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의 양식들

김병익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10월 9일 | ISBN 9788932042183

사양 변형판 140x210 · 443쪽 | 가격 26,000원

분야 산문

책소개

풍성한 경험으로 이룬 양식(良識)을 담는
빛나는 언어와 사유의 양식(樣式)

두 겹의 양식을 통과하며
촘촘하고 넉넉해지는 기억들

시대를 진단하고 흐름을 전망하는 자유 지식인으로서 문단과 지성계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겨온 김병익의 글 모음집 『기억의 양식들』이 출간되었다. 기자, 문학평론가, 번역가, 출판 편집인 등 다양한 역할을 수행하며 활발한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는 김병익이 2년여 만에 펴내는 책이다. ‘글 모음’이라는 표현에 충실하도록, 근래에 발표한 글들은 물론 중년 시절의 저작, 어릴 적의 시와 산문, 내군(內君)의 글, 각종 수상 소감 및 대담 등까지 총망라하였다.
삶은, 그리고 문학은 단순히 시간이 쌓여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억에 의해 적극적으로 구성된다. 저자는 인간의 안팎을 채우는 이 ‘기억’에, 나아가 기억이 거치는 두 겹의 ‘양식’에 주목한다. 기억은 ‘양식(良識)’화됨으로써 시간과 체험의 의미를 붙들고, 언어, 사상, 예술 등을 통해 ‘양식(樣式)’화됨으로써 이를 널리 공유한다. “인간의 발전과 성숙”이 “기억의 이 두 가지 작업”(「책머리에」)을 통해 진전되어왔듯, 그 작업의 결실인 이 책 또한 독자의 ‘기억의 양식들’로 편입되어 커다란 울림을 선사할 것이다.

7년 전부터의 근래의 글들에, 기왕의 책 안에 들지 못한 오래전의 글들도 함께 모아 묶고 싶은 욕심이 일었다. 그래서 한창 문단 활동을 하던 때에 썼으면서도 단행본에 끼지 못한 글들과 젊을 때의 뜨겁지만 수선스러운 글들, 십대의 속셈 없이 어린 글들까지, 한자리에 몰아보았다. [……] 그 경험들을 그냥 기억이라 해야겠다. 어머니 등에 열로 들뜬 몸이 업혀 약방에 가던 가장 오랜 추억으로부터 묵은 시절을 회상하기 며칠 전까지의 내 존재는, 그래, 그 갖가지 기억들이 얽힌 덩어리라는 것들로 응어리지고, 흩어지고 다시 뭉쳐지고 아련해지며 더불어 일구는 잇달음, 돌이킴, 이어짐, 밀림, 쌓임 들에 나는 젖어 있었다. 그 덕택에 인간이란 기억의 존재란 것을 새삼 더욱 깊이 깨닫는다.
_「책머리에」


세상을 이해하고 통찰하는 문명비평가,
그리고 책을 사랑하는 평생의 독서가

총 다섯 개의 부로 구성된 『기억의 양식들』은 언제나 치열하게 읽고 쓰며 살아온 저자의 삶을 너르게 아우른다. 특히 Ⅰ~Ⅲ은 저자가 중년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부지런히 발표해온 글들로 묶였다. 〈Ⅰ 기억의 자리들〉은 저자가 그동안 축적해온 세월과 경험이 어떠한 자리에 놓일 수 있을지 고민한 흔적들로, 문학은 물론 사회, 예술, 인문, 역사 등 폭넓은 분야를 향한 날카로운 시선이 돋보인다. 문학평론가로서의 면모가 두드러지는 〈Ⅱ 기억의 형상들〉에서는 시, 소설 그리고 문인에 대한 저자의 구체적인 관점을 확인해볼 수 있다. 한편 저자가 1960~70년대에 발표한 글들을 모은 〈Ⅲ 기억 일구기〉는 지금 이 시점에도 여전히 유의미한 느낌표와 물음표를 묵직하게 던진다. 이상의 세 부는 저자가 시대의 변화를 생애 동안 압축적으로 경험한, 또 이를 총체적으로 바라봄으로써 역사적 전망을 지향하는 ‘문명비평가’임을 여실히 보여준다.
이어지는 〈Ⅳ 숨어 있는 기억들〉에서는 저자의 청소년‧청년 시절 모습과 순수한 열정이 곳곳 엿보이며, 기록과 회고를 중심으로 여물어진 〈Ⅴ 기억을 밝히다〉는 그간 문사(文士)의 이름으로 활약해온 저자의 역정을 포괄적으로 그러모은다. 두 부로 나뉘어 실린 글들이 각각 삶의 전반부와 후반부에 해당함에도 나란히 놓고 보았을 때 시차가 느껴지지 않는 까닭은, 저자가 항상 변함없이 독자의 자리에서 책의 곁에 머물며 글을 아껴왔기 때문일 것이다. 평생토록 성실한 독서가로 살아왔음을 고백하는 저자의 음성은 전 생애에 걸친 그의 기억을, 그리고 그 양식들을 관통한다.


■ 책 속으로

아카이브는 주로 그 예술가들이 남긴 문자들로 집중되겠지만, 그것은 예술 이전의, 예술 바깥의, 또는 예술 이후의 예술적 속살이 되고 예술가의 실재가 되어야 한다고 저는 이해하고 있습니다. 이런 예술의 잡것들이 완성된 예술품의 자산이 되며 우리의 예술 이해와 그 사랑에 관여하고 있을 것입니다. 성취를 향한 실패의 집적, 완성에 이르기 위한 도정의 쓰레기들, 끝내 이를 수 없을 최종을 향한 중도의 좌절 기록들이 우리가 존중하고 수용해야 할 아카이브의 내용과 실재일 것입니다. 역사와 예술이 하나의 집요한 진행이라면 아카이브의 소장품들은 그 진행이 만들거나 흘린 물적 증거일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사소한 유품들, 쓰잘 데 없어 보이는 잡품들이 인간의 진짜 기록이고 살아 움직이는 역사와 예술의 증후가 될 것입니다.
_「예술 창조의 숨은 위엄」

세대와 세대 간의 거리는 근본적인 단절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기질이나 사고 양식에 엄청난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하나의 이벤트에 대한 감응의 농도가 다르고, 그들이 보는 각도와 역점이 다르기 때문이며, 결코 이방과의 대화나 사생아적 이복은 아니다. [……]
사람들이 흔히 두려워하는 것은 변화 자체인데, 우리 현실에서 템포가 지나치게 빠른 변화가 경외감을 일으키는 것은 당연한 한편, 그 두려움은 변화를 과감하게 받아들일 용기가 없었던 데에서 기인한 것 같다. 그러나 기존 관념이란 정적이지만 시간은 유동하고 그 유동이 수반하는 변화는, 응고된 사람에게 허무맹랑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보일 것이다. 그것은 작가들이 그만큼 생생한 스태미나를 잃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것은 구세대나 신세대가 다 같이 받아야 할 충고이다.
_「문단의 세대연대론」

책이란, 그리고 그 책 읽기란, ‘인생’이란 진지한 존재와의 관계 속에서 그것의 존재론적 무화(無化)를 깨닫게 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독자→기자→편집자→저자→역자→발행인, 다시 독자로의 귀환이란 끈질긴 인연에도 불구하고, 나는 충만했던 것도 아니지만 공허를 벗어난 것도 아니었다. 그 모호하면서도 지우지 못하고 있는 [……] 책과의 미진한 인연은 내게 삶을 덧없이 얽는 장식일지도 모른다.
_「책, 그 질긴 인연」

목차

■ 차례

책머리에

Ⅰ 기억의 자리들
땅끝, 그 끝의 환한 열림
숲과 문화, 그리고 숲의 문화
품위의 문화사회를 향하여
아름다운 우리 책, 그 말과 그림과 집
예술 창조의 숨은 위엄
자유의 광장 문화를 향하여—국립현대미술관 개관 50주년을 축하하며
인간 이해의 착잡함—이완용의 경우에서 시작된
정치가의 말
포용과 배제
작가를 기리는 방법
평화의 촛불—탄핵 사태와 관련하여
기림—황인철 변호사

Ⅱ 기억의 형상들
노후의 책 읽기—마지널리언marginalian의 즐거움과 불편함
희망은 처참을 넘어야—김규동의 시 「희망」을 읽으며
김수영 기사에 대한 후기
맏형 같은 최일남 선생님
자유와 현실―최인훈의 경우
훨훨 날아오르소서, 최인훈 선생님
못 가진 것들에 대한 시샘―종기에게
이청준 문학에의 그리움
오규원에게 보내는 뒤늦은 감사와 송구―그의 첫 시집 『분명한 사건』을 다시 읽으며
“평생이 이 순간임을,”―김형영 시선집 『겨울이 지나간 자리에 햇살이』에 비춰
시대의 고통과 역사에의 열정―정영현의 『꽃과 제물』을 읽으며
시대에 무릎 꿇었던 거물 애국자 정해룡
아름다운 작은 씨앗이 피울 제비꽃 한 송이―민병일의 『바오밥나무와 달팽이』 짚어 읽기

Ⅲ 기억 일구기
문단의 세대연대론
‘작은 시작’의 의미―김은국의 『빼앗긴 이름』
허무주의적 낙관
미망을 거부하는 미망―『새 옷 좋아하는 임금님』의 해학
왜 글을 못 쓰는가―이청준과 박태순의 경우
이념의 현실화를 위한 조건

Ⅳ 숨어 있는 기억들
눈 오는 밤
정야(靜夜)
난(蘭)
거리(距離)
여상(旅想)의 빛—정지영 작(作)
승화의 시
나다나엘이여, 나는 그대를 보았노라
현대에 있어서의 자유의 변질—그 시론

Ⅴ 기억을 밝히다
인촌상 수상 소감
공로상 수상 소감
“대결 아닌 관용의 시대…… 주저 말고 젊은 세대에 맡겨라”—조철환과의 대담
도저한 자유-지성의 부드러운 성찰—우찬제와의 대화
책, 그 질긴 인연

작가 소개

김병익 지음

1938년 경북 상주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성장했고, 서울대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했다. 동아일보 문화부에서 기자 생활(1965~1975)을 했고, 한국기자협회장(1975)을 역임했으며, 계간 『문학과지성』 동인으로 참여했다. 문학과지성사를 창사(1975)하여 대표로 재직해오다 2000년에 퇴임한 후, 인하대 국문과 초빙교수와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초대위원장(2005~2007)을 지냈다. 현재 문학과지성사 상임고문으로 있다.

저서로는 『상황과 상상력』 『전망을 위한 성찰』 『열림과 일굼』 『숨은 진실과 문학』 『새로운 글쓰기와 문학의 진정성』 『21세기를 받아들이기 위하여』 『그래도 문학이 있어야 할 이유』 『기억의 타작』등의 비평집과, 『한국문단사』 『지식인됨의 괴로움』 『페루에는 페루 사람들이 산다』 『게으른 산책자의 변명』 등의 산문집, 그리고 『현대 프랑스 지성사』 『마르크시즘과 모더니즘』 등의 역서가 있다. 대한민국문학상, 대한민국문화상, 팔봉비평상, 대산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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