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이승우가 필생의 명제로 매달려온 사랑의 문제를 추적한 결과물이다”
작가 이승우의 작품 세계를 향한
평론가 김주연의 철학적 연구
1966년 평론가로 활동을 시작한 이래, 반세기 동안 한국문학의 역사를 함께 일궈온 우리 시대 평론가 김주연의 새 연구서 『이승우의 사랑』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문학과지성사 동인이었던 저자는 독일 신칸트학파와 낭만주의 정신에 영향을 받은 독문학자로서 이론 비평 및 개별 작품평과 함께 “비평력 60년 가까”이 한국 문학 안팎의 정황을 두루 살펴왔다. 현재까지도 “한국문학의 소중한 균형추”(김태환 문학평론가)로서, 현역 평론가로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이승우의 작품들은 프랑스, 중국, 일본, 노르웨이, 스페인 등에 번역 출간되었고, 한국 소설 최초로 프랑스 갈리마르출판사의 폴리오 시리즈 목록에 오르는 등 국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각광받고 있다. 평론가 김주연은 이처럼 세계적으로 주목받는 소설가이자 한국문학의 가장 중요한 후배인 이승우의 세계를 오랜 기간 탐구해왔으며, 특히 이제까지 발표한 이승우의 소설을 아우를 수 있는 주제 가운데 ‘사랑’에 초점을 두었다. 그 끝에 탄생한 『이승우의 사랑』은 이승우 문학 연구의 총체이자 “아마도 한 생존 작가의 한 가지 테마에만 머무른 첫 비평가”(‘머리말의 대신하여’)가 정리한 최초의 연구서라 할 수 있다. 총 3부로 구성되어 있으며 각각 이승우의 작품 속 사랑에 대한 질문, 사랑의 여러 측면 톺아보기, 저자의 결론을 담고 있다. 마지막 부분은 비평과 함께 작가의 생애 및 작품의 계보를 따라 읽을 수 있도록 ‘이승우 작가 연보’를 배치했다. 작품들을 너머 작가의 ‘사랑에 대한 사유’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를 통해 문학 그리고 비평이 나아가야 할 새로운 방향에 대해서도 제언한다.
그리움과 애절함을 품고 있는 ‘사랑’은 동시에 증오와 한을 유발하는 힘들고 어려운 연상을 함께 안고 있기도 하다. 이 어려운 난제에 이승우는 처음부터 지금까지 끈질기게, 시종여일하게 매달리고 있다. 때로는 전면적·직접적으로, 때로는 은밀·음험하게 도전의 손길을 놓지 않는다. 이 사랑의 문제는, 그러나 작가 이승우의 개인적인 취향과 기호, 성향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다. 그가 내디디고, 전후 좌우로 탐색하고 있는 그 세계는 우리 인간 내면 깊숙이 똬리를 틀고 있는 본질과 닿아 있으며, 인간의 행동 하나하나를 제어하고 움직이는 에너지를 내뿜는다.
_본문에서
“이 글이 목적으로 하는 사랑은 이승우가 제시하는 사랑이며,
그의 소설이 보여주는 사랑의 가능태이다”
―문학, 질문 불안, 구원 그리고 사랑의 계보
사랑이란 단어에서 떠올릴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모습은 이성 간의 애정이다. 저자는 그러나 이승우 작가가 “연애의 범속성을 오히려 낯설어 한다”고 말한다. 이승우의 작품 세계에서 사랑은 그리움과 애절함으로 출발해 동시에 증오와 한(恨)과 고난은 물론 성스러움까지 껴안은 것이며, 평행이 아닌 수직적 권위의 형태를 띠고 있다고 덧붙인다. 이 복잡다단한 ‘사랑’의 실체를 얻기 위해서는 작품들의 여로를 하나하나 짚어봐야 한다.
1부 <사랑에 대한 질문>에서는 이승우의 사랑 3부작, 『사랑의 전설』 『사랑의 생애』 『사랑이 한 일』을 중심으로 왜 이 이 책의 연구 목적이 ‘사랑’에 있는지 살펴본다. 작품 속 주인공들은 대개 주체적으로 움직이는 사랑에 굴복한다. 『사랑의 전설』은 사람의 사랑이 불가능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는 불행한 예감을, 『사랑의 생애』는 ‘우월감’이라는 동력을 통해 사랑을 흩뜨려놓는 과정을, 『사랑의 전설』은 사람의 애정과 에로스적 욕망에 항복하는 서사를 담고 있다. 저자는 이 이해할 수 없는 작중인물들의 고뇌가 “사람이 사랑 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라 사랑이 사람 속으로 들어와서 사는 것”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 덧붙인다. 사랑이라는 불가항력의 감정에는 폭력성이 내재되어 있다. 이 억압적 사랑을 신화화하는 것이 작가 이승우 작품 속 굵직한 양상임을 밝혀낸다.
2부 <욕망과 불안의 사랑>은 타락한 세상에 가지게 되는 인간의 욕망과 불안을 상기한다. 『내 안에 또 누가 있나』 『목련공원』 『나는 아주 오래 살 것이다』 등에서 나타난 속세와 성(性)에 주목한다. 이승우의 작품들 속 성과 욕망의 관계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며 소설에서 어둡게 작용한다. 이때 욕망은 감성적 외로움뿐 아니라 육체적 외로움, 즉 성욕에 그 기반이 있고 “고통스러운 쾌락”과 죄의식이 동행한다는 점을 포착한다. 이 불안한 고통이 이승우 문학의 출발점이고, 구원의 문제가 소설의 목적지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렇다면 이승우의 작품 속 성과 사랑은 다정하게 이웃해 있을까. 3부 <사랑, 내려오다>에서는 둘이 멀리 떨어져 있으며 그 비극으로 인해 소설이 탄생한다고 말한다. 『사람들은 자기 집에 무엇이 있는지도 모른다』를 예시로 성과 사랑이 작품 속에서 싸우는 장면을 보여준다. 그 배경에는 “성은 극복되어야 하는 어떤 것이며, 사랑은 그보다 숭고한 것이리라는 잠재의식 가운데에는 이미 종교적 초월성이 내재해 있”음을 시사한다. 「마음의 부력」 「허기와 탐식」 「야곱의 사다리」와 같은 단편소설과 함께 읽으며 이 사랑의 지향점은 결국 구원임을 강조한다.
“사랑이 괴로울 수밖에 없는 것은 사랑이 불가능한 것을 욕망하게 하기 때문이다”(이승우, 『사랑의 생애』). 그러나 괴롭다고 멈출 수도 없다. 저자의 전언처럼 “사랑은 사람을 지독히 사랑하는 존재”여서, 작가 이승우에게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늘 따라붙는 필생의 명제이기 때문이다. 신성함, 기이함, 타락, 마성, 구원과 같은 다양한 측면들을 가진 이승우의 작품 그리고 저자의 혜안을 따라가는 것만으로도 사랑의 진가를 확인하는 즐거운 경험이 될 것이다.
■ 머리말을 대신하여
『이승우의 사랑』은 소설가 이승우가 필생의 명제로 매달려온 사랑의 문제를, 나 역시 꾸준히 이 문제에서 눈을 놓지 않고 뒤를 밟아온 일종의 추적의 작은 결과물이다. 그는 왜 이토록 집요하게 사랑을 붙잡고 씨름하였을까. 축축하고 어두운 욕망의 늪에 빠진 채 뒹군 것이 사랑이라고 믿은 이후, 별빛으로 빛나는 탑 사다리 사이에서 터진 야곱의 눈물! 수십 권의 소설을 쓰면서 그 길에 도달한 이승우의 회한과 자책을 나는 잘 알지 못한다. 확실한 것은 그 자책이 소설의 진기독교를 역사와 배경으로 삼은 유럽에 기원을 둔 많은 한국소설, 그리고 적잖은 한국 기독교 작가들, 이런 요소들이 꽤 긴 시간 어울려왔음에도 불구하고 지금 이승우만큼 이 문제의 한가운데에 자신을 내놓은 이는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상황을 말해보아야 하겠다는 약간의 기이한 부끄러움이 나로 하여금 이 책을 쓰게 한 것 같다. 아마도 한 생존 작가의 한 가지 테마에만 머무른 첫 비평가가 아닌지 모르겠다. 비평력 60년 가까운 자가 ‘첫’이라니!
―「머리말을 대신하여」 부분
■ 차례
1부 사랑에 대한 질문
1. 왜 사랑인가
문제의 발단
사람의 사랑
사랑과 폭력
2. 사랑에 대한 전설
사랑, 복잡화된 사물
사랑의 생애와 의문
어둠과 부드러움
사랑의 파국, 그 생산성
3. 신화 만들기
신화란 무엇인가
기독교, 신화인가
기독교 신화설과 폭력
소설도 신화인가
다시 사랑, 그리고 구원
2부 욕망과 불안의 사랑
1. 세상과 소설
세상의 부패, 타락, 단절
세상 속에서 글쓰기
2. 욕망과 성
성과 세상
성과 욕망
아버지와 집
죄의식, 그리고 불안
3. 성性과 성聖의 혼유混侑
의도된 혼유, 혹은 변형
불안의 지속—집, 아버지
3부 사랑, 내려오다
1. 성과 사랑
성과 사랑의 분리
성적 타락의 아이러니
사랑에서 사랑으로
2. 사랑 바깥의 사랑
독립된 생명체의 사랑
이타성 속의 이기성
3. 불가능의 가능—사랑과 구원
침묵의 언어—문체적 도전
변증의 한계
변증 너머 구원의 언어
‘최선을 넘어서는 최선’—기이한 죄책감
야곱의 사다리—내려오는 사랑
이승우 작가 연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