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

페터 슈탐 지음 | 임호일 옮김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발행일 2023년 9월 7일 | ISBN 9788932041940

사양 변형판 116x182 · 191쪽 | 가격 15,000원

책소개

“그러나 그가 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나는 문을 연 사람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도플갱어인가, 우연인가, 망상인가
과거의 나와 현재의 나의 진실 게임

알베르 카뮈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아마도
페터 슈탐과 같은 소설을 쓸 것이다. _『뉴요커』

인간에 대한 훌륭한 관찰자이자, 간결한 문장으로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을 적확하게 그려내는 스타일리스트라 평가받는 스위스 작가 페터 슈탐Peter Stamm의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Die sanfte Gleichgültigkeit der Welt』이 문학과지성사에서 출간되었다.

중년의 크리스토프는 젊은 배우 레나를 만나러 스톡홀름으로 간다. 그는 20년 전에 그녀와 닮은, 아니 똑같은 여자를 사랑했다고, 그녀의 남자친구가 자신의 삶을 뒤따르고 있다고 말한다. 그는 그들이 영위하는 삶을 알고 있으며, 그들에게 닥칠 운명을 안다. 이렇게 과거와 현재의 진실 게임이 시작되는데……
인간의 실존적 경험에 대한 탁월한 서술자인 페터 슈탐은 운명과 사랑, 정체성과 예술에 관한 근본적인 질문을 색다른 방식으로 펼쳐놓고 독자를 끌어들인다.

“우리는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아니면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과 화해해야 하는가?”
“나는 처음으로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에 마음을 열었다”_알베르 카뮈, 『이방인』 중에서
‘다정스러운 무관심’, 무관심이 어떻게 다정스러울 수 있을까? 다정이란 관심이 있을 때 우러나오는 감정이 아닌가. 이 작품은 제목에서부터 드러나듯이 논리적 모순이 중첩된 소설이다. 따라서 독자는 상상과 사유의 폭이 넓어짐과 동시에 모순의 실타래를 풀어야 하는 과제를 떠안게 된다.
중년의 작가인 크리스토프는 젊은 여배우 레나와 만나 반나절, 반밤 동안 한적한 스톡홀름을 함께 거닐며 이야기를 나눈다. 그는 연인 막달레나가 떠나고 쓴 첫 책으로 인기를 얻었으나 더 이상 책을 쓰지 못했다. 그러던 중 자신과 똑같은 젊은이 크리스를 만나 자신의 삶이 반복되고 있음을 깨닫고, 크리스의 애인 레나에게서 옛 애인 막달레나의 분신을 본다. 크리스토프는 청년 크리스가 자신의 도플갱어이고, 크리스와 레나가 자신과 막달레나의 삶을 시간차를 두고 평행으로 반복한다고 생각한다. 두 쌍의 연인들은 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도 놀라운 유사성을 보인다. 크리스와 레나는 크리스토프와 막달레나의 관계를 반복할 운명일까? 크리스토프와 막달레나의 관계는 미래에 대한 경고인가? 운명이란 정해져 있는가? 누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이 작품은 서술문과 인용문 간의 경계 · 현실과 상상의 경계 · 우연과 필연의 경계를 허물고, 더 나아가 시간의 파격적인 전도를 시도하며 현재와 과거의 경계도 해체한다. 작품의 제목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은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의 말을 차용한 것이다. 논리적 설명이 불가능한 뫼르소의 행동을 통해 삶의 허무와 부조리를 말한 카뮈와 같이, 페터 슈탐도 우리 삶의 불가해함과 부조리를 탐색한다. 많은 사람들은 관습적으로 살아가며 인식조차 못 하지만, 이러한 삶의 불가해함과 부조리가 인간 삶에 당연하다는 듯이. 『뉴요커』는 “알베르 카뮈가 오늘날 살아 있다면 아마도 페터 슈탐과 같은 소설을 쓸 것”이라며 격찬했다.

도플갱어인가, 우연인가, 망상인가
독자를 탄탄하게 구성된 미로 속으로 안내하고, 독자는 이 미로 속으로 행복하게 빠져든다.
_스위스 문학상 심사위원회
이 작품은 페터 슈탐 특유의 “언어적 미니멀리즘”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가 축약되어 있을 뿐 아니라 축약된 언어가 종횡무진으로 미로를 만들어낸다. 때문에 독자는 이 미로에서 여하히 출구를 찾아내야 하는 문제에 봉착한다. 이 미로는 얽히고설켜 있어 독자를 혼란스럽게 만들지만, 걸음을 옮길 때마다 호기심과 궁금증을 불러일으키는 낯선 입체화立體畵들이 미로의 벽에 줄줄이 걸려 있어 독자는 출구 찾기보다는 어느새 그림을 해석하고 감상하는 재미에 빠져든다.
또한 도플갱어라는 소재로 진실을 추적하는 과정이 미스터리한 재미를 주기도 하지만, 작가는 시간의 자연적인 흐름을 뒤섞어 무엇이 사실인지, 크리스토프가 기억하는 것이 존재하기는 했는지 혼란스러운 구도를 만들며, 존재의 문제로 나아간다. 그러나 이 작품이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답이 아니다. “말할 수 없는 것을 말하는” 문학의 가능성이다. 학문용어는 논리적일 때 그 타당성을 인정받고 설득력을 얻지만, 문학에서는 언어가 논리와 비논리의 경계를 초월한다. 따라서 “모순”은 모호성과 다의성이 확장되어, 무한한 의미의 가능성을 지니게 된다. 이 작품은 모순의 언어가 지니는 모호성과 다의성으로 행간과 자간의 넓이와 깊이를 확장시키며 독자의 상상과 사유의 폭을 넓혀준다.

이것은 어쩌면 한 남자의 미련에 관한 이야기-사랑과 소유
난 아직도 그녀를 사랑하오. 드디어 내가 나직하게 말했다. (79쪽)
이 책이 사랑에 대한 이야기라는 것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페터 슈탐은 사랑에 대해 중요한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사랑의 이상향은 완전한 소유인가? 파트너는 실제로 얼마나 자유롭고 평등한가? 이 소설은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며 연인들이 부정하고 싶어하는 어두운 측면을 증언한다. 친밀감을 바탕으로 한 공생에는 때로는 미묘하고 때로는 공격적으로 협상된 권력 갈등이 겹쳐지기 때문이다. 크리스토프와 막달레나, 크리스와 레나는 사랑을 하고, 예술에 대해 이야기하고, 공고한 관계를 유지하며 삶을 나누지만 어느 순간 둘만의 관계에서도 소외감이, 외로움이 느껴진다.
가장 순수한 사랑은 누군가를 소유하게 되는가, 사랑은 상계계약이 아니므로 사랑받기 위한 사랑은 사랑이 아닌가? 누군가에 대한 소유권 주장은 언뜻 이상하고 혐오스러운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반면에 그 뒤에는 완전한 영속성에 대한 열망과 사랑의 절대적인 무목적성이라는 이상향이 있다. 순수한 사랑이 소유를 포함하지 않고 무목적적인 것이라면,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더 이상 이해하고 싶지 않은 순간, 포기 역시 미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깨달음은 이 책의 빛나는 순간 중 하나이다.

■ 이 책에 쏟아진 찬사들
독자를 탄탄하게 구성된 미로 속으로 안내하고, 독자는 이 미로 속으로 행복하게 빠져든다. _스위스 문학상 심사위원회
슈탐은 어떤 장식도 없이 현실만 남을 때까지 말 그대로 언어를 벗겨낸다. 명시된 것보다 덜어낸 것에 사랑에 대한 더 깊은 진실이 있을 것이다. _『슈피겔』
현실의 경계를 시험하고 대답하는 만큼 더 많은 질문을 불러일으키는 시간 여행, 연애에 대한 신비롭고 복잡한 이야기. _『보그』
대단한 작가[……] 슈탐의 산문은 수술용 조명처럼 날카롭게 빛난다. _『이코노미스트』
유럽에서 가장 흥미진진한 작가 중 한 명. _『뉴욕타임스 북리뷰』
이 규정할 수 없는 이야기는 기억이 어떻게 현실을 왜곡할 수 있는지에 대한 명상이다. _『퍼블리셔스 위클리』
단순하고 간결한 문장이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여 복잡한 문제를 설득력 있는 방식으로 탐구한다. _『스타 트리뷴』
긴장감 있고 경제적이다. 모든 단어는 신중하게 선택되었다. _『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어두운 비밀을 탐구하고 이를 이성의 빛으로 이끄는 능력이 멋지다. _『아이리시 타임스』
소설의 복잡성과 글쓰기의 단순성 사이에 만족스러운 긴장감이 있다. _『로스앤젤레스 리뷰오브북스』
페터 슈탐은 책을 내려놓은 후에도 오랫동안 독자들을 괴롭히는 글을 쓰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_『월스트리트저널』(아시아)

 ■ 본문 속으로
젊은 청년이 나를 향해 걸어오고 있었다. 그가 자물쇠를 여는 동안 나는 유리문에 비친 내 얼굴의 영상 옆에서 그의 얼굴을 봤다. 그러나 그가 문을 열었을 때 비로소 나는 문을 연 사람이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았다. _26쪽
그가 내 흉내를 내고 있었다. 내가 다리를 꼬면 그도 꼬고, 내가 신문을 접으면 그도 접고, [……] 내가 대학생 시절에 살던 다락방이 있는 집으로 그가 들어갔을 때 나는 놀라지 않았다. 맨 위쪽의 초인종 표시에 내 이름이 손글씨로 적혀 있었는데, 필체가 내 필체와 혼동할 정도로 비슷했다. _39~40쪽 
내가 어떤 행동을 하고 어떤 글을 쓰든 간에, 항상 누가 내 뒤에 서서 내 흉내를 내는 것 같았소. 내 인생 전부가 우스꽝스럽고 잘못된 것처럼 생각됐소. [……] 하지만 가장 가슴 아팠던 건, 내가 내 사랑을 의심하기 시작하고, 그녀의 사랑을, 나아가 우리 사이에 있었던 모든 걸 의심하기 시작했다는 거요. 우리의 모든 이야기는 잘못된 연출의 실패한 예행연습처럼 생각됐소. _42~43쪽
어쩌면 내가 그녀에게 진정 가까이 다가갈 수 없다는 느낌, 그녀를 결코 충분히 들여다볼 수 없으며, 그녀를 완전히 소유할 수 없다는 느낌, 바로 이것이 나로 하여금 그녀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녀가 나를 어떻게 여기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그녀가 나를 사랑한다는 유일한 증거는 그녀가 내 곁에 있다는 것뿐이었다. _83쪽
크리스에 대한 내 분노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그가 내 삶을 그대로 베껴 삶으로써 마치 내 인생을 도둑질해 가고, 내 삶을, 내 자신을 말살하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돌연 나는 그의 죽음만이 나를 구원하고 다시 올바른 삶을 찾을 수 있게 하리라는 확신이 들었다. [……] 그의 삶을 종식시키는 것이 마치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며, 그것이 내 권리인 것처럼 여겨졌다. 그의 삶은 곧 내 삶이었다. _117~18쪽
나는 그 당시 막달레나가 말하거나 행동했던 것을 이제 잘 이해하게 되었다. 내가 그녀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깨달았다. 젊은 파토스에 휩싸여 나는 그녀와 글쓰기 중 하나를, 사랑과 자유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다. 이제 비로소 나는 사랑과 자유는 배타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가 다른 하나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공존의 관계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_133쪽
작가 소개

페터 슈탐 지음

1963년 스위스의 투르가우주 쉐르칭에서 태어나 바인펠덴에서 자랐다. 취리히와 뉴욕의 대학에서 영문학과 심리학, 정신병리학을 공부하다 중단하고 뉴욕과 파리, 베를린 등 여러 지역에서 체류했으며, 1990년 스위스로 돌아와 저널리스트와 방송작가로 활동했다. 1998년 장편 『아그네스』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데뷔했으며, 소설집 『급빙』 『낯선 정원에서』 『우리는 날아간다』 등과 장편소설 『희미한 풍경』 『오늘 같은 어느 날』 『7년』 등을 꾸준히 발표했다.
라우리스 문학상과 라인가우 문학상, 스위스 실러 재단 상, 카를 하인리히 에른스트 예술상, 프리드리히 횔덜린 문학상 등 다수의 문학상을 수상하고, 2013년에는 맨부커 인터내셔널상 최종 후보에 올랐다. 2018년 장편 『세상의 다정스러운 무관심』으로 스위스 도서상을 수상했으며, 그의 작품은 전 세계 3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임호일 옮김

고려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학사 · 석사학위를, 오스트리아 그라츠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동국대학교 문과대학장, 도서관장, 한국독어독문학회 부회장, 한국뷔히너학회 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동국대학교 명예교수이다. 옮긴 책으로 페터 슈탐의 『가출』과 그 외에『진리와 방법』(공역), 『한스-게오르크 가다머』 『뷔히너 문학전집』 『편견-인류의 재앙』 등이, 지은 책으로 『천재를 부정한 천재를 아십니까』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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