

우리는 기후위기를 대변하는 인류세 시대의 종말론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다. 지구법학과 바이오크라시는 항간에 떠도는 인류세 시대의 파국 서사와 종말론에 대해 불안과 두려움, 무기력을 떨쳐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다만 요나스가 말한 대로 ‘공포의 발견술’을 통해 인간과 비인간의 관계, 그리고 아직 도래하지 않았으나 훗날 이 땅의 주인이 될 미래 세대를 위한 책임 윤리를 갖출 것을 주문한다. (김왕배, 「과제와 전망」, 442쪽)

목차

■ 차례

총서를 내며 │ 강금실

서문 ‘인간 너머’ 자연의 권리와 지구법학 │ 김왕배

1부 지구법학의 이론과 전개
인류세에서 지구 공동체를 위한 지구법학 │ 박태현
지구법학 관점에서 한국 헌법의 해석론 │ 오동석
지구법학과 사유재산권 │ 정준영

2부 인간 너머의 정치, 바이오크라시를 향하여
‘비인간 존재’에 대한 사유와 정치의 재구성 │ 김왕배
민주주의의 실패를 넘어 바이오크라시로 │ 안병진

3부 한국 사회의 사례들─실험과 도전
한국의 외래종 관리와 존재론적 질문들 │ 김준수
동물의 법적 지위에 관한 민법 개정 논의의 평가와 과제 │ 최정호
제주 남방큰돌고래는 법인격을 가질 수 없는가 │ 박태현

나가며 과제와 전망 │ 김왕배

참고문헌
필자 소개

작가 소개

지구법학회 지음

2015년 생태 문명을 모색하는 지식 공동체로서 설립된 재단법인 ‘지구와사람’ 소속 연구 단체. 환경법학자와 헌법학자, 법철학자, 정치학자와 사회학자, 변호사 등이 협력하여 지구법학을 연구하고 확산하는 데 힘써왔다. ‘자연의 권리’를 법률 체계 내에 위치시키는 지구 중심적인 법을 연구하며, 2015년부터 법률가들을 대상으로 ‘지구법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김왕배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사회학
박태현 강원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환경법학
오동석 아주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법학
정준영 서울대학교 대학원 법학과 박사 과정, 법철학
안병진 경희대학교 미래문명원 교수, 정치학
김준수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박사 과정 수료, 정치생태학
최정호 서울대학교 빅데이터 혁신융합대학 사업단 연구교수, 헌법학

김왕배 엮음

연세대학교 사회학과 교수. 대안 사회를 위한 호혜경제, 인권, 감정사회학 등을 연구하고 있다. 연세대학교에서 사회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캘리포니아 대학교 버클리 캠퍼스 동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원, 시카고 대학교 사회학과 조교수(전임초빙)를 역임했다. 지은 책으로 『산업사회의 노동과 계급의 재생산』 『도시, 공간, 생활세계』 『감정과 사회』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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